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수(禽獸)아파트_901호
(짐승 금, 짐승 수)
#03
오랜만에 주말에 일찍 일어난 나는, 아주 건전하고 생산적인 일이 하고 싶어서 집 앞에 있는 금수산에 올랐다.
험하거나 높진 않았지만 그래도 산은 산인지라.... 힘들다!
"하아.... 씨... 어차피 내려갈 거 왜 올라왔지?.. 하....!"
특히 운동부족인 나는 내려갈 때마다 다리에 힘이 풀려 조심해야 했다.
“아!! 맞다. 친구 밥을 안 챙겨줬는데.”
그래, 그래서 마음이 조급해진 탓도 있었다.
요즘 친구의 밥량이 엄~청 늘어서 밥그릇 가득 담아놓아도 하루를 못 갔기에, 이젠 아예 밥그릇 두 개에 가득 담아놓게 되었다.
그래서 매일 아침에 한번, 밤에 한번 밥그릇을 채워 주어야 하는데, 그걸 깜박하다니...
“배고프겠다. 나도 이렇게 배고픈데. 쪼금만 기다...!”
으악..!
너무 놀라서 밖으로 소리도 못 지르고 슬라이딩 해버렸다.
딱딱한 흙바닥이 엉덩이에 아릿하게 느껴지고 손도 따끔따끔했지만....
다행히 어디 하나 부러진 것 같진 않았는데 어딘가 싸하고,
축축하고.
.... 축축하고?
“으으...”
땅이 아니라 돌을 짚었던 건지 손바닥이 길게 찢어져 있었다. 으. 찢어진 살에 잔가지랑 이파리, 흙들이 묻어서 이걸 어쩌나 싶다.
보기와 다르게 피 같은 징그러운 걸 못 보는 성격이라서 처다보지도 못하고 다른 손으로 물통을 꺼냈다.
그리고 눈을 꾹 감고 물을 뿌리니,
“으.. 쓰라려어!”
쓰라려워 미치겠다! 그리고 이 찢어진 상처를 보는 것도 너무 징그럽고!
용기내어 슬쩍 눈을 떠보니 손바닥에 입술이라도 생겨난 것 같은 모양이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점점 더... 징그럽잖아!
“... 다쳤어요?”
“어..... 어헝... 엉...”
누군지 볼 생각도 않고 서러움이 밀려와 엉엉 울어버렸다.
아픈데 나 혼자고오... 그냥 이 세상 모든 게 서러웠다.
서러운 기억은 서러운 기억만을 불러와 운동회 날 다들 엄마 아빠가 있었는데 나만 이모라고 불렀던 기억...
그리고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서 엄마, 아빠도 없는 애라고 놀림 받으며 질질 울며 이모네 집으로 돌아왔던 기억.
“줘 봐요.”
그러다 문득 제 정신을 차리게 된 건 누군가의 음성 덕분이었다.
나는 여전히 무서워서 눈을 감은 채였고, 상대는 휴- 하고 한숨을 쉬더니 내가 손에 쥐고 있던 물병을 가져가 내 손 위로 물을 흘려준다.
그때가 되어서야 누군가 하고 고개를 들으려고 했는데 따듯한 손이 내 눈을 가린다.
“보지 마요.”
“어...엉.... 흡..”
뭔데.. 누군데 이렇게 친절해? 게다가 내 또래 남자 목소린데...
그 목소리에 전 남친과 좋았던 시절이 떠오르기도 하고, 고등학교 때 좋아했던 남자애 목소리.
한 때 좋아했던 배우의 목소리.
그리고 희미한 기억 속, 웅웅거리는 울림으로만 남은 아빠의 목소리까지 기억이 깊어진다.
“눈 뜨지 말고 있어요.”
낮지도 높지도 않은 듣기 좋은 목소리 때문인지, 아니면 눈을 감아서인지, 아니면 그냥 누군가 날 돌봐주고 있다는 것 자체 때문인지.
어쨌든 내 마음은 한결 편해져서 서러움을 떨치고 그저 내 손을 맡겼다.
가방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내 가방에서 손수건을 꺼내 길게 묶어 주는 것 같았다.
“.... 고마워요.”
