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방에서 용기를 얻어서 쓰는 글...!
01.
[저녁 먹으러 와. - 엄마]
[응.]
딱딱하게 응, 이란 글자를 치고 전송 버튼을 누른 후 패딩을 집어들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스윽, 의자를 끄는 소리가 나는 듯도 했지만 이 넓은 독서실에 있는 사람은 얼마 없었기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고 문을 열었다. 집과 독서실 사이의 거리는 걸어서 15분. 멀면 멀고 가깝다면 가까운 거리였다. 하지만 오늘따라 왜 이렇게 가기가 귀찮은지. 그냥 밥 안 먹는다고 하고 다시 들어갈까 싶어 폰을 꺼내 문자함을 열었는데
[오늘도 저녁 안 먹는다고 해라 너. - 오빠]
[엄마가 너 좋아하는 갈비 해놓으셨어. - 오빠]
돈도 없으면서 무슨 갈비야, 갈비가. 이 엄마가 정말. 그 돈으로 빚을 갚지. 하는 마음과는 정반대로 내 발걸음은 가볍게 횡단보도 앞에서 탭댄스를 추고 있었다. 이 휑한 거리에 있는 사람이라곤 나 그리고 5살도 채 안 되어 보이는 아가. 자신이 입은 노란 코트와 비슷한 색인 보도블럭 위에서 손을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꽤나 도로와 가까워서 위험할 것 같아 말해주려는데 그 순간, 빠앙- 하고 지나가는 차 한 대. 아가가 흠칫, 놀라 주춤주춤 뒷걸음질을 치다 뒤돌아 나와 눈이 마주쳤다. 나도 모르게 험악한 인상을 짓고 있었나. 아가가 더 흠칫, 하더니 히- 하고 고른 치열을 내보이며 웃는다.
심쿵이 이런 건가...! 아무렇지 않은 척 하며 아가에게 이리 오라는 듯 손짓했다. 아무런 의심없이 아장아장 걸어오는 아가. 조그만 입으로 뭔가를 오물거린다. 뭔가 해서 손을 쳐다보았더니 시중에서 파는 곰돌이 젤리다. 저건 어떻게 구매했을까 머릿속으로 그림이 그려졌다. 흐뭇해 할 계산대 아주머니와 까치발을 들어 돈을 내미는 아가. 마트에서 나올 땐 아장아장 걸어 나왔겠지. 와, 나 진짜 죽겠다.
"몇 살이야?"
내 질문에 혼자 심오한 고민을 하는 듯 인상을 팍 찌푸리더니 젤리를 왼쪽 손으로 옮긴다. 그런 후 나와 가까운 오른쪽 손을 쫙 펴보이며 다서짤. 하고 다시 그 예의 히 하는 웃음을 내보인다. 다섯 살인데도 혼자 다녀? 하는 말에는 비밀이라도 말해주는 듯 이리 오라고 손짓한다. 그래서 쭈그려 앉아 아가에게 귀를 갖다대니 가출해써요. 하고 조곤조곤 이야기한다. 다섯 살 짜리가 무슨 가출이야. 하고 풉, 웃어보이니 지짜 가출해써여! 하고 조금은 짜증이 난 듯 말해보인다. 알았어, 알았어. 하고 왜 가출했는데? 물어보니,
"아빠가 자꾸 형아들 때려서."
"...? 형아들?"
"웅. 태태 형아랑, 꾹이 형아가 제일 많이 마자요. 아! 짐니 형아두!"
"...?"
뭔 소리야. 태태는 뭐고 꾹이는 뭐야. 짐니는 또 뭔데, 왜 맞아. 혼자 머릿속으로 이상한 상상을 그리고 있는데 내 손을 잡아끄는 아가를 쳐다보니 초록불을 가리키며 지나가야 해요! 한다. 그래, 그래. 하고 아가의 손을 놓지 않고 횡단보도를 건넜다. 어쩌다보니 늘 집에 갈 때 거쳐야 하는 돌계단을 지나쳤다. 그냥 아가 데려다주고 돌아서 가지 뭐 하고 길을 걸으며 다시 말을 걸었다.
"아가는 이름이 뭐예요?"
"꾸기! 꾸기예요!"
"...? 꾸기...?"
"응 꾸기라고 불러줘요!"
