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채점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최저등급은 가뿐히 넘을 것 같은 점수에 마음을 푹 놓았다. 같은 반 친구들은 머리를 바꾸고 살을 뺀다며 호들갑을 떨어댔지만 나는 그럴 정신이 없었다. 의식불명에 빠졌던 김태형이 눈을 떴기 때문이었다. 나보고 마음의 준비를 하라던 아빠는 또 한 번 기적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렸다. 이 쯤 되니 정말 기적이 존재하나, 싶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지금의 김태형을 설명할 단어는 존재하지 않으니까. 김태형의 상태는 좋아지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나빠지지도 않았다. 고인물 마냥 파동 하나 없이 그렇게 고요했다.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인데,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김태형이 일어난 직후부터 나는 학교도 나가지 않고 김태형 곁에서 살다시피 했다. 그런 내 사정을 설명하려 찾아간 박지민이 내 이름과 김태형의 이름을 입에 올리자마자 담임선생님은 알겠다며 박지민을 돌려보내셨다고 했다. 덕분에 꼼짝도 않고 제 곁에 붙어있는 나를 김태형은 기를 쓰고 돌려보내려 했다.
"일어났어? 몸은 좀 어때?"
"…너 학교는?"
"안 가도 돼. 박지민이 선생님한테,"
"가."
"…어딜."
"학교 갔다가 집으로."
늘상 이런 식이었다. 김태형은 나를 밀어내고, 나는 밀려나지 않고. 저러다 말 줄 알았는데 의외로 김태형은 꽤 오랫동안 나를 쌀쌀맞게 대했다. 정 떼려고 그러나보다. 걔 내 카톡도 맨날 읽고 답 안 해. 하도 답답해 박지민에게 전부 털어놓자 박지민은 담담히 저렇게 얘기했다. 너 왜 이렇게 괜찮아보여? 아무렇지 않아? 내 물음에 박지민은 내 코트자락을 여미고 목도리를 다시 꼼꼼히 둘러주며 이렇게 말했다. 괜찮아 보인다니까 다행이네. 근데, 내가 아무리 슬퍼도 너만 할까.
한 달 가까이를 문전박대를 당하면서까지 김태형을 찾아가자 김태형은 그제서야 나를 내치지 않았다. 좋은 핑계였던 학교가 겨울방학을 맞아 나를 돌려보낼 구실이 사라졌던 것이었다. 김태형은 내게 차갑게 굴지는 않았으나 그 전처럼 다정하게 대하지도 않았다. 담백한 친구사이. 나와 김태형을 정의할 수 있는 문장이었다. 우리 사귀는 거 맞지? 스쳐가듯 물었지만 김태형은 못 들은 척 이야기의 물꼬를 다른 곳으로 틀었다. 그런 김태형을 이해했다. 아니, 이해하려고 애썼다.
더 이상 나를 돌려보내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박지민은 김태형을 찾아왔다. 문지방이 닳도록 들락거렸던 나와는 달리 박지민은 김태형을 근 몇 달동안 보지 못했다. 새끼, 얼굴 까먹겠다. 여전히 카톡답장은 띄엄띄엄 하고있었으면서 김태형은 반가운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곁에 앉아있던 이모에게 고개를 꾸벅 숙인 박지민이 들고온 이온음료를 이모에게 내밀었다. 김태형이 죽고 못사는 포카리 스웨트. 그걸 또 기억하고 이렇게 사 왔네. 이모는 편히 이야기들 나누라며 자리를 피했다.
"잘 지냈냐."
"어, 뭐, 그럭저럭."
"밥은 잘 먹고 있지?"
"네 옆에 앉아있는 누구때문에 거르지도 못 해."
잘 했네. 박지민이 눈꼬리를 휘어가며 웃으며 내 어깨를 토닥였다. 그 전 같았으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었을 김태형은 그저 포카리 스웨트가 담긴 종이컵을 손으로 매만지며 박지민의 손이 닿는 내 어깨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수능은 잘 쳤고?"
"나 잭팟 터졌잖아. 올 7등급."
"덕분에 내 등급 올라갔네."
"너 최저 맞췄냐?"
