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금 조절은 글의 맨 밑에서!)
넓은 초원에 서 있는 나의 머리 위로 얇은 바람이 스쳐 지나갔다. 내 몸을 훑고 지나가는 부드러움에, 눈을 스르르 감고 맑은 공기를 몸 안으로 삼켰다. 일주일 내내 입고 있는 흰 원피스가 얇아서 슬슬 추워짐을 느꼈을 때, 달콤한 향기가 내 콧구멍을 통과했다. 인간. 인간이다.
오늘도 실패하면 퇴출이야-.
민윤기, 나 오늘은 사냥 성공할 것 같은데. 그냥 성공도 아닌 아주 대성공. 나의 숨소리가 거칠어지면서 발가락에 힘이 들어갔다. 숨을 더 들이켜 냄새의 근원지를 파악한 후 나는 달리기 시작했다. 거추장스럽던 긴 머리카락은 뒤로 넘겨지고 시원한 바람이 나의 뺨을 스쳐 지나갔다. 얼마 만에 맛보는 인육인 거지. 아마 두 달도 더 됐을 텐데. 당분간 퇴출당할 일은 없겠네. 들뜬 마음으로 숲 속까지 뛰쳐 들어왔는데 먹잇감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인간의 귀로는 들리지 않았을 풀잎 스치는 소리가 몇 차례 더 난 후에 그것은 정지했다. 느린 움직임을 보아하니 부상자인 게 분명하다.
"윽..."
신발을 신지 않아 나는 풀 위를 걸을 때 소리를 크게 내지 않는다. 숨죽여 몇 발자국 전진하자 바닥에서 몸을 이리저리 구르고 있는 남자가 보였다. 아침까지만 해도 깔끔했겠지만 뒹구느라 온통 흙이 묻고 구겨진 하얀 셔츠, 상의와 상태가 별반 다르지 않은 검은 슬랙스. 옷차림을 보니 산에 놀러 온 것은 아니다. 아마 길을 잃었겠지.
나는 나무 뒤에 몸을 숨겨서 남자가 하는 짓을 유심히 지켜봤다. 통통한 인간을 원했건만, 말라서 한 끼니밖에 때우지 못할 것 같아서 실망이다. 그래도 인간인 게 어디겠어, 때가 되면 가서 숨통을 끊어놔야지. 타이밍을 재고 있던 때에 남자의 주머니에서 전화가 시끄럽게 울려댔다.
촬영장비가 있다면 그것부터 처리해.
인간 사냥에 대해 민윤기한테 배웠을 때 들은 가장 중요한 규칙이다. 다른 지역의 무리가 몇 년 전 다큐멘터리 촬영팀에게 들킬 뻔한 적이 있다고 한다. 다행히도 아주 깜깜한 밤이어서 카메라에 모습이 담기지는 않았지만, 그 다큐멘터리에는 그 곳이 밤만 되면 정체 모를 것들이 활동하는 뒷산이라고 방송됐었다.
우리가 머무는 곳이 탄로 나면 우리는... 연구 대상이 될 게 분명하다. 다시 예전의 생활로, 관찰실에 갇혀서 아침이면 떠오르는 태양 대신 상태를 검사하러 온 연구원들의 얼굴을 맞이하고, 저항하면 곧바로 폐기될.
"아, 씨."
남자가 전화를 받으려 하자 휴대폰이 방전 돼서 화면이 까맣게 변했다. 귀찮게 저 기계를 처리할 필요가 없어진 나는 입꼬리를 씩 올렸다. 전화하면 누가 구하러 올 줄 알았는지 남자는 잠시 멍하니 휴대폰을 바라보다가 작게 욕을 중얼거렸다. 그래 봤자 소용없어. 여길 어떻게 찾아온다고. 지금이야. 정신 팔린 사이에 저 목에 이빨을,
"흐엑!"
숨겼던 몸을 드러내 남자에게 성큼성큼 다가가고 있었는데 남자가 고개를 돌려 나의 얼굴을 보더니 이상한 소리를 낸다. 목소리보다 더 이상한 건 표정이다. 누군가가 뒤에서 근육을 한껏 잡아당긴 것처럼 기겁한 저 표정. 나도 덩달아 당황해서 발걸음을 멈췄다. 전진해도 되는 건가. 아닌 것 같은데.
"누, 누구세요!"
뒤통수를 치면 눈알이 툭 하고 떨어질 것 같은데 일단 침착하는 게 어떻겠니. 딱히 남자의 물음에 대답해줄 필요를 느끼지 못한 나는 무심하게 그를 내려다봤다. 이렇게 대면하게 된 이상 기습으로 공격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남자는 내가 다가서면 분명 저항할 텐데, 나에게 주어진 능력은 달리기지 남자를 힘으로 이길만한 능력은 없다.
