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시밍규]님 신청글입니다.
![[세븐틴/원우] 꽃,비 내리는 겨울 | 인스티즈](http://file2.instiz.net/data/cached_img/upload/2016/01/24/2/8583369fd02101480217b28e6895b107.gif)
[세븐틴/원우] 꽃,비 내리는 겨울
W. 뿌반장
"원우야, 졸업 축하해."
"네, 고마워요. 엄마."
"못가서 미안해.."
"괜찮아요, 졸업식이 뭐라고. 다녀올게요."
응, 잘다녀와 우리 아들. 아 맞다, 나중에 비온대. 우산 챙겨가. 현관 구석 접이식 우산을 가방에 넣으며 밖으로 나선다. 진짜 다녀올게요. 마지막까지 현관 앞에서 미안한 표정으로 손을 흔드는 엄마에게 꾸벅 목례를 하고 문을 닫는다. 나 취직하고 나면 엄마가 좀 덜 바쁘려나, 아 그 땐 내가 바쁘려나. 아직 꽤 남은 미래 생각을 하며 아파트 라인을 나섰다. 윽, 아침 바람이 매섭게 뺨을 스쳤다. 해님도 추운지 구름이불을 덮어 살짝 어둑한 주변, 한적한 등교길이 눈에 익숙하다. 으, 추워. 외투 깃을 여미고 발걸음을 빨리 한다. 점점 소란스러워지는 주변, 가까이 보이는 학교. 이제 학교도 마지막이구나. 3년 동안 질리도록 걸었던 길, 쉬는 시간 마다 출석도장 찍던 매점, 부모님보다도 많이 보던 친구들까지. 이제 다 마지막이구나.
'제 38회 반장고등학교 졸업식'
너 보는 날도 오늘이 마지막이구나.
-
생각해보면 너와는 비오는 날 인연이 많았지 싶다. 초등학교 때 였을까, 장마가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초등학교 4학년 쯤 그 초여름. 난 중앙현관에 퍼질러 앉아 무심히 퍼붓는 장대비를 바라보며 울상을 짓고 있었다. 우산을 빌려줄 친구들도 없었고, 우산을 들고 날 데리러 올 엄마도 바빴다. 동생은 그 때 유치원에서 낮잠이나 자고 있지 않았을까. 아침에 집을 나서며 흘끗 보고만 나온 우산이 눈에 밟혔다. 가져올걸, 언제 그치려나. 그 때 내 어깨를 톡톡 두드린게 너였다.
"우산 같이 쓸래?"
그 때 참 착한 미소를 지었었다. 넌 내게 선심을 쓴 것인데, 나는 무슨 이유에선지 너에게 아무 대답도 못하고 멍하니 쳐다만 보다가 가방을 뒤집어 쓰고 냅다 뛰었다. 뒤에서 니가 날 어떻게 바라보았을지는 모르겠다. 날 이상하게 생각하고 계속 쳐다봤을지, 아니면 아무 생각 없이 우산을 쓰고 집으로 유유히 돌아갔을지. 아니면 왜 그렇게 뛰어가냐고 물어보고 싶었을까? 대답을 해주지 못해 아쉽지만 나도 그 이유를 잘 모르겠다. 초등학교 4학년, 그 어린 나이에 처음으로 놀라 심장이 뛰는 것을 느꼈을까. 한참을 뛰고 뛰다 결국 포기하고 터덜터덜 걸어 집에 돌아갔다. 그 다음 날, 나는 지독한 감기에 걸렸고 학교를 가지 못했다. 열심히 콜록대면서도 니 생각이 났던건, 그 때 부터인가보다. 내가 널 좋아하게 된 게.
-
그 여름날 이후로 너에게 말을 건 적도, 지나가다 마주쳐 인사를 한 적도 없지만 내 머릿 속에 니 모습은 꽤나 많이 남아있었다. 멍하니 있다가 내 시선이 너를 향해 있는걸 깨닫고 화들짝 놀라며 깨어난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으니. 졸업이 다가오면서 아직 말도 한번 못 걸어봤는데 떨어질까 마음도 많이 졸였었다. 너와 같은 중학교에 배정받았단 소식을 들었을 땐 너무 신나 아직 초등학교 저학년이었던 동생을 붙잡고 얼마나 실실 거렸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여전히 말은 한 마디도 걸지 못했었다. 중학교 1학년 벚꽃이 지던 때, 너와 처음으로 말을 해본 날이 기억난다.
"야 거기 공 좀 차줘!"
