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이 사람을 찾을거야? "
쭈그려 앉아있던 세훈이 몸을 일으켰다. 얼마나 앉아있었다고 금새 다리가 저려왔다. 저린 다리를 몇번 툭툭 두드리던 세훈이 민석의 대답을 기다렸다. 핸드폰 배경화면을 뚫어져라 보고있던 민석이 읏차, 하는 소리를 내며 앉아있던 자리에서 일어났다. 핸드폰을 손에 꼭 쥐곤 또 이상한 소리를 내며 기지개를 켰다.
"응. 찾을거야."
민석이 맑게 웃었다.
세인트폴리아 (Saintpaulia.)
2
대학의 캠퍼스는 젊은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언제나 활기찼다. 이제 막 입학한 새내기들은 캠퍼스 안의 모든것이 신기한지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팔짝팔짝 뛰었다. 꺄르르 웃는 소리나 적당히 치장한 외모가 제법 풋풋한 인상을 주었다. 맞은편 벤치에 앉아있는 남녀 한쌍은 흔히 말하는 CC인게 틀림없었다.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에 애정이 묻어났다. 저기 시계탑 앞을 급하게 뛰어가는 사람은 옷차림을 보아하니 3학년이나 4학년이리라. 검은 뿔테 안경과 질끈 묶은 머리. 대충 구겨신은 운동화가 나 학점때문에 외모 가꿀 시간따위 없어요, 하고 말하는 듯 했다.
반대쪽에 위치한 농구코트에는 구슬땀을 흘리며 뛰어다니는 사내들이 있었다. 키가 제법 농구선수만큼 큰 사내가 높이 뛰어올라 공을 넣자, 같은 팀 사내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서로 부등켜 안았다. 벤치에 앉아 구경하던 민석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어때? 다시 학교로 돌아온 소감이?, 뺨에 와닿는 차가운 느낌에 민석이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세훈이 씨익 웃으며 음료수 캔을 흔들어보였다. 검은 뿔테 안경 너머로 보이는 눈이 다정하게 저를 바라보았다.
"기분 최고야."
"다시 복학할거지?"
벤치에 앉은 세훈이 민석의 뒷머리를 쓰다듬었다. 그 손길에 민석이 세훈의 어깨에 머리를 살짝 기대었다. 이 넓은 어깨는 언제나 저를 편안하게 해주었다. 독한 약에 취해 정신이 없을때도, 이따금 느껴지는 통증에 시달려 끙끙 앓을때도, 가끔 아무 이유없이 기분이 바닥으로 가라앉을 때에도 세훈의 어깨는 나만의 작은 안식처가 되어주었다. 선선히 부는 바람에, 민석이 살짝 눈을 감았다. 얼굴에 와닿는 바람결이 기분좋았다.
"복학하기 전에 해야 할 일부터 해결하고."
해야 할 일? 고개를 갸웃한 세훈이 이내 아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찾는다고 했었지. 그 사람.
"그래서, 찾을 방법은 생각해봤어?"
"우선 이 학교에서 찾아보려고 생각중이야."
나랑 같은 학교 다녔을지도 모르잖아. 운이 좋으면 그 사람에 대해 아는 사람을 만날수도 있고. 감고있던 눈을 뜬 민석이 몸을 일으켰다. 벤치에 너무 오래 앉아있었나?, 조금 저려오는 엉덩이를 콩콩 두드린 민석이 세훈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난 학교좀 돌아다니다가 갈테니까 먼저 집에 가있어!
"나도 학교 가야 되거든요? 형만 바쁜줄알아."
조금 뾰루퉁하게 말하는 세훈에, 민석이 소리내어 웃었다. 가방을 고쳐맨 세훈이 민석을 살짝 끌어안았다. 아직은 좀 걱정되니까 무리하지 말고 일찍 집에 가있어. 알겠지?, 걱정가득한 목소리에 민석이 걱정말라는듯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왼쪽 가슴을 손으로 통통 쳐보이는것도 잊지 않았다.
"너..김민석?"
우선 내가 다니던 이 학교에 그사람이 함께 다녔는지부터 알아봐야했다. 갖고있는거라곤 달랑 이 사진 한장 뿐인데.., 핸드폰 배경화면을 바라보던 민석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찾아야할지 막막했다. 어쩌면 영영 못찾을수도 있었다. 애초에 이사람을 꼭 찾지 않아도 되었다. 이사람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해서 민석에게 크게 영향이 되는 일은 없었다. 민석은 그저 한국생활에 다시 적응하며 새롭게 출발하면 될일이었다. 그럼에도 민석이 이렇게 애타게 찾는 이유는 하나였다.
알고싶었다. 이사람과 저의 관계가. 그리고 제 배경화면을 차지하고 있는 의미를.
핸드폰을 다시 주머니에 쑤셔넣던 민석이 뒤에서 제 어깨를 붙잡아오는 손길에 홱 뒤를 돌아봤다. 맞네 김민석! 너 이새끼 그동안 어디있었어 연락한번도 없이? 대체 어디 숨어있었던 거냐? 응? 니가 나한테 어쩜이래!, 다다다 쏘아붙이는 말에 잠깐 멍해있던 민석이 이내 눈에 눈물을 그렁그렁 매달았다.
"종대야!!"
