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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눈을 가리다가도 우는 OO이를 안아 달랬다. 사실 달랠 줄 몰라서 그냥 안고 있었다. 나 때문에 고생한 OO에게 미안해서, 스스로에게 답답해서. 내 눈을 가리려다가 우는 OO이를 보니 말로 표현 할 수 없는 감정이 올라오는 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바로 나는 내 손으로 OO이 눈을 가리고 안아버렸다. 우는 모습을 보니 심장이 터져 죽을 거 같아서 안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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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은 달동네로 향했다. 버스에서 들리는 소리라곤 기사 아저씨가 틀어놓은 라디오 노래 소리 뿐이었다. 윤기는 다리를 꼬고, 팔짱을 끼고 멍하니 앞을 응시하고 있었다. 평소 같았으면 윤기가 먼저 말을 걸었을 텐데 윤기가 아무 말이 없으니 OO이는 눈치 보며 교복 치마를 만지작거렸다.
사실 윤기는 아까 전 일에 대해 후회를 하고 있었다.
‘아, 내가 왜 화를 내서. 조금만 이성적으로 행동할 걸.’
윤기는 어느 상황에 처해도 최대한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했다. 그래서 차갑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기도 했고.
그런데 OO이 앞에서는 감정적으로 되는 것이, OO이에게 미친 게 분명하다.
그렇게 계속 정적 이였을까. 치마를 만지작거리는 OO이를 발견한 윤기는 OO이 손을 턱 잡더니,
“주름진다.”
역시나 오늘도 정적은 윤기가 깨버렸다.
“..잘못했지?”
“..네.”
“말은 잘 해요.”
“...”
“진짜 잘못했으면 오늘 나랑 같이 달이나 보자.”
윤기는 버스 창문 밖, 예쁘게 뜬 달을 보며 말했다.
버스는 종점에 다다랐고 익숙한 달동네가 보였다. 둘이 달동네 오르막길을 걷고 있었을까. 어두컴컴한 골목에 윤기가 또 한 번 얼굴을 찌푸렸다. 이 길을 자신 없이 혼자 걸어온 OO이를 생각해서 그러는 거겠지. 그렇게 둘에게는 또 한 번의 정적이 찾아왔다. 하지만 그 정적은 버스 안에서와는 다른 정적이었다.
한참을 걸었을까. 어느덧 윤기네 집 앞에 도착했고, 둘은 함께 계단에 앉았다. 윤기가 이 집으로 정하게 된 이유 중 하나인, 이 계단에서 내려다보는 풍경. 언제 봐도 예뻤다.
둘이 보고 있는 풍경은 자신들이 함께 있는 장소와는 대조되는 분위기였다. 높은 빌딩에서 지치지도 않은 지, 불이 켜져 있었다. 그 안은 차갑겠지만 덕분에 이들이 서있는 달동네가 꾸며졌다. 그리고 그 빌딩 사이에 동그란 달이 빛나고 있었다. 아름다웠다.
한참을 보고 있었을까,
“오늘따라 달이 예쁘네.”
“..그러게요.”
“나 일주일동안 너 기다리면서 달 봤어.”
“...”
“근데 오늘 보는 달이 제일 예쁜 거 같아.”
“그래요?”
“응.”
그 말을 끝으로 가만히 달을 보고 있었을까.
“아까 일은 내가 미안해.”
“..제가 더 죄송해요.”
“내가 너한테 어떻게 화내. 감히 너한테.”
“...”
“너가 너무 걱정 돼서 그랬어. 화낸 건. 진짜 내가 얼마나...”
“죄송해요..”
“진짜 너가 무슨 짓 당하는 건 아닌가 걱정했잖아.”
“...”
“그래서 너 봤을 때 아무 일 없어서 너무 다행이었어. 근데 나도 모르게 그렇게 큰 소리가 나간거야. 그러니까 너가 밉거나 그런 거 절-대 아니야. 알겠지.”
“...”
“대답.”
“네..”
