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마무-넌 is 뭔들
그렇게 눈물겨운 간장 계란밥을 영접하고, 몇 분이 채 지나지 않아 엄마가 마트에서 이것저것을 사들고 돌아왔다.
예전 같으면 냅다 장바구니부터 뒤졌을 텐데 문 여는 소리가 나자마자 성난 개처럼 뛰쳐나가 윗집 남자 얘기를 늘어놓는다. 엄마, 내가 아까 희한한 경험을 했어.
"윗집에 어떤 남자 살아?"
"웬일로 네가 이웃집 사정을 다 묻냐, 장바구니 구경은 관두고?"
"아니, 그 남자 좀 미친 사람 같애."
비속어에 돌아오는 건 등짝 스매쉬뿐이었다. 재차 묻는 질문에는 모른다는 대답이 따랐다.
'아니, 엄마 있잖아.'라는 말과 함께 오늘 일을 자초지종 설명하니 피식피식 웃어 보이다가는 그런 얘기는 이 아파트 10년 살면서 처음 듣는다고 한다.
'세상에 윗집 사는 이웃도 몰라?'라고 물을려던 찰나, '근데 옆집 사람 요새 안 보인다, 이사 갔다니?' 하는 엄마의 물음에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윗집남자 민윤기 01 (부제: 심장아 살아주세요)
Q. 백수라는 직업에 걸맞게 옆에 없으면 허전한 것이 있다고.
A. 과자.(웃음)
가만히 누워 노트북을 두드리던 나는 대충 야상을 걸치고 지갑을 챙겼다. 입이 근질근질했기 때문이다.
나는 편의점 가기 전이 세상에서 제일 설렌다. 뭐 먹지? 뭐 사지? 당장에 눈앞에 보이는 건 뭐라도 다 먹어치울 듯한 표정으로 문 밖을 나선다.
야상 모자를 뒤집어쓰며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는데 20층부터 잘 내려오던 엘리베이터가 10층에서 잠시 멈춘다. 아 씨, 꼭 바로 위층에서 멈춰버린다니ㄲ,
10층?????????????윗집????????????????????????????
이런 굿 타이밍이 있나, 이건 정말 데스티니다. 빼도 박도 못하게 윗집 남자 일 거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진즉에 이어폰이라도 들고 와서 볼륨 최대로 키우고 눈코입이라도 틀어놓을걸... 춤이라도 외워둘걸... 아 눈코입 춤 없나? 하여튼 수컷이면 누구 한 놈 걸려봐라. 신명 나게 비웃어주지. 몇 번이고 다짐하며 야상 지퍼를 고쳐 잠근다. 층이 내려오길 기다리다가 드디어 9층. 문이 열리는데,
"..."
??????
?????????????
??????????????????????????????????????????????????????????????
내가 지금 무엇을 마주하고 있는가. 그쪽에 서 계신 요정님은 누구시고, 나는 왜 여기 서있으세요?
갑작스럽게 몰아닥친 존잘님에 적잖게 당황한 나는 적정 시간이 지나고 엘리베이터 문이 닫힐 때까지도 움직일 수 없었다.
시간을 달려서...3분 전으로...돌아갈 수만 있다면...
"안타요?"
남자가 몇 번 나를 훑어보더니 묻는다. 입맛은 왜 다시세요.... 왜 그렇게 쳐다보세요... 아무 짓도 안 했는데 괜스레 죄지은 기분이 들었다. 분명 몇 분 전까지만 해도 신명 나게 비웃어 준다고 그렇게 다짐했는데, 지금 저 남자가 날 비웃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예?...아, 예."
타야죠...과자 사러 가야죠, 편의점 가야죠... 실은 과자고 뭐고 엘리베이터를 타기 전으로 시간을 돌리고 싶었다. 하느님 예수님 부처님 시바신님, 제가 종교는 없지만 보고 계신가요? 시간을 돌려주실 수 있다면 계란 간장밥을 만들기 전으로 데려 가 주세요, 그 시간에 일어나지 않고 영원히 잠들고만 싶어요...
우습겠지만 그 날 신호를 보내오던 내 대장이 미워지기 시작하면서 모든 게 원망스러워졌다. 우리 엄마는 왜 윗집 남자를 모르는가, 나는 왜 쓸데없는 오기가 발동한 것인가. 계획대로 미친년처럼 이어폰 꼽고 엘리베이터 앞에서 춤 췄으면 아마 난 다음 날 저세상 갔을거다. 아니 근데 나 지금 꼴이, 윗집 남자가, 존나 잘생겼고요.
"어디 아파요?"
겨우 발걸음을 옮겨 엘리베이터에 올라타자마자 거짓말처럼 얼굴이 새빨게지면서 연신 기침이 나왔다. 덕분에 남자가 얼굴을 들이밀며 묻는다. 제발...제발 얼굴...얼굴 들이밀지 마세요, 제발...제 심장 아파줍니다..
"으, 아니요. 괜찮..아요."
"얼굴이 이렇게 시뻘건데, 걸을 수 있겠어요?"
제발 더 이상의 호의는 다메요...그만해주셔야 제가 걸음을 걸을 수가 있어요.......
남자가 연신 묻는 사이에 1층에 도착했다는 엘리베이터의 신호가 울리고 문이 열렸다. 최대한 모자를 눌러쓰며 굼벵이 마냥 움츠려있던 나는 문이 열림과 동시에 남자를 뿌리치고 잽싸게 밖으로 뛰어나갔다. 머지않아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아 버리고 말았지만.
'하..............................................'
나 새끼가 긴장하거나 당황할 때마다 나오는 버릇들이었다. 홍조에 말 못하고 다리 힘까지 풀려버리는 게 딱 완벽한 병신이었다.
뒤에서 남자의 발소리가 들려온다. 아 내 인생이여...
"저기요, 안 괜찮아보이는데 어느 호수에 사세요?"
"구백.......이,호."
"어, 902호? 나 윗층사는데, 1002호."
알아요......잘 알아요 태양씨...
"혼자 일어설 수 있어요?"
"괜, 찮아요. 가던 길 가세요..."
"진짜 괜찮은 거 맞죠?"
"...네에."
"그럼 바빠서 먼저 가 보겠습니다. 다음에 또 봐요, 902호."
끝으로 날 두어 번 더 살펴보더니 남자가 유유히 자리를 떴다. 혼자 남아 바닥에 쓰러져있는 내 꼴은 우습다 못해 애잔하기까지 하다. 다음에 또 보자니, 세상이 뒤바뀌어도 절대 그럴 일은 없을 거다. 입술을 앙 다물며 바닥을 짚고 일어서려는데 발에 무언가 밟힌다. 명찰?
"민.. 윤..... 기."
이름으로 보이는 글자 밑에 누군가 정성스레 새겨 놓은 호텔리어라는 글자가 다시 한 번 내 심금을 울렸다. 엄마 세상에 저 얼굴에 직업이 호텔리어래요. 저 이 남자 놓치고 싶지 않습니다. 명찰을 쥐고 일어서는데 우연인지 필연인지 눈앞에 보이는 거울에 강제로 내 꼴을 확인당했다. 그리고 난 다시 한 번 다짐한다. 저 남자 다시 만나면 내가 양심 없는 미친년이라고. 그러면서도 바보같이 고민한다. 그럼 이 망할 명찰은 어떻게 전해주냐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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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감사드립니다. 댓글 달아주신 분들도 모두 감사드려요.
포인트를 걸어두려고 했으나 분량이 넘나 창렬이기에.....(((((양심있는여자)))))
앞으로 열심히 연재할게요♡ 끝까지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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