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죠.그냥 물어보진 않지." 지금 남간호사한테 놀아나고 있는건가. 도대체 매번 사람을 헷갈리게 만드는 말들만을 늘어 놓는 남간호사 탓에 얼굴은 순간의 망상으로 붉어 올랐고 어색해진 공기 탓에 말을 잇지 못하고 괜히 헛기침을 해댔다. "맞다,감기 기운 있다고 했었죠.입원 첫날?" "네.그래서 언니가 감기약 주사로 놓아주고 갔어요,아침에." "여기 계속 있다가는 감기 더 심해지겠다.이제 그만 일어나요." "그러게요.왜 여기 앉아 있었지,병실 두고." 나는 면회실을 나서려 주변을 더듬거리며 전화를 챙겨 주머니에 넣어고 병동으로 이동하기 위해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 순간 남간호사는 나가려는 나의 한손을 붙잡아 다시 자리에 앉혔다. "깜짝아!" "잠깐만요.미안한데,여기 잠깐만 앉아 있어요." "여기 있으면 감기 든다면서요?" "잠깐만 있어봐요." 남간호사는 들고온 트레이를 챙겨 급히 면회실을 나갔고 나는 어리둥절해 가만히 멍을 때리고 앉아서는 남간호사를 기다렸다. "출근해서 주려고 했는데,깜박하고 있었네." "뭘요?" "출근하는데 지나치는 편의점 마다 핑크빛이더라구요." "아,오늘 화이트데이래요." "단건 먹고싶을테고 그렇다고 사탕은 못먹으니까.이거로라도 단맛 좀 느끼라고 사왔어요." "어.2프로?" "이온음료는 괜찮으니까 마음 놓고 마셔요.그리고 이거." "뭐예요,이건 또?" "뜯어 봐요." "핸드크림이네요...이런거 왜 주는거예요." "그러게요.내가 왜 샀을까." "도대체 왜 자꾸 그런 식으로 말해요?한두번도 아니고 계속 그렇게 말하니까 진짜-." "진짜?" "아니 진짜...아,아니예요." "내가 그렇다고 성세인 환자가 좋아서 준다고 말을 할수는 없잖아요." "네?"
"좋아해서,그래서 자꾸 한번이라도 더 보고 싶었고 이렇게 사주고 싶었고 그 친구한테 성세인 환자 좋아하냐고 물어보고 싶었던거라고 말할 수는 없는 거잖아요." "무슨 말하는거예요?" "좋아한다는 말." 내가 지금 제대로 들은 게 맞는지,꿈은 아닌지,혹시 내가 진짜 아파 죽기라도 한건지. 이 상황이 현실이란게 믿겨지지 않아서 괜히 내 볼도 꼬집고 뺨도 때려보며 아프길래 남간호사의 볼도 만져 보았다. 이 사람이 진짜 사람이 맞나 싶어서. 근데 남간호사의 볼은 너무나도 부드러웠고 나의 볼만큼 뜨거웠다. "내 말이 거짓말 같아요?" "오빠 같으면 믿겠어요?" "그럼 안믿어요?" "지금 이게 진짜였으면 좋겠는데,아무리 생각해봐도 진짜일리가 없어서 못믿겠어요." "그 친구,성세인 환자도 좋아합니까." "제가,정국이를요?" "그 친구는 많이 좋아한다던데." "아..." "그 친구가 성세인 환자 좋아하는걸 알고 있었다는건,말을 했다는거네요." "사실 정국이가 고백을 했었어요.근데 저는 정말 제가 정국이를 좋아하는지 모르겠어요.늘 친구였으니까." "...시간이 많이 늦어졌습니다.오늘은 이만하고 병실로 돌아 가서 쉬세요." "그런 말을 듣고 어떻게 제가 편히 쉬어요." "그건 퇴원하면,우리가 병원 안이 아니라 바깥에서 나눠야 할 이야기인 것 같아서요.제가 방금 잘못 이야기를 꺼낸 것 같습니다.들어가보세요." 면회실을 나오니 면회실 안에서의 시간이 꿈같이 느껴졌다. 마치 좋아하는 연예인의 공연을 보고 나온 뒤의 느낌처럼 상황은 제대로 기억에 남지 않았지만 그때의 감정은 향수의 잔향처럼 계속 잔잔히 남아 옅어지기 힘든 그런 기분이였다. 잠들기 직전까지 그 감정은 계속 되었고 아침이 되어서도 그 생각 뿐이 머릿 속에 없었다. "성세인 환자,피 뽑아야합니다.잠시만 불 켤게요." "아,눈부셔." "오늘 안에 외부 검사 맡겨야하는거라 급히 뽑아야해요.미안해요,새벽에." "오빠...아직도 퇴근 안했어요?" "오늘은 아침 7시에 퇴근입니다." "그럼 오늘 낮 동안 없어요?" "네.주먹 꽉 쥐세요." "아!" "아...오늘도 피가 잘 안나오네.미안해요.다른 곳 좀 볼게요." "또 찔러요?왜 오빠 내 피만 그렇게 못뽑아요." "떨려서요." "뭐요?" "찾았어요,혈관.힘 푸세요." "오빠도 오늘 없으면 나 오늘 하룻동안 누가 봐줘요?" "다른분 계실거예요.성세인 환자처럼 나노블럭 좋아하시는 분이십니다.아직 새벽 4시밖에 안되었으니 더 자요." 남간호사는 침상을 낮춰주고 개인조명를 끈 뒤 이불을 다시 덮어주곤 트레이를 챙겨 나갔다. 나는 그 상태로 다시 잠에 들어 해가 중천에 떠서야 깨어나고 말았다. 내심 잠들기 전에는 7시에 퇴근하면서 얼굴이나 보여주고 가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오히려 푹 재워두고 가버린 남간호사가 조금 미웠다. 세수를 하기 위해 수건을 챙기려 나는 캐비넷을 열었다. 그 안에는 어제 남간호사에게 받았던 2프로가 새로 한캔 더 들어 있었고 그 위에 포스트잇이 붙어 있었다. '한번에 주면 한번에 마실까봐. 심심하면 서랍 열어 보세요.' 남간호사의 글씨는 생각보다 깔끔했고 공부를 잘하게 생긴 글씨였다. 그러니 간호사가 되었겠다,혼자 생각했다. 심심하면 서랍을 열어보라니. 나는 2프로를 꺼내어 캐비넷 문을 닫고 캐비넷 아래의 서랍을 열어 보았다. 얇은 컬러링 북 한권과 작은 미니 색연필 그리고 짧은 책 한권이 들어 있었다. 이런건 언제 또 가져다 놓았데. 그 덕에 나는 오늘 하루를 지루하지 않게 보냈다. 그렇게 저녁 면회 시간이 되어 어김 없이 정국이가 찾아 왔다.
