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flection
도망자
사랑받는 사람에게서 사랑하는 사람과 도망친다
언제쯤 잠이 들었었나. 분명 소파에 앉아있었는데 어느새 나는 침대위에 누워있었다. 눈을 떴을 때 창 밖은 어두웠다. 어둠이 삼킨 세상은 희미하고 미화된 피로한 불빛들로 꾸며져있었다. 헝크러진 머리를 정돈해 헐렁히 쥐어 묶고 무거운 문을 열면 보이는 방의 외관. 이 방은 두 개로 나뉘어져있고, 내가 지내는 방은 숨겨져있다. 이 여섯 남자가 지내는 방이라는 속임수 하나로. 아 깼네. 나를 깨우러 오던 길이었는지 천천히 몸을 일으키던 김석진은 나지막히 말했다. 그리고 집중되는 이목. 보스가 찾지도 않았는데 왠일이야. 김태형의 시시콜콜한 질문에는 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태연히 늘어진 윙체어에 앉아 노닥거리는 여섯을 둘러봤다.
"일들...하고 왔나봐?"
무덤덤하게 물으면 손에서 쥔 게임기를 놓지 않고 있던 전정국이 고개를 들며 말한다. 어떻게 알았냐? 그의 질문에 산만하던 나머지까지 흥미롭다는 듯 날 보았다. 말해봤자 인상 찌푸릴텐데. 있어, 그런게. 피곤하니까. 굳이 긁어 부스럼 낼 필요 없으니 입을 열지 않았다. 코를 찔러오는 미미한 철의 냄새. 이제는 머릿속을 가득 메우고도 남을 탄환의 거북한 냄새와 피에서 묘하게 풍겨오는 철 냄새. 일을 끝내고 돌아온 그들에게는 늘 그런 냄새가 난다. 씻고 옷을 갈아입고 태연히 책을 읽고 있어도 말이다. 그리고 구석에 앉아 책을 집어드는데 옆에 있던 박지민이 얼굴을 가린 내 책을 검지로 내리며 눈을 마주했다.
"난 알 것 같은데."
"뭘?"
내 되물움에 박지민은 말없이 입꼬리를 말아올리며 제 소매를 내 코밑에 두었다. 진동하는 미미한 냄새들. 이 냄새들 때문이잖아. 장난스러운 말투로 말하는 그는 다시 책으로 내 시야를 가린다. 그리고 천천히 종이곁들 너머로 보이던 박지민은 이 아이러니한 상황에 맞지 않게도 서글프게 웃고 있었다. 마치 7년을 함께 해온 이 삶이 후회 된다는 듯. 숨막히는 정적이 계속될때, 가운데 테이블에 놓여져 있던 투박한 전화기가 시끄럽게 울렸다. 다들 굳이 전화를 받지 않았다.
"가야겠네."
모두가 조용하던 가운데 김석진이 말했다. 다들 슬슬 손에 쥐고 있던 것을 놓고 바라봤다. 그리고 천천히 열리는 문. 김남준은 둘러싸인 내 옆에서 말한다. 보스앞에선 웃어라. 그런 딱딱한 얼굴 집어치우고. 웃기는 소리. 웃음은 아무때나 나오는 줄 아는걸까. 여섯에게 사방으로 둘러싸여 도망갈 틈도 없는 복도를 걸어 도달한 방 문을 열자 의외의 인물이 보였다.
"......"
그녀는 민윤기와 곧장이라도 침대 위로 쓰러질 듯한 위태롭게 농염한 표정으로 벽에 붙어있었다. 하지만 그는.
"아 왔어? 저녁 먹으러 가자. 오늘은 네가 좋아하는..."
내 팔을 붙드려는 순간 손에서 비껴가자 민윤기는 늘 그랬듯 미간을 좁히고는 뭐냐는 듯 두 눈을 마주했다.
"일이 있었으면 제대로 끝내고 가. 그런 얼굴 마주 보고 먹으면 체할것 같으니까."
"그래 알겠어."
그는 내 말에 다시 뒤돌아 그녀에게 향했다. 미세하게 쥐어진 그녀의 주먹을 볼수록 고소하면서도 한편으론 죄책감이 들었다. 숭고한 사랑을 하고자 하는 그녀를 가로막은 건 나다. 남들은 그녀를 훼방꾼이라 하겠지만, 아니었다.
