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달려서
05
w.예랑
까만 세상, 암흑이 덮힌 세상. 꿈일까, 현실일까. 아, 게임 속 이려나. 분명한 것은 이 곳엔 아무도 없다. 나 이외엔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난 그저 계속 달린다. 무엇을 위해서? 그건 나도 모르겠다.
결국 다리가 아파와 주저앉았다. 서러움이 북받쳤다. 꺼이꺼이 울고있는데, 홉이 나타났다. 내 볼에 흐르는 눈물을 보더니 홉이 씩 웃으며 눈물을 제 손가락으로 닦아냈다.
"내가 힌트 좀 줄까?"
"…어떤 힌트?"
"굉장히 중요한 힌트."
아리송한 홉의 말에 고개를 갸우뚱거리다가도 모르는 것보단 아는 게 낫겠다 싶어서 알려달라 졸랐다.
"황국에 첩자가 있어."
"…정말이야?"
응, 나 거짓말 안해 말하는 홉의 눈동자에 진심이 듬뿍 담겨있어서 믿을 수 밖에, 믿어야만 했다.
"…그게 누군데."
"네가 상상도 못 할 사람."
빤히 쳐다보는 내 시선을 피하지 않고 올곧게 마주하는 홉이다. 이제 힌트는 그만, 한 마디 뱉고는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또다시 암흑이 덮인 세상. 홉, 난 뭘 해야해?
꿈속을 헤매다 눈을 뜬 내게 가장 먼저 보인 것은 날 내려다 보는 진의 얼굴이였다.
"진…?"
"더 주무세요. 아직 밤입니다."
"진. 첩자가, 첩자가 황국에 있대. "
"…꿈이라도 꾸신 겝니까? "
"꿈이 아니야. 이건 진짠걸. 정말이야. 어떻게 하지? 어떻게 찾아내야 해?"
"……"
진은 계속해서 내 말에 침묵으로써 대답했다. 어둠 속에서조차도 올곧이 나만을 바라보는 진은, 어떤 눈동자를 하고 나를 보려나.
"나는 이곳에 있는 누구라도 첩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정말 너무 슬플 것 같아. 다들 너무 좋은 사람이라서, 그래서.."
"…일단 주무세요. 아직은 밤입니다."
"진,너는? "
"저는 황녀님께서 다시 잠에 드시는 걸 볼 때까지 잠에 들지 못 합니다. 아시면서요."
"…미안."
정말로 미안함이 들었다. 이 남자는 얼마나 오랜 시간동안 황녀를 위해 희생해 왔을까. 상상도 가지 않았다. 그저 조금이라도 쉬면 좋으련만, 그러기엔 진은 너무 올곧았다. 어둠 속 들여다 보이는 눈동자가 맑았다.
이런 내가 웃겼는지 진이 한번 바람빠진 소리를 내며 웃더니 내게 말해온다.
"뭘 새삼스럽게 그러십니까."
"……"
"괜찮으니, 어서 주무세요."
"……"
"그게 제 낙입니다."
내가 잠드는 걸 보는 것이 낙이라고 말하는 남자를 보자, 게임 속 이 황녀가 더더욱 부러워졌다. 현실에선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애정이다. 이런 걸 일상처럼 받아왔던 황녀가 부러웠고, 또 질투났다.
"…늘 고마워, 정말."
"…황녀님. 저는 황녀님이 고마워 하실 사람이 못 됩니다."
"이런건 그냥 받아드려도 돼. 진은 내게 정말 고마운 사람인걸. "
"…주무십시오."
진의 말을 마지막으로 들지 않으리라 결심했던 것에 결국 빠져 들고 말았다. 이번엔 꿈을 꾸지 않으려나…. 그러면 좋겠다. 그저 잠에 취해 푹 잤으면. 그랬으면.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어둠 속이 아닌 화창한 낮이였다. 있을 줄 알았던 진은 사라지고 그 곁은 다른 시녀들이 빈 자리를 채웠다. 채워지지 않을 빈 자리였지만.