박지민은 나와 같은 대학으로 수시를 넣었다. 과까지 같았으면 너네 둘이 붙어다니는 거 눈꼴 시어서 어떻게 봐. 나란히 수시접수를 하던 날 김태형은 가자미눈을 하고서 그렇게 말했다. 그 날따라 컨디션이 좋았는지 평소 실력보다 월등하게 수능 점수가 높은 박지민은 소위 말하는 수시납치를 당했지만 그래도 나와 나란히 붙었으니 만족한다고 했다. 그 뒤로 변변찮은 이야기를 조금 더 나누다 김태형은 고단했던지 저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나와 둘이서 한참을 얘기하다 어느 순간 조용해진 김태형에게 의아한 시선을 던지던 박지민은 이내 입을 꾹 다물었다. 이런 김태형이 익숙치 않은 탓이었다.
"맨날 이래?"
"응. 밤낮도 막 바뀌고 그래. 수시로 잠 들고."
"……."
"……."
"…너무 말랐다."
박지민이 손을 뻗어 환자복 아래로 드러난 김태형의 팔목을 느리게 잡았다. 원래 뼈대가 굵지 않은 사람인데다 원체 먹지를 못하지 살이 붙을 새가 없었다. 짤막한 박지민의 손가락으로 팔목을 감쌌지만 박지민의 손가락이 남았다. 나와 박지민은 동시에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렇게 강제로 현실을 자각하게 되는 순간이 있다. 나는 그 순간이 견딜 수 없이 힘들었다. 갈게. 박지민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려는 박지민을 배웅하려 자리에서 엉거주춤 일어섰지만 박지민은 어깨를 눌러 나를 앉혔다. 밖에 추워. 그냥 여기 있어.
"카톡 할게."
"어, 조심해서 가."
박지민이 병실을 나섰다. 분명 일그러진 얼굴을 하고 있을 것이다. 박지민은 마음이 여리니까. 죽음을 목전에 둔 친구와 그 친구를 사랑하는 또 다른 친구 앞에서 차마 그런 얼굴을 보일 수 없어 참고 또 참았을 박지민을 모르지 않았다. 박지민의 손길이 닿았던 팔목을 느리게 문질렀다. 손목뼈가 도드라진 그 느낌에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이젠 몸무게도 나보다 덜 나가겠네. 나는 그만 손바닥에 얼굴을 묻고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
독한 열감기에 걸렸다. 일주일 하고도 사흘을 내리 앓는 동안 김태형한테서는 괜찮냐는 형식적인 안부문자 한 통 들어와있지 않았다. 살짝 서운해지려 했으나 김태형도 썩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는 아빠의 말에 애써 서운한 기색을 지웠다. 완전히 몸이 가뿐해진 날 나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병원으로 향했다. 살은 더 빠지지 않았는지, 안색은 괜찮은지, 그런 것들이 궁금했다. 김태형이 보고싶었다.
김태형의 병실로 가려면 도중에 아빠의 진료실을 거쳐야 했다. 내가 앓는 동안 이래저래 걱정이 많았을 아빠에게 얼굴 한 번 비추자는 심정으로 노크 없이 진료실 문을 활짝 열어젖히자 바로 보이는 아빠의 앞에는 한 여자가 뒷모습을 보인 채 앉아있었다. 예상치 못한 인물에 당황해 급히 죄송하다 얼버무리고 문을 닫으려는 나를 아빠가 불러세웠다. 딸.
"몸은 좀 괜찮아?"
"응, 괜찮아. 말씀들 나누세요."
"아니, 너 이리 들어와 봐."
나? 나를 왜? 의아한 기색을 감추지 않은 채 앉아있는 여자의 곁으로 걸음하자 앉아있던 여자가 내 손을 꼭 잡아쥐었다. 화들짝 놀라 내려다보니 여자는 다름아닌 이모였다. 이모가 왜 여기 있어? 깜짝 놀라 저도 모르게 커진 목소리에 이모는 충혈된 눈으로 작게 웃었다.
"무슨 일 있어? 이모까지 불러오고."
"딸, 좋겠네."
"어?"
"태형이 살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뭐? 잠시 내 귀를 의심했다. 지금 내가 들은 게, 무슨 소리지.
"태형이 살 수 있을 지도 모른다고."
"…그게 무슨 뜻이야?"