“착하다ㅡ 몰래 알바한 건 정말 미운데, 나 생각해줘서 너무 고마워 OO아.”
그 말을 끝으로 둘은 풍경이 아닌 서로를 응시했다.
윤기는 OO이를 보자 베시시ㅡ 웃음이 나왔고, 그 모습을 본 OO이도 살짝 미소 지었다.
달동네 사는 음악하는 민윤기 X 달동네 사는 학생 OOO
08
OO이를 보내고 나는 집으로 들어가려다 분명 방 안이 차가울거라고 생각해 연탄을 갈고 있었을까, 울리는 핸드폰에 연탄 하나를 떨어트렸다.
“아씨ㅡ진짜. 누구야.”
‘김남준’
세 글자를 보고 고개를 떨어뜨렸다. 받을까 말까 엄청난 고민을 했다. 사실 OO이 때문에 곡 작업을 일주일동안 제대로 못했다. 그 덕분에 김남준은 죽을 맛이었겠지. 한 번은 김남준이 자기 집 강아지가 없어졌다며 울고불고 난리 친 적이 있다. 그래서 한 3일 동안 곡 작업을 못했었는데 그 때의 나는
- 김남준 메일 확인
- 야 뭐해 확인해 빨리 나 지금 삘 제대로 꽂혔다고
- 전화 왜 안 받냐.
- 김남준 이 새끼야. 너 지금 개새끼 하나 때문에 나를 고생시키냐? 너 진짜 죽여 버리는 수가 있다. 메일 확인해라.
결국 강아지는 집 주변 어린이 집에 있었고 김남준은 그 날 강아지와 셀카를 찍어 ‘사랑스러운 랩몬이.. 형이 잘 지켜줄게. #멍스타그램 #사랑해’ 이딴 글을 SNS에 올렸고 그 글을 보고 빡친 나는 바로 김남준에게 전화를 걸어 이렇게 욕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욕을 했다.
잠깐 옛 생각을 했을까. 안 받으면 정말 사람새끼가 아니라고 생각해 받자마자
‘민윤기. 나 달동네 앞이다. 나와. 안 나오면 소리 지른다.
망했구나.
또다시 집 밖으로 나와 달동네 아래로 내려갔다. 그러자 보이는 익숙한 실루엣 4명에 걸음을 멈췄다. 그러자,
“빨리 안 내려와요 왜!!!”
미친 자 전정국이 소리를 질렀다.
급하게 내려와 전정국 머리를 휘갈기며
“돌았냐? 지금 시간이 몇 시인데 소리를 질러.”
“그러는 너는 미쳤냐? 일주일동안 곡 작업을 안 해?”
나에게 헤드록을 거는 김남준이다. 반항할 수 없어 그냥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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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명은 택시를 타고 근처 시내로 나와 술집으로 들어갔다. 술집에 들어서자마자 풍기는 기름 냄새와, 대학 새내기들의 술 게임하는 소리와, 누가 더 목소리 큰지 대결하는 듯 한 여러 사람들 목소리 가운데 가장 목소리 큰 4명이 있었다.
“아저씨!! 일단 소주 5병이랑 맥주 4병이랑..”
“야야! 그냥 오오로 하자”
“나 소주파이니까 칠오!”
“그럼 소주 칠, 맥주 오.. 그리고 안주는 스페,스퍄셜, 아 이거요! 빨리 주세요!!!”
“아 사이다도요!!!!”
“아직 애기냐? 사이다 먹게?”
“아 형! 형뚜 예전에 그랬자나여! 냄새 맡고 취한 적도 있으면서!”
자기는 글러먹었구나.
“하아ㅡ 술 마시려고 나 부른 거냐? 나 피곤해. 간다.”
“형 뭐하는데 요즘 그렇게 피곤해요. 여자 생겨서?”
“야 민윤기 우리가 너 술 먹으라고 부른거겠냐. 간도 안 좋은 거 우리가 다 아는데.”
