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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선이정팔이 전체글ll조회 1084

 

 

 

 

"저기, 저번에 주문한거 찾으러 왔는데요"

 

 

가게 주인은 정환을 힐끔 한 번 보더니 기억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유난히 비싸고 좋은 물건을 주문했으니 쉽게 기억날 만도 했다. 별 말 없이 가게 안 쪽으로 들어가 단정한 양복 한 벌을 꺼내온 그는 정환에게 옷을 건네며 무심하게 얘기했다.

 

 

"뭐 좋은 일 있나봐요?"
"아 네.. 뭐.."

 

 

정환은 머쓱하게 웃어보였고, 가게 주인은 알 만 하다는 듯 피식 웃고는 하던 다림질을 마저 했다. 좋은 옷 입고 좋은 하루 되세요. 주인의 말에 정환은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 가게를 나섰다.


오늘따라 날씨가 좋았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 정환은 가볍게 웃고 차에 올라탔다. 행선지는 쌍문동. 5년 만에 찾는 그의 고향이었다.

 

 


*

 

 


「나 너 진짜 좋아. 사랑해..」

 


꾹꾹 눌러담아왔던 마음을 쏟아내듯 고백 한 적이 있었다. 무심하고 무뚝뚝한 정환의 성격으론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지만, 그때는 말하지 않으면 죽을 것만 같았다.

그 고백 이후로, 정환은 점점 자신의 고향에 발길을 끊었다. 처음엔 세달에 한번, 그 다음엔 반년에 한 번, 그리고 그 다음엔 일년에 한 번.. 그러다 부모님이 이사를 가신 후에는 단 한번도 쌍문동을 찾아 온 적이 없었다.

모든 골목골목 그 아이가 공기처럼 스며들어 있어서, 보고만 있어도 숨이 멎을것만 같았으니까. 언제나 그를 따뜻하게 품어주었던 그의 동네는, 언젠가부터 그를 숨 쉴 수 조차 없게 만드는 공간이 되어버렸다.

 


5년 만에 찾아 온 쌍문동 골목은 텅 비어 사람의 손길이라곤 찾아 볼 수 없었다. 재개발이 예정되어 대문 곧곧엔 빨간 페인트들이 가득했고, 그가 뛰어놀던 골목에는 쓰레기들이 나뒹굴고있었다.

비 오는 날 덕선을 마중나갔던 골목을 지난다. 새벽까지 들어오지 않는 덕선 때문에 잠까지 설쳐가며 발을 동동 굴렀었는데. 그 아이에게 우산을 쥐어주었을 때 동그랗게 뜬 눈이 지나치게 예뻐서, 다리에 힘이 풀리는 걸 간신히 참아냈었다.


동네 한 바퀴를 돈 정환은 조심스레 택이의 집으로 들어갔다. 그와 그의 친구들이 항상 찾던 따뜻한 집. 어느새 그 집은 차갑게 식어 텅 비어 있었다. 변해버린 추억의 공간에 정환은 씁쓸하게 웃었다.

이곳에서 참 많은 일이 있었는데. 친구들 틈에 섞여, 환하게 웃는 덕선을 훔쳐보며 참 많이 웃곤 했다. 덕선을 향한 택이의 마음을 들었을때는, 참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지.


문득 정환은 어리던 그때 그들이 그리워졌다. 다섯명의 아이들이, 아닌 척 하면서도 서로를 따뜻하게 챙기며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얼굴만 봐도 웃음을 터뜨리고 작은 이야기에도 시끄럽게 떠들어댔었지. 그러다 갑자기, 교통사고를 당하듯 그 중 가장 해맑게 웃던 아이를 좋아하게 되었다.

볼 꼴 못 볼 꼴 다 보고, 서로의 모든 약점을 다 아는데도, 어느날 갑자기 정신을 차리니 그 아이를 좋아하고 있어서, 주체 할 수 없는 마음에 정환은 꽤나 오랜 시간을 앓았다.

 

괜히 울렁이는 마음에 정환은 택의 집에서 나와 자신과 덕선이 살던 집으로 향했다.