여전히 목소리는 떨리긴 했지만 손에 묶인 손수건 덕에 적당한 압박감이 느껴지자 나는 안정을 되찾는 중이었다.
치료가 끝난 것 같았고 이제 그 징그러운 상처는 보이지 않겠지 싶어, 나는 슬며시 눈을 떠서 날 치료해준 고마운 사람이 누군지 확인하려고 했다.
“저기요. 보답이라도..”
내가 높게 뜬 햇빛에 눈이 부셔 잠깐 눈을 깜박이는 사이, 검은 그림자 같은 게 내 눈 앞을 빠르게 지나간다.
나는 그 형체를 통해 날 치료해 준 남자임을 느낄 수 있었지만.
“저, 저기요!”
내 시야가 제대로 돌아왔을 땐, 남자는 등산로도 숲이 우거진 곳으로 이미 뛰어간 것 같았다.
갔네...
희미한 바람 조각에서 남자들이 잘 안 쓰는 자몽향 바디샴푸 냄새가 났다.
나랑 같은 향을 쓰네...
“근데... 도인인가...? 아니면 스님?”
완전히 사라진 숲 쪽을 바라보며 주섬주섬 가방을 챙겨 일어났다. 어떻게 산 속에서 그렇게 빨리 뛰어갈 수 있지?
엉덩이가 얼얼했지만 못 걸을 정도는 아니었기에 산을 내려가며 곰곰이 생각했다.
게다가 남자는 왜 자신을 보이려고 하지 않았을까.
나처럼 무슨 사정이 있나?
아.. 모르겠다. 진짜 스님이라던가... 산신령...? 그런 건가?
아, 몰라 몰라. 일단 집에 빨리 가야지.
친구 밥 줘야 하니까.
*
“친구 배고팠찌? 늦어서 미안해.”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니 마침 친구는 화장실에서 나오고 있었다.
음? 왜 화장실에서 나오지?
설마...
“흐음~ 설마 배고파서 화장실 물 마신거야? 허허. 발이랑 얼굴이랑 다 젖었네...
에휴- 미안해 친구. 쪼금 일이 있어서.”
갸오-옹-
내 착각일지 모르겠지만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는 것 같았다. 아니면 말라지 뭐.
“무슨 일이냐고? 짠. 봐봐. 나 다쳤다?”
갸오오-옹-
“걱정해 주는 거야? 난 괜찮아, 친구. 다쳐도 네 밥은 잘 챙겨줄 거라구.”
나는 사료를 한 가득 담아 곁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친구는 앞발로 얼굴에 묻은 물을 두어번 슥슥 문지르곤 빤히 내 다친 손을 바라본다.
“괜찮당께. 괜찮소. 괜찮구마.”
걱정과 관심을 받고 싶었던 건지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그래서 옛다, 기분이다. 세 가지 사투리로 녀석에게 나의 괜찮음을 피력해 보았다.
녀석도 웃는 내 모습에 마음이 놓인 건지, (단지 내 추측이지만) 그제야 머리를 숙여 밥을 먹기 시작했다.
.... 아!
“괜찮아유...”
내 목소리에 먹던 것을 멈추고 뭐냐는 듯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바라본다.
이젠 귀엽다기 보단 늠름해진 친구의 하얗고 긴 수염이 작은 동작에 살랑거린다. 코 주변과 이어진 입꼬리가 살짝 들리는 것도 같았다.
안에 꽤 날카로워 보이는 송곳니가 살짝 드러났으니까.
“하나가 빠져서... 할 수 있거든, 충청도도.”
갸르르-
조금 더 송곳니가 많이 드러난다. 웃는 건 아니겠지만 거대한 몸뚱이에서 나는 소리가 웃는 것 같다고 믿고 싶다. 내 드립이 웃겼다고 믿고 싶었으니까.
빤히 쳐다보는 모습에 민망했는데 한편으론 웃겼다. 지금 뭐하는 짓인지 싶어서.
손은 찢어지고 몸엔 흙투성이인데, 씻지도 않고 바로 고양이 밥부터 챙겨주고....
“크크크..”
처음엔 이러려던 게 아니었는데 조금씩 내가 변해가는 게 느껴진다.