“그래서 일주일동안 곡 작업 못하게 한 그 여자는 누군데.”
“민윤기가 여자가 생겼다는 소식 들었다.”
“하ㅡ”
한숨을 쉬고 자리에 앉자마자,
“그래서 누군데”
“형 사고 쳤다는데 진짜예요?”
“예쁘냐?”
“이름은? 어디 살아? 그리고 예뻐?”
“그 사람도 음악해?”
“야 이 새끼들아 한 명씩 하나씩 물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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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두 잔 술을 들이켜고 있었을까. 간이 안 좋아 술을 입에 잘 안대서 그런지 취기가 금방 올라왔다. 물론 나를 제외한 4명도 마찬가지. 술을 다 잘 못 먹어서 그런지 벌써 취한 분위기다.
“그래서 민윤기가 곡 작업도 못하게 만든 그 여자는 누구라고?”
“아니 일단 예뻐?”
“아이.. 자식들아 당연히 예쁘지. 말해 입 아파.”
“헐 예쁘대!!! 웬일이야 민윤기가~ 엉~? 여자도 안 보던 민윤기가아~”
“몇 살인데?”
“어려.”
“몇 살?”
“열...일곱.”
“...”
“...”
“...”
“..헐.”
OO이 나이를 말하자마자 애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나를 쳐다봤다. 김태형은 먹고 있던 감자튀김을 떨어트렸고 덕분에 턱에 케챱을 잔뜩 묻힌 채 나를 쳐다봤다. 어우 칠칠이. 휴지 하나를 뽑아 거칠게 닦아주자,
“형.. 쇠고랑 차세요.”
“내 핸드폰이 어디 갔나. 112에 신고를..”
“앞자리가 1일 줄은 생각지도 못 했는데..”
“와.. 그래서 지금 사귐?”
“아니..”
“뭐야 안 사겨?”
“사귄다고 한 적 없거든? 내가 일방적으로 좋아해.”
“고백은 언제하게?”
“고백하면 진짜 쇠고랑 아니야?”
“내가 좋아한다는 건 알고 있는데 제대로 고백은 안했어.. 애가 준비되면 할 거야. 어리니까..”
“뭐야 그 애는 너 싫어해? 준비 된 걸 어떻게 알아.”
“몰라.. 싫어하나. 그건 아니겠지.”
“그냥 고백해. 언제까지 기다려.”
“미친. 애, 놀라.”
“연애 안 해본 티 나네요. 형”
“새끼가. 너도 연애 많이 안 했잖아-”
‘준비 된 걸 어떻게 알아.’ 그 말을 듣고는 잠시 생각을 했다. 그러게 말이다. 어떻게 아냐. 그리고 알고 보니 OO이는 나를 싫어하는 건 아닐까. 애가 착해빠져서 그냥 마지못해 내가 좋다는 걸 받아주는 거 아닐까. 우울한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마음이 뒤숭숭해져 술을 잔뜩 먹었다. 모르겠다. 간아 미안하다. 오늘만 버텨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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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노래인지 모르겠는 노래 부르는 김남준, 그 옆에서 ‘에헹-에헹-’ 실 없이 웃으며 춤추는 김태형, 평소에는 희망 넘치더니 ‘오늘도 술을 마셨네. 어머니 아부지 죄송해요.’ 라며 절망의 끝을 달리는 정호석, 클럽 노래 틀고는 술 집 소파 뛰어다니며 동영상 찍는 전정국, 안 그래도 하얀 얼굴 토해서 더 사색이 된 민윤기.
이 총체적 난국 속,
“아아ㅡ 술도 못 마시면서 도대체 왜!”
새벽 5시. 이들의 뒤처리 담당 박지민이 있었다.
지민이는 그들보다 작은 몸을 가지고 있어서 택시를 태우는데 한참이고 애를 먹었다. ‘아 진짜 내가 운동이라도 안했으면 어쩔 뻔 했어.’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지민이였다. 힘겹게 3명을 택시를 태우고 보냈을까. 화장실을 들락날락거리며 점점 얼굴이 하애지는 윤기를 보고 한숨을 쉬더니
“형. 형만 남았어요. 빨리 가요. 택시 타게.”