"그래 이 매정한 새끼야."
민석이 종대를 세게 끌어안았다. 갑자기 제품으로 뛰어든 민석 때문에 잠깐 휘청한 종대가 이내 민석의 허리를 끌어안고 방방 뛰었다. 종대는 하나밖에 없는 절친한 친구였다. 낯가림이 심해 쉽게 사람들과 친해지지 못하는 민석에게, 종대는 속깊은 대화도 머뭇거림없이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였다. 평소에는 조금 시끄럽고 요란스러운 종대였지만, 민석이 고민이 있다거나 할때에는 누구보다 진중하게 제 이야기를 들어주고 위로해주는 둘도 없는 소중한 친구였다.
세훈이의 손을 잡고 미국으로 가게되었을때는 민석이 떠난다는걸 누구도 알지 못했다. 아무도 모르게 떠나자고 한건 민석의 결정이었다. 다른 이유보다도 제가 아프다는걸 세훈이 말고는 다른 누군가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다. 괜한 자존심이었다. 1년 정도는 괜찮겠지 생각하며 떠났던게 벌써 4년이란 시간이 흘러있었다.
"그동안 어디서 뭔짓을 했는지 얘기나 들어보자."
커피 위에 얹어져있는 휘핑크림을 빨대로 휘적거리던 민석이 우뚝 행동을 멈췄다. 혼자 해외여행이라도 갔었냐?, 턱을 괴고 저를 바라보는 종대의 호기심어린 눈빛에, 민석이 쓰게 웃었다. 이젠 말 할 수 있을까? 왼쪽 가슴에 깊게 자리한 흉터의 의미를. 민석이 가슴 언저리를 매만졌다.
"응. 여행갔었어."
아직이었다. 아직은 아니었다.
"남들보다 좀 힘든여행."
알수없는 민석의 말에 종대가 고개를 갸웃했다. 어디서 어떻게 지냈는지 궁금한것 투성이였지만, 왠지 민석이 말하고싶지 않아 하는것같아 그만 두었다.
"그래서, 언제 돌아온거야? "
"일주일쯤 됐어."
"...그러면"
물어봐도 될까? 그 아이에 대해서. 쉽사리 나오지않는 말에, 종대가 앞에있던 커피를 한모금 마셨다. 다시금 휘핑크림을 휙휙 휘젓는 민석을 가만히 바라보던 종대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루한은?"
민석이 커피를 바라보던 시선을 들어 종대와 눈을 맞췄다. 종대 답지 않게 굉장히 조심스러운 눈치였다.
"..루한?"
"응. 만났어?"
루한..루한. 낯선 이름을 곱씹던 민석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곧이어 들려오는 말에 종대는 제 귀를 의심했다.
"루한이 누군데? 나랑 많이 친했어?"
"..뭐?"
니가 형이라고 안하는거보면 동갑이거나 우리보다 나이가 어리다는 건데, 둘중에 뭐야?, 너무도 순진하게 물어오는 민석에, 종대가 입을 떡 벌렸다.
"지금 무슨소릴 하는거야? 나이가 우리보다 어릴리가 없잖아. 루한이라니까 루한? 너 뭐 잘못먹었냐? 아니면 4년동안 이상한 기억상실이라도 걸렸어? 아니지. 날 기억하는걸 보면 그건 아닐테고. 혹시 무슨일이라도 있었.."
"종대야. 나 멀쩡해."
다다다 쏘아붙이는 종대의 말에, 민석이 귀를 살짝 틀어막으며 말했다. 그제야 말을 멈춘 종대는 아직도 어리벙벙한 표정이었다. 귀를 막고있던 손을 내리며 민석이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사실 무슨일이 좀 있었는데, 이상하게 하나만 기억이 나질 않아."
"...."
"아마도 니가 말하는 루한이라는 사람이 이사람 같은데. 맞아? "
너무나 태연하게 물어오는 민석에, 마른 입술을 혀로 축였다. 제게로 내밀어지는 핸드폰을 살짝 내려다본 종대가 잠시 머뭇거리다 민석의 눈을 마주했다. 여전히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순진한 얼굴이었다. 이걸 말해야돼 말아야돼., 잠시 고민하던 종대가 환하게 웃는 사진속 얼굴에 한숨을 푹 내쉬었다.
"맞아."
"나랑 많이 친했었어? 배경화면이 이 아이인걸 보면 꽤나 친했던것같은데."
루한의 사진을 보며 살짝 웃는 민석의 얼굴을 한참이나 바라보던 종대가, 이내 결심한듯 천천히 입을 떼었다. 내뱉어지는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아있었다.
"많이 친했지."
"역시 그랬구나. 근데 나한테 너만큼 친한 친구도 있었나? "
"나보다 더 친했어."
단호한 종대의 말에 민석이 얼굴을 굳혔다. 쟤가 왜저래. 답지않게 무게를 잡는 종대가 어색했다. 한참이나 말을 아끼는 종대에, 민석은 가만히 종대를 바라보았다. 무거운 침묵이 깨지고 이내 귓가에 들려오는 낮은 목소리는, 감히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말이었다.
"적어도 연인 관계가 친구 사이보단 더 각별한 법이지."
커피를 입가로 가져다대던 민석의 손이 우뚝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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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ㅈ된 해리포터 캐스팅 근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