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의온도
prologue
"그럼 다음주 수요일날 뵐게요.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내 말을 끝으로 갓 데뷔한 신인 배우부터, 연차가 꽤 된 중년배우까지 작은 리딩룸에 모인 사람들 모두가 일어나 손뼉을 쳤다. 괜히 삐질삐질 나오는 땀에 달라붙은 옆머리를 살짝 넘기며 자리에서 일어나 물건들을 챙기자 내 옆으로 성큼성큼 걸어온 택운씨가 말을 건넨다.
"작가님, 저도 수요일날 보는 건가요?"
"응. 당연하죠. 왜요? 수요일날 시간 안돼요?"
"아.. 선약이 있을 거 같기도 하고."
곤란한 듯 머리를 긁적대며 데굴데굴 굴리는 눈을 보고있자니 괜히 웃음이 나 픽 웃으며 검정색 클러치백을 손에 들었다.
"당당하게 말해요, 당당하게. 누가보면 신인배우인 줄 알겠어요."
"아.."
"주인공이 되는 시간에 맞춰야죠. 시간 안 될 거 같으면, 하루 전에라도 문자 줘요."
택운씨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거리며 연락 드릴게요, 하고 리딩룸을 나섰다. 나도 누가 잡아갈새라 택운씨의 뒤를 따라 서둘러 리딩룸을 나섰다. 치, 방송국은 이렇게 크면서 리딩룸은 쪼만한 거 몇 개 있는 게 말이 돼? 숨막혀서 죽겠다, 숨막혀서.
작가로서 두번째 작품이었다. 첫번째 작품인 시스콤이라는 드라마가 나름대로 대박을 친 판에, 부담감은 배로 늘어갔다. 유명세를 탄 탓인지 첫번째 작품보다 캐스팅이 훨씬 수월하게 됐다는 건 이득이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남자주인공에 정택운을 캐스팅한 건 신의 한수였다. 수줍음을 많이 타는 성격이라 걱정했지만 걱정을 쓸데없다고 생각 할 만큼 자연스레 이어가는 연기력에, 여자 주인공과 미친듯이 어울리는 케미까지. 괜히 대세배우가 아니라니까? 1순위 후보였던 차학연에 밀려 어쩔 수 없이 2순위인 정택운을 캐스팅 한 건 맞지만 차학연이 어젯밤 말도 안되는 스캔들에 휩싸여 엄청난 곤란을 겪을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
이로보나, 저로보나 정택운은 남자 주인공으로서 완벽했다.
"차학연씨! 한마디만 부탁드립니다!"
"박경리씨 측에서는 열애설을 인정했던데, 차학연씨 측에서 부정한 이유는 뭔가요!"
"열애설이 사실입니까! 한마디만 부탁 드립니다!"
정문 앞에서 들려오는 시끌시끌한 소리는 듣는 귀가 별로 좋지 않은 내 관심을 끌기에도 충분할 정도의 데시벨이었다. 그나저나 차학연이라고? 허, 호랑이는 제 말 하면 온다던데, 차학연은 생각만 해도 오나보네.
라디오 녹음을 하러 가다 기자들에게 붙잡힌건지 이도저도 못하고 문 앞에 찰싹 달라 붙어 있는 차학연을 바라보다 다시 시선을 돌렸다.
"..어디 가세요?"
아, 깜짝이야.
시선을 돌린 곳 바로 앞에는 큰 손바닥으로 톨사이즈 커피를 쥐고 날 쳐다보는 택운씨가 있었다.
"집에 가려는데, 앞이 막혀서 못나가겠네요. 택운씨는요?"
"...똑같은 상황이네요."
요즘 대세, 하면 누가 우세하다 할 거 없이 차학연과 양대산맥을 이루는 택운씨는 저 기자 무리들를 뚫고 지나가기엔 조금 자신 없어 보이는 눈치였다. 그도 그럴것이, 자기까지 붙잡혀 이런저런 질문공세를 당할 게 뻔했으니까.