대문을 열자 나오는 익숙한 풍경에 정환은 저도 모르게 웃음을 지었다. 언제나 본능적으로 쳐다봤던 저 작은 반지하방. 대문을 열고 들어오면 항상 저 문을 먼저 바라봤었다. 그 아이가 나오진 않을까, 지금은 뭘 하고 있을까. 딱히 특출나게 예쁘지도, 귀엽지도 않던 그 아이가 제 눈에는 불공평할 정도로 지나치게 예뻐서, 정환은 가끔 괜히 억울해지곤 했었다.


정환은 계단을 올라 문을 열고 자신이 살던 집 안으로 들어갔다.

텅 비어 아무것도 없었지만 그시절 행복하던 가족들의 모습이 눈 앞에 아른거리는 듯 했다. 한참을 서서 집 안을 바라보던 정환은 현관을 지나 제 방 문 앞에 섰다.


5년 전 이곳을 떠날 때, 정환은 제 마음을 접으리라 다짐하며 모든 미련을 이곳에 두고 떠났다. 그 후 최선을 다했지만 결국 그의 마음은 조금도 변하지 못했고, 여전히 그는 후회와 슬픔에 밤을 지새우곤 했다.

 


"하,"

 


방 문을 연 정환은 어이없다는 듯 실소를 터뜨렸다. 이윽고 주먹을 꽉 쥔 정환의 손이 덜덜 떨려오고, 눈가가 뜨거워졌다.

 

방 한가운데, 5년전 정환이 떨쳐내 듯 버리고 간 연분홍색의 낡은 셔츠가 곱게 접혀있었다.

 

정환은 먼지가 가득 묻은 그 셔츠를 품에 안고 그대로 그 자리에 주저앉아, 지난 세월 꾹꾹 눌러 참아왔던 눈물을 한꺼번에 터뜨렸다. 그 오랜 시간을 발버둥 쳤는데도, 애석하게도 애달픈 감정은 조금도 변해주지 않았다.


그의 추억과 함께 붉은 노을이 쌍문동에 내려앉는다.

 


내일, 정환의 첫사랑. 덕선이 결혼을 한다.

 

 

 

 


*

 

 

 

 

 

"왔냐?"

 


식 장 앞에 멍하니 서있는 정환을 본 선우가 그를 툭치며 말을 걸었다. 어,어. 왔냐. 무심하게 대답하는 정환을 위아래로 살핀 선우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새끼야, 니가 결혼하냐? 뭐이렇게 빼입고 왔어."
"원래 있던거야 새끼야"
"뭐 그렇다 치고, 들어가자. 신부대기실 가서 덕선이 얼굴이나 보게."

 


어깨동무를 해오는 선우의 팔을 살짝 피하며 정환은 고개를 저었다.

 


"됐어. 못생긴거 봐서 뭐하냐. 너 혼자 갔다와."
"뭐? 그래도 얼굴은 봐야지."
"나 통화할거 있어. 너 혼자 갔다와 식장에 있을테니까."

 


알겠다. 떨떠름하게 대답한 선우는 정환의 어깨를 두드리고 대기실 쪽으로 사라졌다. 정환은 한숨을 한 번 내쉬고 식장안으로 들어가 구석자리를 찾아 앉았다.

정환은 주머니에서 청첩잡을 꺼내 펼쳐보았다. 신랑 최 택 신부 성덕선. 그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돌았다.

잠시 후 식을 진행된다는 소리와 함께 조명이 어두워지자 사회를 맡은 동룡이 마이크를 잡았다.

 

 

"신랑 입장하겠습니다!"

 

 

동룡의 밝은 목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말끔하게 정장을 차려입은 택이가 어색하지만 나름대로 씩씩하게 앞으로 걸어갔다. 새끼, 축 쳐져있기만 하는 줄 알았더니 저런 모습도 있었네. 정환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럼 오늘의 하이라이트, 특공대 성덕선양 입장해주세요!"

 

 

하객들의 작은 웃음소리와 함께 다시 한 번 문이 열린다. 그 순간 정환은 어이없다는 듯 웃음지었다.