이를 어찌한담. 혼자서 난리를 치고 있는 남자를 두고 나는 고민했다. 나무들 사이로 초원을 보니 아직 다른 사냥원들은 이곳까지 도달하지 못한 것 같다. 괜히 큰 먹잇감을 잡겠다고 큰소리 떵떵 치고 이 먼 곳까지 왔다. 김남준이 근처에 있으면 부르려고 했는데 아무리 귀를 쫑긋 세우고 들어봐도 그는 근처에 없다. 남자는 나에게서 슬금슬금 뒷걸음질 치더니 반대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그런 그의 뒷모습을 보다가 고개를 젖혀 하늘을 보니 눅눅해진 게, 곧 비가 내릴 것 같다.
"야."
"...저요?"
내가 말을 할 줄 안다는 것에 놀란 것인지, 자신에게 말을 걸어줬다는 게 신기한지 남자는 몸을 홱 돌려 자신의 얼굴을 가리키면서 묻는다. 진짜 저 표정, 바보 같아. 살도 별로 없는 게, 멍청하기까지 하니까 짜증이 나 인상을 썼다.
"곧 비 올 것 같은데."
"네?"
"그칠 때까지 우리 집에 있어."
확실한 건, 남자를 이대로 보낼 수는 없다는 거다. 집에 저 인간을 데려가면 무리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는 잘 모르겠지만, 꼭 목을 물어야만 사냥인 건 아니잖아? 나름 전략적인 사냥이야. 똑똑하다, 김여주.
*
집으로 가는 동안 옆에서 풍기는 향기로운 인간 냄새에 나는 먹잇감을 죽여버릴까 수 없이 갈등했지만 걷는 내내 수다를 떠는 게 신기해서 내버려뒀다. 남자는 원래 이렇게 수다스러운 존재인가? 생물학적으로 따지고 보면 지금 집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남자들은 인간은 아니지만, 또 완전한 뱀파이어는 아니라 했으니 인간의 피가 섞여 있을 텐데 왜 이리도 다를까? 내가 대꾸를 해주지 않고 앞만 보고 걸어도 남자의 입은 그칠줄 몰랐다. 저처럼 길을 잃은 거에요? ...... 저는 일행이 있는데 어디 갔는지 모르겠네요, 하하! 저는 박지민이라고 해요! 이런 식의 일방적인 대화를 나누다가 대문 앞에 도착하니 하늘에서 비가 한두 방울씩 내리기 시작했다.
"김석진! 나와봐."
사실 무리 중에서 유일하게 나보다 나이가 많은 김석진은 석진이 오빠라고 부르는 게 맞다. 하지만 이렇게 부르지 않으면 소파에서 꿈쩍도 하지 않을 오빠를 알기에 나는 일부러 소리를 빽 지르듯이 이름을 불렀다. 예상대로 집 안에서 잠시 쿵쿵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나를 혼낼 준비하고 나온 석진이 오빠가 문을 열었다.
"너 내가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했, ...인간?"
내 옆에 뻘쭘하게 서 있던 남자를 발견한 김석진의 동공이 커졌다. 앞에 있는 나는 보이지도 않는지 시선을 내가 데려온 먹잇감에 고정한 김석진은 손을 떨기 시작했다. 안된다. 내가 어떻게 참으면서 데려온 인간인데, 내 손으로 죽일 거야. 손을 뻗어 김석진을 제지하자 김석진은 사납게 나를 노려봤다. 이미 정신을 놨구먼, 이거.
"이거 무슨 냄새야."
곧이어 현관에서 흘러들어 가 집 안까지 퍼졌을 남자의 냄새를 맡은 민윤기가 걸어왔다. 무리 중에서도 유독 인육을 밝히는 녀석이다. 장시간동안 서 있느라 슬슬 다리가 저림을 느낀 나는 그 둘을 무시하고 내 먹잇감의 팔뚝을 잡아끌어 집 안으로 발을 들였다.
"대체 무슨 생각인 거야."
자신이 잡아온 멧돼지를 손질 중이던 김남준은 우릴 보자마자 칼을 떨어트릴 뻔했다. 다행히도 내가 빠르게 다가가서 바닥에 닿기 직전에 그것을 주워들었지만, 김남준의 표정은 여전히 굳어 있다. 김여주, 인간을 왜 데려와.
"우리 저녁 메뉴야."
"...뭐?"
"오늘 사냥 성공했다고."
입꼬리를 양옆으로 늘려서 뿌듯한 표정으로 김남준을 올려다봤지만 그의 눈동자는 싸늘하게 식어갔다. 처리를 안 한 상태로 집에 들여오니 놀랄 만도 하지. 빨리 숨통을 끊어놔야 이 사람들이 진정하겠다고 판단한 나는 남자를 향해 뒤돌아섰다.
"제가 저녁이라니 무슨 말이에요?"
"말 그대로. 너, 잡아 먹을 거야. 우리가."
뒷걸음질 쳐도 소용없다는걸 모르는지 남자는 눈을 이리저리 굴리면서 도망치려 한다. 오랜만에 내 인내심을 시험하게 해줘서 고마워. 잠시 후 밥상에서 보자. 나는 입맛을 다지면서 남자의 양어깨에 손을 올려서 꽉 쥐었다. 온몸의 떨림이 나에게까지 전해졌지만 그건 내 알 바가 아니다. 까치발을 한 채로 남자의 목 언저리에 얼굴을 파묻고 숨을 깊게 들이마시었다. 하, 달콤한 인간 냄새.
