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허, 이리 오너라."
민망함에 눈동자만 데굴데굴 굴러갔다. 도대체 저하께서는 야속하기도 하시지, 어찌 이리 나를 민망하게 만드시는거야..
그래도 어엿한 한 나라, 연화국의 세자저하의 말인지라 어쩔 수 없이 바로 앞에 있는 용안을 보려 다시금 고개를 들자 성미 급한 그가 오히려 나에게 다가섰다.
나보다 몇 자는 더 큰 듯한 그 훤칠한 키로 내 앞에서서는 허리를 굽히곤 그 고운 손을 들어 내 볼을 쓰다듬는 그의 손길에 나는 가슴이 콩당콩당 경망스럽게 뛰는 듯 했다.
"그대같은 여인을 기다렸소, 세자인 나를 어떻게 해보려 온갖 분칠을 하고 호호 웃는 가식적인 규수가 아니라 그대처럼 똑 부러지고 욕심없는 맑은 눈동자를 가진 여인 말이오."
<제 2장, 어째서 내 심장이 뛰는게야?>
나는 여태껏, 이 나라의 남자들에게 불만 뿐이었다.
특히 그 사람이 높다면 더더욱,
물론 그 사람이 이 나라의 법을 만든건 아니지만, 그 사람의 선조가 어쩌면 기여 했을테니까.
그런데 지금,
'나는 대체 왜 이 사람에게 흔들리는 걸까.'
그 진중한 눈빛을 직접 마주하기가 힘들었다, 어느새 볼붉은 여인이 된 내가 조심히 손을 올려 따끈해진 볼 위를 쓰다듬는 그의 손을 내렸다.
알 수 없는 그의 눈동자가 나를 빨아들일 듯, 조금은 슬프게 조금은 맹렬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저하는 좋은 분이신것 같사옵니다, 감히 저하를 나쁘게 생각하려했던 저를 용서하소서. 하오나, 소녀는 그 품성이 규수에 어울리지 않았사오니 어찌 소녀 장차 이 나라의 중전이 되겠사옵니까."
"내 그렇기에 너를 사랑한다, 정녕 나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냐..정녕.."
"저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사옵니다, 그저 소녀의 부족함을 알아주시길 바라는 마음뿐이옵니다."
"빈궁, 나는 그대의 허락을 구한적이 없다. 내 모든 일을 너와 의논할 것이나 이번만은 아니다, 나는 너를 잃을 생각이 없다."
"저하, 그.."
"정국."
"예..?"
"남들이 보고 있지 않을땐 나를 서방님이라 불러라. 장차 임금이 되면, 내가 너에게 처음으로 내릴 어명이다. 그러나 참을 수 없어, 지금 미리 말하겠다. 그러니 거부하지 말아라."
"저하, 어찌 소녀에게 그런 무리한 부탁을 하시옵나이까?"
"마음같아선, 네 입에서 내 이름을 듣고 싶다. 그 악기와도 같은 고운 목소리로 내 이름, 전정국이라는 석자를 듣고 싶어 미칠것만 같구나. 허나, 궁에는 듣는 귀와 떠드는 입이 많고, 시기하는 여우들이 많아 차마 너를 음해할까 두려워 이름으로는 부르라 하지 못하겠으니 어서 나를 서방님이라 불러보거라."
당연히 거부해야 하는 명임을 알고 있음에도, 나를 바라보는 저하의 눈빛이 너무나도 절절하여 목구멍아래에서 서방님이라는 말이 기어올라오는것만 같았다.
나는 꿀먹은 벙어리처럼 아무말도 하지 못한채, 입만 뻐끔거렸다. 답답한지 내 어깨에 올려진 그의 손에 점점 힘이 들어갔다.
시큰거리는 아픔에 살짝 미간을 찌뿌리자 황급히 손을 내린 그가 내 손을 덥썩 붙잡았다.
"이 섬섬옥수가 그리웠다, 내일은 내가 사냥을 가는 날이니 나를 따라 나서주지 않겠느냐. 너의 주군으로서 부탁한다, 부인."
화들짝 놀라 눈을 호동그랗게 뜬 채 올려다보자 다시금 아이같이 웃는다. 나는 도대체 이 남자를 이길 수가 없을거 같다, 게다가 규방의 여인네에게 같이 사냥을 가자니 아주 대담한 처사다.
"예, 그리하시다면 기꺼이 따라가겠사옵니다."
꿀꺽 그가 침을 넘기는 모습에, 왠지 꽃향기 가득했던 어린날이 떠오른다.
"서방님."
이 한마디에 그가 다시 맑게 웃는다. 그의 웃음에선 박하향이 나는 것만 같다. 그 개운한 향이 내 몸을 감싸, 이 곳이 꼭 무릉인 것 같다. 어찌하여 이 텁텁하고 불편하기만 하였던 곳이 이리 곰실곰실하고 말랑한 기운을 머금게 된건지 나는 왠지 그를 더 자세히 바라보게 된다. 공중에서 우리의 눈빛이 마주치고, 얽힌다.
얼기설기 뒤섞인 눈빛이 왠지 모를 부끄러움을 만들어 고개를 내리며 다시금 볼을 붉히면, 그가 호탕하게 웃는다.
"하하하, 부인. 부인이 귀여워 내 입에서 웃음이 떠나지를 않을 것 같소. 이를 어쩌면 좋단 말이오?"
장난끼 가득한 그 물음에 나는 입술을 삐죽이며 괜히 툴툴거리듯 말하게 된다.
"짖굳으십니다, 서방님. 어찌 저를 이리도 놀리십니까?"
방안에는 웃음꽃이 피어나고, 종이로 된 창호에 부딪힌 월광(月光)이 두 사람을 아름답게 비춘다. 매화는 소리없이 그 암향을 뿜어내고, 방안에 유일하던 호롱불이 꺼졌다.
나는 어색하게 그의 손길에 이끌려 침대에 누웠다. 집에서 보던 하얀 휘장이 아닌, 봉황 휘장이 어색하다. 가만히 누워있는 나의 머릿칼을 쓰다듬은 그가 내 옆에 눕는다.
침수에 들기위해 복장을 달리하자 내 살결이 드러나는 하얀 옷이 야속하기만 하다. 침을 삼키는 소리가 혹여나 들릴까, 눈동자를 다시금 굴려보다 나만을 응시하던 그의 눈동자와 만나고야 만다.
"부인, 많이 어색하고 또 많이 급작스러울 것이라는 걸 알고 있소. 그러나 나를 믿고 잘 따라와 주시오. 내 그대를 위해 무엇을 못해주겠소? 오늘은 그대를 괴롭히지 않을터이니 이제 부인도 그만 눈을 감고, 나와는 꿈속에서 만납시다."
갈곳을 잃고 꼼질거리는 내 손을 덥썩 잡은 그가 먼저 눈을 감았다. 함께 눈을 감은 나는 그저 이 따스한 온기가 좋았다.
질투 많다는 여우와, 시기많은 입들이 무슨 수를 속닥이는지 전혀 생각지도 못한채,
| 암호닉(이렇게 하는건가요..?) |
뽑우 꾸기꾸기 꾸꾸까까 우유 띠뚜 오빠미낭낭 하니귤 항암제님, 총 8분 감사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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