“아 너 집에 가. 나.. 토해서 조금 깼어.”
“그래놓고 또 연락 안 할 거면서. 일단은 가자고요.”
“그래.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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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를 잡아 윤기를 태우자 윤기는 ‘야 늦기도 늦었고 애들 뒤처리한다고 힘들었을 텐데 너 그냥 우리 집에서 자고 가라’ 라는 말에 지민이와 함께 달동네로 향했다.
“형 집 어디였죠?”
“저기 위에..”
윤기는 나름대로 술에 깼다고 생각했지만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전혀 아니었다. 오르막길을 올라가는데 비틀비틀 거리는 게 지민이가 옆에서 도와주지 않았다면 바로 길바닥행이였다. 윤기는 지민이 품에 거의 안긴 채로 오르막길을 오르고 있었다. 지민은 ‘윤기형이 나랑 키가 비슷해서 다행이다.’는 생각과 함께 바닥을 보며 걷고 있었을까.
“야 저기.. 초록색 쪽문.”
윤기의 목소리에 고개를 들어보자 어린 여자아이와 눈이 마주친 지민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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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떠보니 오후 1시였다. 속이 메슥거리는 게 참 기분 나빴다. 그나저나 어떻게 집 왔는지 기억이 안 나는 게, “필름 끊겼구나.” 혹시나 실수 했을까 걱정되는 마음에 핸드폰을 꺼내보자 핸드폰이 켜지지 않았다. 배터리가 나간 모양이다. 꿈틀거려 충전기 있는 쪽으로 가서 충전을 하다가 핸드폰을 켜보자 카톡이 300+이라고 써있었다. 아직까지도 연락 하고 있는 모양인지, 징징ㅡ 핸드폰이 울렸다. 이렇게 연락 할 사람은 오늘 새벽을 달렸던 그 애들뿐이라는 생각에 들어가자 반응에 정신이 들었다.
- 나 윤기형이 좋아한다는 애 본거같은데ㅋㅋ 좀 예쁘네? 윤기형 보는 눈 좀 있네ㅋㅋㅋㅋㅋ 06:24am
- (사진) 06:25am
- 같이 셀카도 찍었당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06:25am
- 헐 뭐야? 스티커 저거 뭔데? 내려. 10:43am
- 원본 내놔라 박지민 11:21am
- ㅋㅋㅋㅋㅋㅋㅋ윤기형~ 저한테 잘하세요~ 아무것도 모르고 자시는 거 같은데 11:42am
- 그리고 빨리 고백하세요! 전 이제 잘 거예요 11:42am
- 박지민 죽여 버려. 01:21pm
박지민은 OO이 얼굴은 스티커로 가린 채 사진을 단톡방에 올렸다. OO이 얼굴이 가려져서 다행이면서도
“OO이 나랑도 아직 셀카 안 찍어봤는데 왜 너가 먼저 찍냐.”
질투심에 화도 났다
그래서 곧바로 박지민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진짜 자고 있는 모양인지 전화를 받지 않았다.
가만히 누워 분을 삭이던 윤기는 갑자기 생각이 난 듯, ‘박지민이 OO이를 봤으니까, OO이도 봤을 거 아니야.’ 라는 생각에 곧바로 비니를 쓰고 OO이 집으로 향했다.
OO이 집 앞에 오면 여전히 노란 개나리가 나를 반겼다. 개나리 때문인지 개나리를 좋아하는 OO이 때문인지, 이제는 개나리만 봐도 웃음이 났다. 웃으며 윤기가 갈색 쪽문을 열려고 했지만 열리지 않았다.