"미국에 이쪽에서는 이미 유명한 전문의가 있는데 그 분한테 태형이 상태를 보내드렸더니 자기가 한 번 보겠대."
"……."
"자료로 봐서는 자기네들이 가지고 있는 기존 의학기술로 완치까지는 아니더라도 살릴 수는 있을 것 같다고 하네."
확, 확률은? 살 수 있는, 확률. 목소리가 마구 떨렸지만 가다듬을 정신이 없었다. 세차게 뛰는 심장을 잠재울 새도 없이 아빠의 입이 열리기만을 기다렸다. 제발, 제발.
"반반이야."
"……."
"살 확률 반, 실패할 확률 반."
"……."
"재활치료도 오래 걸릴거고 한 번 가면 언제 돌아올 지 기약도 없지만 여기서 손도 못 쓰고 죽어가는 거 보는 것 보단 낫지 않겠나 싶다."
일단은 살리고 봐야지, 태형이. 혹시 지금 내가 꿈을 꾸고 있나. 너무 괴로운 마음에 나도 모르게 이런 환상을 만들어냈나. 50퍼센트의 확률이면 어마어마한 확률이었다. 둘 중 한 명은 산다는 말인데 그게 김태형이 될 수도 있잖아. 다리에 힘이 풀려 자리에 주저앉았다. 머릿속이 새하얗게 번졌다. 말문이 트이지 않았다. 아직까지 내 손을 붙잡고 있는 이모의 손을 다른 손으로도 덥썩 잡았다. 이모, 이모.
"태형이 보낼거죠? 응?"
이모는 눈가에 눈물을 그렁그렁 매단 채 고개를 끄덕였다. 아, 어떡해. 그제서야 눈물이 터졌다. 자리에서 일어난 이모가 나를 일으켜 세워 품에 안았다. 맘고생 많이 했지. 내 등을 느리게 쓸어내리던 이모가 품에서 나를 떼어놓고 온 얼굴에 묻어난 눈물을 소매로 닦아냈다. 가서 태형이한테 네가 직접 말 해줘. 말 하고, 안아줘. 고개를 마구 끄덕인 나는 나는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진료실을 나서 김태형의 병실로 향했다. 창 너머로 보이는 김태형은 자고있지 않았다. 그저 멍하니 앉아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이 말을 들으면 너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다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문을 열자 김태형의 시선이 내게 닿았다. 내 시선과 얽히는, 김태형의 죽은 눈.
"……."
"나 없는 동안 뭐 하는 지 궁금하지도 않았냐."
"알아서 어련히 잘 하고 있었겠지."
"……."
"이제서야 찾아오지 말라는 내 말 잘 듣나, 싶어서 좋아했더니."
한 치의 흔들림 없이 김태형은 나를 또 잘라내려 하고 있었다. 아무렴 좋았다. 나는 이모처럼 충혈된 눈을 하고서 늘 내가 앉던 자리로 가 앉았다. 울었냐고 묻고싶은 기색이 김태형의 얼굴에 역력했지만 김태형은 끝내 내 눈에 대해 일언반구조차 없었다.
"아침은 먹었어?"
"응."
"…있지, 너 건강해지면 뭐 제일 먼저 하고싶어?"
뭐 그런 걸 묻냐는 뜨악한 표정으로 김태형은 나를 보았다. 거의 금기시 된 말이나 다름 없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빨리, 뭐 하고 싶냐고. 내 재촉에 내키지 않는다는 듯한 표정을 하면서도 한참동안 머리를 굴리던 김태형의 대답은 생각보다 소박했다.
"너랑 손 잡고 어디든 몇 시간이고 걷는 거."
"……."
"왜 물어, 이런 걸."
"너 좋겠다, 김태형."
"……?"
"나랑 손 잡고 일주일이고 한 달이고 걸을 수 있겠네, 이제."
그게 무슨 소리야. 김태형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김태형의 작은 머리를 품에 끌어안았다. 참았던 눈물이 터져나왔다. 들썩이는 내 어깨에 김태형은 당황한듯 내 허리께를 조심스레 잡아 밀어내려 했다. 잠시만, 이것 좀 놔 봐.
"너 살 수 있어. 아빠가 너 미국으로 보낼 거래. 거기로 가면 너 치료 할 수 있대."
"……."
