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내용은 실존했던 인물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얼굴이 곱네. 아씨는 이름이 뭐야?"
서궤위에 걸려진 비단 도포와 입고있는 저고리는 옷감을 잘 모르는 초희가 보기에도 고급스러워 보였다. 초희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던 사내는 이제 손을 내려 목선을 훑으려 하고 있었다. 이미 도를 넘어도 한참 넘었다. 얼굴 붉히지 않고 조용히 넘어가려던 초희의 생각이 제 속살에 닿은 사내의 시선을 알아채자마자 완전히 바뀌었다.
"보아하니 귀한 집 자제 분이신 듯 한데 행동은 상당히 천하시네요."
멈칫, 하고 사내의 손이 멈추었다. 뒤에서 몸을 가리기 급급하던 기생도 초희의 직접적인 언행에 놀라 눈이 커졌다. 안색 하나 바뀌지 않은 초희가 사내의 손을 거칠게 쳐내며 말을 이었다.
"모든 물건이 제 자리가 있기 마련인데, 사람의 행실은 오죽하겠습니까. 이곳은 책을 파는 곳이지, 몸을 파는 곳이 아닙니다."
서늘한 초희의 시선이 옷을 추스리던 여자에게 닿자, 얼굴을 붉히던 여자가 황급히 자리를 떴다.
시선을 거두고 다시 사내를 쳐다본 초희는 흠칫 놀랐다. 분명 방금 제가 한 말은 사내의 기분을 언짢게 하고도 남았을 텐데, 사내의 입가에는 만족스러운 웃음이 걸려있었다.
"아버지 안목하나는 알아줘야 한다니까."
저고리 매듭을 묶으며 혼잣말을 내뱉은 사내는 초희의 눈높이에 맞춰 허리를 굽히고는 다시 한번 미소를 보였다. 사내의 눈매가 시원하게 휘어지고, 거리가 너무 가깝다고 느낀 초희가 한발 뒤로 물러서자 사내가 초희의 허리를 감싸 당겨 안았다.
"키가 내 어깨까지면...오 자(尺) 정도 되려나?"
깜짝 놀란 초희가 사내를 세게 밀었다. 얼굴에 목도 모자라 허리까지 손대다니, 이것은 명백한 희롱이었다. 화를 참지 못한 초희의 볼은 빨개져 있었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당장 사과하지 않으면 관아로 달려가 이 사실을 전부 고할 것 입니다."
동백마냥 붉어진 초희의 두 뺨을 보던 사내가 갓을 쓰며 말했다.
"난 내 사람한테는 사과안해."
처음과 달리 깔끔한 모습의 사내는 그 말을 남긴 채 도포자락을 휘날리며 책방을 떠나버렸다.
*
생각할수록 분했다. 공자께서 선비란 자신의 행동에 부끄러움을 아는자라고 하였거늘. 선비의 모습으로 그런 태도를 보이다니... 아까의 일을 다시 떠올리니 초희의 얼굴이 홧홧해졌다. 제 뺨을 손으로 감싼 초희는 아까부터 글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마음을 정리하려 꺼낸 화선지 위에는 난(蘭) 대신 사내의 얼굴이 자꾸만 그려졌고, 시문을 생각해도 시덥지 않은 연가(蓮歌) 따위만 떠올랐다. 이런 적은 한번도 없었다. 끼니를 거르고 밤새 서책을 읽은 적은 있었어도, 눈에 무언가 꽉 차 다른 일을 하기 힘들었던 것은 난 생 처음 이었다. 결국 균이 구해다 준 서책을 한 장도 못 보고 덮은 초희가 그대로 침상에 누워버렸다.
"그 사내가 뭐라고...허초희. 네가 제정신이 아닌 모양이다."
"그 사내? 뭐야. 나 없는 새 정인이라도 생긴거야?"
귓가에 속삭이는 목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 일어난 초희가 목소리의 주인을 알아채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길동아!"
"오랜만이네. 그간 안녕했어?"
검은 도복에 허리춤에 맨 장검. 얼굴을 두건으로 가리고 있었지만 분명, 균의 벗이자 분신인 홍길동이 분명했다. 어릴 때부터 균의 곁을 떠나지 않았던 길동이 청으로 가게된 균을 따라가지 않을 이유는 없었고, 어제 균과 함께 조선에 돌아온 모양이었다.