“OO아ㅡ”
이름을 불렀지만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게 집 안에 없는 모양이다. 또 다시 걱정이 됐지만 ‘낮이니까 괜찮겠지.’ 라는 생각으로 까치발을 살짝 들어보는 윤기였다. OO이 집은 윤기가 까치발을 들면 그 안에가 좀 보였는데 해가 잘 드는 곳에 자신이 선물해준 다알리아 화분을 보고 활짝 웃어보였다.
“여기서 뭐하세요?”
“어,어..어? 언제 왔어?”
“방금이요- 여기서 뭐하세요?”
윤기는 갑자기 들려오는 OO이 목소리에 많이 놀란 듯, 물어보려던 것도 까먹고 얼굴이 빨개지며 말을 더듬었다. 그러다가 다시 표정관리를 하며,
“아니, 너.. 너 그 봤지?”
“..술 먹고 들어오신 거요?”
“봤어?..”
“네. 오빠 친구 분도 봤는데..”
이 얘기를 들은 윤기는 그제야 ‘지민이가 나를 데려다 줬구나.’ 라고 깨달았다. 윤기는 마음속으로 ‘술이 원수지. 진짜. 다신 안 먹어.’ 혼자 다짐도 했다.
“걔랑 새벽에 무슨 얘기 했어?”
“...그냥 별 얘기 안 했어요. 뭐, 그냥. 여기서 사는 애냐고.”
“근데 너는 걔 어떻게 봤는데?”
“그냥 내려가는 길에..”
말을 흘리는 OO이가 의심스러운 윤기였다. 하지만 자신은 필름이 끊겨서 기억이 하나도 나지 않아서 물어볼 수가 없었다. 기억나지 않는 오늘 새벽을 떠오르려고 애쓰고 있었을까, OO이는 윤기에게 검정색 비닐봉지를 내밀었다.
“...어제 술 많이 마신 거 같던데. 저 해장국 사왔어요. 드세요.”
둘은 OO이 집에 들어왔다. OO이는 이제 집 가서 먹으라는 의미였는데 윤기는 그렇게 받아들이지 못했나보다.
조용히 먹고 있었을까 윤기는 또다시
걔가 너한테 뭐라 하지 않았지?”
“..네.”
“내가 너한테 뭐라 하지도 않았지.”
“네..”
“진짜지.”
“네. 진짜.”
“내 눈 보고 얘기해봐.”
“...”
“진짜 없어?”
OO이는 윤기의 눈을 못 마주쳤다. 그 모습을 보고 윤기는 무슨 일이 있었다고 확신했다.
둘이 해장국을 다 먹고 OO이가 싱크대에 그릇을 내려놓고 고무장갑을 들었을까 윤기가 그 고무장갑을 뺏더니,
“설거지 내가 해. 넌 그냥 가만히 있어.”
“아니..제가 할게요.”
“가. 저리.”
“아니. 안되는데..”
“안되는 게 어디 있어. 나 설거지 잘 해. 그릇 안 깨먹어.”
고무장갑을 끼는 윤기를 본 OO이는 급하게 자기 방으로 들어가더니 서랍을 뒤적였다. 그 모습을 보면서 고무장갑을 끼고 물을 켰을까, 갑자기 OO이는 물을 끄더니 윤기의 팔을 잡고 고무장갑을 벗겼다.
“야아ㅡ 왜이래? 내가 한다니까?”
“아니.. 손톱..”
윤기의 손톱은 울퉁불퉁 잔뜩 물어 뜯겨져 있었다. 너무 짧아서 보는 사람이 더 아파보였다. 이 상처는 어제 OO이 찾으러 다니면서 불안한 나머지 물어뜯은 흔적이었다. 그 손톱을 지금 본 윤기는 애써 괜찮은 척 했다.
“아 뭐 이런 거 가지고 유난이야. 그냥 설거지 하면 되지.”
“그래도요.. 손톱 물어뜯지 마세요. 안 좋아요.”
라며 심하게 뜯긴 세 손가락에 데일밴드를 붙혀줬다.
