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arious Artists - For Fruits Basket (후르츠 바스켓)
청춘, 우리의 모든 순간들 05
W. 키링키스
끼익 끼익. 그네의 움직이는 소리가 조용한 놀이터에 가득 울렸다. 여긴, 여전하구나. 비록 캄캄했지만 기억속의 모습 그대로라 징어는
쉽게 놀이터를 그려낼 수 있었다.
" 말 못해서 미안해. "
루한의 잔잔한 목소리가 옆에서 울려왔다. 미안하다고 말하는 루한이였지만 사실, 징어는 마음이 불편했다. 루한이 미안하다고 말하는 원인 때문에
자신의 기분이 좋지 않은게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루한...나두 잘 모르겠어. 이게 뭔지. 왜 이러는 건지. 그저, 내가 아는 건...
" 루. "
" 응? "
" 우리, 처음 만났을 때 기억나? "
뜬금없는 징어의 말에 루한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 기억나. "
" 그래? "
징어가 되물었다. 응. 루한이 대답했다.
같은 시간, 같은 만남. 그러나, 다른 마음.
루한과 징어는 서로의 처음을 떠올렸다. 하지만, 각기 다른 감정으로.
**
- 3년 전
" 징어야, 인사해야지. "
지금보다 조금 더 작았던 징어는, 지금보다 더 소극적이고 낯을 가리는 아이였다. 중국 유학생으로 오랜 기간 중국에서 살았던 부모님의 친구분이 한국에 오셨다고 했다.
징어는 엄마의 뒤에 숨어 고개를 빼꼼 내민 체 처음보는 낯선 어른들을 올려다 보고 있었다.
" 하하,루 위안. 미안하네. 우리 딸이 낯을 좀 가려서 말이야. "
" 괜찮네. "
어? 분명 중국인 아저씨라고 했는데 한국말을 하시네?
징어가 호기심 가득한 눈동자로 눈 앞의 어른을 쳐다보았다.
" 음, 꼬마 아가씨가 내가 한국어를 하는 것이 신기한가 보아? "
" 어...그게에.. "
" 하하, 아저씨는 중국인이지만 여기 옆에 아주머니는 한국인이란다. 그래서, 나는 한국어를 잘해. 아내가 중국어를 잘 못하거든. "
" 이이도 참.. 그나저나, 루한 얘는 왜이렇게 안온담. "
" 금방 온댔으니 걱정 말아. "
루한? 루한은 또 누구야.. 또다른 인물을 만나야 한다는 생각에 징어는 덜컥 겁부터 났다. 그 때 였다. 징어네 집의 초인종이 울렸다
" 어머나, 루한이 왔나 보다. 길 안 해매고 잘 찾아왔네. "
징어는 자신을 떨어트려 놓고 현관문으로 향하는 엄마를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었다. 현관문이 열리고, 엄마의 하이톤의 목소리가 집안 가득 울렸다.
" 어머, 해인아 너랑 똑 닮았네? "
자신을 버리고 가버린 엄마 대신 아빠의 옷자락을 말아 쥐며 징어가 몸을 숨겼다. 어서 들어와. 엄마의 뒤로 자신보다 몇 뼘은 더 커보이는 남자아이가 들어왔다.
" 어.... "
징어가 고개를 빼꼼 내민 체 남자아이를 바라보며 바보같은 소리를 냈다. 순간, 징어와 루한의 시선이 맞닿았다.
" 히익.. "
징어가 재빠르게 몸을 숨겼다. 하지만, 잠시 다시 얼굴을 내밀었다. 남자아이는 계속 저를 쳐다보고 있었다. 징어는 루한의 눈빛에 시선이 빼앗겼다. 그냥 보기에도
빼어난 미모를 자랑하는 아주머니를 닮은 모습이 그들이 한 가족임을 증명하고 있었다. 크고 쌍커풀이 진 맑은 눈, 하얀 피부. 여린 선을 가졌지만 남자답게
앙 다물어진 입술. 천사같아... 어린 징어의 눈에 들어선 루한의 첫 인상이였다.
**
" 오징어, 무슨 생각해? "
찬열이 징어를 가볍게 쳤다.
" 응?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
징어가 고개를 도리도리 저어보였다.
