" 야, 한국말은 제대로 할 줄 아냐? "
" ... "
" 거봐, 이 새끼 한국말 못 한다니까? 아 재미없어. "
유독 눈에 띄는 금발을 한 남자아이를 둘러싼 덩치 있는 남학생들이 한껏 그 아이를 골리곤 머리를 툭 툭 친 뒤 왁자지껄 떠들며 자신들의 자리로 돌아간다.
그리고 그 남자아이는 익숙한 듯하지만 화가 나는지 한 쪽 눈썹을 추켜올릴 뿐이었다.
이것이 내가 전학 와서 처음 그 아이를 본 순간이었다.
그냥 다가가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그 아이가 귀에 꼽고 있던 이어폰을 뺀 후 옆자리에 앉았다.
당황한 듯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는 그 아이에게 좀 부끄럽지만 내색하지 않고 손을 건넸다.
" 안녕, 난 000이야. 오늘 전학 왔어. "
그 아이는 나의 손을 물끄러미 바라볼 뿐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았다.
머쓱해진 난 그 아이의 손을 잡고 흔든 뒤 연습장을 꺼내 그 아이에게 질문을 했다.
이 아이가 혹시나 진짜 한국말을 못 하면 어쩌나 싶은 것도 있지만 이 아이가 말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아서였다.
그 아이는 내 질문에 순순히 대답했다, 외국인 남자애치곤 꽤 정갈한 글씨체였다.
그러던 와중 나는 문득 궁금해졌다, 그래서 그 아이에게 귓속말로 물었다.
" 있잖아, 너 한국말... 못해...? "
그렇게 묻고는 내가 좀 너무했나 싶어 혼자 심각해져 있으면 그 아이는 웃어 보이더니 똑같이 내게 다가와 귓속말로 대답했다.
" 아니, 할 수 있는데. "
그렇게 이 아이와 친구가 된지도 두 달이 흘렀다.
이 아이는 혼혈이지만 어렸을 때부터 한국에서 살아서 한국말을 굉장히 능숙하게 구사했다.
한국 이름은 한솔, 최한솔.
" 야 한솔아 근데 너 왜 쟤네 앞에선 말 안 해? "
" 하나 안 하나 욕하는 건 똑같으니까. "
예상치 못한 대답이 흘러나오자 나는 밥을 떠먹던 숟가락을 내려놓고 한껏 심각해졌다.
한솔이는 그런 나를 살펴보다 살며시 말을 걸어왔다.
" 너 왜 그렇게 심각한 표정이냐? 내가 그런 표정 지으면 밥 앞에서 왜 그런 표정 짓냐고 나보고 뭐라 하는 애가. "
그럼 나는 혼자 고민하다 진지하게 한솔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 너 욕먹고 다녀? "
" 요샌 별로, 너랑 붙어있어서 그런가. 네가 좀 세게 생겼냐? "
" 아 죽을래? 근데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너 왜 욕먹었는데? "
한솔이는 어이없단 듯이 피식 웃곤 나를 흥미롭게 쳐다본다.
" 000, 너 혹시 아직 투지 쓰냐? 아님 집에 컴퓨터나 티비 없어? "
" ...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야 그래도 티비 정돈 있거든? "
" ... 뭐야, 진짜야? 진심? 아 어쩐지 카톡에 네가 안 뜨더라. "
" 누구 놀려? "
" ... 그 숟가락은 좀 내려놓지? 알았어 알았다고, 말해줄게. 그거 좀 내려놔! "
살며시 들었던 숟가락을 내려놓고 한솔이를 바라보자 한솔이는 몇 번 목을 가다듬곤 말문을 열었다.
" 나 인터넷에서 유명해. "
" 뭐? 네가? 이게 어디서 거짓말이야! 너 내가 문명찐따라고 막말할래? "
" 아씨, 그럼 듣지 말던가! "
" ... 속는 셈 치고 들어나 줄게. 어디 한 번 말해봐. "
" 나 랩해, 너 말곤 다 알 걸. 근데 그렇게 유명한 놈이 혼혈에다가 지네랑 똑같은 학생이면서 온갖 특별한 대우는 다 받아. 너 같으면 어떻겠냐? "
" 그게 어때서? "
" 뭐? "
" 그게 어때서. 질투 나면 자기들도 랩 하라 그래! 내 앞에서 외톨이 완곡하면 내가 인정해준다 그래. "
" 허... 000, 너 진짜 특이하다. "
" 내가 특이한 게 아니고 걔들이 특이한 거라고 하는 거야 이럴 땐. 아니 맞잖아, 질투 나면 자기들도 잘하는 거 뭐 하나 만들던가. 왜 착한 애를 못살게 굴고 지 x이야, 지 x이! "
내가 너무 흥분한 나머지 욕설까지 섞어가며 열 분을 토하자 한솔은 내 입을 자기 손으로 막기 시작한다.
