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랬으면 좋겠다
부제 : 망상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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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때와 같이 화창하고 더러운 아침을 맞았다. 월요일 아침은 항상 그렇듯 더럽다. 대충 씻고 예의상 분 좀 찍어 바르고 입술도 생기있게 만들고 난 다음 집을 나섰다. 중학교 때 충격을 받아 고등학교 때 정신을 차리고 공부만 했더니 버스 하나 타고 갈 수 있는 운을 얻어 매일 감사하게 여기고 버스에 올랐다. 버스 안엔 직장인 분들을 비롯해 아직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어 표정이 말이 아닌 학생들과 내 또래의 대학생들이 가득했다. 그 탓에 자리가 없어 아슬아슬하게 손잡이를 잡고 버티고 있는 중이었다. 그렇게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는 중인데 옆에선 쪽, 쪽 거리며 달지도 않은지 휘핑크림 가득 올라간 아이스 초코를 태연하게 흡입 중이었다. 나도 모르게 신기해 계속 바라봤더니 눈이 맞았고 황급히 눈을 피해 아무 일 없는 척 핸드폰을 켜서 알림 하나 오지 않은 메신저에 들어가 괜히 어떤 대화를 했는지 살피고 있었다. 그러는 도중, 내 어깨 위로 낯선 느낌이 나 뒤를 돌았더니 아까 그 남자가 날 똘망똘망하게 바라봤다.
"저기요."
"네, 네?"
"드실래요?"
날 왜 불렀나 했더니 먹지 않겠냐며 아이스 초코를 내 눈 앞에 흔들었다. 내 눈은 저절로 아이스 초코를 따라 이리저리 흔들렸다. 그런데 갑자기 먹지 않겠냐니, 내가 너무 노골적으로 쳐다본 건가.
"아뇨, 괜찮아요."
"에이, 먹고 싶은 거 맞으면서."
"안 먹고 싶어요..."
사실은 공복인 탓에 먹고 싶긴했다. 덕분에 버스에서 내려 아이스 초코 하나 사갈까 생각도 했었거든. 그래도 그렇지 모르는 사람의 걸 어이구 감사합니다. 하며 먹는 건 좀 그랬다.
"진짜요? 아니 자꾸 내 초코 쳐다보시길래 드시고 싶으신 줄 알았죠."
"아, 그건... 신기해서요."
신기해서 그런 것도 있고 맛있어 보여서 그런 것도 있고. 사람 그득그득한 버스 안에서 태연히 아이스 초코를 먹고 있으니 자연스레 시선이 향했던 것 같다.
"그렇구나. 근데 시혁대 다녀요?"
"네? 어떻게 아셨어요?"
"저기, 핸드폰 고리."
그 고리는 시혁대 입학 기념으로 새내기들에게 전해진 것인데 버리기도 아깝고 나름 좋은 대학교였기에 자랑스럽게 핸드폰에 달고 다녔었다. 그런 고리가 다른 사람에게 언급이 되니 조금은 부끄러워 가방에 핸드폰을 집어 넣어 버렸다.
"어, 왜 집어넣어요. 반가워서 그랬는데."
"혹시 시혁대 다녀요?"
"네. 시혁대 문예창작과 다녀요. 2학년! 이름은 김석진."
"저도 문창과인데. 1학년. 전 성이름이요."
반갑다는 말에 혹시나 해서 물었더니 맞댄다. 게다가 나랑 같은 과 선배였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친구를 만들고 다녔더니 몰랐던 것 같다.
"역시 세상은 좁ㅇ,"
"저기요..."
같은 버스 안에서 같은 과 선배였던 초코남의 말이 끊기고 여성스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볼을 붉히고 핸드폰을 건네는 걸 보니 번호를 따려는 것 같았다. 좁은 버스 안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은 다 일어나고 있었다.
"제가 지금 저희 과 후배랑 얘기 중이라서요. 어? 다 왔어, 이름 후배!"
나와 얘기 중이라며 그 여성스러운 분을 거절하고 급하게 내리는 초코남이었다. 말도 자연스럽게 놓은 것 같았다. 그나저나 예쁘던데.
"왜 번호 안 주셨어요?"
"너랑 얘기 중이었다고 하지 않았어?"
"네?"
"너랑 얘기 중이라서 그랬다고."
거절하기 위해 댄 핑계일 줄 알았는데 진심으로 나와 얘기를 하는 중이라고 말하는 선배의 모습에 당황해 이리저리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정작 선배는 버스에서처럼 태연하게 날 바라보고 있었다.
"이름 후배. 왜 내 눈을 못 마주쳐?"
"아니, 그게..."
"진심인데. 아, 맞다. 이름 후배! 내가 초코 사줄게. 따라와."
삭막할 줄만 알았던 내 캠퍼스 생활에 꽃이 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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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상하고 영창 가겠습니다 |
본격 망상하는 글. 제가 그냥 그랬으면 좋겠다 하는 일을 씁니다 ㅎ 올라오는 글들은 단편입니다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