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하루가 길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지루하지는 않았다. 아마 아침에 받은 연락처를 어떻게 해야 할 지 고민하고 있었던 것 같다. “야 김탄소~~ 매점가자! 오늘 저녁 쓰레기.” “어..? 어.” 이번 해에 처음 생긴 매점은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복잡했다. 그리고 시끄러웠다. “되게 시끄럽네. 여기 앉아. 라면 시켜놨어.” 매점에 놓여진 식탁은 좁고 길어서 사람들이 옹기종기 붙어 앉게 만들었고 덕분에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일행인 지 구분이 가지 않는 모양새가 되어 버렸다. 한적해진 식탁 하나를 겨우 잡아 친구와 앉았는데, 갑자기 여자 세명이 우리 옆에 바짝 당겨 앉더니 햄버거 포장을 뜯고 있었다. 덕분에 좁아진 틈 사이로 핸드폰을 꺼내 게임으로 무료한 시간을 달래려던 차에, 옆에 앉은 세명의 목소리가 너무 거슬린다. 들으려고 들은 게 아니라 들리는 느낌.. “야 봤어? 오늘 세모오빠!” “아니 못봤어ㅜㅜ 언제봤어?” “나? 운동장에서 밥먹고 나오다가!! 완전 잘생겼어!” “인사하면 받아준다면서??” “응 했지~ 그냥 웃고 가더라ㅜㅜ착해ㅠㅠㅠㅠ” “아 너무 귀여워ㅜㅜㅜ!” “여자친구 있나?” “깨진지 좀 됐대.” “그래? 야 근데 세모오빠 이름이 뭐야?” “나도 잘 모르겠어…만날때마다 얼굴만 쳐다보니까….이름중에 ‘정’ 자가 들어가는 건 확실한데.” “정환, 정현, 정윤….많잖아…아 이름이 뭐지?” “암튼 중요한 건 세모오빠가 잘생겼다는 거야.” “다음에 만나면 번호물어보자!” 좋아하는 아이돌 얘기라도 하는 듯 종알대며 햄버거를 입에 넣는다. 나와 친구는 시끄럽다는 눈치를 계속 줬지만 누구하나 신경쓰지 않는다. 그저 자신들의 이야기에 취해 있을 뿐이다. 때마침 나온 라면 덕에 신경을 덜 쓸 수 있었지만 끝도없이 이어지는 수다에 진이 빠진다. 얼른 고개를 숙이고 라면에만 집중하려는데, 갑자기 매점 전체가 조용해지더니 더 시끄러워지고 매점 안 사람들의 시선이 한군데로 모인다. 무슨일인가 뒤를 돌아보면, 방금 운동을 마치고 왔는지 볼이 발그레해진 그, 전정국과 그의 친구들이 보인다. 옆에있던 햄버거 3인방은 세모오빠라며 뛰쳐나간 지 오래다. 또 멋있다느니 잘생겼다느니 하는 말이 많다. 2학년 선배들은 남자고 여자고 할것없이 어 전정국이다 라며 아는척 하기에 바빴고, 갑자기 관심을 한몸에 받게 된 그는 자신에게 한마디씩 걸어오는 사람들이 살짝 귀찮았는지 한발짝 뒤로 물러선다. 흰 체육복의 뒷면이 땀에 젖어서인지 등이 약하게 비친다. 그런 그의 뒷모습을 흐뭇하게 쳐다보고 있는 여인네들도 두어명 있었다. “와 진짜 나라고 연예인이네 저오빠.” 라면을 먹다말고 흘리듯이 말을 뱉는 친구의 말에 놀라 저 오빠 알아? 라고 물어봤다. 3살 터울의 오빠를 둔 내 친구는, 자신의 오빠가 다녔을 때도 유명했다고 한다. 팔방미남으로. 노래면 노래, 공부면 공부, 인성이면 인성으로 자자하게 소문 나 있어 선생님은 물론 학생들도 좋아하는 나라고 연예인이란다. “여자한테 그렇게 철벽이 심하다던데.” “그럼 여자친구 없었어?” “에이 여자친구 있는거랑 철벽남이랑은 다른거지.” “그래?” 또 궁금해진다. 여자친구는 있는데 엄청난 철벽남? 그런데 아까 버스에서 번호는 왜 준거지? ‘ “여자친구 있나?” “깨진지 좀 됐대.” ‘ 아 방금 대화에서 깨졌다고 안했나..? “여자친구.” “응?” “깨진지 좀 됐대.” “어? 