"그럼 우리 조금 구경하다 갈까요?"
"...좋아요."
내 말에 택운씨는 조금 수줍은 듯 고개를 끄덕이며 웃어보였다. 잘 웃지는 않는데 가끔 나오는 저 미소가 진짜 예쁘단 말이지.
"차학연씨! 질문에 묵묵부답인 이유는 긍정의 뜻 아닌가요!"
"제가 어떻게 입을 열어도 안 믿으실 거잖아요. 여기까지 따라온 것만 봐도 박경리 말 믿고 온 거 아닌가?"
"차학연씨의 답변에 따라 바뀔 수도 있는 질문입니다! 차학연씨! 인정해주세요!"
"기자님들은 제가 사귀는 여자라도 데려 와야 제 말을 믿으실 거 같은데요."
차학연의 발언에 점점 더 시끄러워지는 기자들을 보고있다 작게 한숨을 쉬었다.
"택운씨도 인기 많고, 저기 저. 차학연씨도 똑같이 인기 많은데 되게 다른 거 같아요."
"네?"
"전 저렇게 말 한마디 안 지려하고, 능글거리는 성격 되게 별로거든요."
"...아. 제 칭찬인가요?"
"그렇다면, 그런거구요."
다시금 미소를 지으며 작게 목례를 한 택운씨는 손에 들린 커피를 입에 가져다댔다. 나한테까지 느껴지는 거 같은 쓴맛에 살짝 인상을 찌푸리며 다시 시선을 돌려 앞을 쳐다보았다.
시선을 돌리자마자 당황스럽게도 나와 눈이 마주친건 무심코 뒤를 돌아보던 차학연이었다. 차학연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 신경도 쓰지 않는 듯 바로 시선을 돌리더니 이내 씩 웃으며 내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오기 시작했다.
"안녕. 잠깐 손 좀 빌릴게요."
생글생글한 미소를 지으며 내 손을 잡은 차학연은 다짜고짜 날 수많은 취재진 앞으로 끌고갔다. 뒤를 돌아보자 당황한 건 나뿐만 아닌 내 옆에 있던 택운씨도 마찬가지였다.
"뭐야, 왜이래. 이거 놔요!"
"쉿. 1분만 조용히 있어주면 놔주지."
"네?"
수많은 카메라 앞, 나를 데려와 놓고선 하는 말이 조용히 있으면 놔준다는 말이라니. 무슨 인질극도 아니고.. 차학연은 잠시 손을 놓나 싶더니 내가 벗어날 새도 없이 단단하게 내 허리를 팔로 감싸왔다.
"내 여자친구. 됐죠? "
"이제 박경리 얘기는 꺼내지 않는 걸로."
뭐, 뭐? 여자친구? 나는 토끼눈을 떠보이며 당당하게 미소를 짓고 있는 차학연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이미 번쩍번쩍한 카메라 플래쉬는 나를 향해 터진지 오래였고, 취재진들의 관심도 차학연이 아닌 나로 향한 지 오래였다.
"차학연씨 발언이 진실입니까?"
"갑작스런 발표에 많이 당황하셨을텐데 소감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기자들의 질문 세례의 당황한 내가 느껴졌는지 차학연은 나와 눈을 맞추고선 씩 웃어보였다.
"대답은 마쳤으니, 질문은 그만 하시죠? 사진도 그만 찍으시구요."
"..."
"우리 부인 많이 놀랐다."
아니, 이 신종 또라이는 뭐야.
왕바보의 말 |
네.. 제가 또 일을 저질렀네요... 끝낼 자신은 없으면서, 또 쓰고싶은 글은 많아서 모니터만 앞에 보이면 무작정 타자를 두들겨요. 쓰고 나면 독자분들께 얼른 보여드리고 싶다, 이 마음 뿐이고 사실 다 이런 저런 변명이지만 아, 또 새로운 신작을 끄적였구나? 하고 넘어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사랑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