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프리텔캄 (Roopretelcham)
모든것을 이루어지게 하는 주문
chapter 1 . 조금은 위험한 마법사
' 속보입니다. 최근 서울 도심에서 청소년들을 홀려 실종에 이르게 하는 이른바 '마법사' 사태가 더욱 심각해지고 있는… '
' 사라진 아이들 대부분이 학교폭력 피해자로 밝혀져… '
' 고통을 받고 있는 아이들 사이에서 구원자로 칭송받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 큰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
"참 웃겨."
"내가 왜 범죄자야."
"아이들 아픔 하나도 제대로 못 챙겨서 정작 죽게 만드는건, 지들이면서."
*
"아야…"
거참, 달 하나 무섭게도 떴네. 자고있는 엄마와 동생 몰래 집 밖을 나와 아파트 복도에서 약을 발랐다. 언제나 팔은 상처투성이. 잘 안보이는 곳만 골라서 때리고 상처내는 악질 날라리들 때문에 항상 고생이다. 다리는 치마 때문에 보인다며 무릎 위 까지만, 팔은 팔목이 보일수도 있으니 딱 팔목 위 까지만. 나쁜 년들, 평소같았으면 조용히 약을 바르고 들어갔을텐데 오늘은 다르다. 커다랗게 뜬 달을 보니 울컥 화가 난다. 내가 뭘 잘못했다고, 내가 뭐가 그리 마음에 안 든다고.
나는 학교폭력의 피해자다. ...이렇게 포장하면, 뭐가 좀 더 달라지려나? 난 왕따다. 내가 왕따인것에 이유는 없다. 남 일에 관심이 없고, 말수가 적고, 공부를 열심히 하기만 하면 최적의 조건이다. 그리고 그 최적의 조건은 바로 나다. 고 1 첫 날부터 왕따로 찍혀들어간 나는 벌써 반년 째 왕따 체험중이다. 여름은 그나마 살만 했던것 같아. 가릴게 없어서 아이들이 많이 안 때렸지.
"....허."
많이 안 때렸지, 라. 이런 바보같은 생각을 하는 자체부터가 이미 나는 뼛속부터 왕따 기질이 있는건가보다. 복도식 아파트, 달을 등지고 복도 벽에 기대 앉았다. 새벽이라 그런지 쌀쌀하고, 아무도 없고. 약 때문에 온 몸이 따갑고 아주 난리다. 10월, 차가운 가을밤에 눈물이 찔끔 나왔다. 절대 서러워서 우는게 아니다. 추워서 잠깐 눈물이 나온거 뿐이다. 안 서럽다, 하나도 안 서러워.
"울어도 되는데."
" ! "
"아무도 뭐라 안 해."
말소리에 깜짝 놀라 옆을 돌아보니, 아슬아슬하게 난간 위에 걸터앉아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너무 놀라 얼어붙어 어버버, 거리자 픽 웃으며 내게 말한다.
"진짠데, 아무한테도 말 안할게."
갑자기 나타난 이 미친 놈은 뭔지, 실실 웃으며 울어도 된다며.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겠다며 뜬금없는 개소리를 한다. 내가 꿈을 꾸나, 무서운 마음에 슬금슬금 자리를 옮겨 일어나려는데 그런 내 모습이 마음이 들지 않았는지 김 빠지는 소리를 내며 따박따박 말하기 시작한다.
"이름은 김여주."
"나이는 열일곱."
"남한테 피해주기 싫어하고, 관심도 없고."
"말수도 적고."
"친구 만드는데 관심 없고."
"공부만 하고."
"..."
"그래서 왕따고."
넌 그래서 왕따야, 라고 치부해버리는 남자의 말에 무언가 속에서 울컥 치민다. 내가 왜? 내가 왜 저런 사소한것들 때문에 왕따라고 못 박혀야하는거지? 욱한 마음에 자리에서 일어나 남자에게 소리쳤다.
"그래서 왕따?"
"..."
"내가 왜 왕딴데, 고작 그딴 이유때문에 사람 하나 왕따 만드는 이 세상이 미친게 아니고?"
"..."
"웃겨, 내가 지들한테 뭘 잘못했는데?"
"..."
"내가 욕을 했어? 피해를 줬어? 기만하기라도 했어?"
"..."