"......"
"내가 지금 바쁘니 간단하게 말해주지."
그가 마주 보고 있는 그녀의 얼굴은 1분 후를 꿰뚫어찬듯 여유롭고도 서글픈 얼굴이었다.
"합법적으로 살기 위해 당신들이랑 손 잡을 생각 없어. 무엇 보다 결혼은 안돼. 왜냐면...나한테는 저 아이가 있거든.
그러니까, 합병 방식이 고리타분한 결혼이 아니라면 다시 생각해보지."
"......"
차갑기 그지 없는 말이었다. 내가 저 여자라면. 문전박대하는 남자를 매일같이 찾아오는 김세나라면 어땠을까. 당장 민윤기의 뺨이라도 때리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나 그여자는 다르다. 김세나는 다르다.
"좋아요. 우리 합병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아 거절하는 거라면 어쩔 수 없는 거겠죠. 하지만,방식은 바꾸지 않을거에요.
내 목표는 당신과의 결혼이니까. 이만큼 안전한 결속도 없잖아요?"
타당한 말로 포장된 그녀의 고백에 민윤기는 헛웃음을 치더니 나를 이끌고 문 밖으로 나섰다. 김세나는 내게 부질 없는 삶의 의미를 부여한 이 남자를 무엇보다 사랑했다. 그런 모욕도 견딜 수 있을 만큼. 민윤기의 방으로 가 음식이 나오는 동안 나와 민윤기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의미없는 정적이 계속되고, 음식이 나오고 저녁을 먹는 내내 포크와 나이프가 접시에 부딪히는 소리만 그윽했다. 그렇게 몇분이 흘렀나, 접시 안의 내용물이 비워질 때 즈음. 내 이름 석자를 다정하게 부르는 그에 놀라 두 어깨를 흠칫 떨며 고개를 올리면 반쯤 넋이 나간 민윤기가 나지막히 불러왔다.
"너도..너도 그렇겠지. 내가 이 결혼, 하지 않았으면 하겠지."
"응."
순간 화색이 돌아 나를 마주하는 그를 향해 잠시 망설이다 덧붙였다.
"아직은."
"...아직은이라니."
마른 침을 삼켰다. 저 손에 쥐어진 것 중 어느 게 덜 아프려나? 진짜 던질까?
"너를 사랑해주는 것도 좋지만, 너가 사랑하기도 하는 여자랑 결혼해. 이왕이면...김세나 그 여자가 좋고."
그 말에 잠시간의 정적이 찾아왔다. 그리고 의외로 들려오지 않는 괴음. 대신 들려오는 허탈한 웃음소리. 나가봐. 내가 지금 너한테 이 칼 던지기 전에 그냥 나가달라고. 민윤기의 억누른 듯한 목소리에 천천히 일어서서 나와 대열을 이루는 여섯과 방을 나섰다. 그리고 잠시후에, 내가 나간 그 방에서 그는 손에 집히는 것들을 모조리 내던져 깨부수며 울부짖었다. 그리고 점점 그 소리들이 멀어져 갈 무렵, 땅밑만 쳐다보던 전정국이 중얼거렸다. 내일도 미친듯이 뛰어다녀야 겠네. 누구 잡으러. 그 말에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나를 사방으로 둘러싸 대열을 이룬 이 여섯은 조용했다.
"박지민."
"왜 아가씨?"
"내일은 칼 안쓸게."
"...그래."
민윤기에게서 필사적으로 도망칠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정 원한다면 목숨을 끊어 잡지 못하게 하면 됐지만 그러지 못했다. 이들에게 온전한 집으로 붙들려 오는 것이. 내 숨통을 죄여오면서도 나에게 사랑을 갈구하는 그에게 붙잡히는 것이. 온몸이 떨리도록 싫으면서도 나는 몸에 익숙해져 있었다. 내 도망은 더 이상 온전히 벗어나기 위한 수단이 아니었다. 쓸데없이 짙어져가는 정으로 그들을 내 곁에 붙들어 두고 싶은 수단 중 하나가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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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분량 참 짧네요ㅠㅠ 여주가 방탄중 누군가와 묘한 감정이 있는걸 암시한 듯한 마지막 문단이었어요. 과연 누굴까요 암호닉 신청하실 분들은 공지 봐주세요!! 열꽃 도망자로 수정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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