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살포시 찾아온 달동네에서의 윤기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대답이 없는 OO이 때문에 윤기는 고개를 숙인 채 구두로 땅을 찼다.
엄지발가락이 아파와 행동을 멈췄을까. 작게 모래 바람이 불었다. 그것을 윤기는 멍하니 보다 고개를 들어 OO이를 쳐다보자, OO이는 어두워진 하늘을 응시했다.
“너무 급작스러웠나.”
OO이의 대답을 기다리던 윤기는 한참이고 말이 없자 결국 먼저 입을 뗐다. 윤기는 대답이 없는 OO이 덕분에 마음속으로 혼자 절규하고 있었다.
‘역시 조금 더 기다릴 걸.’
“내가 방금 한 말 너무 신경 쓰지 마. 지금 당장 무슨 답을 들으려는 게 아니라 내가 정말 너 좋아한다고, 그거 말하고 싶은 거야.”
자신의 뒷머리를 쓰다듬으며 말을 했다. 아직도 OO이는 입을 뗄 생각이 없어보였다.
“...답은 꼭 줘야 해.”
“...아니 좋은데, 너무 좋아요.”
“..어? 너도 나 좋다는 거지?”
자신의 원하는 긍정적인 대답을 해준 OO이 덕분에, 윤기는 신이 난 강아지마냥 OO이 손을 잡고 활짝 웃어보였다.
그 모습은 마치 17살, 고등학교 1학년의 윤기 모습 같았다. 참 순수했고 철없던 그 모습이었다.
OO이에게 대답을 듣고 심장이 쿵쿵거렸다. 이렇게 심장이 터지는 게 아닐까 걱정이 될 정도로.
‘그럼 이제 우리 만나는 건가. 사귀는 거고?’ 그 생각을 하자마자 쿵쿵거리던 심장이 쾅쾅 거리며 뛰는 게 죽을 거 같았다.
“아. 좋다, 진짜.”
“….”
“내가 잘 할게. 진짜.”
3월 초, 따뜻한 햇살과 차가운 바람이 불어 개나리 꽃 냄새가 두 명의 코끝에 맴돌았다.
지민 BEHIND
술에 취한 윤기형을 데리고 윤기형네 집으로 향하고 있었을까. 초록 쪽문이 자신의 집이라고 말하는 형의 목소리에 고개를 들자, 앳된 학생이 그 앞을 서성거리고 있었다.
걸음을 멈추고 그 아이를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을까, ‘얘구나. 윤기 형이 좋아하는 그 여자아이.’ 단박에 알아챌 수 있었다.
무슨 용기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술을 먹어서 그런 거 같은데,
“나, 나 너한테 할 말이 있거든! 잠시만 기다려줘-”
기다리라고 말을 해버렸다.
윤기형을 집 안으로 들여보내고 밖으로 나오자 정말 그 여자아이는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 아이도 참. 내가 위험한 사람이면 어쩌려고 이렇게 말을 잘 듣나.
“안녕ㅡ”
“…안녕하세요.”
“너 17살이야?”
“어떻게 아셨어요?”
“그냥. 뭔가 17살 같아.”
이 여자애 맞구나. 윤기형도 참ㅡ 완전 애기 좋아하네.
“왜 여기 있어 늦었는데! 부모님이 걱정하실라- 집에 들어가야지-”
“아...운동 나왔어요.”
“윤기형 기다린 거 아니고?”
내 말에 이 아이는 얼굴이 붉어지더니 ‘아니거든요...’ 라며 고개를 숙였다. 나 눈치 없다고 한 소리 듣는데 얘는 뭐 이렇게 다 티나냐.
“그냥 한 말인데 얼굴은 왜 빨개져?”
“….”
“너 윤기형 좋아하지?”
“아니에요...”
“맞는데, 뭘. 솔직하게 말해 봐. 말 안할게. 나 착한 사람이야!”
.
.
“그럼 너 말은 윤기형이 진짜 좋아하는지 아닌지 모르겠다 이거야?”
“어….”
“확신이 필요하네?”
“…”
어린 아이지만 여자이긴 여자구나. 이로써 모든 여자에게 사랑은 확신 지어져야한다는 걸 깨달았다. 그 생각에 잠깐 말을 하지 않자,
“말하시면 안 돼요!”
“아이ㅡ 진짜! 속으면서 살았나. 안 말해. 걱정하지 마! 대신 조건 있어. 나랑 셀카 한 번만 찍자.”
