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열어 주시면 어떡합니까." "그래도 이 더러운걸 자!보세요!하면서 문 여는 것도 이상하잖아요.아,배야." "배가 정확히 아프신건 언제부터세요?" "어제 저녁이요." "김간,성세인 환자 CT촬영 있어요!" "네,알겠습니다.금방 갈게요.환자 분 혈변은 언제부터 보셨습니까." "새벽부터요." "지금까지 몇번 정도 보신거죠?" "한시간에 한번꼴로 갔으니까 6번 정도..." "혹시 치질이나 생리로 인한 혈은 아닌거죠?" "네?!저 치질 없어요." 남자 간호사는 파일에 끼워진 종이에 연신 무언가를 열심히 적었고 말을 하면서도 내 눈을 마주칠 기미도 보이지 않도록 변기와 종이만을 번갈아 보았다. 작성을 끝냈는지 변기 물을 내리더니 펜을 가슴팍에 달린 주머니에 끼워 넣었다.
"CT 촬영이 잡혀 있으니 보호자 분이랑 같이 저 따라 나오세요." "네...!" "혹시 거동이 힘드시거나 그 정도의 고통은 아니시죠?" "네,진통제 덕분에 지금은 아까보다는 덜해요." "세인아,아직도 많이 아프니?" "엄마,나 CT 촬영해야한데.저 분 따라 가야해." "춥진 않고?옷 없어도 돼?" "엄마 얼른." "어,가자." 바로 옆에 위치한 CT실로 걸음을 옮기는 동안 남자 간호사는 말 한마디 없었다. 목소리에서 과묵함이 느껴지긴 했지만 이 정도일건 뭐람. 그 와중에 조금 복도가 쌀쌀해서인지 움직여서인지 배가 조금씩 아파왔다. "저기요...저 배가 좀 아픈데요." "환자분 진통제 맞으신지 두시간도 안되셨어요." "근데 아프다구요." "지금 상태에서는 아직 진통제 투여도 힘들고 원인도 아직 모르기 때문에 어떤 처방도 힘듭니다.그러니 조금만 참아 주세요." "아,네..."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얼음장 같을 수 있는건지,아프다는 말에 단칼에 참으라니. 결국 나는 그냥 아픈 배를 쥐어 잡고 끙끙 거릴 수 밖에 없었다. 5분 가량 대기를 했고 그제서야 촬영을 했고 그후 엑스레이 촬영도 이어졌다. 두가지의 촬영을 끝내고 응급실 침대로 돌아가 누우니 벌써 8시가 넘어 있었고 나는 학교 결석 결정에 걱정이 커졌다. "엄마,선생님한테 연락 드려야할 것 같은데..." "깜박했네.엄마 나가서 전화 좀 하고 올게.세인아 아프면 간호사분들한테 말씀드리고 있어." "응,지금은 참을만해." 엄마가 나가려 문앞으로 나서자 문은 자동으로 열렸고 그 남간호사가 걸어 들어 왔다. "성세인 환자분 포괄병동 503호로 옮기실거예요.입원 수속은 어머니께서 검사하는 동안 해주셨으니까 지금 이동하면 됩니다." "저기,엄마 밖에 잠깐 나갔거든요.조금만 기다렸다가 가면 안될까요?" "그래요 그럼." 상관 없다는 듯이 무심하게 대답을 한 남간호사는 갑자기 내 왼쪽 팔목을 걷어 올리더니 주사기를 꺼내 들었다. "뭐예요?" "항생제 반응 검사하는 겁니다.피부를 관통하기 때문에 많이 따끔할 수 있어요." "아!" "10분 후에 볼겁니다.만지지 마시고 그대로 두세요." 주사기를 카트 위에 놓더니 남간호사는 주머니를 뒤져댔다. 찾은건 검은색 유성 매직이였고 입으로 뚜껑을 열더니 한쪽에 뚜껑을 물고 주사를 둔 곳에 마구 글을 적었다. "이거 유성매직이잖아요!" "펜이 이것 밖에 없어요." "셉탁이 뭐예요?이거 안지워질텐데 이렇게 둬요?"
