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번째 편지 벛꽃이 흐드러진다. 그 곳은 벚꽃이 폈니? 유난히 꽃을 좋아하던 너였는데. 덩치에 안 맞게 꽃 같은거 좋아한다고 놀려댔었잖아. 내가 꽃가루 알레르기까지 있는 바람에 우리의 봄은 매년 지옥이었지. 그래도, 그래도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너와 한번쯤은 벚꽃구경 같은거 가보는건데. 사실, 오늘 태형이랑 의도치 않게 꽃길을 걸었어. 공강때 같이 점심을 먹겠다고 가다가 우연히 걸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꽃가루가 날려서 온 몸이 간지럽고 눈물까지 나는거 있지. 태형이가 당황해서 나 업고 병원까지 뛰었잖아. 지금은 괜찮냐고? 물론. 링거 한 팩 맞으니까 다 가라앉았어. 항상 그랬잖아, 나는. 아, 밖에서 동생이 불러. 또 수학문제 좀 가르쳐 달라고 그러는 거겠지. 그럼 다음 편지에서 봐. P.S. 아까 눈물 나고 정신 없었을 때, 네 생각이 났어. 조금. 정말 조금. 여전히 보고싶어, 너. 보고싶다. 너 가면 보고싶단 말 하루에 다섯번 씩만 하기로 약속 했었는데 오늘은 그 약속 못 지켰어. 미안해. 유난히 비가 많이 와서 그랬나봐. 꽃이 다 졌어. 봄 안에서 너를 추억할 만한 모든 것들이 사라진 느낌이야. 보고싶어, 정말로. 오늘은 길게 못 쓸 것 같아. 조금 더 썼다가는 잉크가 다 번져버릴 것 같으니까. 미안해, 사랑해. P.S. 석진이가 피곤해서 미쳐버릴 것 같대. 의사가 되려면 이렇게 공부를 많이, 오래 해야하는데 너 하나 못 고친다는게 웬 말이야. 이미 죽어버린 너한테 이런 질문 하는 거 웃기지만 너는 귀신을 믿니? 하늘로 올라가지 못하고 지천을 떠도는 영혼들이 있다고 믿느냐는 말이야. 글쎄, 나는 안 믿는 편인데. 그래도 가끔 밤에 자려고 누우면 오싹할 때가 있어. 괜히 누가 나를 쳐다보는 것 같아 무섭고. 그런데 더 무서운건 뭔 줄 알아? 그렇게 섬뜩하고 무서운 내 맘을 달래줄 네가 더 이상 없다는 거야. 무서워. 무서워, 나. 나 좀 잡아줘. 수천번 수만번 외쳐도 잡아줄 네가 없단거야. 보고싶다. 보고싶어 죽겠어, 너. P.S. 귀신을 믿기로 했어. 내 곁에서 나를 섬뜩하게 만드는 존재가 너라고 생각하면 무섭지 않을테니까. 오랜만이지. 사실 조금 바빴어. 휴학도 하고, 아르바이트를 새로 구했어. 등록금은 내 손으로 벌어야겠다, 싶어서. 있지, 이렇게 말 하면 너는 믿을까? 나 요 며칠동안 네 생각 거의 안 했어. 하나도 안 했다고 하면 거짓말이지만 정말 얼마 안 했어. 이렇게 너를 가슴에 묻는건가, 생각 하니까 조금 아릿하긴 한데. 너는 잘 했다고 칭찬하겠지. 너에게 얽매여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나는 보기 싫다던 네가 아직 생생해. 너 없는 나는 상상하기도 싫었는데 이렇게 또 살아지네. 나는 오늘을 또 이렇게 살아냈어. 너는 어때? P.S. 장마가 시작되면 너에게 편지 쓰는걸 멈출거야. 너를 떠나보내겠다, 이 소리야. 아르바이트 때문에 죽을 맛이야. 음식점인데 사람들이 어찌나 까다롭던지. 우리 둘이서 갔던 곳에서도 우리를 이렇게 봤을까 걱정되더라니까. 뭐, 그래도 우리는 아르바이트생한테 항상 젠틀했던 너였으니까 이렇게 진상처럼 보이지는 않았을거야. 그치? 안 그래도 잘생긴 네가 여자 아르바이트생한테 그렇게 눈웃음 슬슬 쳐대고 그래서 많이 싸웠잖아. 지금 생각해 보니까 내가 속이 좁았나 싶기도 하고. 어쨌든, 아르바이트 정말 힘들다. 네가 나한테 아르바이트 힘들다고 하소연할 때 잘 들어줄걸 후회중이야. 후회해도 소용없는것도 잘 알고. P.S. 아르바이트생한테 눈웃음 쳐도 뭐라고 안 할게. 같이 딱 한번만 더 밥 먹고싶다. 오늘따라 네가 유난히 사무쳐. P.S. 다음주부터 장마가 시작될 거래. 빗소리를 들으며 쓰고있어. 이제 너를 생각해도 그렇게 가슴 아프지 않아. 정말로. 네가 사무쳐 숨이 턱턱 막혀올 때도 있었고 울다가 지쳐 그렇게 잠 들어버린 날도 수도 없이 많았지만 이젠 다 괜찮아. 괜찮을 거야. 네가 마지막에 내게 했던 말 처럼 다른 사랑을 찾아보기로 했어. 너한테 떳떳해지려고. 하지만 변하지 않는건 너는 내 첫사랑이라는 거야. 나를 좋아해줘서 고마웠어. 내 추억의 한자락을 오롯이 너로 수놓을 수 있어서 감사해. 고마웠어, 내 전부였던 정국아. 안녕. P.S. 가끔 네가 참을 수 없이 그리워지면 그때는 네가 좀 참아줘. 그리고 나 좀 따뜻하게 안아주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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