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민의 집착에서 벗어나고싶은 너봉 X 그저 사랑일뿐이라는 석민
'지이잉 지이잉'
"여보세요."
' 칠봉이 지금 뭐 해요?'
"나 티비 보고 있었어."
'아 티비 보고 있었어?'
"응 저번 주에 못 본 드라마 재방송하길래 그거 보는 중이었어.'
'아.. 저번 주에 못 본 드라마?
칠봉이가 드라마를 좋아했구나.'
"시작한지는 꽤 됐는데 본지는 나도 얼마 안 됐어."
'아 그래?'
"응 지금 진짜 중요한 장면 나오거든? 내가 끝나고 다시 전화할게."
'잠깐만.'
"어?"
' 칠봉아 넌 내가 바보 같아?'
"무슨 소리야.. 왜 그래 갑자기."
'왜 그러냐고?
그건 네가 더 잘 알 텐데.'
"뭐.. 뭐가."
'괜찮으니까 사실대로 말해보세요.'
"...."
'착하지 우리 칠봉이.'
"...."
'오빠 힘들게 하지 말고 어서 말해보세요.'
"그니까 그게.. 다른게 아니라.."
'응.'
"친구가 만나자 그래서.."
'그래서? 어디 밖에라도 나갔어?'
"잠깐 나왔어 잠깐.."
'아 밖에 잠깐 나갔어?'
"응.."
'아.. 그랬구나.'
"...."
'시발 누구 맘대로 나가래.
좆같은 년 거기서 딱 기다려'
-
"어 칠봉아!"
저 멀리 익숙한 모습을 한 사람이 손을 흔들며 걸어온다.
가까이 다가올수록 올라가는 그의 입꼬리.
그는 내 이름을 불렀고 난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칠봉이 남자친구 이석민이라고 합니다.
지나가는 길에 칠봉이가 이 근처에 있다고 해서요.
괜히 방해한 건 아닌지 모르겠네요."
당연하듯이 내 옆에 앉은 그는 넉살 좋은 웃음과 함께 인사를 건넸다.
"아유 괜찮아요.
근데 칠봉이 남자친구 있지는 몰랐네?"
"아 칠봉이가 말 안 했어요?"
순간 그의 표정은 일그러졌고 내 머리카락을 쓰다듬던 손길은 천천히 밑으로 내려와 내 어깨를 꽉 쥐었다.
"네, 눈치도 못 챘어요.
왜 말 안 했어 이렇게 잘생긴 남자친구 있다고!"
"천천히 말하려 했.. 아!"
무언가 나를 꼬집는 듯한 느낌이 들어 고개를 내렸을 때 그가 내 손을 꼬집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게 무슨 짓이냐는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자 다시 한번 내 손을 꼬집는 그였다.
앞에 앉은 친구에 향해있던 시선이 내 쪽을 향했고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왜 그래? 어디 아파?"
역겨운 새끼.
-
괜찮다는 내 말에도 '열이 좀 있는 것 같은데.''손은 또 왜 이렇게 차.'라며 기어이 나를 데리고 나왔다.
친구에게서 나를 떨어뜨린 순간부터 그의 차를 타고 있는 이 순간까지 '달려서 도망갈까'라는 생각을 한 백 번은 한 것 같다.
하지만 결코 가능할리 없다는 것은 나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지 않은가.
"많이 아팠지."
한 손으론 운전대를, 다른 한 손으론 내 손을 잡아 연거푸 자신의 입술에 갖다 대었다.
"그러게 말 좀 듣지."
-
오늘따라 막히지 않는 차들이 왜 이렇게 원망스러운지.
내 바람과는 다르게 생각보다 일찍 도착하였다.
"자 다 왔다."
차에서 내리는 짧은 순간마저 내가 못 미더웠던 건지 문을 열려는 내 손을 막은 채 자신이 문을 열어줄 때까지 기다리라 했다.
내가 내리기도 전에 그는 내 손을 잡았고 나 역시 그의 손을 잡는 수밖에 없었다.
엘리베이터에 탄 우리 둘 사이엔 어색한 침묵이 이어졌다.
그의 생각을 도통 알 수 없는 나는 점점 불안해져갔다.
-
"밥 먼저 먹을까?"