"그럼 하트라도 그려줄까요?" 남간호사는 픽 웃더니 '○셉탁' 이라고 적힌 글씨 옆에 작게 하트를 그렸다. 순간 나는 그런 남간호사가 어이가 없어 웃음 터지고 말았다. 분명 나는 아픈데 왜 그 상황이 그렇게 웃겼던걸까. "이게 뭐예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계속 남을거면 이왕 귀여우면 좋죠." "이거 언제 지워져요?" "그야 환자분이 얼마나 열심히 씻냐에 달렸죠.어머니 들어 오시네요.짐 챙기고 저 따라 오세요." 엄마가 들어오자 작은 미소를 띄우던 남간호사의 얼굴은 화장실에서 봤던 그 표정으로 다시 돌아 왔다. 엄마는 웃고 있는 내게 무슨 일이 있었냐며 이젠 괜찮냐고 물어 왔고 나는 아무 일도 없다며 얼른 짐을 챙겨 나가자고 보챈 뒤 응급실 간호사 분들에게 인사를 하고 남간호사를 뒤따라 나섰다. "환자분 팔 좀 보여주세요." 엘레베이터에 타자 10분이 지났는지 내 팔의 반응을 보더니 다시 열심히 종이에 혼잣말을 하며 적었다. 나는 종이에 적어 내리고 있는 글이 궁금해 들여다 보려 까치발을 들고 종이 쪽으로 얼굴을 내밀었고 남간호사는 날 한번 쳐다보더니 적던걸 멈추었다. "뭘 그렇게 열심히 적어요?" "환자분에 대해서 적고 있습니다." "저 이름은 알고 적으시는거예요?" "네.성세인 환자,98년 3월생." "간호사님은 이름이 뭔데요?" "그냥 부르시던 대로 부르시면 됩니다." "간호사님~하는건 너무 길잖아요." 5층입니다. "내리시죠." 태생이 과묵한 사람인지 어색함만이 감돌아 답답한 공기를 풀어 보려 애썼는데도 남간호사는 연신 냉랭한 반응이였고 나는 괜히 무안해져 조용히 남간호사 뒤를 따라 갔다. "503병동으로 가시면 안내해주실테니 저 끝에 보이시죠?503병동으로 먼저 가서계세요." "네." "세인아,선생님한테 전화 드렸더니 출석 걱정하지 말고 이참에 푹 쉬라고 말하시더라.그니까 이참에 못잔 잠도 자고 하면 돼.알았지?" "아파서 잠이나 편히 잘지 모르겠네." "성세인 환자분?" "네,맞아요." 503병동으로 들어가니 생각보다 환자는 적었다. 엄마와 동년배로 보이는 여자분 한분과 갓 서른이 되어 보이는 언니 그리고 외국인 환자 한분이 계셨다. 간호사쌤이 말하길,병동 중에 나름 가장 조용한 병실이니 지내는데 편할거라고 그나마 새것 같은 환자복을 챙겨 왔으니 갈아 입고 호출벨을 누르라고 전해주신 뒤 가셨다. 나는 커튼을 치고 환자복으로 갈아 입고 침대에 걸터 앉아 침대 맡에 놓인 호출벨을 눌렀다. "성세인 환자분 링거 맞으셔야해요." 호출벨을 누르니 계속 나와 함께 있던 남간호사가 주사가 담긴 카트를 밀고 들어오며 말을 했고 내가 누워 있는 침상 오른편의 낙상 방지 난간을 내린 채 내 다리편에 걸터 앉아 나의 팔을 걷어 올렸다. "주먹 쥐세요." "저 혈관이 숨어 있데요.그래서 다른 병원에서 매번 피 뽑기 힘들었어요." "저 잘찾으니까 걱정 마세요." 남간호사는 무슨 자신감인지 잘찾는다며 나의 팔꿈치 안쪽에서 열심히 핏줄을 찾아 댔다. 요리조리 얼굴을 들이밀며 열심히 찾는 남간호사의 모습에 순간적으로 '이 사람 참 잘생겼구나'하는 생각을 했고 그 와중에 앞에 왔다갔다 명찰 같은 것이 보였다. "쌤,이거 뭐예요?" "어떤거요?" "쌤 옷에 번쩍이는거요." "아,아무 것도 아니예요.핏줄이 정말 안보이네요...손등에서 볼게요.손등은 조금 더 아파요." 손등 위에서 핏줄을 찾기 위해 남간호사는 침상 위에 앉아 있던 몸을 한번 일으켜 세우더니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는 내 손등을 때리기도하고 문지르기도하며 핏줄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것 같았다. 