그리고, 이 녀석에게 마음을 열 수 있다면 이제 다른 사람들에게도 마음을 열 수 있지 않을까.
“친구 넌 내 치료약이야.”
나는 처음으로 친구에게 손을 뻗어 좀 전부터 내 눈을 뗄 수 없었던 하얀 수염을 검지로 살짝 건드려 보았다.
실을 만지는 듯한 간지러운 느낌에 입가에 웃음이 생긴다. 친구는 놀랐는지 조금 뒷걸음질 친다.
“쉬이- 놀라게 해서 미안해.”
녀석이 한 걸음 멀어졌는데도 이번엔 목덜미에 털을 만져보고 싶다. 부드러울 것만 같다.
나는 얼얼한 엉덩이를 끌고 녀석에게 다가갔고 천천히 손을 뻗어 목언저리를 만져보았다.
갸르르...
좋은 건지, 경계하는 건지 모를 소리를 냈다.
나는 그 감촉이 너무나 부드럽고 따듯해서 물러나지 않았다. 털을 헤집어 놓을 때마다 은은하게 풍기는 향기가 좋다.
... 자몽향.
“화장실에서 바디샴푸로 장난쳤구나.”
나무라는 투는 아니었다. 그냥 장난처럼 운율 가득한 말투였다.
나는 털의 촉감이 생각보다 너무 부드러워서, 그리고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그리 징그럽지가 않아서 꽤나 오랫동안 녀석의 목을 쓰다듬었다.
그리고 아마도 친구도 내 손길을 싫어하지 않았던 것 같았다.
“그럼. 이만.”
그 마무리는 조금 어색했다. 나도 어색했고, 아마 처음 내 쓰다듬을 느낀 그 녀석도 굉장히 어색했겠지.
“마저 먹어유. 큼큼.”
윽. 드립까지도 어색했다. 썩은 드립. 치지 말걸.
그러나 당황하지 않고 화장실로 들어가서 흙을 털어내고 씻었다. 다친 왼손에 물이 닿지 않도록 조심하며. 그
리고 옷을 갈아입고 나와 거실 장식장 안에 있는 약상자를 열어 손수건을 풀어보았다. 다행히 묶여 있어서 상처부위가 벌어져 있지는 않았다.
손바닥을 가로질러 크게 찢어졌는데... 이걸 꿰매야 할까?
"병원, 진짜 싫어하는데."
그래도 다행히 다친 게 왼손이라 그럭저럭 일은 할 수 있을 것 같으니 그냥 둘까? 꿰매는 거 너무 무섭고.. 으. 징그러운데.
“으... 나 혼자 못 하겠어.”
갸르릉...
“친구. 난 괜찮아... 윽.”
결국 상처를 보는 것도 겁이 나서, 안 보고 소독만 겨우 한 다음 다시 손수건을 한 손으로 힘겹게 묶었다.
병원에 가긴 가야 할 것 같은데 일요일이니 병원은 다 닫았겠지. 그렇다고 응급실에 갈 정도는 아닌 것 같고.
“아, 우리 병원이라도 가볼까? 동물 병원도 병원이긴 병원이니까.”
나는 어느새 곁으로 다가온 친구를 보며 자문이라도 구하듯 물었다. 뭐, 바로 자문자답 하긴 했지만.
그나저나 오늘 오전 진료만 있는 날이라 퇴근하실 시간인데. 병원에 아무도 없을 것 같긴 한데.
에이, 몰라. 일단 연락이나 해보자. 일단 김간호사님한테 먼저...
[김간호사님 오늘 선생님 출근 하셨나요?]
[아니~ 오늘 오프셔. 왜?]
[아, 아니에요. 잠깐 들릴까 했는데 괜찮아요~]
그렇게 보내니 바로 전화가 온다.
“여보세요?”
[탄소씨 고양이 아파?]
아, 당연히 고양이가 아픈 걸로 이해하셨구나. 나는 엄청나게 건강해 보이는 친구를 보며 아니라는 대답과 함께 사실대로 말했다.
다쳤는데 열린 병원이 없어서 우리 병원이라도 갈까 했던 거라고.
[어쩜 좋아. 남준씨 탄소씨 다쳤데.]
“어? 두 분 같이 계세요?”