"…진은?"
"호위무사님은 지금 휴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황녀님 곁을 지키느라 꼬박 하루를 새셨습니다."
왜 내겐 피곤한 티를 내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같이 자도 된다고 건내줄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움이 남지만, 그가 내게 먼저 그런 말을 할 사람이 아니란 걸 알기에 쓸데없는 후회는 관뒀다. 내겐 돌이킬 수 없는 과거보다 현실이 중요했으니깐.
"손님들은?"
"청국의 황자님은 급한 일이 있다고 하셔서 갔습니다. 흑국의 사신도 마찬가지고요. 화국의 황자님과 백국의 2황자님은 남아있습니다."
"…알았어. 내가 깨어났다고 일러드려. 다들 걱정하고 있을 텐데."
예, 황녀님 들리는 시녀들의 대답들을 들으며 정신을 차리려 노력했지만 띵해져 오는 감각은 내 맘대로 조절되지 않았다. 조금 나아지긴 했으나 일어나려고 하니 또다시 머리가 찡-했다. 부산떠는 시녀들때문에 애써 괜찮다고 했긴 했지만.
-
"아픈 건 괜찮아?"
날 보는 남준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그도 밤을 뒤척이며 보낸 듯 했다. 괜히 걱정끼친 것 같아 미안했다. 실은 난 그가 생각하고 있는 그 중요한 사람이 아닌데.
"괜찮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한 숨 푹 자고 나니 말짱하던걸요."
"…그래, 다행이다."
왠지 모르겠지만 날 물끄러미 바라보는 그 시선이 강아지같았다. 대형견. 갑자기 쿡쿡대는 내가 이상했는지 그가 금새 표정을 바꾼다.
"남 걱정은 다 시켜놓고 웃는거야?"
"오라버니 방금 강아지 닮았어요."
생각없이 말을 내뱉곤 되려 내가 놀랐다. 무례한 말을 한 것 아닌가 싶어 그제야 눈치를 살폈더니 남준의 눈동자에 가득 찬 것은 짜증이 아니라 가벼운 웃음이었다.
"그런 말을 하는 걸 보니 다 나았구나."
"……"
"그럼 되었다."
싱긋 웃는 얼굴에 나도 같이 웃어주었다. 마주치는 눈빛에 다정함이 짙었다.
쓰러져 있는 동안 미뤄진 일들이 많아 쉴틈없이 움직여야 했다. 지민이 있는 궁으로 이동하던 중 누군가 내 팔을 잡곤 돌려세웠다.
"누군데 팔을,"
"……"
"태형…?"
"어딜 그렇게 바쁘게 가."
자연스럽게 반말을 쓰는 태형이 불만스러웠다. 태형은 아닐지 몰라도 사람을 사귀는 게 느리고 어려운 내겐 너무 빨랐다.
"이젠 반말을 대놓고 쓰시네요. "
"불만이면 너도 쓰던가."
히-하고 웃는 웃음이 내가 여태껏 봐온 그의 모습과는 달리 너무 천진난만한 아이같아 놀랐다. 그치만 또 그게 나쁘진 않았고. 어울렸다. 늘 날을 세우던 그와는 다르게, 또 예뻤다.
"…저 가야 해요."
"가지마. 나랑 놀아."
방금 전 말은 취소. 아이같은 게 아니라 완전히 애였다. 땡깡부리는 애. 옆에 있는 시녀가 내게 이젠 가야 한다고 눈치를 주었다.
"태형, 마중 못 나가서 미안하구요. 와줘서 고마웠어요."
뒤돌아 보지 않고 갔다. 그가 날 계속해서 보고 있으리란 걸 잘 알았지만, 그래도 뒤돌아 보지 않았다. 여지를 남기는 것이 가장 큰 고통을 주는 것이란 것을 알게 됬기에.
"…한 번을 안 보고 가네."
난, 걸음을 더 빨리 했다.
"몸은 괜찮으십니까?"
"생각하시는 만큼 허약하지 않아요. 그저 며칠 동안 피곤해서 그런 걸요."