불공평했다. 못생긴 기지배가, 변함없이 그의 눈엔 지나치게도 예뻤으니까. 넌 언제나 갑자기, 순식간에 마음에 훅 들어와 사람을 놀라게 하지. 떨리는 듯 작게 미소지으며 걸어 들어오는 덕선.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은 덕선은, 지금 이 순간 세상 그 누구보다도 아름다웠다.

 

정환은 영원한 제 소꿉친구를, 하나뿐인 그의 첫사랑을 멍하니 바라보았고, 택을 향해 걸어가던 덕선은 그런 정환을 보고 개구지게 웃어보였다.

 


"아-"

 


그 순간 정환은 저도 모르게 짧은 탄식을 내뱉었다.

저 웃음을 언제나 사랑했다. 아무런 근심없이 맑게 웃는 저 얼굴을. 제 모든 외로움을 잊게 해주는.. 저 아이를 아주 오랜 세월 그는 사랑해왔다.

 

 

*

 

 

"다음, 신랑신부 친구분들! 사진 찍읍시다!"

 


동룡의 손짓에 정환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앞으로 나갔다. 덕선을 향해 걸어가는 짧은 순간이 영원처럼 느껴진다. 시간이 멈춰버렸으면 좋겠다고, 정환은 그렇게 생각했다.

떨려오는 손을 꽉 쥐며 정환이 덕선의 옆에 선다. 딱딱하게 굳은 정환의 팔에 팔짱을 끼며 덕선이 환하게 웃었다.

 

 

"개정팔 오늘 좀 멋지다? 근데 왜이렇게 긴장했어? 내가 너무 예쁘냐?"

 

 

정환이 고개를 돌려 덕선과 마주본다.

 

 

"미쳤냐?"

 

 

사랑해

 

 

"결혼식이니까 봐주는 줄 알아라"

 

 

사랑해-

 

 

"못생긴 얼굴 치우고 앞이나 봐. 사진 찍는다."

 

 

사랑해, 덕선아.


정환은 속으로 끊임없이 속삭이며, 다시 한 번 떨리는 손을 꽉 쥐었다.

입술을 삐쭉 내민 덕선이 앞을 보고 환하게 웃는다. 정환은 그런 덕선의 얼굴을 한 번 바라보고, 고개를 돌려 카메라를 바라보며 말했다.

 


"성덕선."
"왜"
"행복하게 살아라."

 


덕선이 어이없다는 듯 푸스스 웃음을 터뜨린다.

 

 

"알았다. 너도 행복해라"

 

 

덕선의 말에 정환은 얕게 미소지었다.

 

정환에게 있어 덕선은 푸르던 청춘, 아름답던 시절 그 자체였다.

아주 오랜시간이 지나 다른 사람을 만나도, 이 아픔이 사라지고 모든게 추억이 되어도, 그렇게 평생을 살아도.. 좁은 골목을 뛰어다니며 환하게 웃음짓던, 그 누구보다도 예쁘고 사랑스럽던 아이를 마음 가득 사랑했던 순간들을 정환은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덕선아. 아주 오래오래, 행복해라.

 

정환은 진심을 담아, 아주 환하게 웃었다.

 

 

 

 

 

 

 

 

-------------------------------------------------------------------------
개떡러들은 싫어하실거 같지만..(소심) 그래두 응팔 얘기 그대로 이어가보고 싶어서 써봤어요.

짝사랑을 하는 정환이 그 자체도 저는 너무 예쁘다고 생각해서!

갑자기 쓰고싶어져서 쓴거라 내용이 어색해도 대충대충 넘어가주시길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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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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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이렇게라도 정환이 마음 마무리되는거 봐서 좋네요ㅠㅠㅠ
10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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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2
정환이의마음이글에잘드러나서ㅠㅠㅠㅠ좋아요ㅠㅠㅠㅠㅜ너도행복해라정환아
10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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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3
너무예뻐요..ㅠ....하,ㅠ.ㅎ.
10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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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4
행복해 정환아 내신경은 온통 너였어 너
10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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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5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좋아요
10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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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6
이렇게라도ㅠㅠㅠㅠㅠㅠ 정환이 마음 예쁘게 접는것같아서 좋아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10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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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7
제맘이 찢어지는 이느낌은 착각이 아니겠죠...퓨ㅠㅠㅠ
10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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