"확률 50퍼센트 정도면 가능성 걸어볼 만 하잖아."
"……."
"나 밀어내지 마. 정 떼려고 하지 마, 태형아. 너 살 수 있대."
나를 밀어내려 하던 김태형의 손짓이 멎었다. 이내 머뭇거리던 손은 내 허리를 감싸안았고 다정한 손길로 내 등을 토닥였다. 나는 김태형의 버석한 머리칼 위로 얼굴을 묻었다. 아, 어떡해. 진짜, 어떡해. 아직까지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이런 상황을 상상하는 것 조차 죄스러워 꽁꽁 숨겨두었었던 과거가 떠올랐다. 꼭 끌어안고있던 김태형의 어깨를 살짝 밀어 얼굴을 확인했다. 커다란 눈이 온통 붉어져 있었다. 우냐고 물으려던 찰나 양 볼이 커다란 김태형의 손에 잡혔다. 당황할 새도 없이 김태형은 내 얼굴을 제게로 끌어당겨 내 입술에 제 입술을 포개었다. 지그시 감은 김태형의 눈가로 눈물이 길을 내며 흘렀다. 김태형의 어깨에 가 있던 손을 들어올려 눈물을 닦아내며 나도 함께 눈을 내리감았다.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다.
김태형의 출국준비는 빠르게 진행되었다. 비자를 신청하고, 여권을 만들고. 따로 찍을 여력이 없어 수험표에도 쓰이고 민증에도 쓰인 사진으로 만든 여권을 받아든 김태형은 한동안 여권이 마음에 안 든다며 투덜거렸다. 아빠는 김태형의 상태를 최상으로 유지하려고 노력했으며 그런 아빠의 노력이 빛을 발했는지 김태형은 눈을 감고있는 시간과 뜨고 있는 시간이 비등해졌다. 그리고 김태형은 더 이상 나를 내치지 않았다. 후에 들은 바로는 제 몸 상태가 좋지 않다는 걸 저도 느꼈다고 했다. 그래서 정을 떼려고 그렇게 매몰차게 대했고 그러면 내가 지쳐 나가 떨어질 줄 알았다고 했다. 나를 고작 그런 사람으로밖에 못 봤단 말이지. 김태형은 저를 노려보는 나를 보며 배시시 웃었다. 너 생각보다 나 되게 좋아하네.
출국 날짜가 잡혔다. 졸업식 바로 다음 날 오전 비행기였다. 김태형은 졸업식에 참석하고 싶어했지만 급격한 체력소모가 뒤따를 수 있다는 아빠의 반대 탓에 결국 참석하지 못했다. 졸업식날은 나와야하지 않겠냐는 박지민의 회유에 나는 정말 오랜만에 학교에 출석했다. 아빠는 오지 못했다. 언제든 뒤바뀔 수 있는 김태형의 곁에 상시 대기해야했기 때문이었다. 김태형의 졸업장까지 받아든 나는 사진 한 장 남기지 않은 채 곧장 박지민과 함께 학교를 빠져나왔다. 언제 다시 볼 지 모르는 얼굴을 조금이라도 더 담아두고 싶었다. 박지민은 나오는 길에 꽃다발을 하나 샀다. 졸업하는데 꽃다발 하나 없으면 섭하지. 프리지아 향기가 진하게 맴돌았다.
"…자?"
"……."
"우리 졸업식 끝났는데."
"……."
"지민이도 왔어. 가기 전에 얼굴 한 번 봐야지."
김태형은 오늘따라 유난히 잠에서 깨는 걸 버거워했다. 그래도 박지민이 왔다는 말에 가까스로 눈을 떠낸 김태형이 이불 속에 숨겨둔 손을 밖으로 꺼내 팔랑팔랑 흔들었다. 박지민은 픽 웃으며 함께 손을 흔들어 주었다.
"태형아."
"…응."
"졸업 축하해."
졸음에 겨운 눈을 한 김태형의 품에 졸업장과 꽃다발을 안겨주었다. 꽃다발은 네가 산 거니까 네가 전해주라는 내 말에도 박지민은 기어이 내게 꽃다발을 넘겼다.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이모는 김태형과 졸업장을 번갈아 보다 고개를 돌려버리셨다. 작게 흐느끼는 소리가 났다. 졸업장과 꽃다발에 한참동안 시선을 두던 김태형이 이내 꽃다발 끄트머리를 힘주어 쥐었다. 비닐이 구겨지는 소리가 크게 울렸다.