나는 왜 그러냐며 발끈해보지만 곧 한솔이의 말에 잠잠해지고 말았다.
" 아 왜 예쁜 애가 입을 이렇게 험하게 쓰냐, 좀 조용히 해! "
그렇게 시끌벅적한 식사를 마치고 한솔이와 함께 집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아까 한솔이 한 말이 사실인지 여기저기서 우릴 쳐다보는 시선이 닿았다.
한솔이는 어쩐지 나를 만날 때마다 항상 스냅백을 썼다, 이제야 그간 있었던 러브레터라던지 작은 선물들이 이해가기 시작했다.
약간 어색한 기류가 흐르는 와중 둘 사이의 정적을 깬 건 한솔이었다.
" 야, 너 17일에 뭐 하냐. "
" 17일? 그날 개교기념일 아니야? 그날 뭐... 집에서 놀겠지. "
" 나 공연하는데 그날. "
" 그래서 뭐 어쩌라고. "
" 아니 야, 넌 무슨 여자애가 이렇게 눈치도 없냐? 오라고 보러. "
" 이게, 저번부터 자꾸 디스야! 나 바쁜 여자거든? "
" 너 집에서 세봉인가 에이틴인가 걔네 보면서 헤벌쭉 할 거 다 알거든. "
" ... 그래서 몇 시, 어디라고? "
한솔은 그제야 소리 내 웃더니 내 손에 티켓을 쥐여준다.
" 우리 맨날 지나오던 곳이야 여기. 너 그날 얼굴 가릴 거 좀 가져와라. "
" 왜? "
" 네 얼굴 인터넷에 떠돌아다니길 바란다면, 그리고 핸드폰이 터질 것처럼 연락이 오길 바라다면 그냥 오던가. "
" ... 네 스냅백 좀 빌려주라. "
한 손에 티켓과 한솔이의 모자를 들고 집으로 들어섰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방으로 들어가려는데 내가 들어오는 소리를 들은 동생이 내게 달려와 호들갑을 떨며 휴대폰을 보여줬다.
또 자기 가수겠지 하고 화면으로 눈을 돌리면 보이는 한솔이의 공연 영상이었다.
서둘러 폰을 뺏어들고 그렇게 그 아이가 공연하는 것을 지켜봤다.
그리고 난 느꼈다, 나는 지금 최한솔의 무대를 직접 보고 싶어 한다.
아니 나는 그냥 최한솔을 보고 싶어 하고 있다.
나름 가린다고 가렸는데도 영 불안한 게 가기가 두려웠다.
그때 나의 마음을 읽었는지 서둘러 오라는 최한솔의 전화가 왔다.
단단히 옷을 여미고 나는 공연장으로 향했다.
아직 시작하려면 한참 멀었는데 벌써부터 인파로 붐볐다.
안 그래도 작은 키 때문에 끙끙거리며 내 자리를 찾고 있는데 누군가 내 손목을 잡아왔다.
" 자리 찾아줄까요? "
" 아... 아뇨, 괜찮습니다. "
" 에이, 괜찮은 게 아닌 것 같은데. 티켓 좀 보여줄래요? 찾아줄게. "
막무가내로 티켓을 뺏어들고 이리저리 둘러보던 그 남자는 이윽고 자리를 찾아 나를 앉히곤 그 옆에 앉는다.
" 저... 자리 안 가세요...? "
" 내 자리 여긴데. "
" 에, 거짓말 치지 마세요. "
" 맞아요, 네 옆자리는 내 자리. "
무슨 이런 지나가던 개가 비웃을 것 같은 드립을 치냐, 하 차라리 전원우가 하는 드립이 더 재밌겠다.
그 남자는 자신의 드립에 만족했는지 혼자 웃기 바빴다.
다 웃었는지 갑자기 불쑥 내 앞으로 휴대폰을 내밀었다.
그저 멀뚱히 바라만 보고 있으니 그 남자는 어서 번호를 달라고 재촉했다.
그리고 나는 번호를 쳐줬다.