애초에 허약하지 않으면 그렇게 픽픽 쓰러지지 않습니다, 지민의 말에 대꾸할 말이 없어져 그저 입을 꾹 다물었다.
"…지금 간접적으로 불만을 표현하시는 거에요?"
"제가요? 아닌데요? 하나도 안 그런데요?"
되려 놀라 꿍얼꿍얼거리자 그가 예쁘게 웃었다. 화르륵,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는 게 느껴졌다. 초등학생 때 같은 반 짝궁이었던 남자아이가 날 짖궃게 놀린 적이 있었다. 난 와락 눈물을 터뜨렸고. 걘 내가 울 줄은 몰랐었는지 무척 당황해했었다. 갑자기 전학을 가서 얼마나 놀랬던지. 잘 살고 있으려나. 그러고 보니, 이젠 이름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름이 특이했던 것 같은데. 김태훈? 김태한…?
쓸데없는 생각에 사로잡혀선 내 앞의 지민을 그만 잊어버렸다. 지민이 나를 손가락으로 콕콕, 찔렀다. 고개를 들라는 뜻인 건 알지만 그러긴 싫었다. 괜한 반항심이랄까.
"이제 저 좀 봐주시죠."
"싫어요."
부러 고개를 휙, 돌렸다. 집요하게 따라오는 시선이 부끄러워 얼굴을 숙였다. 그가 웃음을 참는 소리가 들렸지만 모른 척 내색하지 않았다. 그러다 그가 내 손을 보았고, 들려오던 웃음은 끊겼다. 자연스레 손을 숨겼다. 무거워진 분위기에 조그맣게 한숨을 쉬었다.
"…제가 준 반지는 왜 안 끼셨습니까?"
"……"
"…혹시 싫으신 겁니까?"
그 말에 숙였던 고개를 다시 들었다. 아니, 싫어서 그런 게 아니라요, 내 변명에도 시무룩한 그의 얼굴은 바뀌지 않는다.
"싫으면 싫다고 얘기해 주세요."
"……"
"그냥, 그렇게 해주세요."
나는 그의 얼굴을 보곤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지금 내가 어떤 대답을 한들, 그에게 상처가 될 것을 알았기에.
미뤄졌던 일들을 모두 처리하고 나서야 꽃병에 있던 윤기오라버니가 준 서신을 읽을 수 있었다. 남자치고 정갈한 그의 글씨체가 고와 쓰다듬었다.
[꽃병에는 네가 직접 예쁜 꽃을 골라 기르면 좋겠다. 황국에 들를 때 잘 기르고 있는지 볼 것이야. 생일 축하한다.]
품안에 안았다. 이 남자는 나를 아끼는 구나.
"어라?"
이상했다. 분명 그의 서신에는 마음대로 꽃을 심으라 했던 것 같은데 꽃병을 가만히 들여다 보니 작은 꽃씨가 있었다. 궁금한 것은 못 참는 성격인지라 시녀들을 시켜 알아본 결과, 그 꽃씨는 모란이였다.
"모란의 꽃말이 무엇인지 알아?"
"행복한 결혼, 아니에요?"
"…그래."
흰색 모란의 잘 알려지지 않은 꽃말. 그것은 '스스로 조심해야 합니다'
믿을 수 없지만 백국이 협박아닌 협박을 보내온 것은 오로지 나만이 아는 일이었다. 내가 홉에게 들은, 사실이 아니길 간절히 바랬던 것이 결국은 사실인 것일까. 첩자는 백국에서 온 사람일까. 지금도 충분히 거대한 백국인데. 인간의 욕심은 끝없다 느꼈다. 그리고, 그가 보내지 않았으리라 믿지만 또 흔들렸다. 그저 덮어버리고 말았다.
-
"누님!"