" 너 몇일 전 부터 조금 이상한 것 같아. 자주 멍때리고. 무슨 일 있어? 어디 아파? "
" 아니..열아, 나 괜찮아. "
괜찮아, 나 정말 괜찮은거 맞겠지?
찬열이에겐 괜찮다고 했지만 사실, 징어는 하나도 괜찮지 않았다. 몇일 전 있었던 부모님들의 친우분들과 그들의 아들 루한. 이렇게 함께 했던 저녁식사 이후로
자꾸만 징어의 머릿속에 루한이 떠 다녔다. 말 한마디 나누어 보지 못했지만, 징어는 식사 내내 끈질기게 자신에게로 향하는 루한의 시선을 잊을 수가 없었다.
시선이 맞닿을까 요리조리 눈을 피하기 바빴던 자신이 못내 부끄러웠다. 그날, 루한에 대해서 알게 된 사실은 몇 없엇다. 루한은 유년 시절을 한국에서 보냈다고 했다.
과묵한 성격인지 말 한마디 제대로 하지 않았지만 한국에서 나고 자란 징어 만큼이나 한국말을 퍽 잘한다고 했다. 그리고 한국에서 학교를 다닐 예정이라는 것.
아주머니네 집안이 대대로 내려오는 사업가 집안이라 한국에서 학교를 다니고, 조금 더 자라면 경영수업에 참여해서 아저씨의 중국 회사와 합병을 할 것이라고 했다.
물론, 어린 징어에게는 모두 어려운 얘기지만 무튼 그랬다.
" 한국에서...."
다시 볼 수 있을까. 징어가 나즈막하게 중얼거렸다. 어디서, 어느 학교에 전학 올 예정인지 징어는 사실 너무나도 궁금한게 많았지만, 징어가 용기를 내기란 쉽지
않은 일이였다. 어쨌든 징어는 그 아이. 천사를 닮은 루한이라는 아이를 다시 한번 만나고 싶었다.
벚꽃바람이 부는 중학교의 교정, 찬열은 책을 읽고 있었고 징어는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있었다.
" 박찬열 !! 오징어!! "
다급하게 자신들을 부르는 익숙한 목소리에 찬열과 징어의 고개가 돌아갔다. 옆 남중에 다니고 있는 종대가 담벼락에 매달려 애타게 징어와 찬열을 부르고 있었다.
" 어어??? 종대야아아!!! 무슨일이야? "
" 야아!!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야! 빨리 좀 이리좀 와바바! "
" 거길 어떻게 가. 담이 있는데. "
찬열이 무심하게 대답했다.
" 진짜, 급해!! "
" 왜 그래, 도대체. 무슨 일인데? "
" 아, 김종인 좀 말려봐!! 싸움났어!! 진짜, 도경수가 자기가 말릴테니 너희한테 가보라고 하긴 했는데..김종인 또 징계먹으면 큰일난단 말야!! "
" 뭐어??!! "
찬열이 눈이 크게 떠졌고 징어가 놀라 소리쳤다. 징어의 얼굴이 순식간에 사색이 되었다. 찬열은 읽고 있던 책을 내팽겨치고 징어의 손을 잡았다.
" 너 올라가 있어. 내가 갔다올게. "
" 뭐어? 싫어. 나도 같이가. 나도 갈거야. "
" 내 말들어. 옆 학교 갔다가 걸리면 어떻게 되는 줄 몰라서 그래? "
" 알아...나도 안다구. 그런데 내가 어떻게 널 혼자 보내! 혼나는거 뻔히 아는데! 그리구, 깜종은 내가 말릴 수 있어. 수정이두 지금 없는데 내가 갈거야. 내가 가야되에!! "
평소에는 찬열의 말을 잘 들었던 징어였지만 오늘만큼은 완강했다. 찬열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징어의 손을 잡고 담벼락 구석에 조금 허물어진 곳으로 달려갔다. 징어는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했다. 제발, 깜종이 큰 사고를 치지 않았기를.
찬열이 징어를 올려주고 반대편에서 종대가 징어를 안았다. 찬열이 마저 담을 넘어 오자 종대가 앞장서서 달리기 시작했다.