본의 아니게 두 분의 오붓한 주말을 방해해 버렸구만.
죄송하다는 말을 할 겨를도 없이 금방 가겠다는 말과 함께 전화가 끊겼다.
전화를 끊고 소파에 털썩 앉아 있자 녀석이 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서성거린다.
“어이, 친구. 왜 이렇게 불안해 해. 거기 앉아 나 괜찮응께.”
“갸르릉...”
진짜 말이라도 알아듣는 건지 쿠션 위에 앉는 친구였다. 그렇지만 여전히 나를 아주 빤-히 바라보고만 있다.
아이구. 다치니까 여러 사람, 아니 사람들과 동물의 걱정과 관심을 받는구나. 혼자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도 않네.
“친구. 우리 쫌 친해졌나보다. 그치.”
내 말에 그건 아닌지 고개를 훽 돌려버린다. 아. 민망해라.
내가 너무 넘겨짚었지...? 아니면 혹시 부끄럽니~?
정말 사람처럼 고개를 홱 돌린 모습이 귀여워서 (절대 귀여운 덩치가 아닌데.) 나는 손가락으로 녀석을 가리키며 낄낄거리며 웃고 있는데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하마터면 또 정줄 놓은 모습 들킬 뻔 했네.
“다쳤다며~!”
막 호들갑을 떨며 내 몸을 훑다가 어정쩡하게 올리고 있는 왼손을 보고 어머어머를 연발하는 김 간호사님과,
커다란 왕진 가방을 들고 오신 김남준 선생님이 집 안으로 들어오신다.
“가방이 너무 큰 거 아니에요? 저 그 정도로 크게 다친 건 아닌데.”
“아니야~ 밖에서 다치면 뭐가 몸 안으로 들어갔는지도 모르고... 소독도 하고 봉합도 하고! 마취도 하고! 그래야 돼!”
뭔가 점점 무서워지려고 하는데요.
나를 거실 한 가운데에 앉히고 양 옆으로 김 간호사님과 김남준 선생님이 앉았다.
정말 수술이라도 하려는 듯, 막 내가 발버둥치면 날 양 옆에서 잡아서 짓누를 것 같은 그런 불안함이랄까.
"손 줘봐요."
"허허, 별로 큰 상처는 아닌데... 정말로."
진짜 수술이라도 할 것처럼 깨끗한 천을 테이블 위에 깔고 그 위에 내 손바닥을 올려놓는다. 그리고 묻는다.
“안 맞는 약이라든지 먹고 있는 약 같은 거 있어요?”
진짜 수술 하는 거예요? 네?
“아... 얼마 전까지 한약을 먹긴 했는데...”
“음? 한약? 탄소씨 어디 안 좋아?”
“귀, 귀신을 본 것 같아서."
"뭐, 귀신?"
"네, 네. 아니, 근데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요... 그런데 진짜 수술하나요, 저?”
덜덜덜. 진짜 수술이다. 동물 병원에서 일 한 이후로 최고조로 무서워지려고 하는데요, 저.
“부분 마취하고 소독하고 봉합할 거예요. 그리고 붕대로 감아줄게요. 아주 간단한 수술이고 금방 끝나요.”
진지한 얼굴로 내 손을 들여다보던 김남준 선생님께서 다정하게 말해주셨지만,
으어. 그래도 무서운데요? 네?
그렇게 얼떨떨해져 있는데 손에 수술용 장갑을 끼시는 김남준 선생님이다.
... 진짜 하려나봐! 진짜!?!????????
“와~ 근데, 남준씨 인간 수술은 너무 오랜만이지 않아요?”
“그러게.”
으어러어어어억. 오랜만이시라고요? 저 너무나 불안한데요??? 그냥 내일까지 기다렸다가 병원에 가면 안 될까요?
그러나 반 패닉 상태인 나는, 분명히 말했다고 생각했지만, 다 속으로 한 생각이었던 것 같다.
김 간호사님 마저 라텍스 장갑을 끼더니 날카로운 메스 같은 것들을 소독하고 있었고,
김 선생님은 그 것들을 받아서 철 쟁반 같은 곳에 하나 둘 진열하듯 놓았으니까.