급히 청국에 가야할 일이 생겼다던 정국이가 다시 황국으로 돌아왔다. 청국의 황제가 승하하셔서 돌아갔다는 것은 이미 시녀에게 들어 알게 되었다. 장례와 즉위식을 준비하려면 바쁠 텐데 굳이 이곳으로 다시 온 정국이가 고마우면서도 미안했다. 얼굴에 땀이 송글했다. 뛰어온 듯 보였다. 뭐가 그리 급했을까.
"정국아, 안 와도 됐는데."
"그럴 수가 없었어. 꼭 해야 할 일이 있어서."
할 일…? 황국에 중요한 물건이라도 깜박 잊고 간 것일까 싶어 정국을 쳐다보았는데, 떨고있는 정국이 보였다. 중요한 할 말이 있는 것 처럼.
"왜 그래 정국아."
"……"
말을 걸어도 들리는 건 침묵이다. 바짝 긴장해보였다. 혹시, 첩자가 청국이였던 걸까? 그걸 이제 알게 된 정국이가 내게 급히 찾아와 사과라도 하려는 걸까? 망상을 하다 관뒀다. 홉의 말은 그렇지 않아도 곤두서있던 내 신경을 더 날을 세우게 만들었다. 모두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보낼 수 밖에 없었다. 이런 내가 또 미웠다. 어리고 순수한 정국이마저 믿지 못하는 내가.
"누님. 난 이제 청국의 황제가 돼."
"응. 그렇겠지. 즉위식엔 꼭 갈께."
"그리고 난 황후가 필요해."
"응. 황후, …황후?"
정국이 결혼하는 것은 상상이 가지 않았다. 지금 게임속 이 세계도 황제는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아야만 하겠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 실은 상상하기 싫었다. 정국이 내가 아닌 누군가와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는 모습은 보기 싫었다. 제 것을 뺏기기 싫은 어린아이처럼, 난 꼭 정국에게 그랬다.
"그리고 난 그게 누님이면 좋겠어. 아니, 누님이여야 돼."
"……"
"이거 청혼하는 거야."
"……"
"받아줄래?"
맑은 정국의 눈동자가 나만을 온전히 담았다. 손에 쥔 것 하나 놓기 싫어하는 추악한 내 모습이.
지금도 충분히 애가 탈 정국이에게 나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다. 아무것도 놓기 싫었기에. 내가 아닌 누군가에게 뺏기기 싫었기에. 이 세계에서 만큼은.
아이들은 절대로 자신의 것을 남에게 뺏기지 않는다. 순수의 또다른 의미는 이기적이다.
어른인듯 살아가는 아이는 의외의 순간에 이기심을 발휘한다. 그리고, 모두를 파멸의 길로 이끌고 만다.
나는, 어른인척 살아가는 아이다.
"근데 있잖아 홉. 만약에 공략성공한 캐릭터가 내게 청혼이라도 하면 어떻게 해?"
"뭘 어떻게 하긴. 네가 맘에 들면 받아들이는 거고 맘에 안 들면 차는 거고."
"…찼다고 막 복수하거나 그러진 않지?"
"글쎄."
"……"
"모르긴 몰라도 네 세계 남자들이 하는 복수랑은 다를 걸."
"……"
"물론 안 좋은 의미로."
내가 말했잖아. 중요한 건 '공략'이 아니라 '선택'이라고.
사담 |
맨날 할 얘기가 되게 많았던 것 같은데 막상 사ㄷ담 적으려고 하면 다 까먹어요 늙었나봐요 이론..;ㅅ; 점점 연재텀이 느려지는 것 같아요 죄송해요ㅠㅠㅠ(꾸벅) 이제 경국지색으로 연재되었던 부분이 모두 완료되고 본격적으로 스토리가 나갈거에염 마지막엔 누구랑 이어질까 궁금해 하시는 분들이 많을 거 같은데 이거슨 역하렘이잖아여!! 번외는 일곱멤버 다 쓸 거에여 근데 엔딩에 새드엔딩 있을 수도 있고 뭐ㅎㅎㅎㅎ 자세한 건 비밀~~(얄밉) 늘 예쁘게 댓글 달아주시는 내님들 ♥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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