“...알겠어요.”
윤기형 좀 놀라게 해줘야지. 일어나서 카톡 보면 바로 술 깰 거다.
달동네 사는 음악하는 민윤기 X 달동네 사는 학생 OOO
09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기운이 쭉 빠졌다. 손이 벌벌 떨리고, 다리가 후들거리는 게 생각보다 긴장을 많이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바닥에 털썩 앉아 아까의 나를 회상해보니, 뭐라고 고백했는지도 모르겠고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도 모르겠고.
그렇지만 기분 좋은 설렘과 마음 한편이 후련한 게, 뭐라고 했든 후회하지는 않을 거 같다. 결론은 OO이와 만나게 된 거니까.
핸드폰을 켜 박지민에게 ‘고맙다.’라는 카톡을 보내놓고 전화번호부에 들어갔다. 그러다 급하게 부스로 들어가, 노트를 펼쳐, 맨 위쪽에 ‘OO이’라고 적어놓고 ‘1. 핸드폰’ 이라고 적어보았다. 그렇게 차례대로 OO이에게 필요한 물건들을 써내려갔다
그렇게 OO이에게 줄 것들을 차례대로 쓰다가, 이런 내 모습이 웃겨 웃음이 났다. 전에 정호석이 여자 친구 있었을 때 기념일마다 선물해주는 걸 보면서 ‘여자가 뭐라고 돈 낭비를 하냐.’, ‘너 자신을 가꿔라.’, ‘그냥 너 장기를 줘라.’ 이야기를 했었는데 지금 내가 그러고 있다니. 오히려 더 하고 있다니. 진짜 병신이다, 나.
내가 좋아서 연애한 적은 처음인지라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나이대가 비슷한 것도 아니고 어린 아이인데, 분명 다른 사람과 연애한 적... 있을까? 있으면 누굴까. 상처 줬을까. 갑자기 OO이의 연애사가 궁금해지면서 화나는 나였다. 들고 있던 펜을 신경질적이게 내려놨다.
“상처 줬으면 죽여 버리든 해야지.”
살인 예고를 하는 나였다.
.
.
.
고백을 받고 집으로 돌아오니 기분이 아까보다 더 얼떨떨했다. 그러면서 더 빨리 심장이 뛰는 게 ‘민윤기. 그 사람은 위험한 사람’ 이라고 생각했다.
고백을 기다린 건 사실이다. 나에게 좋아한다고 해놓고선 만나자고, 사귀자고 얘기하지 않는 게 ‘정말 나를 좋아하는 건가.’ 매일이 의심 투성이였다. 그런데 오늘 이렇게 갑작스럽게 고백을 받으니 놀랐다. 고백의 내용도 참 나의 마음을 콕콕 찌르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일단은 자신을 부족한 사람이라고 칭하는 것. 나에게 민윤기라는 사람은 부족하긴 무슨, 내가 만나도 되나 싶을 정도로 과분하고 벅찬 사람인데. 오히려 내가 너무 부족하고 떨어져서 만나도 되는 걸까.
그리고 겨울 속 봄이라고 하는 것. 그 말은 전부터 뇌리에 박혀 있었다. 정확히 표현은 안 되지만 그 말이 참 나를 아프게 했다. 상처가 아니라 뭔가 그냥 마음이 시큰하게 아파오는 게 함께라면 이길 수 있을 거 같기도 하고.
마지막으로 새로운 기록, 새로운 역사를 함께 써내려가자는 것. 17년. 많이 어리지만 지금까지 누가 나에게 이렇게 함께 하자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던가. 라고 생각을 해본다면 없었던 거 같다.
그냥 고백의 처음부터 끝까지 내 마음을 콕콕 찔러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진짜 이 남자 너무 나에게 과분하다.
.
.
.
‘그래서 사귄다고요?’
“응.”
‘...저는 형이 평생 연애 못 할 줄 알았는데.’
“그나저나 나 처음이나 다름없는데 어떻게 해야 하냐. 내가 잘 해줄 수 있겠지. 상처 주면 어쩌냐.”
‘잘 해야죠. 어린데.’
“그래서 그런데 요즘 어린 애들은 뭘 좋아해? 뭐... 아웃백 이런데 가서 먹는 거 좋아하나. 뭐 내가 알아야지.”
이제 본격적으로 만나게 됐지만, 윤기 부서의 큰 프로젝트가 들어오고 말았다. 그래서 야근을 하게 된 윤기는 저녁마다 핸드폰을 붙잡고 살았다.