"어엉..."
별명이겠지, 싶어 꾸기야. 하고 물으니 말고! 꾸기! 하고 또 성질을 내신다. 아 예에... 꾸기. 하고 부르니 네에~ 하고 내 손을 잡은 손가락을 꼼지락거린다. 진짜 얘 누가 낳았니, 절 해드릴게요 꾸기 어머니. 그렇게 꾸기랑 신나게 길을 걸으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유치원 같이 다니는 망개 이야기 (짝녀 이야기인 듯.) 태태 형아, 짐니 형아, 정꾸 형아 이야기, 엄마가 없다는 이야기... 엄마가 없다는 이야기를 할 때는 침울한 표정도 안 짓더라. 안타까운 마음에 우리 꾸기는 엄마 안 보고 싶어요? 하니 나를 또롱또롱한 눈으로 쳐다보며 또박또박 말한다.
"누나같은 마망 있어쓰면 좋게써."
"나도 너 같은 아들 있었으면 좋겠네."
"마망 해주면 안 대여?"
"그럴까요?"
"응, 마망!"
"어구, 우리 꾸기."
그렇게 꾸기랑 즉석으로 엄마 아들 맺고 길거리에서 부둥부둥하며 걷고 있는데, 뒤에 누군가 다가오는 느낌이 들었다. 그냥 걸어 가는게 아닌 소리를 안 내려고 애쓴 기척에 가까웠다. 겨울이다 보니 짧아진 해에 어둑어둑해지고 사람이 없는 길거리, 설마 유괴범인가. 아까까지만 해도 뭐가 없었는데, 하고 곁눈질로 옆을 보려 애쓰는데 갑자기 내 손에서 꾸기의 손이 없어졌다. 동시에 들려오는 꾸기의 비명소리.
"악! 마망! 살려조! 으앙!"
"아, 미,친."
최악의 상황에 아기를 데리고 가기 위해서라면, 그게 남자라면 같이 가고 있는 여자를 기절시키겠지 싶어 뒤를 경계하고 걸었는데 이 미,들은 나는 있는 둥 없는 둥 신경도 쓰지 않고 아기만 쏙 빼가려 했다. 체대 입시를 준비하려다 개인 사정으로 포기하게 된 나는 꽤나 운동신경이 뛰어났기에 남자 하나 쯤은 거뜬히 처리 가능했다. 학교 다닐 때 배운대로 남자의 뒷목을 쳐 기절시키고 남자의 손에서 떨어지고 있는 꾸기를 받았다. 꾸기에게 괜찮냐 물으려는 찰나, 뒷목에 엄청난 충격이 가해지고 꾸기의 마망!이란 소리를 들으며 바닥에 쓰러졌다.
02.
"아, 머리야."
눈을 떴다. 모르는 사람의 집 안에서. 두통과 동시에 꾸기가 생각났다. 같이 잡혀왔는데, 싶어 주위를 둘러보는데 굳게 닫힌 문 그리고 내가 누워있는 침대 뿐이다. 납치범의 집인가 아기만 유괴하려는 이유가 뭐였을까를 생각하고 있는데, 조그마한 핑크색 박스가 눈에 들어온다. 이건 또 뭐야, 싶어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문이 열리고 꾸기가 토도도 뛰어온다. 마망! 이라는 이 상황엔 맞지 않는 귀여움과 함께. 내가 있는 침대에 올라오려 낑낑거리는 폼이 너무 귀여워 꾸기의 허리를 잡아 올려주었다. 그랬더니 나의 얼굴을 양손으로 잡고는 꽤나 걱정스러운 얼굴로 묻는다.
"마망, 갠차나여?"
"어어, 누나는 괜찮아. 꾸기는?"
"꾸기는 갠차나여! 마망이 구해조써!"
"그, 꾸기야 지금..."
만약 납치범이 장기매매가 목적이라면 이 조그만 아이의 장기를 갖다쓸 곳이 어디 있다고... 생각하며 꼭 끌어안고 있는데, 꾸기가 상황엔 맞지 않게 매우 활발했다. 그래도 사실은 말해줘야할 것 같아 돌려라도 말하려 했는데, 열린 문 안으로 어떤 남자가 들어온다. 집 안이라는 것과는 다르게 수트를 빼입은 채로. 저건 또 무슨 미,이지 싶어서 경계 가득한 눈으로 꾸기를 끌어안으니 꾸기가 마망... 하며 깊게 몸을 맡겨온다. 자동적으로 아가를 토닥였다. 그런 우리의 모습을 보며 남자가 기가 찬 듯 허, 하고 웃는다. 그런 후 조금은 짜증이 난 채로 입을 연다.
