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의온도
01
"봐요, 내가 기사 하나 안 보일거라고 했죠?"
내 앞에 당당하게 앉아 있는 차학연은, 제일 큰 포털사이트에 제 이름을 쳐놓은 핸드폰을 내게 내밀었다.
제일 먼저 보이는 기사는 차학연 청룡 영화제, 그 다음 기사는 차학연 남우주연상. 차학연이 그 어마어마한 짓을 저지른 지 30분이나 지났지만, 놀랍게도 나와 차학연 사이에 관한 기사는 단 하나도 찾아볼수 없었다. 박경리와 엮인 기사 역시 찾아볼 수 없었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일단 사과를 해야하는 거 아닌가?"
내가 차학연의 소속사 파워에 감탄하고 있을 때, 날카로운 말투로 차학연을 지적하는 택운씨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보다 더 나를 걱정해주는 택운씨의 반응에 왠지 모를 뿌듯함이 느껴져 작게 미소를 지었다. 택운씨에게 고개를 돌리려는 순간, 택운씨의 말을 받아치는 차학연의 목소리가 들린다.
"너가 걱정할 건 아니지않아?"
"누가 걱정하는 게 아니라, 일단 사과는 해야지."
"내가 어련히 알아서 할까."
"어련히 안 할거잖아."
인상을 살짝 찌푸리며 입술을 잘근대던 차학연은 이내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택운씨를 쳐다본다.
"너 나가면 사과할게."
"내가 들으면 안될 거 없다고 보는데."
"그렇다고 들어야 할 이유도 없다고 보는데?"
"..."
"너가 남자친구야?"
두 사람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스파크가 튀는 거 같았다. 택운씨는 파란색, 차학연은 빨간색. 물과 불의 만남이었다. 반말을 쓰는 거 보니 둘이 아는 사이인 거 같긴 한데, 왜 이렇게까지 신경전을 벌이는진 알 수 없었다.
차학연의 말을 더이상 받아 칠 수 없었는지 눈썹을 찡긋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난 택운씨는 쾅소리가 날 정도로 문을 세게 닫고 리딩룸을 나갔다.
...불의를 못참는 성격인가보네.
택운씨가 나가고 한참동안 아무 말 없이 손톱으로 책상을 딱딱치며 앉아있던 차학연은 고개를 번쩍 들며 날 쳐다본다.
"도움 주셔서 고마워요. 아까는 미안했어요."
"네? 네."
사실 아까 전 상황을 마주했을 땐 화가 난 건 사실이지만 생각해보니 차학연 소속사 파워에 기자들이 쉽게 입을 열 리 없었다. 열더라도 그 입은 곧 돈 뭉텅이로 가득 채워져 다시 닫힐 게 분명했다.
"괜찮아요. 물에 빠진 생쥐 한번 구해줬다 생각하죠, 뭐."
"물에 빠진 생쥐요?"
내 말에 차학연은 놀란 듯 눈을 살짝 키우며 날 쳐다보다 푸스스 웃음을 터트렸다. 아마 이런 대답이 나올 줄 몰랐겠지.
"아, 죄송해요. 제가 가끔 말 필터링이 안 될 때가 있어서."
"대본 쓸 때도 그러면 큰일나시겠어요."
"대본은.. 글이니까, 뭐."
"수정이 가능하다, 이건가?"
차학연은 내가 말을 잇기도 전에 먼저 치고 들어왔다. 내 대답을 듣기도 전에 제 말이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틀린 말은 아니니까 뭐.. 차학연을 따라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네. 그렇죠. 말은 한번 뱉으면 끝이잖아요. 그래서 더 조심해야 하는거고."
"...그렇네. 말은 수정이 불가능하네. 맞죠?"
"아무래도 그렇죠? 시간을 되돌리지 않는 이상."
내 말에 차학연은 오, 하며 작게 미소를 짓는다. 작가는 작가네요. 하며 엄지를 척 들어보이는 차학연의 반응에 괜히 우쭐해져 어깨를 으쓱였다.
"이름이 뭐예요?"
"...이름은 왜요?"
"그냥, 알아두면 좋을 거 같아서요."
"이여주요."
"여주? 이름 예쁘네요."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내 행동을 따라하듯 차학연은 똑같이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였다. 그러다 기자들 앞으로 끌고 갈 때의 생글생글한 미소를 지으며 날 쳐다본다.
"우리 이러니까, 소개팅 하는 거 같아요."
"네?"
"아 죄송해요. 저도 가끔 말이 필터링이 안 될 때가 있어서."
....에? 복수 하는 건지 뭔지. 내 말을 똑같이 따라한 차학연은 뭐가 그렇게 좋은 지 계속해서 웃음을 흘렸다.
"이름이 여주라고 했나요?"