**
중학교에 올라오면서 수정과 수지, 찬열과 징어는 남녀공학인 우암중에, 종인과 경수, 종대는 우암남중에 배정되었다. 서로 떨어졌다고 슬퍼하기도 잠시, 낮은 담벼락을 경계로 나란히 붙어있는 두 학교에 다행이 계속해서 붙어다닐 수 있다고 즐거워하던 징어였다. 어릴적 부터 운동을 곧잘했던 종인은 중학교에 진학하자 마자 축구 특성화 중학교였던 우암남중의 축구부 코치의 눈에 들게 되었고 일학년 때부터 시합에 출전하는 등 축구부원으로서 맹활약 중이였다. 그러나 축구부 특성상 학교의 날고 긴다하는 불량아들이 많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또 원체 놀기 좋아하는 종인이지라 무리에 휩쓸려 일탈을 저지르거나 사고를 쳐 학생부를 방문하는 일이 잦았다. 물론, 종대나 경수와 함께 하는것은 변함 없었으나 종인이 중학교 진학 후 눈에 띄게 달라진 것은 사실이였다.
소문은 빠르다. 옆 학교 소문일수록 소문이 퍼지는데 걸리는 시간은 반나절이면 충분하다. 학교의 여자아이들의 입에 종인이 오르락 내리락 할 수록 징어와 나머지 아이들은 종인의 걱정을 하기 바빴다. 그러나, 얼굴을 보고 마주하면 그런 소문들은 다 거짓인듯이 종인의 모습은 한결같이 똑같았다. 종대와 경수에게 물어도 크게 내색이 없길래 징어는 다행이다 라는 마음으로 종인에 대한 걱정을 잠시 접었었다. 소문은 원래 꼬리를 물수록 커지는 것이라 조금만 있으면 사라질 것이라고 징어는 굳게 믿었었다.
그런데 지금, 규칙을 어기고 우암남중의 운동장 한복판을 내달리고 있는 징어는 왈칵 눈물을 쏟아내기 일보 직전이였다. 깜종이, 싸움을? 도대체, 왜?
" 누구랑, 누구랑 싸우는거야? 종대야 왜 싸우는 거야아... "
징어가 숨을 헉헉 거리며 종대에게 물었다. 멀리, 뒷문에 남자아이들이 몰려있는 것이 보였다. 종인의 반이 가까워 진 듯 했다.
" 전학생이랑. 김종인 저 자식이 원래 시비걸고 그러는 녀석이 아닌데..요즘 뭐 때문인지 심사가 베베 꼬여서는 먼저 시비를 털더라니까? "
징어는 속상한 마음에 울상을 지었다. 이질적인 교복을 입은 찬열과 징어를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는 남자아이들의 틈을 징어가 비집고 들어갔다. 오징어!! 찬열이 다급하게
징어를 불렀다. 동시에 종대의 말이 징어의 귓가에 내려앉았다.
" 전학생이, 축구를 좀 했나봐. 그래서 축구부 포지션 가지고 마찰이 있었어. 거기다가 전학생이 외국인인데, 그거 가지고 시비를 털었지. "
징어는 두 손으로 입을 가렸다. 정면으로 보이는 종인의 얼굴에 피딱지가 가득했다. 종인이 상대 남자아이의 위에 올라 타 있었다. 그것도 잠시, 아래에 있던 남자아이가 종인을 밀쳐 내고 종인의 얼굴이 남자아이의 주먹에 맞아 돌아갔다. 종인이 다시 고개를 돌리려던 찰나, 징어와 눈이 마주쳤다. 징어가 달려가 종인의 허리를 끌어 안았다.
순식간에 수돗물 터지듯 징어가 울음을 쏟아냈다.
" 흐어어엉...깜종, 너 왜그래!! 왜 싸우고 그래애!! 흐어엉, 너 그런애 아니잖아. 응? "
교실에 정적이 감돌았다. 당황한 종인의 손이 허공에 머물렀다. 틈을 비집고 들어온 찬열과 종대가 종인과 시선을 마주했다.
찬열과 눈이 마주친 종인이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 으어어엉...너 진짜 속상하게 왜그래? 흐으윽, 싸우지마 응? 싸우지마아 "
어린아이처럼 울어대는 징어를 종인은 어떻게 달래야 할지 감이 안잡혔다. 뒷문에 서있는 찬열에게로 도와달란 신호를 보냈지만 찬열은 한숨을 포옥 내쉬며 어깨를 으쓱일 뿐이였다. 종인이 알아서 달래라는 의미였다. 종인은 또 한번 난처함에 미간을 찌푸렸다. 허공에 두었던 손을 내려 징어의 등을 토닥였다. 히끅, 끄으 코를 삼키는 소리가
퍽 귀여웠다.