거실에 내 숨소리만 울릴 때 가만히 대고 있던 입술을 벌려서 남자의 살에 이빨을 박았다. 인간의 타액과는 달리 우리의 것은 강한 독성을 품고 있다. 이제 남자의 혈관을 타고 금방 온몸에 퍼져서, 남자는 죽을 거다. 더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불쌍한 인간이니 조금은 다정하게 박지민이라고 불러도 되겠지. 잘 가, 박지민. 내 첫 인간 사냥 네 덕분에 성공적이야. 고맙다.
"윽, 아..."
박지민이 목을 부여잡고 벽에 기대서 끙끙대는 꼴을 지켜보며 기다렸다. 김남준은 이미 멧돼지 손질을 마저 하러 부엌에 돌아간 지 오래였고 민윤기와 석진이 오빠는 내가 박지민을 처리하는 걸 보고 방으로 돌아갔다.
몇 분이 지났지? 벽에 걸려 있는 시계를 보니 분명 독이 퍼지고도 남았을 시간인데 박지민은 아직도 웅크려서 고통을 견뎌내고 있다. 이봐, 어차피 넌 죽게 돼 있어. 그냥 얌전히 죽지? 어깨를 툭툭 치면서 말을 걸어도 박지민은 고개를 저으면서 이를 악물었다. 허, 참.
"민윤기, 와서 얘 좀 끝내."
"그거 하나 못해서 날 부르냐."
투덜거리면서 거실로 다시 나온 민윤기는 나를 밀쳐내고 박지민 앞에 쪼그려 앉았다. 박지민의 손을 치우고 잠시 내가 문 자국을 보더니 미간을 찌푸려 유심히 관찰한다. 무슨 문제라도 있나. 배고픈데, 빨리 끝내자.
"김남준. 이리 좀 와."
처리하라는 먹잇감은 건드리지도 않고 민윤기는 침착한 목소리로 김남준까지 부른다. 자기들끼리만 속닥거리는 둘을 무시하고 창밖을 보니 방금 내리는 비는 소나기였는지 바닥만 젖어 있고 날씨는 개어 있다. 공기는 맑아졌겠네. 저녁 식사를 마치면 산책을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얘 어디서 발견한 거야?"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은 민윤기가 고개를 돌려 나에게 묻는다. 어, 저기 숲에서. 바라보고 있던 창밖을 손으로 가리키면서 대답했더니 민윤기는 벌떡 일어나서 숲이 있는 쪽을 쳐다봤다. 김남준. 저거 불빛 맞지. 또 둘이서만 얘기하는 민윤기와 김남준의 뒷모습에 한숨을 푹 쉬고 나는 먹잇감 앞에 철퍼덕 엉덩이를 깔고 앉았다.
"야."
"흐, 왜요...?"
"막 심장이 쿵쾅대고, 어지럽고, 춥고. 안 그래?"
"춥지는 않은데..."
"아니, 죽을 것 같지 않냐고."
답답해진 나는 박지민의 어깨를 잡고 상처 부위를 이리저리 둘러 봤다. 어라, 뭐지. 인간 사냥은 처음이라 잘 모르지만 원래 이렇게 피도 적게 나고 깔끔하게 상처 나는 건가? 아니다. 몇 개월 전 민윤기의 사냥에 따라갔을 때 옆에서 본 물린 인간은 피가 철철까지는 아니더라도 어깨를 타고 흘러내릴 정도는 났었다. 그런데 지금 내 눈앞에 있는 박지민의 상처는, 나의 이빨 자국에 맞춰서 파인 부분에 조금씩 피가 고여 있을 뿐 아주 멀쩡했다. 이래서 민윤기가 김남준을 불렀던 건가 보다.
"너 뭐야."
"말했잖아요... 박지민이라고."
김여주, 김여주! 박지민을 추궁하던 나를 김남준이 다급하게 불렀다. 무슨 일이냐며 그의 옆에 갔더니 그는 어둠이 내린 숲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거, 이 인간 찾는 거 같지. 시력이 좋지 못한 나는 창문에 얼굴을 붙여서 봐야 했다. 조금씩 이동하고 있는 여러 줄기의 불빛들이 보이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점점 이쪽으로 오는데...?"
| 사담 |
헛헛... 브금 첨부 원래 밑에 되는건가요ㅠㅜ 올리고 싶어도 안 올려지네요 저의 망상을 텍스트화 한 것일 뿐인 글입니다ㅎ 누가 읽긴할까... 싶긴하지만 여기까지 오셨다면 정말 인내심 왕... 천사... 알러뷰... |
모든 시리즈
아직 시리즈가 없어요
최신 글
위/아래글
공지사항
없음

인스티즈앱 ![[방탄소년단/박지민] 트와일라잇 01 (부제: 인간 사냥) | 인스티즈](http://file2.instiz.net/data/cached_img/upload/2016/01/17/16/9dae8f5f8e41a21f4e12d1df4b030cd8.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