그는 바로 전화를 걸어 확인했지만 내 전화는 울리지 않았다, 그는 황당해하며 내게 뭐냐며 따졌다.
그런 그에게 한 마디하곤 나는 도도하게 무대로 시선을 돌렸다.
" 전원우라는 친구 번호에요, 나보단 둘이 잘 어울릴 것 같아서. "
곧이어 쾅쾅 거리는 비트와 함께 한솔이와 함께하는 래퍼들이 등장했다.
나는 스냅백을 눌러쓰고 그 비트에 빠져 열심히 환호 중이었다.
그런데 저 앞에서 나를 유심히 보며 자기들끼리 속삭이는 여고생 무리가 보였다.
" 야 저거 한솔이 오빠 모자 아니야? "
"에이 똑같은 모자겠지. "
" 아냐, 한솔이 오빠 이니셜도 있는데? "
아뿔싸, 내가 느낀 불안함이 영 거짓된 느낌이 아니었나 보다.
나는 위기감을 느끼곤 살며시 자리를 빠져나가려 몸을 돌렸다.
그러자 그 학생들은 나를 쫓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우리에게 시선이 쏠리기 시작했고 무대 위에서 잠시 인터뷰하는 시간이었던 한솔이는 그것을 다 지켜보고 있었다.
갑자기 마이크를 뺏어든 한솔이 멘트를 시작했다.
" 여러분, 자 분위기가 너무 후끈해서 그런가? 너무 들뜨신 분들이 많네요~ 거기 학생들 자리에 착석해주면 착한 어린이. "
학생들은 나를 쫓고 있었단 사실을 까먹었는지 꺅 거리며 자리로 돌아갔다.
나 역시 한숨 돌렸지만 이런 일이 또 발생할 것 같아 그대로 퇴장하려 하는데 스피커를 타고 한솔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 거기, 모자 쓴 학생. 학생은 착한 어린이 아니에요? "
내게 다시 쏠린 시선에 눈물을 삼키며 조심히 자리로 돌아왔다.
" 자 이제 좀 진정도 된 것 같고, 프리스타일 한 번 갈까요? "
한솔이의 발언에 사람들은 열심히 소리를 질러 화답했다.
잔잔한 비트가 흘러나오고 한솔이는 플스타일로 랩을 하기 시작했다.
뭔가 서툴지만 풋풋하고 사랑을 표현하고 싶은 남고생의 고백같은 랩이었다.
무대 위를 돌아다니며 랩을 하던 한솔이가 갑자기 무대 밑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곧바로 내게 돌진해오며 여전히 싱글벙글 웃으며 랩을 이어갔다.
관객들은 흥미진진한 상황을 열띤 환호로 반겼고 어느새 내 앞에 도착한 한솔이 계속해서 달달한 가사를 뱉었다.
잔잔한 비트가 끝나고도 한솔이는 속삭이듯 그렇게 내게 고백을 하고 있었다.
" 욕하는 여자 싫어하는데 그거 너는 예외인 것 같다. "
"... "
" 눈치 더럽게 없는데도 그게 매력이야. "
" 야... "
" 너 곤란해지는 거 싫어서 너 보여주기 싫어서 꽁꽁 숨기려 했는데, 이렇게 돼버렸네. "
"..."
"시작해 이제 곧 시작해
그동안 고민한 내 맘 들키지않게
숨겨서 미안해 정말로 미안해
말할께 남자답게 듬직하게
너를 사랑해 정말로 사랑해
어떻게 꾸며볼려해도 참간단해
이말밖에 널 향한 내맘을
보여줄수 있는게 없어 사랑해"
가사: 데프콘 -청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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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딱 두 멤버가 남았네요ㅠㅠㅠㅠ 보고 싶으신 주제가 있으시다면 꼭 질문방에 남겨주세요!
아참 저는 이번 앙콘 허락을 받았습니다 헤헤, 우리 봉봉들을 위해 소소한 간식 나눔이라도 할까하는데ㅠㅠ 제가 너무 비루한 사람이라 봉봉들 안구보호가 시급할 것 같네요!
혹시나 첫콘에서 인디핑크 후드티를 입고 얼굴에 하트 스티커를 붙이고 키가 매우 작은 못생긴 여자를 보신다면 접니다! 하하!
울 봉봉들도 꼭 앙콘 갈 수 있기를 바라며 오늘은 이만 갑니다... 총총.
암호닉, 주제 신청, 오타지적, 신알신 언제나 받고 있습니다! 늘 감사합니다!
♥우리 봉봉이들 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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