‘밥은. 먹었어?’
‘먹었어요. 걱정 하지 마세요.’
‘너가 밥을 제대로 안 먹으니까 그러는 거 아니야. 꼬박꼬박 먹어.’
‘근데 이렇게 전화해도 되요? 바쁘잖아요.’
전화해도 되냐는 말에 윤기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핸드폰을 저녁만 되면 붙잡고 있는 것에 대해 윤기를 제외한 부서 사람들은 불만이 많았다. 아침 점심에는 일을 잘 하던 사람이 저녁만 되면 회사 휴게실에서 핸드폰을 붙잡고 일하러 오지를 않으니. ‘여자가 생겼다’, ‘일하기 싫어서 농땡이 피운다.’ 라는 이야기를 하곤 했으니까.
이런 것을 윤기도 알고 있었지만 OO이에게 통화를 할 수밖에 없었다. 핸드폰이 없어서 문자도 카톡도 할 수 없기 때문에 저녁시간 OO이가 집에 들어왔을 때만 전화 통화가 가능했다. 그렇기 때문에 저녁 시간을 귀하게 생각하는 윤기였고.
‘괜찮아.’
그렇기 때문에 거짓말을 하는 윤기였다.
긴 프로젝트가 마무리가 지어졌을 땐 토요일이 되는 새벽이었다. 부서 사람들은 프로젝트 최종 메일이 보내진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집에 갈 준비를 했다. 윤기 또한 의자에서 기지개를 쭉 피더니 집에 갈 준비를 했다. 눈을 힘겹게 뜨던 윤기는 몸은 지쳤지만 곧 OO이를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실실ㅡ 웃었다. 심지어 오늘은 토요일이니, 윤기에게는 완벽했다.
오르막을 올라가는 길, 윤기는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자신의 핸드폰을 껐다 켰다 거리며 만지작거렸다. OO이에게 전화를 걸고 싶은 모양이었다. 나 지금 왔는데 너가 너무 보고 싶다고 당장이라도 말하고 싶었지만 시각은 새벽 2시 53분. OO이는 자고 있을 것이다. 한참이고 고민하던 윤기는 결국 전화를 걸었다. 당장 보고 싶은데 어쩔 거야. 사랑에 애가 되는 윤기였다.
신호음만 들렸을까, 윤기는 못 받을 걸 알았지만 입이 삐쭉 나왔다. 그러다,
‘여보세요...’
들리는 목소리에 윤기는 바로 웃었다.
“잤어?”
‘...네. 아직도 일 하세요?’
“아니 나 지금 가게 앞이야. 가는 중.”
‘아.’
“OO아.”
‘...네.’
“OO아-”
‘네에ㅡ’
자고 일어나서 분명 졸릴 텐데 전화를 끊지 않고 대답을 꼬박꼬박 해주는 OO이 덕분에 윤기는 귀여워서 몸 둘 바를 몰랐다. 누가 봐도 여친 바보였다.
“아침에 다시 전화 걸게. 잘 자.”
‘네....’
“오늘도 좋아해.”
감정을 숨기지 않고 표현할 수 있어 행복한 밤이었다.
.
.
.
“이걸로 되겠어?”
“네.”
“좀 더 맛있는 거 먹지.”
“떡볶이 맛있는데...”
“아니. 그 뜻이 아니라 더 좋은 거 먹이고 싶어서 그렇지."
윤기는 아침 11시 쯤 일어났고, 곧바로 OO이에게 전화를 걸자, 새벽과는 다르게 곧바로 전화를 받았다.
‘잘 주무셨어요?’
‘응. 너는.’
‘저도 잘 잤어요.’
‘새벽에는 미안해. 너가 보고 싶어서 그랬어.’
‘...’
‘먹고 싶은 것도 생각해놔, 먹으러 가자. 2시까지 준비 해. 아, 치마는 안 돼.’
“예쁘네.”
윤기 말대로 치마가 아닌 바지를 입은 OO이를 보면서 혼자 흡족해하는 윤기였다.
“뭐 먹고 싶어.”
“저, 즉석 떡볶이 먹고 싶어요.”
“...즉석 떡볶이?”
즉석 떡볶이가 먹고 싶다는 말에 ‘아. 애구나.’ 라는 생각과 ‘때 묻지 않은 순수함’에 윤기는 웃었다. 참 OO이랑 함께 있을 때는 자주 웃는 윤기였다. 곧바로 택시를 타고 신당동으로 향하는 둘이였다.