" ..미안해..그만 울어.. "
" ..흐으으,끄으 싸우지마 응? "
" 휴우..알았어. 안싸울게 그러니까 눈물 뚝 그쳐. 응? "
진짜지이? 징어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을 요구했다.
진짜야. 약속.
약속, 도장 찍어어..
새끼손가락 걸고 도장까지 찍은 후에야 징어가 종인의 허리를 감은 두 손을 풀어냈다. 종인이 새빨개진 징어의 눈두덩이를 문질렀다.
화해해애... 징어가 종인의 손을 맞잡고 종인과 싸운 상대방에게로 몸을 돌렸다. 퉁퉁 부은 징어의 두 눈이 토끼마냥 크게 떠졌다.
" 어...어, 너어! "
징어는 자기도 모르게 눈앞에 마주한 상대에게 삿대질을 했다.
종인과 똑같이 얼굴에 피딱지가 앉아 있는 루한이 징어의 눈을 오롯이 마주해오고 있었다.
**
" 루. 나 사실은, 너 처음에 우리집에서 봤을 때 말야. "
" 응. "
" 되게, 천사같다고 생각했었어. "
징어를 태운 그네가 앞 뒤로 움직였다. 그에 맞추어 끼익 끼익 소리가 울렸다.
" 한마디도 못 나눠보았지만, 그 뒤로 계속 계속 네 생각만 났었다? "
그 동안, 단 한번도 털어놓지 않았던 마음을 징어가 조심스럽게 루한에게 보여주고 있었다.
" 그래서, 되게 웃기지만... 그 때, 깜종이랑 너랑 싸웠던 날 너무너무 반가워가지구.. "
그 때, 징어는 잡았던 종인의 손을 놓고 달려가 루한을 끌어 안았었다.
" 그 때의 나는..지금보다도 더 어렸으니까.. 항상 열이랑, 종인이랑 다른 아이들한테 많은 것들을 받고만 자라서 너를 만난 반가움을 표현할 방법이 없었던것 같아. "
" ..... "
루한이 침묵을 유지했다.
" 그래서, 그래서 말야. 아가 때부터 알고 지냈던 열이도, 까마득하게 어릴 적부터 함께였던 종인이나 수정이도 모두 루, 너보다 오랜 시간을 함께였어. "
" ....... "
징어는 머릿속에 둥둥 떠다니는 말들을 어떻게 해야 오롯이 입밖으로 담아낼 수 있을까 끙끙 거렸다.
" 그런데두, 난...난 루, 네가 그 아이들 만큼...그 아이들 처럼.."
" ....응.. "
" 나한테..너무너무 소중한 사람이야. "
이게 맞는 걸까. 루한한테 전하고픈 말들을 표현해내지 못하는 자신이 바보같이 느껴진 징어였다.
" 네가, 소중해서...너무너무 소중해서.. "
그래서, 네가 나은이랑 있는 모습이 자꾸만 신경 쓰이고 나도 모르게 속이 상해버려.
" ...모르겠어어... "
모르겠어. 정말 모르겠어. 징어는 고개를 떨어트렸다.
루한이 조심스럽게 징어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루한이 다정하게 징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 몰라도...괜찮아. "
" ....루.. "
루한이 손을 거두고 조심스럽게 징어를 안아왔다. 징어가 루한의 너른 품에 파고들었다.
" 괜찮아, 괜찮아.. "
내가 겁쟁이라서 미안해.
징어에게는 들리지 않을 루한의 고백만이 어두운 밤을 가득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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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 다사다난 했던 징어의 하루였습니다. 잠깐 나온 중딩시절의 징어와 아이들. 종인이 귀엽죠? 나름 날라다녔더랬어요 :) 이번 편에서 나온 징어와 루한의 첫만남은 순!전!히! 징어의 시점입니다. 루한의 시점은 다음번에, 다음기회에 만나요.
아이들이 참, 감정표현에 서툴러요 그쵸? 징어와 루한 뿐만아니라 찬열이와 종인이 수정이 모두 불완전한 시절을 보내고 있는 만큼 독자님들이 이해해주시길 바래요.
그럼 다음편에 만나요. 굿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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