"네 이름 민쿠키라고 했지. 아빠한테 진짜 혼날래."
"아빠 아니자나!"
"뭘 아니야 저게 콱 진짜."
"아빠 아니야! 왜 마망 아프게 해!"
"누가 네 마망이야, 진짜 혼나려고."
꾸기와 남자의 대화에 멘붕이 오는데, 꾸기는 나를 더욱 끌어안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꾸기는 자신을 토닥이는 손길이 없어지자 나를 올려다보며 마망 토닥토닥 해주세요... 한다. 정신을 챙긴 내가 꾸기에게 대답도 해주지 못하고 물었다. 꾸기 아빠야?
"으응, 아빠 아니야."
"아빠 맞아."
"아빠 아니야아! 태태 형아 때렸자나!"
"그건 그 자식이... 아, 됐다. 야, 쿠키 내놔."
"? 저요?"
"그럼 너지 쿠키에게 그러겠냐."
"마망, 나 주지 마... 응?"
내가 지금 부자 싸움에 끼어든 건지 아니면 납치범과 납치된 아기의 대화를 듣는 건지 진심으로 혼란스러워졌다. 난 도대체 뭐하고 있는 것일까. 아기를 건네주어야 하는 것일까. 건네주기엔 꾸기가 너무 완강하게 거부했고 안 건네주기엔 남자가 너무 당당했고 꾸기가 태태 형아를 언급했다. 아까 분명 길가에서,
"아빠가 자꾸 형아들 때려서."
"...? 형아들?"
"웅. 태태 형아랑, 꾹이 형아가 제일 많이 마자요. 아! 짐니 형아두!"
"...?"
라고 했다. 태태 형아를 저 남자에게 언급했을 때, 남자가 알아들었다는 건... 저 남자가 정말 꾸기의 아빠인가. 하지만 이상한 점은, 왜 아이를 데리러 오는데 범죄자 스멜이 나게 조용히, 기습하는 듯이 오느냔 말이지. 보통 아빠라면 찾으러 다녀야하는 거 아닌가. 다시 혼란에 빠지고 있는데 남자가 꾸기를 포기한 듯 나를 쳐다보며 말한다. 내놔, 내 아들. 꾸기는 내 옷자락을 잡으며 나를 보내지 마세요, 하는 또롱또롱한 눈빛을 해보인다. 얠 보내야 해 말아야 해.
"내놓으라고, 내 아들."
"시더, 누나한테 안겨있을 거야."
"민쿠키, 이리 오라고."
"씨더!"
"와 나 씨,발."
남자는 아기가 있든 말든 욕을 시전했다. 급하게 꾸기의 귀를 틀어막았다. 꾸기가 우웅, 하며 내 품에 더 파고들었다. 그 검은 남자들, 당신이 보낸 거죠. 하는 내 질문에 그 남자가 어.라고 대답함과 동시에 나는 소리를 질렀다.
"애 아빠 맞아요? 애 놀라면 어쩌려고!"
"허, 지금 네가 내 아들 고막 놀래키고 있는 건 모르고?"
남자는 아예 내 침대에 걸터앉아 대답한다. 어이가 없어 이상하게 쳐다보고 있는데 꾸기가 내게 졸립다며 찡얼거린다. 자연스럽게 꾸기를 안아들고 토닥였다. 남자를 째리는 것도 잊지 않고. 꾸기는 조용히 내 품에서 잠이 들어갔다. 남자는 그런 꾸기를 보고 나를 한 번 보더니 표정이 묘하게 바뀌었다. 그러더니 어느 곳에 전화를 건다. 어, 난데. 지금 김석진이랑 다섯 명 다 데리고 들어 와. 김태형 빼고 그럼. 아까 내가 시킨 거 잊지 말고, 계약서도 하나 가지고 와.
갑자기 뭔 미,친,년인가 했더니 물건이 들어왔어.
03.