결국 설거지는 OO이가 하게 됐고 윤기는 그 모습을 뒤에서 쳐다보고는 했다. 둘이 그렇게 소소하지만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을까, 갑자기 울리는 진동에 윤기는 핸드폰을 쳐다봤다.
- 독거노인 취소할게 너가 연애 좀 했으면 좋겠네.
- 형아 고백 못하면 바보
- 112에 신고 안 할게 고백해라
오지랖 넓은 카톡을 보고 윤기의 몸은 무시했지만 정신은 그러지 않았다. 윤기는 연애를 제대로 해본 경험도 없고 먼저 고백을 해본 경험도 없어서 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는 눈치였다. 좋다고 말은 했는데 사귀자고 말은 안했고, 근데 좋다고는 했고. 참 이 상황이 애매모호하다고 생각하지만 뭐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는 윤기였다.
주말 알바를 가야한다며 나갈 준비를 하는 OO이를 보고 윤기는 늦게 일어나서 그런지 함께 있는 시간이 짧다고 느꼈다.
“조심히 갔다 와.”
“네. 아, 오늘 밤에 잠깐 나와 주세요!”
“..어?”
“오늘.. 잠깐 나와 주시면 안 돼요?”
“너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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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O이가 알바를 끝마치고 올라가는 길, 손에는 빵 비닐봉지 말고 낯선 쇼핑백이 들려져 있었다. 윤기는 중간 가게에서 OO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왔어? 오늘은 올라오는 데 좀 무서웠나봐? 나와 달라고 하고..”
“음.. 아니 줄게 있어서요.”
“어?”
“이거요. 조금 늦었지만 생일 축하드려요. 감사해요.”
OO이는 손에 들려있는 낯선 쇼핑백을 윤기에게 내밀었다. 윤기는 얼떨결에 그 선물을 받았고 곧 그 선물은 몰래 알바하며 번 돈으로 사와 얼굴을 찌푸렸다. 한 소리를 하려는 듯하다,
“몰래 알바해서 번 돈으로 줘서 죄송해요. 근데 진짜 그냥 받아주시면 안돼요? 그래도 제 마음인데.”
OO이의 말에 아무 말도 못하고 말았다.
“...이번만 용서하는 거야. 마음이 예뻐서. 앞으로는 절대 안 돼.”
“네. 알겠어요.”
“고마워, 너무. 잘 입을게.”
윤기는 쇼핑백을 끌어안았다.
OO이가 준 선물을 뜯어보자 약간 푸른빛이 도는 와이셔츠였다. 윤기는 힙합을 해서 이런 와이셔츠는 중, 고등학교 교복을 제외하고 잘 입지 않았다. 결혼식이나 상 치러 갈 때나 입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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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 윤기는 일찍 일어나 와이셔츠를 입어보았다.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어색한지 한참을 거울을 쳐다보는 윤기였다. 와이셔츠를 입으니 넥타이도 바지도 머리 스타일도 구두도.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당장이라도 벗어 버리고 싶었지만 OO이가 준 첫 번째 소중한 선물이기 때문에 하루만 참아보자 라는 생각으로 입고 출근했다.
"..윤기씨?“
“..아, 예. 안녕하세요.”
“갑자기 무슨 와이셔츠야?”
“아.. 뭐 무슨.. 네. 한번..”
“오늘 윤기씨 봤어요? 와이셔츠 입고 왔어요!”
“머리도 깔끔하게 내렸던데요?”
“평소에는 몰랐는데 저렇게 오니까...”
깔끔하게 차려 입고 온 윤기 덕분에 관심 없던 여직원들까지도 윤기크러쉬를 당하고 만 날이었다. 관심 있던 여직원들은 뭐, 말 안 해도 뻔했다.
퇴근하라는 말에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었을까. 여직원 무리가 윤기에게 오더니,
“오늘 정말 멋있어요! 윤기씨- 오늘 저희 요 밑에서 맥주 한 잔 할 건데, 같이 하실래요?”
“같이 가요-”
까르륵 거리는 여직원들을 보다 짧게 울리는 진동에 핸드폰에 시선을 옮겼다.