권순영이 크게 소리를 질렀지만 아무도 공을 차주지 않았다. 에이, 여자애들 신발은 공 닿으면 바로 닳냐? 옆에서 투덜대는 권순영을 대충 어루어 달래고 공을 주우러 뛰어갔을 때. 그 때 니가 스탠드에 앉아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솔직히 나를 쳐다보고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그저 공을 주워 고개를 들었을 때 너와 눈이 마주쳤었다. 하마터면 그 자리에 그대로 굳어버릴 뻔 했다. 벚꽃잎은 빙글빙글 춤을 추며 바닥으로 떨어지고 니 머리카락과 치마자락 위에도 떨어졌다. 꽃비. 니가 벚꽃잎에 젖어드는 것 처럼 보였다. 야, 전원우 공 만들어오냐! 권순영이 지른 소리에 또 화들짝 깨어나 운동장으로 달려가면서도 계속 뒤를 힐끗 쳐다봤다. 여전히 내 쪽을 바라보고 있는 너 때문에 공이고 뭐고, 눈에 들어올 리 만무했다. 결국 음료수 내기를 한 경기에서 지고 나 때문이라며 투덜거리는 권순영을 달래며 매점으로 향하고 있었다.
"너 전원우 맞아?"
"응? 어 맞는데."
"니네 담임쌤이 너 찾아. 아 그리고 저기, 너 반장초 맞지."
"어? 어.."
"어쩐지, 얼굴이 익숙하더라. 나도 반장초야, 나 알아?"
"어..알 것 같아."
"나 성이름이야. 축구 잘하던데. 다음에 보면 인사해-"
그 때 선생님이 무슨 일로 날 불렀는지는 기억도 나질 않는다. 아마 그 때도 너와 말한거에 심장이 뛰어서 선생님 말은 하나도 귀담아 듣지 않았을게 분명하다. 혹시나 니가 그 초여름날을 기억하고 있을까, 얼굴이 새빨개지진 않았을까, 너만 보면 신경쓸 게 너무 많아서 그래서 더 심장이 뛰었을까. 뒤돌아 가는 니 머리카락 위에 아직 벚꽃잎 한 잎이 붙어있다. 분명 남이 듣는다면 오글거린다며 몸서리 칠 말이겠지만, 그 꽃비 속 니 모습에 뭐가 꽃이고 뭐가 너 였는지. 꽃잎에 젖어든 니가 진짜 한 송이의 꽃이 되었던건지.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
난 내 성격을 자주 탓했다. 소심하고 쓸데없는 걱정이 참 많은, 그래서 너에게도 인사를 자주 못했다. 처음에는 밝게 웃으며 먼저 인사해주던 너도 어색한 내 반응에 뻘줌했는지 그냥 지나치는 횟수가 잦아졌다. 그게 참 슬펐는데도 먼저 인사하지 못했다. 지금 생각하면 참 바보같지만 그 때는 차마 입이 떨어지질 않았었다. 사실, 지금도 인사 못하는걸. 내가 처음 너에게 인사를 먼저 했던 날, 그 때도 동생이 아니었음 입도 못 열었지 싶다.
"형아, 비 와-"
초등학교 입구에 있던 수신자 부담 콜렉트콜로 걸려온 전화였다. 그러게 우산 챙겨 가라니까, 아침부터 단풍 밟을 거라며 신나게 뛰어가던 동생의 뒷모습이 기억났다. 개교기념일이라 좀 쉬나 했더니, 비가 날 괴롭히는 구나. 검정색 큰 우산과 동생의 파워레인저 우산을 들고 학교로 향하는 길, 이미 다 비에 불어버린 단풍들은 밟아도 바스락 소리를 안냈다. 또, 단풍 소리 안난다고 울상이겠네. 아니나 다를까 동생은 단풍 조각을 밟아보더니 비 때문이라며, 비 밉다며 투덜댄다. 괜히 신경질을 내며 물웅덩이 위를 콩콩 뛰며 물을 튀기는 동생에 살짝 표정을 찡그렸다. 너 그러다가 주머니에 있는 거 떨어뜨린다.
"형아.. 나 뽀송이 없어졌어,"
내 이럴줄 알았지, 뽀송이라고 제 손에 꼭 들어오는 공 모양의 인형을 어디다 떨어뜨린건지 없다고 울상이다. 그러게 내가 뛰지 말랬지. 일단 집에 가, 비와서 어차피 찾아도 버려야 돼. 하지만 내 말이 들릴 리가 없었다. 눈에 눈물을 잔뜩 매달고 왔던 길을 돌아가는 동생을 한숨을 쉬고 따라간다. 이러다 학교까지 다시 가겠네. 얼마나 걸었을까, 저만치 앞으로 간 동생이 다짜고짜 누나! 하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그 때, 너는 뽀송이를 손에 들고 내 동생 앞에 서있었지.