저오빠??” “아까 들었어.” “아..그래? 별걸 다 주워듣네 너 ㅋㅋㅋㅋ” 별걸 다 주워듣냐고 농담조로 말하고 끝나긴 했지만 또렷하게 기억난다. 나는 추워서 몸을 웅크리고 있었고, 까만 핸드폰 케이스를 만지작거리며 라면을 기다리고 있었다. 포니테일로 머리를 묶은 한 아이가 여자친구가 있냐고 물었고, 그 맞은편에 있는 아이가 없다는 식으로 얘기를 했다는 거. 머릿속에 도장을 찍은 듯이 선명하다. 얘기를 듣는 동안에 왠지 모르게 나와 연관 된 얘기를 하는 것 같았고 그 얘기를 더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름 중에 ‘정’자가 들어간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떠오르는 느낌까지 받았다. 혹시,혹시 하는 마음이 역시 로 바뀌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재미난 구경거리도 했고 뱃속도 채웠다. 양치를 하고 돌아가려는 찰나에 머리끈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두시간이나 되는 야자시간 동안에 머리를 묶지 않는다면 거슬려서 공부에 온전히 집중할 수 없을 것 같아 매점으로 뛰어갔다. “안녕히 계세요.” 매점에서 나와 1학년 건물로 올라가는 복도를 걷다, 과학실 앞에 서 있는 그를 보게 되었다. 아 어쩌지? 하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다.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앞을 지나가면 되는 것을 몸이 자꾸 돌아가려고 한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 채 엉거주춤 거리다보니 인기척이 느껴졌나 보다. 고개를 돌려 내가 있는 쪽을 쳐다본다. “아..안녕하세요.” 별안간 복도를 울리는 내 목소리가 미안해 질 정도로 아는 척을 하지 않는다. 그럴거면 왜 쳐다보고 있었는 지도 모를 일이지만 두꺼운 과학책을 품에 안고 벽에 기대 과학실 문을 한참동안 쳐다본다. 실망감에 상처받은 눈빛으로 그를 쳐다봤고 다시한번 눈이 마주친다. 그러자 그가 나를 쳐다보며 입을 연다. “어 아까 등교하다가 번호 물어보신 분 맞으시죠?” “아 맞는데요.” “사실 동아리 회장이 제가 아니라 제 친구거든요. 저번에 바로 옆에 있어서 헷갈리셨나 봐요. 제 핸드폰으로 연락주시면 친구번호 문자로 보내 드릴게요.” “아…아 네..” 내가 후배임을 아는데도 불구하고 존댓말까지 쓰고 꾸벅 고개까지 숙인다. 예의가 바르긴 한가보다. 더 고개를 숙이고 다시 교실로 올라간다. 빨개진 볼과 인중에 살짝 맺힌 땀을 닦았다. 아… 또 금사빠 시작이구나. 이게 뭐라고 몸이 이렇게까지 격하게 반응하는 지 모르겠다. 이제 문자 한 번만 하면 끝날 사인데. 중학교때도 이런식으로 3년동안 짝사랑만 하다가 마음만 다치고 이제는 짝사랑같은거….안하려고 했는데. 보기만 해도 얼굴이 화끈거린다. “야 김탄소!” “아니 그냥 잘생겨서….” “응? 뭐래 정신차려 탄소야…” “아 미안..” 호감은 아니고. 그냥 잘생겨서. 그래 그렇게 정리하자.. * 학교 식당 안. 1학년들이 밥을 받기 위해 줄을 서고 있다. 화장실이 급하다는 친구덕에 가장 늦게 줄을 선 우리. 지루하게 긴 줄을 기다리고 있는데 뒤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온다. 2학년 남자선배들이 막 농구를 마치고 들어온다. “전정국 공 왜케잘막냐.” “봤나 이게 행님실력이다이가.” “사투리써ㅋㅋㅋㅋ누가 부산애 아닐까봐.” “내 부산아다. 