내 품에서 새근새근 잠든 꾸기가 부러워졌다. 좋겠다, 넌 태평해서... 한숨을 푹 쉰 후 아빠가 맞지, 싶어 남자를 쳐다보는데 꾸기를 쳐다보는 남자의 시선이 매우 따듯하다. 그러다 문득 꾸기를 보던 남자가 여전히 시선을 꾸기에게 고정한 채로 내게 말을 걸어왔다.
"몇 살."
"..."
"입 열어라."
"... 스물 한 살이요."
"많이 어리네, 대학은?"
"삼수 중이에요."
"왜."
"체대 가려다가 방향 틀었거든요."
"운동 더 하고 싶진 않고?"
"하고는 싶죠."
아까와는 다른 분위기의 대화. 남자는 씩 웃으며 하게 될 거야. 하기 싫어도 하게 될 걸 하며 침대에 일어났다. 그와 동시에 문이 다시 열리고 남자 다섯이 우르르 들어왔다. 그 중 맨 뒤에 있던 한 남자는 내 품에 안긴 꾸기를 보며 쿠키야! 하는데, 꾸기가 부시시 눈을 뜨더니 꾹이 형아! 하며 수월하게 침대에서 내려가 그 남자에게 안긴다. 친분이 있어보이는 사이에 역시 나와 대화하던 저 남자가 꾸기의 아빠가 맞구나 하고 있는데 또 다른 남자가 그 남자에게 말을 건다.
"저 여자야? 쿠키 구해준답시고 태형이 뒷목친 여자?"
"ㅋㅋㅋㅋㅋ 대단한데, 김태형 뒷목이라니."
"김태형이 아직도 못 일어나는 거 보면 진짜 대단해."
"그 새,끼 나대더니 처,맞을 줄 알았어."
"자존심 좀 상하겠는데."
쿠키의 아빠와 똑같은 수트를 입은 남자 셋이 나를 보며 수군거린다. 조용히 있던 은발 머리의 남자가 꾸기 아빠에게 다가가 종이 몇 장을 건넨다. 아, 이거야? 하고 묻던 남자가 종이를 뒤적거리더니 나를 향해 말한다. 이름, 김탄소.
"나이 스물 한 살. 삼수 중이랬고, 집에 빚이 있네?"
"...? 그거 뭐,"
"내 말 다 끝나고 질문 받는다."
"..."
"삼 억. 많이도 빌리셨네. 뭐, 이 정도는 갚아줄 수 있어."
"...?"
"너 아까 운동하고 싶댔지."
"..."
"대답."
"예, 뭐..."
"취직해."
"네?"
"취직하라고, 운동하고 싶다며? 우리가 깨끗한 운동은 아니더라도 운동 비스무리한 건 하고 있어서."
"아니, 무슨..."
"숙식 제공에 계약금은 삼 억 부모님 빚 다 갚아드리는 걸로 하고. 어때? 이 정도면 좋은 대우 아닌가. 월급은 알아서 잘 챙겨줄테니 걱정 말고."
그러더니 계약서를 내민다. 계약서에는 남자가 말한대로 적혀있었고, 남자가 써놓은 듯 눈에 띄는 문장이 하나 있었다. 'BTS가 하는 일을 외부에 발설할 시, 신체 포기 각서는 물론이고 주위 사람들까지 위협 받는다.' 무슨 일을 하기에 외부 발설까지 막는 것인지, 생각을 해보기도 전에 나는 내 이름 란에 싸인했다. 빚 때문에 고생하는 부모님을 더 이상 보고싶지 않았다. 또 무엇보다 아이도 있는 사람이 위험하면 얼마나 위험한 일을 한다고. 운동도 시켜준다는데. 이런 생각이 컸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사람을 잘 믿는 내 성격이 한 몫 하기도 했고. 남자는 내가 싸인하자마자 종이를 가져가더니, 정수정한테 전화해서 쟤 수트 제작하라고 해. 너희끼리 알아서 통성명 하고. 하며 방을 나갔고, 남자 다섯은 그 남자의 뒷모습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
반응 보고 안 좋아도 계속 쓸 것^^ㅋㅋㅋㅋㅋ 모음글도 만들고 나 혼자 다 해먹을 거야^^... 이렇게 써도 되나 모르겠다 안 되면 글잡 가지 뭥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