"누나, 그거 내꺼야!"
"아- 이거 누나가 저기 앞에 물웅덩이에서 주웠어. 자,"
"..안녕,"
"어, 안녕! 니 동생이야? 너 많이 닮았다-"
내 동생 앞에 쪼그리고 앉아 날 한번, 동생을 한번 쳐다보고 헤헤 웃는 니 모습에 동생 아니였음 그 자리에 얼어 붙어버릴 뻔 했다. 형아- 이제 가자. 내 바짓단을 잡아 당기는 동생에 정신을 차리고 널 보자 여전히 해맑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줬다. 누나가 찾아준거다? 잘가- 원우야, 잘가. 학교에서 봐! 돌아가는 니 뒷모습을 꽤 오래 지켜보고 있었던 것 같다. 물웅덩이 주변을 콩콩 뛰며 뛰어가는 니 모습이 귀여워 피식 웃음이 나왔다. 형아- 빨리 오라니깐? 이미 저만치 앞으로 가 나에게 손짓하는 동생을 따라 갔다. 괜히 물웅덩이 앞에서 살짝 뛰었다. 튀기는 빗방울에 바짓단이 조금 더러워졌지만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물웅덩이에 떠오른 단풍잎 한 조각이 참 예쁘게 느껴지던 날이었다.
-
"야, 비 온다."
"너 우산 가져왔냐?"
"아니- 망했다. 뛰어 가야겠네."
강당 문 앞에 졸업식을 끝내고 나온 학생들이 모였다. 가방을 뒤집어 쓰고 뛰어가는 애들, 부모님의 차를 타는 애들, 여유로이 우산을 펴는 아이들까지. 하필 오늘같은 날 비라며 투덜대는 아이들이 내 옆을 지나갔다. 난 좋은데, 간만에 내리는 촉촉한 겨울비가 나는 꽤 맘에 들었다. 그러고보니, 너와 겨울비에 대한 추억은 없다. 아쉽네, 졸업식장 안에서도 눈으로 열심히 너를 찾았지만 너는 보이지 않았다. 오늘 봤으면 좋았을텐데. 어제 잠에 들기 전, 확 고백해볼까. 하는 그런 생각도 있었지만 1초도 채 지나지 않아 도리질친 것이 생각났다. 얼어가지고 인사도 못하는게 고백은 무슨. 학생들이 거의 빠져나간 강당과 운동장을 돌아봤다. 이제 안녕, 내 고등학교.
"어?"
우산을 펴고 강당 밖으로 한 발짝 나갔을 때, 가방을 뒤집어 쓰고 운동장을 가로질러 뛰는 니 모습이 보였다. 무슨 생각이었을까. 머리의 사고회로보다도 빨리 난 너에게 다가갔다. 니 머리 위로 우산을 씌워주고 니 어깨를 붙잡았다. 조심스레 가방을 내리고 날 올려다보는 니 모습. 예쁘다. 머리 끝이 살짝 젖은 널 보니 예전의 봄도 떠올랐고, 늘 턱 막혀버리던 말문도 자연스러운 느낌이었다. 그래서 일까, 왠지 이 말이 하고 싶었다.
"우산 같이 쓸래?"
이슬을 머금은 한 송이 꽃, 비 내리는 겨울이었다.
[뿌반장]
학교에서 갑자기 내용 생각나서 쓰고 싶어 죽는줄 알았다요ㅠㅠ 집에 오자마자 폭풍으로 쏟아냈습니다. 의식의 흐름대로 쓴 것 같아서 살짝 맘에 걸리긴 하지만 최대한 길고, 재밌고, 설레게 쓰려고 노력했어요.. 선천적 글바보끼는 고치질 못하겠습니다..ㅎ 저희 모시밍규님은 맘에 드셨나 모르겠네요 맘에 드셔야 될텐데 엉엉. 사실 처음에는 여주 시점으로 쭉 쓰려고 했으나 글로나마 원우에게 사랑 듬뿍듬뿍 받아보려고 원우 시점으로 도중에 체인지 했습니다. 이런게 자기 만족을 위해 글쓰기라죠..ㅋㅋㅋ 암튼! 맘에 드셨으면 좋겠어요 모시밍규님 :)
고수연국 6편과 다른 이벤트 당첨자 분들 글은 조~금만 더 기다려주세요ㅠㅠ
곧 돌아오겠습니다 뿌반장이었습니다!
♡
아직 시리즈가 없어요
최신 글
위/아래글
공지사항


인스티즈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