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어떤 길을 선택하는 옳은 길이 될것이니라.
이 세상에 잘못된 길은 없고, 잘못 든 길만 있을 뿐. 깨닫기만 하면 언제든지 돌아올 수 있다는 걸.
동경소년 마지막 이야기
나는 그 후 택운씨의 제안으로 인해 검정고시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흔들리는 마음때문에 집중을 하지 못했지만, 곧 그런 생각들도 스쳐가듯 지나가버렸다.
나는 앞머리를 길러 뒤로 넘겨버렸고, 길어졌던 손톱도 다듬어서 동그랗게 잘랐다. 하지 않았던 공부도 하기 시작했다.
방 안에 있던 시계에 건전지를 넣어 짹각짹각 분침이 돌아가기 시작했고, 책장에는 책들이 쌓이기 시작했다,
모두들 제가 할 구실을 찾아가고 있었다.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게 있다면 이재환이였다.
내가 저번에 한 번 같이 검정고시를 준비하는게 어떻겠냐고 묻자 여태까지는 볼 수 없었던 박장대소 웃음을 내뱉었다.
"나 이래 봬도 전직 의사거든?"
으하하하
"우리 애기가 나 걱정해 주는거야?"
그가 처음 만났던 것 처럼 웃으면서 내게 물었다. 자수한 상혁이를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혹시 상혁이가 이 사람의 마음을 바꿔놓지는 않았을까
"내가 말했잖아. 이런 일은 나같은 사람이 하는거라고. 상혁이는 원래 가야 할 길을 간 것 뿐이야."
나는 내 갈 길 가는거고.
"나는 변하지 않을꺼야. 그니까 걱정 안해도 돼"
나는 이 사람에게서 무슨 대답을 듣고 싶었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뭐 이정도 대답이면 충분히 걱정안해도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언제나 자신의 앞 날은 확고했다. 내가 나선다고 그의 길을 바꿀 수는 없었던 것 같다.
내가 그에게 해 줄 수 있는 말은
"이재환씨, 다음에 저랑 저번에 갔던 카페, 같이 또 가요."
이정도 였다.
그는 내게 그래, 또 가자 라는 말을 보답으로 해주었다.
초반에는 티비만 틀면 상혁이가 나와 볼 수가 없었다. 여기저기 지나가는 사람들 입에서도 나오는 그의 이름 때문에 괜시리 욱해 싸우는 일도 생겼다.
그 때마다 정택운씨가 옆에서 달래주고, 말해줬다. 상혁이가 이런 모습보면 슬퍼할 거라고. 아마 인생에서 정택운씨가 내게 제일 많이 봉사를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일도, 티비에서도, 사람들 기억 속에서도 그의 이름의 유통기한은 한 달 정도였다.
면회를 가봤던 적도 있다. 가서 신청을 했지만, 거절을 당해 집으로 돌아왔다.
몇일 뒤 집으로 편지 한 통이 날라왔다. 상혁이가 쓴 편지였다.
너가 보기 싫어서 면회를 거절 한게 아니라고. 한 번 보면 계속 보고싶고, 돌아가고 싶어지게 될까봐 만나지 않은 거라고.
나는 잘 있으니, 밥먹고 살이나 찌우라고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나는 지금 웃으며 그가 집에 돌아올 날을 기다릴 수 있게 됬다.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다. 자신이 거의 일생을 바쳐서 해온 일을 이렇게 무마해버리고 떠나버린 걸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상혁이가 얼마나 고달펐는지. 내가 그걸 깨닫는데 오래걸린건 아마 부모님의 존재를 모르고 살아서가 아닐까.
아니면 나도 이제 소중한 사람이 생겨서 일지도.
검정고시를 공부하면서 '흐놀다'라는 말을 알게 되었다.
'무엇인가를 몹시 그리면서 동경하다.'
왠지 상혁이에게 보여주고 싶은 말이였다.
나는 그 방 책장에 꽃힌 다른 책들도 읽기 시작했다. 거의 대부분 만화책이였지만, 그 중 추리 소설도 많았다.
'마지막 인사'라는 책이 있었다. 책 가운데 부분에서 조금 지난 페이지에 나뭇잎이 꽂혀 있었다.
거기에는 누가 존 H 왓슨 박사에게 한 말이 적혀 있었다.
"이 사람아! 시대는 바뀌어도 자네만은 변함이 없군. 그래도 동풍은 불어오고 그것은 영국에 한 번도 분 적이 없는 바람일세. 그것은 차갑고 모진 바람일 거야. 여보게, 많은 사람들이 그 강풍 앞에 시들어 버릴지도 모르네. 그렇지만 그것은 신이 보낸 바람이고, 그래서 폭풍이 걷히면 햇살 속에 더 강하고 순결하고 나은 땅이 드러날 걸세.
왓슨, 시동 걸게. 떠날 시간이 됐네."
그리고 그 책 뒤에는 한상혁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나는 지금 우리 집에 초인종이 울리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정택운씨가 데릴러 간다고 나간지 거의 두시간이 지났는데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이제 곧 5시가 지나갈 것이다.
내 머리속에는 누군가가 방방 뛰어다니고 있는 것 처럼 정신 사나웠다. 괜히 발을 구르게 되고 정신을 차려보면 손톱을 물어 뜯고 있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거울을 보며 처음으로 할 말을 수십번 연습했지만 전부 어색해서 때려 치웠다.
조용했던 집 안에서 초인종 소리가 제아의 종 소리처럼 울리기 시작했다. 내가 거실에서 현관문 앞까지 갈 때 주마등처럼 전에 있었던 일들이 내 머리속에서 한 줄로 지나갔다.
처음 만났던 그 때부터 마지막 그의 웃음까지.
나는 머뭇거리다가 현관문 앞에서 조심스럽게 문고리를 돌렸다.
내가 아닌 밖에 서있는 사람에 의해 문이 열렸다.
뒤에 지는 태양때문에 노을이 져서 눈이 시렸지만 그 빛을 한상혁이 가리고 서 있었다. 그래서 난 바로 그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다.
분면 방금 전까지만 해도 하고 싶은 말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는데
아무 말도 내뱉지 못하고, 눈에서 눈물만 흐르기 시작했다.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가 나를 안아버리자 처음 안기는 그의 품이 너무 따뜻하고 포근해서 아기처럼 엉엉 울었다.
그는 내 엉망인 얼굴을 보고 볼에 흐르는 눈물을 손으로 닦아 주었다.
김별빛, 다녀왔어
어서와 상혁아.
우리들은 아직 겪어보지 못한 행복을 동경하고 있었다.
이 텅 빈 도시에서 홀로 등을 꼿꼿이 세우고 늠름하게 빛을 발하는 그 풍정에서 강인함과 아름다움을 느끼는 거라고 생각했다.
어딘가에 휩쓸리고 패거리를 만들고, 친해졌다 배신하며 서로 속고 속이며 넘어가는 우리는 그 고독한 아름다움에 저절로 끌려드는 거라고.
외로움을 견디지 못해 계속해서 빙글빙글 돌아버리는 우리가 그것을 동경하는 것이라고.
-도쿄타워 (릴리 프링키 저) 中-
당신이 뭔가를 잘못해서, 혹은 사랑 받을 자격이 없어서 학대를 받은 건 아니다.
당신은 충분히 사랑 받을 자격이 있고,
사랑 받아 마땅할 만큼 눈부시게 빛나고,
사랑스러운 사람이었다고..
그러니까 잊으라고.
이제부터는 사랑 받고 살라고..
드라마 '킬미힐미' 中
THE END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