"네. 여주요. 이여주."
"정택운이랑은 무슨 사이에요?"
내 이름을 다시 한번 되묻던 차학연은 대뜸 아까 전 리딩룸을 나간 택운씨와의 관계를 물었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무슨 사이라뇨? 라고 되묻는 내 반응에 차학연은 그저 알 수 없는 의미의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택운이가 되게 관심있어 하는 거 같아서요."
"누굴요?"
"너요."
"너..... 나요?"
"그럼 여기 다른 여주가 또 있어요?"
통성명도 오늘 처음 한 사인데 친근하게 성까지 떼며 내 이름을 부르는 차학연의 모습에 괜히 괴리감이 느껴져 입술을 삐죽였다. 내 표정을 확인한 차학연은 뭐가 그리 웃긴지 흐흣, 하는 웃음 소리를 내며 웃어보인다.
"아무 사이 아니에요. 작가와, 배우 사이?"
"정택운은 아무 사이가 아닌 게 아닌 거 같던데."
"택운씨는 원래 친절하잖아요."
"쟤가요?"
"네. 딱딱할 줄 알았는데 은근 잘 챙겨주고, 친절하던데?"
내 말에 차학연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런가.. 하고 입술을 삐쭉인다. 라디오 녹음이라 생얼로 온 거 같은데 입술은 되게 맨들맨들하네.
"그럼 저는요?"
"...네?"
"전 어때요."
차학연은 대뜸 자신에 대한 물음을 던졌다. 긴 몸을 꿈틀대며 자세까지 바르게 고쳤다. 내가 증명사진 찍는 기계라도 된 듯한 느낌이었다. 살짝 당황한 눈빛으로 차학연을 쳐다보던 나는 큼, 하는 기침소리를 내며 목을 가다듬었다.
"...친화력이 좋으신 거 같네요."
"...그거 뿐인가? 키크지, 잘생겼지."
"네.."
"성격도 좋아, 연기.. 아. 연기는 말 할 필요도 없다."
"..."
"게다가 돈도 많아요."
"..."
"저 진짜 매력있죠."
..또라이다. 또라이를 넘어서 미친 또라이.. 우주 최강 썅또라이다. 24년 살면서 자화자찬을 잘하는 사람을 보지 못한 건 아니지만, 저건 자화자찬 수준이 아니었다. 드라마속에서 보기만 한 왕자병이 이런 건가 싶었다.
얼른 자리를 벗어나야했다. 사과를 받았으니 용무도 끝났고, 차학연과 한 공간에 있다가는 나까지 저렇게 될 거 같아서 더이상 같이 있을 수 없었다.
나는 옆 의자에 놓아두었던 검정색 클러치백을 살며시 들고 의자에서 조심스럽게 일어났다. 차학연의 시선이 내 몸을 따라 점점 위로 따라온다.
"어디 가요?"
"집에 가서 대본 써야 해서요. 얼른 가봐야 될 거 같네요. "
"그래요? 그럼 조심히 가요."
"네, 차학연씨도 안녕히 계세요."
"....보기보다 되게 바쁘시네."
뭐야, 저 말은 내가 탱자탱자노는 백수처럼 보인다는 거야? 차학연의 중얼거림에 눈동자를 홱 돌려 차학연을 쳐다봤다. 차학연은 내 눈빛의 의미가 무엇인 지 다 알면서도 능청스레 어깨를 으쓱였다. 으, 진짜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 아니야.
마음 속으로 한숨을 크게 내쉰 나는 다시한번 안녕히 계세요, 하고 마지막이 될 인사를 하며 걸음을 옮겼다.
"아, 맞다."
또 뭐, 또 뭐. 까맣고 멜라닌 색소가 많은 걸 빼먹으셨나? 그렇게 자기 자랑을 했으면 됐지 무슨 얘기를 또 하려고..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그리고 들리지 않게 작게 한숨을 푹 내쉬며 리딩룸을 바로 나갈 수 있게 문고리를 잡았다.
"내가 안 한 말이 있는데."
차학연이 자리에서 일어났는지 의자 끄는 소리가 났다.
"아까 그 말, 유효한겁니다."
"...네?
"여주가 내 여자친구라는 말."
![[VIXX/차학연] 연애의 온도 01 | 인스티즈](http://file2.instiz.net/data/file2/2016/01/19/4/7/e/47e392164380c645750bfc6b439db74e.gif)
"말은 수정이 불가능하다면서요."
미친놈, 미친놈이 틀림없다.
"말은 한번 뱉으면 끝이잖아요. 그래서 더 조심해야 하는거고."
"...그렇네. 말은 수정이 불가능하네. 맞죠?"
"아무래도 그렇죠? 시간을 되돌리지 않는 이상."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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