예상치 못한 말에 당황해 올려다보자 눈이 휘어지도록 웃으며 그가 말했다.
"나 배고파.
저녁은 내가 준비할 테니까 칠봉이는 씻고 나오기만 하세요."
무슨 꿍꿍이가 있길래 저렇게 활짝 웃는 걸까.
-
샤워를 마치고 나오자 어서 앉으라며 나를 재촉하는 그였다.
"빨리 앉아. 음식 다 식겠다."
도저히 음식을 삼킬 기분이 아니라 먹는 둥 마는 둥하는 날 보더니 그가 말했다.
"왜? 먹기 싫어?"
"아니 그건 아니고.."
"그럼 왜 안 먹어?"
"그냥 좀.. 입맛이 없네.."
'쨍그랑'
양손으로 식탁을 치며 일어선 그때문에 물컵이 깨지고 말았다.
"다시 말해봐."
"서...석민아..."
"다시 말해보라 했다."
"... 입맛이 없다고.."
"하.. 넌 시발 내가 만만하냐?"
"그게 아니라.."
"그게 아니면 뭐. 뭔데?
아 존나 좆같네 진짜."
그는 머리를 넘기더니 소매를 걷어올렸다.
"너 내가 요즘 오냐오냐해주니까 눈에 뵈는 게 없나 보다?"
"..."
"겁도 없이 함부로 막 나가고 그것도 모자라서 거짓말까지 해?
내가 시발 잘 참아줬잖아. 밥까지 차려주잖아.
근데 네가 뭔데 먹녜 마녜야 어?"
그는 화를 참으려는 듯 크게 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이는 얼마 가지 못했고 다시 죽일듯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너, 너 내가 나가지 말라고 몇 번이나 말했어.
시발 놈이든 년이든 다 만나지 말라고 했잖아. 어?
근데 왜 말을 안 듣는데!!
내가 존나 만만하니까 그러는 거지?
아니면 두 다리 멀쩡하니 달려있어서 그런 거냐?
아 그런 건가보네. 너 거기 가만히 있어."
한참이나 소리 지르던 그가 방을 향해 걸어갔다.
잠시 후 나오는 그의 손에 들린 것은 아주 기다란 몽둥이였다.
그때까지 꺽꺽 울기만 하던 나였지만 그를 보자마자 용서를 빌수 밖에 없었다.
"석민아 내가 잘못했어.
그것 좀 놓고 말해 응?"
" 닥쳐 오늘 너 죽고 나 죽자.
차라리 그게 더 속 편하겠다."
나를 위협하려는 듯, 그는 여 저기를 찍고 던지기를 반복하였다.
정도가 세질수록 나는 더 처참할 정도로 빌었고 온 얼굴이 눈물, 콧물 범벅이 되었다.
온 집안을 난장판으로 만들던 그가 내 얼굴을 보더니 이쪽으로 다가왔다.
"왜 울어. 내가 무서워서 그래?"
하염없이 흐르는 내 눈물을 닦으며 이제까지와는 사뭇 다르게 그가 물었다.
"근데 시발 네가 날 무서워하면 안 되지.
이렇게 만든 게 누군데. 어?"
내 볼에 머무르던 그의 손이 다시 내 볼을 꽉 쥐었다.
"칠봉아 난 너 사랑해.
다 널 사랑하고 아끼기 때문에 이러는 거야.
남들과 표현하는 방식이 약간 다른 거 뿐이라고.
너도 나 사랑하지?
우리 칠봉이도 나 사랑하는 거 맞지?"
"...."
"대답."
"으.. 응 나도 석민이 사랑하지.."
"그래 그래야지."
순간 그의 입술과 내 입술이 맞다았다.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뒤로 빼면 뺄수록 그는 더 적극적으로 다가왔다.
어떻게든 입을 벌리지 않으려고 애쓰자 그는 아래 입술을 살짝 깨물었고 '아'소리와 함께 그는 내게로 밀려왔다.
얼마나 지났을까 내 쪽에 있던 손이 그 자신의 목을 향했다.
그는 넥타이를 풀었고 그 넥타이는 내 두 손을 감쌌다.
입술이 떨어짐과 동시에 내 시선은 넥타이를 따랐고 그는 나를 바라보았다.
"사랑해 칠봉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