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군지정(戀君之情)
임(임금)에 대한 그리움과 변함없는 사랑
세계가 창조되어 사람들이 땅에 발을 들여놓기 시작함과 동시에 생겨났던 나라의 이름은 오사국(烏蛇國)이었다. 그것은 먹구렁이란 뜻을 담고 있었다. 하지만 500년의 세월이 지나니 더 이상 먹구렁이란 이름으로 계속해서 나라를 운영할 수 없게 되었다. 이름 탓인지 계속되는 흉년에 더 이상 백성들이 살아갈 수 없게 되어 난처하던 중 신녀의 신탁으로 인해 바뀐 이름이 이국이었다.
그로인해 세계엔 피바람이 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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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이 곳은 총 3개의 나라로 되어 있다.
그 중 내가 살고 있는 이 나라는 이국(彲國)으로 이무기의 나라란 뜻을 담고 있다. 그러한 뜻 답게 이무기를 섬기고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각 나라엔 나라를 직접 다스리는 황제와 그의 뒤에서 신탁을 받아 나라를 다스리는데 도움을 주는 신녀가 있다. 이 신녀는 현재 신녀의 자리에 있는 자에게 신기(神氣)가 사라지면 새롭게 간택 당하게 되는데 이때 신기가 사라진 신녀는 궐에서 내쫓기게 된다. 그리되면 받아주는 곳이 없어 사창가로 빠지는데 그곳마저도 잘 받아주지 않아 대부분의 신녀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고 전해지고 있다.
"오라버니..!! 오라버니!!!"
"......"
"저, 저를 버리지 말아 주세요!! 가기 싫어요!! 네?!!!"
"......"
"정말.. 정말 가기 싫어...!!!!"
어느 어린 소녀의 기억의 조각이다. 누군지는 모르겠다. 전생의 나인지, 아님 내가 신을 받기 전인지, 아님 아예 남인지조차 모르겠다. 이따금 찾아오는 기억의 조각들은 슬슬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는 듯 보였다. 버려진다는 참혹한 내용에 참았던 숨을 내어 쉬며 자리에서 일어나면 언제나처럼 현재 한 나라의 신녀인 나의 신분에 맞는 과분할 정도로 큰, 그만큼 지독히도 외로운 내 침소가 보인다.
꿈은 언제나 버려지며 시작했다. 그리고 버려지며 끝났다.
내가 되고 싶어서 된 신녀가 아닌지라 이 큰 침소에서 줄곧 자라온 외로움이 더해져 꿈에서 깨어나면 항상 식은땀과 함께였다. 그것은 벌써 3개월째 이어지고 있었다. 그 때문에 황제폐하도 곤욕이었다. 극심한 긴장상태에 신탁마저 제대로 받지 못 하였고 받더라도 잊는 것이 일쑤였다. 일상생활 중 멍하게 있는 시간이 많아지고 폐하의 말을 못 들을 때도 있었다. 이는 나라를 다스리는데 적어도 4할은 하는 신녀가 없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는 거였다.
"나는 괜찮습니다. 다만, 신녀님의 건강이 걱정됩니다."
황제폐하는 언제나 나를 먼저 걱정해주셨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공적인 말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폐하의 다정함 뒤에 숨은 잔인함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어스름한 창문 밖.
아직 새벽인 듯 보인다. 악몽으로 인해 무거워진 몸을 일으켜 책상 앞으로 가 앉았다. 서랍 속 성냥을 꺼내 등불을 밝히고 종이 하나를 펼쳤다.
자리를 찾아가던 기억의 조각들은 저잣거리에 어린 아이들이 가지고 놀던 퍼즐조각마냥 얽히고설켜 어느새 반 조금 못 미치게 맞춰져 있었다.
오늘 꾸었던 꿈을 펼친 종이에 차근히 적어 내려갔다. 모두 적고 온점을 찍은 그 순간, 창문 밖이 급격히 밝아지면서 그 큰 침소가 보였다가 어두워졌다. 창문 밖에서 흘러 들어온 빛이 다시 한 번 내 침소를 밝히고, 세 번째 밝힐 때 난 눈을 감았다. 머나먼 곳에서부터 들리는 시끄러운 소리가 감은 눈에 반해 예민해진 청각으로 들려왔다. 또다. 또 나 때문에 그들이 왔다. 곧 내 침소의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까마귀의 기습!! 신녀님, 대피하셔야 합니다!!"
까마귀의 기습. 이젠 지긋지긋할 정도로 자주 들은 그 말에 머리가 아파왔다. 아닌가, 나올 때까지 두드릴 것 같은 저 똑똑 소리 때문인가. 그나저나 오국(烏國)이 또 침입을 해 왔구나. 우리나라는 오국을 낮춰 부를 때 까마귀라 칭했다. 물론 오국에서도 우리를 낮춰 부를 때 뱀이라 칭했다. 새해 첫 날부터 오국의 침입이라니. 해도 해도 너무하다.
내 기억 상 이무기는 천 년째 되던 해, 여의주를 입에 문 채 하늘로 승천하여 용이 된다고 옛 선조들이 말했다.
오늘은 이국이 999년을 맞이하는 새해 첫 날이었다.
그래서 그런가, 오국의 병사들이 다른 때보다 더 많은 것 같다. 밖이, 유난히도 시끄럽다.
시끄럽게 두들기는 소리가 들리는 문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윽고 다시 좀 더 다급하게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눈을 뜨고 문을 여니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이국의 황제, 최승철이었다.
"뭐하고 계시는 겁니까?! 빨리 대피하라고 했잖습니까!!"
내 손목을 잡는 그의 손을 쳐버렸다. 그가 나를 내려다보았고 난 그런 그를 등지고 창문으로 걸어가 창문을 열어보았다. 오늘 밤까지만 해도 평화롭던 저잣거리가 붉게 물들어 있는 모습이 먼저 보였고 검은 갑옷을 입고 있는 오국의 병사들이 다음으로 눈에 보였다. 그 모습이 보기 싫어 눈을 감았다.
이게 꿈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이렇게 눈을 꼭 감았다 뜨면, 차라리 버려지던 그때로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딴 피비린내 나는 곳보다야, 백번이고, 천 번이고 버려지는 것이 나았다.
"신녀님 탓이 아닙니다."
곧 내 어깨가 강하게 잡혔고 당기는 힘 때문에 강제적으로 뒤로 돌았다. 이렇게 날 대하던 사람이 아니라 놀라 눈을 떠 그를 확인했다. 내 탓이 아니라 말하는 그의 눈에는 진심이 가득하다. 그렇지만 이것은 내 탓이다. 신녀주제에 사사로운 감정에 휘말려, 그깟 외로움이란 감정에 휘말려버려 신탁을 받지 못했다. 그 신탁이었다면 오국의 침입에 미리 대비하여 이렇게까지 큰 피해를 입지 않았을 거다. 분명 이렇게 격한 피비린내를 맡지 않았을 거였다.
"제발, 나도 더 이상은 봐줄 수가 없어, 그러니까 제발 좀..!"
입술을 꽉 깨물고 말하는 그는 누가 봐도 화가 많이 나 보였다. 난 그런 그에게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이젠, 누가 진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꿈속의 내가 진짜인지, 아님 지금 이렇게 서있는 내가 진짜인지."
"...신녀님."
"이제 진실을 말해주세요, 황제폐하."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프롤로그라 아직 어지럽네요.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