“어러러러러러어러러ㅓ.”
나는 이상한 외계어를 해대기 시작했고, 내 머릿속 장면이 과거로 되돌아가고 있었다.
눈이 아플 정도로 하얀 수술실의 빛과 내 것이 아닌 피로 젖은 머리카락.
“아악!!”
비명이 들려서 힘겹게 눈을 떠보니 나를 감싸 안은 누군가가 되뇌었다.
괜찮아. 괜찮아. 하며. 전혀 괜찮지 않았다는 걸 알아서 겁이 났고 다시 눈을 떴을 땐 다시 그 새하얀 수술대 위였다.
“거부반응인 것 같은데...”
“어린시절 트라우마 때문에 그래. 잘 잡아. 어차피 해야 할 수술이니 우리가 하는 게 나으니까.”
희미한고도 밝은 곳에 어린 소녀가 누워 있었고 소녀가 뻣뻣하게 굳은 목이 움직이지 않자 겨우 눈을 돌려 부모를 찾았다.
그것은 본능이었다. 하얀 천이 덮이는 두 어른을 보았을 때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눈물만 흘렸고, 누군가 녹색 천으로 소녀의 두 눈을 덮어주었다.
아아...으......흑.
서러운 울음소리만 흘릴 뿐이었고 이내 그마저도 타의적인 수면에 의해 잠잠해졌다.
그 뒤로 그 소녀에겐 많은 트라우마가 생겼다.
자동차, 상처, 흐르는 피, 모든 징그러운 것들. 끈질긴 노력으로 이겨낼 수 있는 것이 있었고, 이겨내지 못하는 것들이 있었다.
그 후자가 바로 수술이었다.
“커튼 쳐.”
“크르르.”
남준은 이젠 어른이 된 소녀를 그대로 뒤로 눕게 한 다음 경련하는 몸을 결박했다.
그리고 처음부터 그 모습을 보고 자리에 앉지 못하고 서성거리던 짐승은 펄쩍 테이블을 뛰어 올라 커튼을 이로 당겼다.
그러나 커튼을 쳐도 한낮이었으니 암막 커튼도 아닌데 어두워 질 리가 없었다.
“전정국 수건 가져와서 눈 가려.”
짐승은 민첩하게 화장실로 향해 이에 수건을 물고 왔다. 그 모습을 본 남준이 살며시 웃으며 말한다.
“너무 긴장하지 마, 아들.”
짐승은 대꾸하지 않고 수건을 조심스레 여자의 얼굴 위로 가만히 내려놓았다.
간간히 몸을 뒤트는 여자 덕에 수건이 얼굴에서 미끄러져 내리자, 짐승은 아주 조심스럽게 이빨로 집어 다시 올리고 또 올렸다.
“으으....으...”
그리고 짐승은 자신의 콧등을 여자의 목덜미에 문질렀다. 그 따듯하고 부드러운 감촉 때문인지, 어둠 덕분인지 여자는 금새 잠잠졌다.
아니, 안정되었다고 생각했던 건 착각이었다.
“정신을 잃었어. 지금 봉합해야 할 것 같다.”
여자는 정신을 잃었으니까.
"마취시키는 것보다 정신을 잃었을 때 봉합하는 게 나을 것 같은데..."
그런데 의사는 말도 안 되게도 짐승에게 눈빛으로 말했다. 그래도 되겠느냐고.
짐승은 그저 그런 의사를 잠깐 바라보고 다시 엎드린 자세로 여자의 목에 파고들었다.
“그릉...”
의식을 잃은 여자는 생살을 찢은 고통에도 별 다른 반응이 없었다. 마치 죽은 것 같아서 짐승은 자꾸만 목에서 여자의 맥박을 확인했다.
수술은 의사의 말대로 금방 끝났고 숙련된 간호사의 정리로 마무리도 금방 끝났다.
쿵.... 쿵....
셋의 귀에는 점차 안정을 찾아가는 여자의 심장박동 소리가 들렸다.
“잠에 든 것 뿐이다. 깨어나면 통증 때문에 괴로워할 텐데 잘 이겨낼 거다.”
“응, 그럼. 우리 아들이 고른 여자니까.”
