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始作>
지금은 37세기, 나는 화양년 350년에 살고 있다.
제 3차 세계대전이후 이 지구는 거의 초토화 되었고, 모든 나라는 산산히 부서졌다가 재창조 되었다. 그리고 모든 나라들은, 과거로 돌아갔다. 다시는 지구가 뒤집힐만한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그리하여, 우리 한족(韓族)들은 신라, 고려, 조선등을 이을 새로운 나라를 열었으니 그 국호를 연화(年華)라 하였다. 지금 쓰여지는 이 이야기는 연화국 역사에 길이 남을 희대의 로맨스- 이자 가장 성군이라 칭송받은 제 11대 임금 전정국에 대한 이야기이다.
제 1장. 내가 세자빈이라고?
'열녀 춘향은 몽룡 도령을 기다려..'
지겨운 이야기였다. 나는 당최, 열녀라는 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유교가 다시금 법이 된 나라, 이 곳 연화국에서 특히나 세자의 빈을 양성하는 이 곳, 교화(敎花)관에서 이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혹 누가 내 마음을 읽으면 내 경을 칠지도 모를 정도로 불경한 생각일지도 모르지. 세자빈의 자질을 가르치는 곳, 교화관. 수백명이 넘는 여인들이 있는 이 중 시험을 거친 뒤 세자의 눈에 든 자가 그의 아내가 된다고 들었던 것이 어렴풋이 기억났다.
어렸을 때부터 글쓰기를 좋아하고, 말 타기를 즐기며 규수로서 지녀야 할 바느질 솜씨와 참고 입을 다무는 것을 익히지 못한 나는 명문가인 우리 가문에 어쩌면 맞지 않는 사람이었을지도 몰랐다. 어머니는 가장 정숙한 여인으로 칭송받았고, 아버님과 오라버니는 도성에서 가장 높은 관직에 나란히 올라 정사에 힘쓰고 있었다. 오직 나만이, 제 할 도리를 하지 못하고 있는가, 씁쓸함이 아릿하게 스치는 듯 했다.
세자 저하의 용안을 그린 초상화와 직접 지으신 시가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어느틈엔가 나도 모르게 꾸벅꾸벅 졸고 있었나보다. 소란스러운 소리에 잠에서 깨어 고개를 들자, 코 앞에 왠지 모르게 익숙한 한 도령의 얼굴이 보였다. 그 갑작스러움에 당황한 나는 움찔하며 고개를 뒤로 뺐다. 파드득 거리는 몸짓에 내 넓은 소매가 나풀나풀 흩날렸다. 도령은 그 고운 입꼬리를 끌어올려 매끄럽게 미소지었다.
어딘지 모르게 장난끼 가득한 표정의 남자가 내게 하문했다.
"뱃사공과 열녀 이야기를 아느냐."
"전쟁 피난길에 배에 오르기 위해 뱃사공의 손을 잡은 여인이 강가에 뛰어들었다는 일화를 말씀하시옵니까?"
알다마다, 제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배에 오른 여인이 뱃사공의 손을 한 번 잡은 것을 이유로 자결을 하다니. 나는 그것이 부당하고, 너무 과한 처사라 여겼었다.
"그래, 그럼 질마재 신화에 나오는 신부 이야기는 또 어떠하냐?"
"첫날 밤 서방이 급히 방을 나서다 옷자락이 문 돌쩌귀에 걸리었는데, 서방은 제 각시가 음탕하여 뒤에서 손으로 잡아당기는 줄로만 알고 초록 저고리 다홍치마채인 각시를 두고 떠나버렸사옵니다. 그 후 40년인가, 50년 후에 뜻 밖에 볼 일이 생겨 그 주위를 지나다 그래도 궁금하여 신부방 문을 열자 각시는 그 모습 그대로 고스란히 앉아 있었습니다. 이에 서방이 각시의 어깨를 어루만지니 매운 재가, 초록 다홍재가 되어 내려앉았다 그리 들었사옵니다."
신화 속 서방이 싫었다. 제 각시를 의심하여, 결국 재가 되도록 외면하게 만든 그 무심하고 멍청한 도령이 싫어서, 각시가 너무 안쓰러워 옷고름으로 찔끔 눈물을 닦아내며 들었던 이야기를 어찌 잊겠는가.
"훌륭하다. 가히 절세가인이거늘 이리도 학식도 뛰어나니 어찌 정숙한 여인이 아니라 하겠는가."