니는 서울아고.” 환하게 웃는 그의 모습을 쳐다봤다. 그저 멍하니 바라본다. 그런 나를 그의 친구들이 봤나보다. 정국에게 슬며시 눈치를 준다. 그리고 나를 쳐다본다. “야 안녕.” “네? 안녕하세요.” “문자 왜 안보냈어~” “죄송해요. 까먹어서..” “같이 밥먹자.” 대답할 새도 없이 등을 떠밀어 밥을 받게 하고는 멀찍이 떨어져 있던 테이블을 가져와 붙인다. 그의 식탁이 내 옆자리에 놓여졌고 밥을 먹을 때마다 이따금씩 팔이 부딪혔다. 아무렇지도 않아하는 그를 보면서 나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 숟가락을 들었다. “아 나 주차장에 공 두고왔다. 누가 가져가면 어떡하지.” “병x.그걸 왜 거기두냐. 선생님들이 다 터트릴껄.” “그러게. 탄소야 같이가자.” 자연스럽게 내 팔을 잡아끄는 그 때문에 먹던 식판을 두고 급식소 밖으로 나왔다. 성큼성큼 앞장서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걸었다. 걷는 동안에 운동장으로, 교실 창문으로 우리 둘을 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이내 그 시선은 나에 대한 좋지 못한 시선임이 짐작되었고 움츠러들기 시작했다. 쟤가 왜 전정국 옆에 있냐는 눈빛. 둘의 교집합을 찾으려 애쓰는 사람들을 비집고 주차장에 도착했다. 도착하니 공이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낡은 공, 새 공, 낙서된 공 등 여러가지 공이 데굴데굴 굴러다닌다. “공이 주차된 차보다 더 많은것 같아요.” “그러게. 언제 다 찾지.” 난감해하는 표정을 보아하니 내가 해결해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심한 듯 아무 공이나 하나 들고 그에게 건넨다. “이거. 이거 해요. 이제부터 이게 선배 공이야.” 난감한 듯 내민 내 손을 쳐다보더니 미소짓는다. 그리고 두손으로 내 공을 받았다. “고마워. 그런데 이건 내 공이 아니야.” 내가 집어들었던 공은 다름아닌 배드민턴 셔틀콕이었다. 공이라 함은 동그란 구모양을 띠어야 하는데 쌩뚱맞게 움집같이 생긴 셔틀콕을 내밀었던 것이다. 이리저리 살펴보던 그는 그중에서 깃털 하나를 뽑더니 나에게 쥐어준다. 그리고는 주머니에 쏙 넣었다. “그래도 내 공이라고 했으니까 고맙게 받을게. 아 그리고….” * “김탄소!!!!! 일어나!!!!!!!!!!!!!!7시야!!!!!” 꿈이었구나. 감긴 눈을 억지로 뜨고 보니 이불속이다. 핸드폰은 전원이 꺼져 있었다. 오늘따라 잠을 많이 잤다 싶었는데 알람이 안울려서 그랬구나. 늦었지만 늦을것을 각오하고 더 자기위해 이불속을 파고들었다. 덜 꾼 꿈을 마저 꾸고 싶었다. 지금 다시 자면 이어서 꿀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너 그러다 버스 놓쳐!!!” 아 버스. 버스 타야되는데…. 등교시간에 버스를 탔지만 사람이 너무 많아서인지 한발 늦어서인지 마주치지 않았다. 답답했다. 보고싶었다. 그냥 그의 모습이 너무나도 보고싶었다. 급식실에서도 그는 보이지 않았다. 혹시나 예지몽일까 싶어 친구에게 일부러 화장실에 가자고 했다. 급식소에 가는 도중에도 보이지 않았다. 기다린 내가 바보지… 그저 내가 만든 꿈속에 내가 빠져 이렇게 기대하고 있다니…식판에 고개를 박고 묵묵히 밥을 먹고 있었는데 어디선가 익숙한 소리가 들려왔다. “야야야야 아까 오다가 세모오빠 봤어?” “농구하고 있었잖아~ 완전 멋있어 빨리먹고 응원가야돼!!!!” “세모오빠 진짜 멋있어 들어오는 공을 다 막더라…” “세모오빠 너무좋아ㅠㅠㅠ결혼하고싶어….” 