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기초, 소심한 성격 탓에 주변에 친구도 별로 없고 그렇다고 말도 그다지 잘하는 편이 아닌 그러니까 저것도 아니고 이것도 아니고 뭣도 아닌 우유부단한 성격을 지닌 승우가 학교생활에 적응 할 리 만무했다. 소외를 당하는 건 그냥 일상이었고 그냥 학교에서 공기처럼 묻혀가는 존재를 자처해왔기 때문에 이번 해도 그냥 무난하겠거니와 하고 생각 없이 고등학교로 진학한 승우는 몇 달 후 제 생활의 위태로움을 느꼈다. 밴드부에 들어오기를 바라지도 않았는데 무턱대고 캐스팅 해버린 밴드부 보컬 겸 기타 선배 때문에 밴드부를 하게 되었고 한 동안 놓고 있던 기타마저 들어야했다. 그리고 느낀것은 이 밴드부 보컬은 미쳤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느끼면 무엇하나 밴드부를 박차고 나갈 만큼의 성격이 안되는 것을. 그저 참고 따라갈 수 밖에.
“이거 가지고 있어”
“이게 뭐에요?”
“보면 몰라? 외국 돈”
아 네네. 잘 알겠네요. 대충 고개를 끄덕인 승우가 준영의 표정을 살폈다. 준영의 표정이 일그러지기라도 한다면 제 수명은 다한 것이리라. 앞서 말했듯이 이 밴드부의 보컬 겸 기타는 정준영이다. 그리고 정준영은 똘끼 충만한 고등학교 3학년 재학생이다. 이것으로 모든 것은 설명된다. 그래 여기가 감히 어디라고 나대겠는가.
봄은 멈춰져 있다
01
밴드부에 들어가고 난 뒤, 모든 것은 달라졌다. 학교 생활하며, 친구 관계 그리고 '나' 라는 존재의 무게감 등등. 거의 모든 것이라 해도 될 만큼 많은 것이 바뀐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딱 하나 인정할 수 없지만 바뀐 것이 있다. 나는 정준영을 좋아한다. 그 감정을 주체 할 수 없을 때도 많다. 무엇보다 그 감정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 사실 하나로 나의 모든 것은 달라졌다.
그리고 또 하나, 인정할 수 없는 것은
“로이, 무슨 우유?”
“바나나”
“어우”
“너 또 그 생각이지? 작작해라”
그의 감정. 정준영의 행동은 확실히 눈에 띄었다. 아니 띄고도 모자랄 정도였다. 그런데 바보같은 김상우는 그걸 눈치 채지 못한다. 나는 이 모든 감정들을 받아낼 수 없다. 김상우의 잔소리를 들으며 나에게로 고개를 돌린 정준영이 물어온다. 무슨 우유? 하고. 나는 멍하니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는게 들킬세라 잽싸게 고개를 돌린다. 그리고는 조용히 말한다. 같은 우유로 사요 하고. 이런 나도 참 미저리다.
“승우야 미안한데 니가 우유 좀 사와”
“…알겠어요”
김상우가 내게 5000원 짜리 지폐를 쥐어주며 말했다. 나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애초부터 밴드부라는 자체가 나에게 안 어울리는 존재였다. 남앞에 서는 것도 아니 말조차도 하나 제대로 못하는 내가 밴드부는 무슨 밴드부냐. 그냥 밴드부라는 사실에 웃음이 픽 하고 나왔다. 바닥에 있던 시선을 떼고 저 멀리 보이는 매점으로 옮겼다. 벌써부터 시끄러운 아이들의 목소리가 귓가를 웅웅하고 울렸다.
매점에 들어서자 마자 많은 인파들이 눈에 확 들어온다. 겨우겨우 몸을 옮겨 바나나 우유 5개를 집는다. 손에 들기도 버거울 정도였다. 양 손에 우유를 잡고 낑낑대며 시계를 올려다 보니 아침 자습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참, 벌써부터 눈 앞에 캄캄하다.
“아 미친놈, 승우한테 그걸 시켜?”
“왜 안되냐?”
“걔 성격 모르냐? 지 혼자서 끙끙대고 있을거다”
익숙한 목소리들이 들린다. 그리고 그 목소리들이 점점 가까워진다. 고개를 홱 돌려 뒤를 바라보니 정준영과 김상우가 보인다.
“승우야 나한테 말하지”
“아….”
“로이는 내가 혼내줄게”
정준영 손이 내 머리위에 올라갔다. 그리고는 스윽스윽 두어번 쓰다듬더니 곧 떨어진다. 그리고는 몸을 돌려 옆에 있는 김상우의 몸을 아프지 않게 때린다. 도대체 왜 설레는건지 모르겠다.
*
수업시간 내내 어떤 내용을 배웠는지도 모르겠다. 그냥 아무 생각도 없이 1교시부터 지금까지 쭉 앉아있었다. 사실 밥이 코로 넘어가는지 입으로 넘어가는지 모르겠다. 그저 달그락 거리는 숟가락 소리만 기계적으로 들릴 뿐이다. 그러다가 밥도 먹기 싫어져서 잔반 통에 대충 버린 뒤 식판을 정리하고 책상 위로 엎어졌다. 그러자 옆에 있던 짝이 말을 걸어 온다.
너 밴드부 안가? 몰라.
그냥 다 모르겠다. 자꾸 옆에서 들려오는 질문도 듣기 싫어 고개를 창가 쪽으로 돌리니 햇빛이 얼굴을 비춘다. ……되는일도 없다 이젠. 그렇게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엎드려 있는데 이마로 차가운 것이 닿으며 몸이 일으켜진다. 무슨일인가 싶어 감았던 눈을 서서히 뜨는데 정준영이 있다. 진짜 짜증난다. 뭔지는 모르겠는데 다 짜증난다. 무슨 중2병에 걸린 중딩들도 아닌데, 알 수가 없다.
“승우야”
“…네”
“아파?”
소리나게 책상 위에 바나나 우유를 올려놓은 정준영이 말한다. 아픈가? 이젠 내가 아픈건지 슬픈건지 아니면 괜히 짜증나는 건지도 제대로 구분이 안갔다.
애들이 다들 네 걱정하고 있어 어디 아픈거 아니냐고. 그래요? 너 왠만하면 연습 잘 안빠지니까…오늘은 교실에서 쉴래? 그럴게요.
대화가 끝나고 나는 다시 책상 위에 엎드렸다.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는 않았다. 정준영과 이상우의 관계. 그리고 정준영과 나의 관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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