“맛있어?”
“네-!”
“푸흐- 많이 먹어.”
“네에ㅡ!”
윤기는 떡볶이를 학교 다닐 때나 먹었지, 어른이 돼서는 먹은 기억이 거의 없다. 맛있게 먹는 OO이를 보며 한참이고 웃고 있었을까.
“OOO?”
낯선 남자 목소리에 둘이 고개를 돌리자,
“맞네, OOO!”
“어! 안녕-!”
OO이를 보고 웃는 한 남자 아이. 반가운 듯 손 인사하는 OO이. 그리고 그 모습을 보는 윤기까지.
그 남자 아이는 OO이 옆에 앉아, ‘오랜만이다.’, ‘왜 이리 예뻐졌냐.’, ‘갑자기 전학 가서 얼마나 놀랐는지 아냐.’ 신이 난 듯,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윤기의 표정은 점점 굳어갔고 식어가는 떡볶이를 보고 가스레인지 불을 확 켰다. 그러자 곧바로 부글부글 끓기 시작했고 그것은 마치 윤기의 마음속 같았다. 갑자기 켜진 가스레인지에 그 둘이 윤기를 쳐다봤을까.
“뭘 봐.”
“아직 어려서 눈치가 없나. 데이트 중인데 좀 빠지지.”
공격적인 말을 뱉어 버린 윤기였다. 그 남자 아이는 잠시 쳐다보니 다시 OO이에게 시선을 돌리고 포스트잇에 자신의 번호를 써서 다음에 연락하라는 이야기를 했다. 그 말을 들은 윤기는 욕을 읊조렸고 덕분에 OO이는 눈치를 보며 급하게 그 남자 아이를 보냈다. 그 남자 아이가 가자마자 OO이 손에 들린 포스트잇을 뺏어 바닥에 버려 자신의 신발로 꾹 누르면서,
“연락하려던 거 아니지. 걸리면 너 죽는, 아니 혼난다.”
질투를 해버린 윤기다.
.
.
“저 진짜 필요 없는데...”
“아니 내가 필요해. 너랑 계속 연락하고 싶은데.”
“...아니 그래도.”
“내가 저번에 그랬잖아. 너는 받는 게 예쁘다고. 예쁜 모습 보려고 사주는 거야, 내가.”
OO이 손에는 어색하게 실버 아이폰이 들려져 있었다.
“그래도 너무... 돈 많이 쓰잖아요. 죄송하게...”
“너 이제 나한테 죄송하다는 말 금지. 뭐가 그렇게 죄송하냐ㅡ 남자 친구가 사주는 건데.”
“...”
“뭐... 정 고마우면 예쁜 짓 좀 해보든가. 애교...라든지. 뭐...”
“...”
예쁜 짓을 해보라는 윤기에 말에 OO이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윤기는 그 모습도 애교 같았고 그냥 살아 숨 쉬는게 애교라고 생각했다. 고민하는 OO이를 보며 몰래 웃다가
“됐어. 다음에 해줘. 앞으로 내가 많이 사랑 줄 거니까 이거 가지고 애교부리면 안되지.”
“...”
“그리고 이 핸드폰, 학교 애들이 어디서 났냐고 물어보면 능력 있는 남자 친구가 줬다고 해. 아니 그냥 배경 화면부터, 아니 일단 나랑 사진 찍자.”
윤기는 말하다가 지민이랑 사진 찍은 게 생각났는지 눈썹을 찌푸리더니 자신과 사진을 찍자고 했다. OO이 손에 들려있던 아이폰을 빼서 자신이 들더니 OO이에게 어깨동무를 하는 윤기였다.
“이거 카톡 프사로 해 놔. 그리고...”
또 한 번 자신을 찍더니
“이건 배경화면으로. 다른 애들 찝쩍거리지 않게, 알겠어?”
“네.”
“아구ㅡ 예뻐.”
결국 OO이가 귀여워 볼을 살짝 꼬집은 윤기다.
안녕하세요ㅡ! 지금 이 시간에 보시는 분들이 있으시려나...ㅠㅅㅠ...
조금 더 일찍 올릴려고 했는데 이게.. 하면서 애들 사진 고르다보니.. 덕질을 함께해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오늘은 뭐 부연 설명할게...음... 그냥 여친바보 민윤기라는 것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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