‘박지민’
그 카톡을 본 윤기는 멍하니 핸드폰이 스스로 꺼질 때까지 쳐다보다가 곧바로 OO이에게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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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동네에 도착한 윤기는 오랜만에 신은 구두가 꽤나 아픈지 오르막길을 오르며 욕을 했다. 그러다가도 자신의 모습을 어서 OO이에게 보여주고 싶고, 그냥 지금 당장 보고 싶어서 허겁지겁 올라가는 윤기였다.
갈색 쪽문 앞에 서서 자신의 옷매무새를 다듬고
“OO아ㅡ”
라고 부르자 OO이가 나왔다.
“오늘 나 너가 준 옷 입었다. 괜찮아?”
“네! 진짜 잘 어울리는 거 같아요.”
“나도 너가 선물해줘서 그런가 되게 좋더라.”
“...”
"살면서 제일 행복한 거 같아, 이번 생일이.”
“에이ㅡ”
“진짜야. 나 여기 오면서 되게 행복해졌어. 달동네에 뭐가 있나봐.”
“뭐가 있어요 달동네에-”
“왜. 넌 달동네 싫어?”
“싫지는 않은데, 좋지도 않아요.”
“왜.”
“그냥. 뭐 좋은 기억이 있는 장소는 아닌 거 같아요. 아무래도 가난하고 힘든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니깐.”
“그래? 그래서 난 사람 사는 냄새가 나던데. 그리고 나는 달동네에서 좋은 기억밖에 없어.”
달동네에서 좋은 기억밖에 없다는 윤기의 말을 듣고 OO이는 놀란 듯 눈을 크게 뜨더니,
“오빠도 달동네에서 살았어요?”
“아니. 이번이 처음인데.”
“에이, 뭐예요-”
“너를 만났잖아, 이 곳, 달동네에서.”
“...”
“갑작스럽게 말해서 미안하고 기다린다고 했는데 일단 너한테 확신을 줘야겠어. 너도 알잖아 내가 너 많이 좋아하는 거. 이런 내 마음이 변치는 않아. 내가 참 부족하고 표현도 잘 못해. 그런 나 믿고 겨울 속에서 나와 볼래. 그 속에서 나오면 넌 이제 새로운 기록, 어쩌면 새로운 역사를 쓸 수도 있어. 물론 나와 함께. 그 말은, 나랑 한번 만나볼까. OO아. 만나자.”
‘박지민’
- 좋아하는 여자한테 확신을 주세요, 형. 06:14pm
안녕하세요ㅡ! 지인짜 오랜만인 기분이네요ㅠㅅㅠ... 한국에 어제 밤 도착하고 쓰려다가 너무 피곤해서 거의 기절하듯 잤어요..
2시부터 글 쓰기 시작하고 지금에서야 올리네요! 오늘은 평소보다 조금 더 글이 많은데.. 음....
아무도 눈치 못 챌 거 같아서 또 부연설명 들어갑니다.
윤기는 술 마시면서 고백을 해야하나 고민을 합니다. 그러나 하지 않죠. 그래서 해장국 먹을 때도 카톡이 오지만 역시나 고민만 할 뿐입니다.
그러다 지민이의 '확신'이라는 단어를 보고 만나자고 고백을 해버리는 윤기입니다.
사실 과거에 대한 얘기를 안해서 그렇지 지민과 윤기는 정말 뗄레야 뗄 수 없는 사이라는 것을.. 언젠가는 표현...하리라.....
아니 그나저나 고백이 넘나 급작스러운 것...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사실 지금 고백 안 하면 뭐 내용이 대하드라마가 될 거 같아서 고백 시켜버렸습니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서 OO이는 과연 고백을 받을 것인가! 두둥.
그리고 석진이가 안 나오는 이유는.. 현재 석진이를 주제로 생각해놓은 게 있어서 그런지 몰입이 안 되더라고요ㅠㅠㅠ 그래서 (((석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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