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르륵. 바퀴가 마루바닥과 맞닿아 듣기 불편한 소리를 냈다. 그에 움직임을 멈춘 크리스가 조심스럽게 캐리어를 들어 올린다.
" …형. "
잠자코 창 밖을 내다보던 세훈이 입을 열었다. 크리스는 체념인지 단념인지 모를 작은 숨을 내뱉고는 캐리어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벽 한 면을 차지하는 커다란 창문 앞에 의자를 놓고 창 밖을 내다보는 세훈은 아름다웠다. 까슬히 돋아난 입술의 각질마저도 먼 옛날 비너스가 탄생할 때 일었던 물거품의 프릴마냥 빛났고 말라 비틀어진 나뭇가지 같은 목소리는 아폴론의 하프 연주 소리와도 같았다. 그렇지만 크리스는 그 한 폭의 그림이 주는 이질감을 떨칠 수가 없었다. 미련이 남는 듯 캐리어 손잡이에 두었던 손을 몇 번 옴싹인다.
" 나, 임신 한 것 같아요……. "
그러고는 천천히 오른 손을 들어올려 배를 쓰담는다. 그 손 끝의 움직임이 위태위태하다. 납작한 배를 연신 문질러대며 세훈이 같은 말을 반복했다. 형의 씨가 여기 있어요. 나 임신 한 것 같아요. 정말로요…. 이제 세훈은 창 밖을 내다보고 있지 않았다. 태아와 같은 형태로 좁은 의자 위로 몸을 하염없이 웅크린다. 금방이라도 의자 아래로 떨어질 것만 같은 모양새에 크리스가 날쌔게 몸을 놀려 세훈의 등을 붙잡아주었다.
" 심장 소리가 들려요 내 안에서. 내 것은 조금 더 크고 분명한데… 아가 것은 아주 작아. 가만히 귀 기울이지 않으면 안 들려요. 아마도 형을 닮았을 거야, 형은 운전을 아주 잘 했죠. 아가가 내 배를 발로 꾹 누르기도 하는데 꼭 형이 엑셀을 밟을 때와 같아요. 우리가 마지막으로 언제 했죠? 아주 까마득한 옛날 같은데…… 몇 개월이나 된 걸까? 형아, 나 병원에 가봐야 하겠죠? 그럼 언제가 좋아요? 아직 일이 많이 바빠요? 나는 최대한 빨리 가고 싶은데…. "
느릿한 속도지만 아주 길게 말을 뱉어낸 세훈이 고개를 비뚜름하게 들었다가 도로 숙여버렸다.
…세훈. 부르는 목소리에도 세훈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 간헐적으로 들썩이는 등이 아니였더라면 크리스는 아마 세훈이 죽었거나 기절했다고 생각했을 것이였다.
" 너는… 너는 남자야. 그러니까, 남자는 임신을 할 수가…. " " 못 믿어요. " " 세훈. " " 나는 보이지 않는 걸 믿지 않아요! "
발작하듯 숙여졌던 상체가 쳐들린다. 크리스가 세훈의 등에 닿아있던 손을 떼어내고는 뒤로 두 발자국 정도 물러났다.
" 나는 그래서 아무것도 믿질 않아요. 내 자신이 느낄 수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요! 그리고 지금 내가 느낄 수 있는 건 형이 이 집을 나가려고 했다는 것과, 내 배에 형의 빌어먹을 애새끼가 들어차 있다는 거예요. "
어엉. 그러고는 울음을 터트린다. 퍽퍽 배를 쳐내다가 또 발작하듯 울어재낀다. 벌벌 떨리는 어깨가 무척이나 가냘펐다. 크리스는 세훈의 고개를 치켜 들게 해 눈물을 닦아내주는 대신 세훈이 '내다보고 있던' 창가로 가까이 다가갔다. 손바닥에 닿아오는 유리는 차가웠다.
" 대체 뭘 보고 있어…? 이 너머로. "
저기 보이는 빨간 지붕의 집이라거나 하는 것들?
크리스는 제가 내린 질문에 대한 답을 비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없다.
세훈은 대답도 하지 않고, 울음을 멈추지도 않았다. 손바닥 아래로 한 치의 틈도 없이 맞닿아있는 창을 가만 쓸어내리던 크리스가 한숨을 내뱉었다. 쉼 없이 눈물을 떨구는 몸뚱이를 와락 끌어안는다. 자신의 배를 마구 내리치던 우악스러운 손에도, 벌겋게 달은 눈가며 코 끝, 귀 끝에도 입을 맞춰주자 목을 왁 끌어안는 세훈에게서는 눈물 짠 내가 풍겼다.
" 이번에도 네가 이겼어 세훈. 어디 안 갈게. " |
는 별..병시니가튼 조각
센이는 눈이 보이질 않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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