간호사는 짐승의 털을 가볍게 쓸며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수술은 잘 끝났지만 짐승은 안심하지 못하는 듯 앞발을 가만히 여자의 목 주변에 대어본다. 그 맥박을 느끼고 나서야 안심이 되는 모양이었다.
“근데, 우리 아들... 아직도 변신이 잘 안 되는 모양이다? 응? 꼬리가 안 없어지니, 아니면 귀가 안 없어지니?”
“분명히 우릴 닮았으면 벌써 자유자재로 해야 하는 나이인데. 어쩌다가 한번 성공이라니...”
“5개월인 애들도 쉽게 변하던데... 어머, 우리 아들. 설마 불구는 아니지?”
크르릉!
“깔깔깔. 알았어 진정해~”
두 사람이 장난스레 말을 이었고 짐승은 으르렁거리다 여자가 잠깐 움직이자 그 작은 기척에 다시 고개를 바로 한다.
여자는 그렇게 두어시간을 더 누워 있었고 그 동안 오랜만에 재회한 부모와 자식은 다정하게 대화를 나누기에 바빴다.
아니, 사실 일방적인 놀림에 불과했지만, 얼핏 듣기엔 다정해 보이는 목소리였다.
“아참. 저번에 너 왔을 때 너무 어려서 탄소씨가 너 취향 아니라더라? 빨리 고양이 사료 많이 먹고 크렴~ 귀여운 우리 새끼 고양이~”
“크르릉!”
결국 짐승이 성을 냈다. 위협적인 모습이었지만 그 두 사람은 뭐가 재밌는지 끝까지 짐승을 놀리며 깔깔거렸다.
*
“... 저어...”
눈을 뜨자마자 손바닥의 아릿함이 느껴졌다.
불에 데인 것처럼 뜨끈뜨끈 했는데 목 언저리도 그것만큼 뜨거운 것 같아 내려다보니 부드러운 털이 뺨에 닿았다.
“어이, 친구... 걱정 많이 했나..”
역시 친해진 거 맞다니까? 나는 속으로 흥흥 웃으며 아직까지 테이블 앞에 앉아 있는 두 분을 보고 시간을 한번 확인했다.
분명히 1시 정도였었는데... 4시가 넘어 있었다. 되게 오래 잤네.
“친구. 덥다.”
나는 몸을 일으켜 앉았다.
“"마취약이 체질인가. 되게 가뿐하네요.”
“... 후후. 마취 안 했는데?”
"안, 했다구요..?"
마취를 안 했다고? 그런데 왜 기억이 없을까.
게다가 이가 아파서 치과에 한번 갈 때도 무슨 다 큰 성인이 애들처럼 간호사 몇 명이 달라붙어야 겨우 진찰받을 정돈데...
에이, 마취를 안 했을 리 없지. 봐봐. 김 간호사님 놀리듯 웃고 계시네.
에휴. 또 속을 뻔 했네.
“아무튼 감사했어요. 아무리 생각해도 혼자서 병원엔 못 갈 것 같았었는데...”
“항생제는 그래도 먹어야 돼요. 일단 약국에서 하나 사왔어요.”
오오. 친절하셔. 그리고 참 부드럽다.
부드러...워?
내 손끝을 바라보니 친구의 등이 만져진다.
나도 모르게 친구의 등을 쓰담쓰담 하고 있었네. 손을 뗄까 하다가 계속 대고 있었다.
다시 한번 느끼는 거지만 정말 부드럽다니까~
“아참. 선생님 우리 고양이가 너무 큰데요... 이거 정상인가요?”
“하하. 크다고 비정상일 건 없죠. 더 크면 기네스에 올려 봐요. 이렇게나 큰데 아직 성인 아닌 건 알죠? 큭.”
"...네??"
서, 성인이 아니라구요? 여기서 더 큰다구요? 이미 시베리안 허스키를 훌쩍 넘어... 그냥 이젠 호랑이 같은데요?
“아직 사람 나이로 따지면 18살 정도? 아마 두 달만 더 있으면 이제 완전히 성인 되겠네요. 그러면 얼마나 커지려나... 음... 탄소씨 팔꿈치까지 오겠네요.”
“파, 팔꿈치요? 진짜요?!”