"기척없이 나타나는건 여전하구나. 왜 아까 균이랑 같이 오지 않고."
"너네 둘이 그리웠네 어쩌네 하면서 진상 떠는 꼴을 나보고 보라고? 절대 싫어."
길동의 말에 초희가 웃었다.
균 뿐 아니라 초희에게도 길동은 오래된 벗이었다. 균과 길동이 떠난 빈자리는 컸고, 둘이 돌아온 지금, 초희는 비워진 곳이 채워진 기분이었다. 길동을 보고있는 초희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길동이 쓰고 있던 두건을 내리자, 초희가 놀라며 길동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너!"
"...뭐."
"많이 컸구나!"
초희의 말에 길동이 김빠진듯 웃음을 흘렸다. 하지만 초희의 말은 사실이었다. 예전엔 헐렁하던 검은 도복도 이젠 몸에 꼭 맞았고, 2년 전 길동의 얼굴에 흐르던 소년의 앳된 티는 전부 사라져 있었다. 어딘지 모르게 달라진 듯한 얼굴을 유심히 보던 초희는 예전과 같은 깊은 눈동자를 마주하고 실없이 웃어버렸다.
"그리웠어. 길동아."
초희의 말에 고개를 들어 시선을 맞춘 길동이 얼굴을 찌푸렸다.
"그 따위 말은 아까 균이랑 다 끝냈어야지. 나 지금 소름돋았잖아."
소리 내 웃은 초희가 무어라 하려던 순간, 밖에서 덕순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윤혜 아씨. 어르신이 사랑방으로 부르셔유."
덕순의 말에 길동이 가보라는 손짓을 보였고, 아쉬운 기색이 역력한 초희가 길동에게 인사를 건네며 밖으로 나갔다.
방에 남겨진 길동은 뜰에서 부터 풍겨오는 은은한 국화 향에 눈을 지그시 감았다. 청에서의 2년 간, 초희를 떠올리지 않은 날이 하루라도 있었을까. 이깟 들꽃향이 뭐라고 청에선 왜 그리 맡기 어려웠는지... 몰라보게 달라진 것은 길동 뿐만이 아니었다. 이젠 숙녀가 다 되버린 초희가 꼭, 화단 가득 만개한 노란색 국화같다고, 길동은 생각했다.
초희를 떠올린 길동의 얼굴에 웃음이 피어올랐다.
*
자리에 앉아 얌전히 차를 마시는 제 딸을 본 엽은 꺼내야 할 말이 목에 걸린 듯 나오지 않았다.
바란 것 보다 더 잘 자라주었다. 흠 잡을 데 없는 아이었다. 무엇보다 귀중한 제 딸이기에 이 혼사가 아는 이 없는 낯선 곳으로의 귀양처럼 느껴졌다. 죄책감에 한없이 가슴이 먹먹해지는 엽이었다.
"윤혜야."
"네, 아버지."
조용히 저를 바라보며 들을 말을 기다리는 초희를 본 엽은 힘겹게 입을 열었다.
"좌의정 댁에서... 혼사가 들어왔다."
스포인데 필독이야ㅋㅋㅋㅋㅋㅋㅋ 하지만 이해하시는데 꼭 필요한 설명이니까 읽어주세요!! 일단 저번화에서도 말씀드렸듯이 윤혜가 초희고 허난설헌입니다! 그리고 눈치 채신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지만요 저번 화에서 허엽(초희 아버지)가 말한 높게 나는 새는 허씨 가문이구요 매는 좌의정이예요. 당파싸움이 심한 조선에서 한 자리 맡고 있는 허엽을 주시하던 좌의정이 허씨 가문의 세력이 더 커질까봐 초희를 데려오는거죠. 거의 인질 수준ㅠㅠ 원래 좋은 소설은 부연설명이 필요없어야 하는데.....ㅋ 그리고요 이건 스포같지 않은 스포인데요ㅋㅋ 노란 국화의 꽃말은 짝사랑이예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그리고 허난설헌은 앞으로도 쭉 구독료 없을 예정입니다ㅎ 부연설명 + 스포 (필독ㅋㅋ)
+눈팅 싫어요ㅠㅠ 댓글 없으면 기운 쫙빠지는거 아세요?ㅠㅠㅠ 짧게라도 댓글 달고 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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