양갓집 자제라면 다들 내가 여인인 것이 안타깝다 할 정도로, 나는 여인이 갖추어야 할 자질보다는 남자가 지닐 그 것이 더 많은 사람이었다. 이 곳, 교화관에 그를 모르는 자가 한 명도 없을텐데 이리 말씀하시는 것은, 나에게 농을 하기 위함인가 혹은 자고 일어난 나를 모두의 앞에서 창피를 주시려 하심인가.
"짐의 여인이 되거라, 내 너와 같은 여인이 부인이 된다면 경국지색이라 한들 놓칠 수 있겠느냐."
그제서야 나도 모르게 아-하고 입을 살포시 벌려 짙은 탄식을 뱉어내었다. 너무나도 익숙한 얼굴, 하루에 열두번도 더 본 그 얼굴. 아니, 용안.
"세자 저하.."
바로 그였다, 장차 제 11대 임금이 될 세자 전정국
"통(通)이다."
나는 세자 저하의 세자빈 책봉 시험을 통과해, 하루아침에 이 나라의 세자빈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옮겨간 곳은 가애(佳愛: 아름다운 사랑)관. 세자 부부의 금술이 좋기를 기대하며 지은 이름이라는 설명을 궁녀에게서 들으면서도 아직도 자신은 얼떨떨하기만 했다. 빈 책봉 시험을 통과했다는 소식은 발도 없는 것이 말처럼 빠르게 터져나갔다. 집에 돌아간 나는 눈물을 글썽이는 어머니와 아버지를 바라보며 내 몸을 단장시켜주는 시녀들의 몸짓에 꼭두각시마냥 가만히 앉아있다가 어느틈에 이 곳 궁까지 당도해있었다.
놀랄것도 없었다. 제 아비와 오라버니는 단단한 권력을 위해 언제나 왕의 가족이 되기를 바라고 있었으니까, 언젠가 제가 왕실의 남자의 첩으로라도 들어가지 않을까-하는 생각은 자주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의 경우는 좀 달랐다.
"빈, 어서 고개를 들어 나를 보시오. 내 그대의 아름다운 화용을 보고 싶소."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자 체통도 잊고 손으로 용안을 받친 채 저를 골똘히 바라보는 개구진 도령이, 정녕 제 남편이자 장차 왕이 될 이 나라의 세자란 말인가. 나는 입술을 살포시 열어 한숨을 내쉬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나 웃는 낯에 침 뱉지 못한다 하였던가. 게다가 그는 이 곳 연화국에서 가장 막강한 힘을 가진 이 중 한 사람이었다. 제 앞에서 환하게 웃으며 저를 바라보는 이 세자저하를 어찌해야 좋단 말인가.
"어허, 빈은 어찌하여 눈을 들어 나를 보지 않는게야. 내 말을 듣지 않는 것은 곧 반역이라는 것을 모르는겐가?"
"아니옵니다 전하, 소녀 그저 남녀칠세 부동석이라 하였거늘, 이리 가까운 거리에서 저하를 보는 것이 민망하여 그리 하였습니다."
윤기있게 촘촘히 솟아오른 눈꺼풀을 살며시 들어올리자 저를 보며 해맑게 웃는 세자의 모습이 가득 담겼다. 부끄러워진 내가 고개를 다시금 숙이려 했으나 그는 되려 내 볼을 감싸쥐고선 짐짓 진지하게 내게 말을 풀어놓았다.
"이 나라에서, 나를 이길 법은 없느니라. 만약 그 가르침이 외국에서 전파되어 온것이라면, 감히 서책에 적힌 한문 몇글자가 나를 이길 수 없지 않겠느냐. 그러나 또 가히 네가 옳다. 남녀칠세부동석이라 하였고, 또 아직 초야도 치르지 않은 우리이니. 허나, 네가 아직 나에게 적응하지 못한다면 장차 이 나라, 백성들에게 어머니가 될 그 세자빈이 그럴 수 없지 않겠느냐. 가까이 오거라, "
"저.. 그것이 아니오라,"
"어허, 이리 오너라."
| 꼼지락 |
안녕하세요! 꾹밍이라고 합니다..처음이라 서툴다는게 느껴지게 해드리는거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많은 분이 봐주셨으면 해서 첫 편은 무료로 개방해야 했는데, 버벅거리다 실수했네요.. 재밋게 보셨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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