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해요.”
라이벌 미션의 결과가 나오고 로이는 아무 말 없이 준영의 손목을 잡아 주었다. 한 손 안에 가득히 담긴 준영의 손목은 보기 안쓰러울 정도로 말라 있었다. 이 여린
손으로 피크도 없이 기타를 쳤을 그를 생각하니 그는 내 생각과 달리 그리 여리지 않구나. 하고 새삼 느꼈다. 그는 어쩌면 자신보다 강할지도 모르겠구나, 싶은 생
각에 더욱 더 그가 안쓰러웠다. 괜찮다며 말은 하는데 움찔 움찔 떨리는 그의 손목을 잡고 있노라니 더욱 더 마음이 편치 않았다.
“너 잘했어.”
“…미안해요.”
“괜찮다니까. 네가 왜 미안해.”
그는 짖궃게 웃으며 내 머리칼을 장난스레 헤집어 주었다. 그는 끝까지 울지 않았다. 글세, 그가 울지 않은건지, 참는건지, 못 우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그저 평소와
는 달리 좀 더 축 쳐진 그를 보고 있노라니 그가 웃는 모습이 웃는 것 같지도 않다. 몸도 더 여리고 더 작은 체구를 가졌음에도 키는 나보다 더 큰 그는 어린 애 다루
듯 내 머리칼을 계속해서 매만져 주었다. 다정한 손길에 탈락한건 내가 아닌데도 눈물이 난다. 왈칵 하고 쏟아질 것만 같아 괜히 심술을 부리며 그의 손을 내 머리에
서 떼어 내었다.
그러자 그는 머쩍게 웃으며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곤 어깨를 한 번 으쓱, 하더니 입을 열었다.
“연락 해.”
“………저, 계속 잘 할 수 있을까요?”
“너야 뭐, 여태 쭉 잘 했잖아.”
그는 다시 내 머리 위로 손을 올리려다 바로 위에서 멈칫, 하더니 ‘미안. 습관이라.’ 라며 손을 다시 거두었다. 그에게 나는 어린애 같아 보이는 걸까. 뭔가 허탈한 기
분이 든다. 괜히 심술도 부리고 싶고. 아, 그가 느끼는 대로 난 어린애 인지도 모르겠다. 로비를 빙 둘러 나가려다 말고 걸음이 멈칫 했다. 이 문을 나가면, 그는 이제
다시 못 보는구나. 그렇구나……….
뒤를 돌아 텅 빈 로비를 다시 한 번 슥 훑어 보았다. 인터뷰를 하는 그의 뒷 모습이 보였다. 여전히 밝게 웃어 주는구나. 그는 내가 생각 하는 것 이상으로 어른일 지
도 모른다. 그래서 내가 마냥 어린애로만 느껴진 것일까. 마지막 나가는 길에 심술이라도 더 부려볼까. 그는 인터뷰를 끝 마치고는 찬찬히 내가 있는 곳으로 걸어 왔
다.
“나가자.”
그리곤 그는 이번에 내 어깨를 둘러 어깨동무를 해 주었다. 가볍게 내려 앉은 팔에 괜히 심장이 두근 거린다. 나는 팔을 그의 허리에 둘렀다. 문에 가까워 지자 더 두
근 거리는 기분이다. 나도 모르게 순간적으로 문 까지 1m의 간격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그의 허리를 부여 잡고 억지로 걸음을 멈췄다.
“왜?”
“미안해요.”
“그 소리만 몇 번 하냐 지금.”
“나가지 말아요.”
“왜.”
“잠깐만…….”
나에게 갑자기 어떤 용기가 생겼던건진 나도 잘 모르겠다. 그저 걸음을 멈춘 그의 시선을 따라 그와 눈을 맞추고, 그의 목덜미를 잡아 내려 입을 맞추고, 그는 내 목
에 제 팔을 감싸 날 안아 주었다. 조금만 더……더 깊히 입을 맞춰 주고 싶다. 그의 목덜미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맞 닿은 입술에 틈새가 생길 때 마다 그는 얕
은 숨 소리를 내었다. 귓가를 간지럽히는 그의 숨소리와, 두 눈을 꼭 감은 그의 모습과, 내 목을 감은 그의 팔과, 내 손에 닿은 그의 허리와 목은 내 감정을 더욱 더
고조 시켰다. 괜스레 눈물이 난다. 오늘이 정말 그와 마지막이 아닐수도 있지만 왠지 오늘이 마지막일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그와 나는 확연히 다르다. 그가 강남 거리에서 놀때 나는 도서실에 있었고, 그가 홍대에서 공연을 할 때 나는 집에서 기타를 쳤다. 그와 나는 다르다. 그렇기에 오늘이
더 애틋하다. 평소에 너무나도 달랐던 우리가 텅 빈 로비 중앙에서 서로의 입술을 탐 하는 꼴이 너무도 웃기고 흥분이 되었다. 그 역시 내 목에 두른 제 팔에 힘을 주
었다. 그는 입술에 꿀이라도 발라 놓은건지, 약이라도 발라 놓은건지 정신을 혼미하게 한다. 떼기 싫을 만큼 부드럽다. 그냥, 오늘 이 로비가 전부 우리의 공간이였음
싶다.
그러나 먼저 나를 밀쳐낸건 그였다. 내 목을 감싸 안은 팔이 내 어깨로 천천히 내려오더니 이내 내 어깨를 밀쳐내는 것이 느껴졌다. 괜한 오기로 더 버텨볼까 하다 이
내 그의 가쁜 숨소리가 들려 급하게 입술을 떼 내었다. 내가 배려가 부족했던걸까. 호흡이 힘든지 숨 소리를 계속해서 뱉어내던 그가 침으로 흥건해진 제 입술을 소
맷 자락으로 닦아 내더니 아까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내 어깨에 어깨 동무를 하곤 ‘이제 나가자.’ 라며 걸음을 옮겼다.
그리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날 보고는 그는 아까와 같은 웃음을 띄워 주었다. 그리곤 다시 그가 입을 열었다.
“어리긴 아직 어리구나.”
멍 한 표정으로 그를 계속 보며 그의 걸음에 이끌려 나오다 보니 어느 새 버스가 정차 해 있는 곳 까지 와버렸다. 그리곤 그가 ‘합격’ 이라는 글씨가 써 붙여진 버스
쪽으로 내 등을 떠 밀더니 이내 자신도 등을 돌려 버스에 올라 탔다.
맞 닿은 버스 뒤로 그의 뒷 모습이 보였다. 곧 이어 버스에 완전히 올라탄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날 보며 차창 너머로 손을 흔들어 주었다. 난 아직도 로비에 그와 함
께 서있는 것만 같은데. 그는 어른이였구나. 그와 맞 닿았던 내 입술을 매만지다 이내 나 역시 버스에 올라타 숨을 돌렸다.
나는, 아직 그에겐 어린 애일 뿐 이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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