"아무것도 잘못한거 없어. 근데 내가 왜 왕딴데? 왕따여야하냐고, 내가 왜!"
반 년, 6개월이라는 시간동안 당해왔던 모든것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간다. 하나하나 끔찍하게 떠오르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난다. 울지 않기로 약속했는데. 우리 엄마가 울면 지는거라고 그랬는데. 무턱대고 나오는 눈물에 쉽게 멈출수가 없다. 도대체 이 남자는 뭘까? 갑자기 나타나서 내 신경을 있는대로 긁어놓더니, 내가 따박따박 따지자 화도 내지 않고 난간에서 내려와 날 마주보고 씩 웃는다.
"맞아."
"..."
"그런 이유 때문에, 사람 하나 죽여놓고도 모른척 하는 이 세상이."
"..."
"이 세상이 미친거지. 단단히."
"..당신, 뭐야."
"도와줄게. 네가 아프지 않게."
"..."
"계약 하자."
"..뭐?"
"나는 너의 구원자."
"..."
"너는 나에게, 구원을 받는 자."
"...지금 뭐하는-"
남자가 복도 한가운데에 작은 원을 그려넣고, 그 위에 제 피를 떨어트렸다. 그리곤 나에게로 다가와 조심조심 머리카락 하나를 뽑아간다.
"아!"
"이게 우리의 계약서~"
"아, 지금 뭐하는거냐고요!"
내 말에도 아랑곳하지않고 남자가 원에 무언가를 제 피로 써넣기 시작한다. 그의 손에 의해 탄생한 글자는 'Rebirth'.
"Recipients to my salvation. (나의 구원을 받는 자)"
"I am your death. (나는 너의 죽음)"
남자의 말이 끝나자 그의 원에서 보랏빛이 돌기 시작한다. 동시에 달빛을 받은 그의 머리칼도 보랏빛으로 물이 든다. 17년 인생 태어나고 처음 보는 광경에 말을 잃고 구경만 하고 있자 남자가 내 손을 잡아 원 안으로 이끈다.
"으어!"
"오늘은 좋은 꿈."
남자의 말이 끝나자마자 보랏빛이 몸을 감싸며 몸이 붕 떠오른다. 이게 뭐야! 당황스러운 감정에 어쩔 줄 몰라하고 있을 때, 보랏빛이 검게 변해버린다. 기분 나쁜 느낌에 고개를 들어 남자에게 따지려하니 남자가 사라졌다. 남자가 있던 자리에 뚝 떨어져있는 종이 한 장.
"..계약서?"
' 계약서 '
' 1. 김여주는 전원우의 말을 무조건적으로 따른다. '
' 안 따르면 죽는다 '
' 2. 김여주는 전원우를 고맙게 생각해야한다. '
' 안 그러면 죽는다 '
' 3. 김여주는 왕따에서 벗어난다. '
' 그렇지 않을 시 전원우는 죽는다. '
' 4. 계약자가 사망할 경우, 전원우 또한 죽게된다. '
"이.."
"거지같은.."
혹여나 또 미친놈이 올까 얼른 집 문을 열고 들어왔다. 꿈을 꾼거겠지. 쫓기듯 방 안으로 들어와 침대에 몸을 던지고 뺨을 때려보는데 아프다. 엄청 아프다. 말도 안돼, 내가 지금 무슨 짓을 당하고 온거지. 진짜 죽는건가? 그 남자 이름은 전원우고? 그 사람은 어디로 사라졌지, 설마 난간 밑으로 떨어져서 죽은건아니겠지? 생각이 계속 늘어져 머릿속이 깜깜해졌다. 으으아! 머리를 거칠게 흔들고 핸드폰을 들었다. 그래, 되긴 뭐가 돼. 왕따는 무슨. 오늘 포춘 쿠키만 뜯고 자는거야. 아무 일도 없던거라고!
자기 전 항상 뜯어보고 자는 내일, 아. 새벽이니 오늘의 포춘쿠키를 터치했다.
『 오늘 밤, 조금은 특별한 마법사가 당신을 찾아옵니다. 』
"으...."
"으으으아!!!!!!"
새벽이라 큰소리도 못내는 나의 소리없는 아우성이 이불 안에서 맴돌았다. 전원우, 눈 앞에 나타나기만 해봐. 그 보랏빛 머리칼을 다 없애버릴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