“아니요. 장난인데요.”
“윽.”
뭐, 뭐냐. 노잼. 핵노잼.
나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두 분을 배웅하고 소파에 앉았다.
그러고 보니 나 오늘 한끼도 안 먹었구나.
급 허기가 져서 부엌에 가보니 죽이 끓여져 있다. 우오웅. 감동이야.
[이거 먹고 빨리 나아요.
이틀 정도 쉬다가 수요일에 출근해도 된데요.
고양이랑 좋은 시간 보내요. 꼭이요!]
오 예~! 낄낄. 개 신나!
나는 포스트잇을 떼서 가슴에 꼭 끌어안았다가 다시 봤다가 하며 지랄을 떨었다.
아싸! 휴가다!
“친구야~ 나 휴가 받았지롱~ 힣힣힣.”
그렇게 포스트잇이랑 왈츠라도 출 기세로 덩실거리다가 식탁에 왼손을 딱 박고 엄청난 아픔에 다시 제 정신이 들었다가,
다시 덩실거림을 반복하다 무릎에 닿는 온기에 행동을 멈추고 내려 보았다.
“뭐어? 미친 여자 같으니까 당장 그만두라고?”
굉장히 엄한 표정으로 날 올려다 봤으니까. 난 그렇게 이해했다.
낄낄. 알았다 알았어. 나는 다시 포스트잇을 식탁 위에 붙여 놓고 그릇을 가져와 덜어서 한 입 떠먹어 보았다.
“음음- 맛있구만.”
“그르릉.”
만날 밥만 먹다가 죽 먹으니 또 맛있네. 그렇다. 나는 아파서 먹으라는 죽을 정말 맛있어서 먹고 있었다.
김 간호사님 솜씨가 싸라있네~
“헤이, 친구. 너도 먹고 싶니?”
“그렇다구우?”
“그렇지만 줄 수 없어! 왜냐면 넘 넘 넘 너~어~무 맛있거등~”
나는 거실에 가만히 앉아 있는 친구에게 괜히 말을 걸며 죽을 먹었다.
그러고 보니 맨날 사료만 먹는 친구도 참 지겹겠네. 고양이 간식이라도 사서 먹여줘야지.
김간호사님이 고양이랑 좋은 시간을 보내라고 하기도 했으니까!
“... 당분간 산엔 못 가겠네.”
날 도와준 그 부끄럼쟁이 남자를 찾고 싶었는데.
에이. 그 날렵한 스피드로 봐선 산에서 사는 사람임에 틀림없어.
속세와 담을 쌓고 사는 사람이여서 도망간 걸까? 그럼 안 찾는게 나으려나. 아니, 그래도 궁금한데...
“그치? 그래도 산엔 가지 말아야겠지?”
“크르르르.”
“그래 그래. 내가 무슨 산 매니아도 아니구 말이야. 흐아아암- 김 간호사님 말대로 집에서 쉬어야겠다~”
방금 잤는데 왜 또 졸리지. 슈돌 보고 자려고 했는데 점점 잠이 쏟아진다. 아아- 아직 다솔이 안 나왔는데....
“친구... 나는.... 전사한다...”
결국 이순신 장군님이 전사하시듯 소파에 툴썩 쓰러지듯 누워 그대로 잠들었다.
내 노잼드립에 친구 표정이 싸늘하게 굳었을 상상을 하니 뭔가 웃기다.
가끔 보면 말도 알아 듣는 것 같구...
진짜 사람 같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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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생에 치여서 댓글 다 못 달아 드리는 거 죄송해요!ㅠㅠㅠ
그래도 다 읽어봐요 관심과 애정 감사합니다~!
아 그리고 저번 편에서 투표 결과가 거의 메일링 쪽으로 기울고 있네요 ㅎ.ㅎ
후후.
역시 독자님들의 마음 아주 잘알겠습니다ㅎ.ㅎ/
아래 암호닉에 혹시나 누락되신 분들~
한 번씩 더 신청해주시구요
새로 신청도 제한 없이 받아요^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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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쮸뿌쮸
윤기야
한편 더 연재하고 나면 메일링입니다
꼭 확인해주세요오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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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방탄 찐팬이 올린 위버스 글인데 읽어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