"나 안보고 싶었어?" "보고싶을 틈도 없었어." "나는 하루 안봤다고 엄청 보고 싶었는데.어제 애들이랑 재밌었어?" "오랜만에 얘기하니까 좋더라." "오늘은 그 남자간호사가 안보이네." "오늘은 아침에 퇴근하셨어...근데 있잖아 정국아-." "아,세인아 너 학교 수업 못들어서 걱정할까봐 필기 정리해서 가져왔어.이거 보고 베껴 정리해둬." "아...고마워." "세인아,있잖아.나는 사실 너 좋아하면서 너도 나 좋아할거라고 확신하고 지냈던 것 같아." 정국이는 필기노트를 가방에서 꺼내어 정리해서 넣어두려했는지 캐비넷 아래의 서랍을 열더니 갑자기 하던걸 멈추곤 얘기를 시작하였다. 포스트잇을 본걸까. "어?" "그래서 내 마음 따로 표현 안하고도 우리가 몇년이고 당연하게 매번 같이 꽃도 보고 첫눈도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근데 내가 한참 잘못 생각하고 있는건 아닐까해서,그래서 그때 말했던거야." "그래도 정국아-," "최소한 내 마음을 알았으니 그럼 너도 나를 조금은 다르게 생각봐주지 않을까.좋아하는 마음이 생기는건 바라지도 않으니 남자로는 봐주지 않을까 싶어서." "우리가 하루이틀 친구였던게 아니잖아." "그건 너한테만 해당하는거라고 왜 생각을 못해,성세인."
"9년 동안 너한테 내가 친구였겠지만,나한테는 9년 내내 여자였어." 아. 그동안 내가 너무 나만 생각했구나. 정국이의 말을 들으니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나는 여태 당연하다 싶이 우리가 서로 9년간의 시간을 둘도 없는 친구로 지내왔다고 단정 짓고 지냈으니까. 근데 나는 정국이의 고백을 듣고 난 뒤에도 그 생각은 변하지 않았고 그래서 나는 계속해서 친구라는 틀에 갇혀 지냈다. 그리고 나는 그 틀에 계속 갇혀 있고 싶다. "나는 너가 남간호사 볼 때 처럼 그런 표정이 있는지도 몰랐어.난 그 무엇보다 그 남자를 볼때의 표정이 너무 달라서.그래서 너무 비참했어." "왜 그렇게 생각해..." "그 표정을 내 앞에선 한번도 보여준적이 없으니까.9년간을 너만 바라보면서 나는 너에 대해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몇일도 알고지내지 않은 남간호사를 보는 너 얼굴이 너무 예뻐서 더 비참했던 것 같아." "미안해,정국아." "너한테 미안하다는 소리 듣는 것 만큼 내가 힘들어지는 말은 없어,세인아." "정국아." "그니까 미안하다고 하지 마.나 가볼게.이제 앞으로 면회 오는 것도 그렇겠다.세인아 얼른 퇴원하고 보자.갈게." "...조심히 가." "아,그 간호사 나쁜 사람 같지는 않더라.나이도 생각보다 많지 않고." "......" "좋은 사람 같아.근데 그 사람 되게 힘들어 해,너에 대한 감정 때문에.그러니까 너가 먼저 확신을 줘.그 사람은 기다리지 않아,성세인.뜸들이지마." "어-."
"그 사람은 내가 아니니까." 꺅 10시간 지각했습니당 이건 급전개가 아니애오. 시간 상으로 몇일이 지났다구욧.(변명 원래 짧게 끝내려했기 때문에! 오랜 기간의 짝사랑과 첫눈에 반한 사랑을 보여주고 싶었기에! 는 또 변명 같을지도...☆ 다음 화는 주말 안에 돌아오겠습니당-♡ 암호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