"고생했어."
"……."
"고생했어, 정말."
"…너도."
침대 옆 보호자 의자에 앉아 김태형에게로 허리를 숙였다. 뺨과 뺨이 맞닿아 김태형의 체온이 그대로 전해졌다. 따뜻했다.
"널 만나고 나서부터 내 우주는 오롯이 너였어. 알지?"
"……."
"손 뻗으면 닿을 데에 있어줘서 고마워."
"……."
"사랑해, 태형아."
박지민조차 들을 수 없는 작은 목소리로 김태형에게 고백했다. 가식이라고는 한 점 섞이지 않은 온전한 진심으로. 한참동안 대답이 없던 김태형은 나와 비슷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어쩌면 나 마저도 귀 기울이지 않으면 놓쳐버릴 듯한 크기였다.
"미안해."
"…뭐가."
"미안해, 공주야."
맞대고 있던 뺨이 느리게 젖어들었다. 내 눈물인지 김태형의 눈물인지 알 방도는 없었다. 벌써부터 그리움이 밀물 밀려오듯 빠르게 차올랐다. 생각지도 않았던 다른 50퍼센트의 확률이 불현듯 선명해졌다. 어쩌면 오늘 내일이 김태형의 얼굴을 마주하는 마지막 날이 되지 않을까. 조금이라도 더 김태형의 얼굴을 담아둬야 하는데 차마 얼굴을 들 수 없었다. 눈물범벅인 김태형의 얼굴을 보면 억장이 무너질 것 같아서였다.
"너네 다시는 안 볼 것 처럼 구네."
김태형의 발치에서 가만히 지켜보기만 하던 박지민이 내 뒤로 다가와 내 어깨를 잡아 일으킴과 동시에 미리 준비해두었던 티슈로 내 볼을 꾹 눌렀다. 그리고 팔을 뻗어 김태형의 볼에도 범벅이 된 눈물을 대충 문질러 닦아내었다.
"십 년을 넘게 매일같이 맘 졸였으면서 이거 하나 못 기다리겠냐. 죽으러 가는 것도 아니고."
"……."
"김태형, 울지 마. 네가 울면 얘는 더 울어."
"……."
"잘 다녀 와. 갔다 와서 술 한 잔 하자. 다 같이."
공항은 따라가지 않았다. 김태형의 출국시간에 맞춰 텅 비어버린 병실에 걸음했다. 문을 열면 공주야, 하며 해사하게 웃어주던 김태형은 이제 없었다. 늘 앉았던 침대 끄트머리에 가 앉았다. 깨끗하게 비어버린 침대 시트를 손으로 쓸었다. 온기라고는 남아있지 않은 시트에 서글퍼졌다. 빈 병실을 느리게 둘러보다 침대 옆 스탠드 아래에 처음 보는 종이 쪽지가 눈에 띄었다. 그대로 손을 뻗어 펼치자 눈에 익숙한 지렁이같은 악필이 고스란히 눈에 들어왔다. 나가기 직전 휘갈겼는지 평소보다 더 해독하기 힘들었다.
『나 없어도 울지 말고 아프지 마 혼자 아프면 더 서러워
무슨 일 있으면 박지민한테 다 얘기하고 도움 받아 꼭
너 두고 가려니까 발이 안 떨어진다 조금만 기다려 줘
나 갔다 올게 사랑해 공주야 진짜 사랑해』
갔다 올게. 갔다가, 살아서 돌아올게. 김태형에게는 자신과의 다짐과도 같은 말이었고, 내게는 기약 없는 약속이었다.
*
안녕하세요, 썸머비 입니다.
우행시 정말로 완결만 남겨두고 있습니다...;ㅅ; 시원섭섭하네요.
마지막화 금방 들고 오겠습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그리고!!
저 이거 쪽지로 받고 얼마나 감격스러웠는지 몰라요...;0;
천명이 넘는 독자분들이 제 글을 읽고계시다니ㅠㅠㅠㅠㅠㅠㅠㅠ 감사합니다ㅠㅠ♥
♥암호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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