햄버거 친구들이 또 쫑알댄다. 바로 옆에 앉은것도 아닌데 또박또박 잘만 들렸다. 내 앞에 놓여진 친구는 신경쓰지 않는다는 듯이 반대편을 쳐다보고 있었다. “탄소야.” “응?” “밥 다먹고 강당에 배드민턴 치러 갈래?” “농구하고 있을텐데?” “농구장? 주차장쪽에 말하는거야? 강당에서 점심시간마다 배드민턴 할 수 있게 해준대. 배드민턴부 가입해서 종종 치자~~응?” “그래…” 밥을 먹고 체육관에 가 보니 벌써 많은 학생들이 배드민턴을 즐기고 있었다. 친구와 함께 간단한 동아리 가입서를 작성한 후 배드민턴을 치기 시작했다. 거의 남자들밖에 없어서 좀 불편했지만 최대한 마주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운동신경이 좋은 친구에 비해 비루한 운동신경을 가지고 있는 나는 자꾸 떨어진 공을 줍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좀처럼 점수를 내지 못하는 나를 구경하는 남자선배들이 많아졌다. 공을 주으러 갈 때마다 오~ 하는 작은 함성도 내 주었고 박수도 간간히 쳐주었다. 힘내라는 신호인 것 같아서 그들을 향해 웃어줬더니 내 미소를 보고 자기들끼리 웃는다. 기분이 좋지도 싫지도 않았다. 원치않은 관심이어서 그런지 한편으로는 부담스럽기도 했다. “어? 태형아 찾았다!!!” 한참을 배드민턴에 열중하는데 방금 세수를 하고 온 듯한 전정국이 나를 가리키고 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농구공을 끼고 나를 쳐다보고 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아 이분이셔. 그 내가 어제 말했잖아. 회장시켜달라던.” “아~ 너야? 이름이 뭐야.” “김…김탄소….” “김탄소? 동아리 회장 하고싶다고?” 나와 김태형이라는 선배를 만나게 해 줘서 뿌듯하다는 표정으로 옆에 서 있는 전정국을 보자니 사실대로 말 할 수가 없었다. 마치… 그가 원하는 상황을 만들어 줘야 할 것만 같은 느낌? “네…부탁드려요.” “일단 너가 동아리 회장 해. 내가 선생님께 말씀드려줄게.” “감사합니다…” “나는 김태형이야. 이 동아리 회장이지. 반갑다. 악수할래?” “뭐하는거야 김태형ㅋㅋㅋㅋㅋㅋㅋ작업들어가나요” 첫만남인데 살갑게 대답해주고 악수까지 청한다. 얼떨결에 손을 잡고 악수를 했다. 손을 씻고 와서 그런지 손이 뽀송뽀송했다. 나를 빤히 쳐다보는 김태형 선배와 전정국 그리고 그의 친구들이 부끄러워 고개를 푹 숙였다. 뒤돌아 나가려는 선배와 무리들을 지켜보는데 전정국은 나에게 시선하나 주지 않고 쓱 지나쳐간다. 이제 만나게 해 줘으니 끝이라고 생각하나보다. 유유히 체육관을 빠져나가는 그의 뒷모습과 꿈에서의 그의 뒷모습이 겹쳐 보였다. 눈으로 보이는 그의 뒷모습은 똑같은데, 마음으로 느끼는 감정이 달랐다. 살갑던 그 미소가 자꾸 생각난다. ---------------------------------------------------- 댓글은 사랑입니다❤️❤️❤️❤️❤️❤️❤️ 첫화네요 떨린다 으흠흠흠.... 부지런히 쓰겠습니다. 안녕히 주무세요 :) 암호닉 [슙슙아]
암호닉 신청 감사해요! 기억하고 있을게요..!
------ㄱ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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