나는 하지만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남간호사 옷에 달린 명찰 같은 것의 문구를 읽으려 노력했고 결국 해냈다. "포괄병동 인기남?" "네?" "뭐예요,지금.대답한거예요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닙니다." "어쩌다 달고 다니는 거예요?" "환자분이 주셨어요.따끔합니다." 그새 핏줄을 찾았는지 한손으로는 내 손목을 붙들고 한손으로 힘들게 낱개 포장된 주사기를 뜯더니 입으로 주사기의 뚜껑을 물어 열었다. 소독솜으로 주사 부위를 닦았고 주사기는 손등위에 찔렸다. "즘스믄여...픗즐이..." 입에 뚜껑을 문채 웅얼 거리며 말하는 남간호사의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웃음이 났고 주사기는 넣었는데 피는 안나오니 당황한 모습이 역력한 남간호사는 미간을 찡그리며 핏줄을 찾아 댔다. "츠즛드!!!주먹에 힘 빼세요." "ㅋㅋㅋㅋㅋㅋ잘 찾으신다면서요." "이렇게까지 혈관이 숨어 있는 환자는 처음 봅니다.절대 입원하지 마세요,다음엔." "저도 다신 안하고 싶거든요." "이제 링거 들어 갑니다.이건 비타민이랑 포도당이고 저건 칼로리 대신해주는겁니다.저 작은건 항생제이고 지금 주사하는건 진통제입니다." "왜 쌤은 자꾸 자기 말만해요?" "그럼 무슨 말을 더합니까.항생제는 링거가 들어가면서 조금 아플 수가 있어요.다 들어가면 호출벨 눌러주세요." "저 무슨 말만하면 다 무시하잖아요." "새벽 동안 날 새셨는데 안피곤하세요?안아플 때 틈틈히 주무시는게 좋을텐데." "혹시 삐졌어요?" "제가 왜요.어머니 오시네요,쉬세요." 남간호사는 엄마가 오자 자리에서 일어나 쌩하니 나가버렸고 나는 내가 무얼 잘못했나 싶어서 자꾸만 무안해졌다. 엄마는 어떤 젊은 여간호사와 함께 걸어 들어 왔고 여간호사는 남간호사처럼 버건디색 유니폼이 너무나 잘어울렸다. "너가 세인이구나!" "네...?" "진짜 이런 젊은 환자 보기가 포괄병동에서는 보기 힘든데!세인아 반가워~" "아,할머니분들이 많으신 것 같아 보이던데 저 또래는 없나봐요." "응.무슨 일 생기면 호출벨 빨리빨리 눌러!언니가 달려 올게.심심하면 티비도 보고 그래.티비 보는 법 알아?알려줄까?젊어서 이런거 안알려줘도 되려나?" 엄마와 함께 온 언니는 하얗고 키도 컸다. 성격도 굉장히 밝아 보였고 남간호사와 비슷한 나잇대인 것 같아 보였다. 무엇보다 자신을 '쌤'이 아닌 '언니'라고 칭하는 걸 보니 왠지 더 친근하게 느껴졌다. "네,언니!아니,쌤 감사해요." "언니라구 불러~여기 계신분들 조무사분들 말고 간호사들은 전부 언니,오빠야.편하게 불러도 돼." "그래도 좀..." "그렇다고 내가 의사도 아닌데 쌤이라고 불리는 건 좀 그렇지 않아?" 밖에서 호출벨 소리가 들려 왔고 언니는 '언니 간다!조금 있다가 봐~'라는 말과 함께 순식간에 사라졌고 언니가 나가자 무언가 쌩하고 지나간 것 마냥 정신이 없었다. 정말 밝은 사람이구나. 남간호사쌤은 저런 언니들 사이에서 혼자 청일점으로 일하는구나. 나는 다시 침상에 누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몰려 오는 피곤함에 진통제로 인해 잠시 나마 옅어진 통증에 나도 모르게 잠에 들었다. * "...아." "성세인" "세인아." "네?...아,배야." 나를 부르는 듯한 목소리에 급히 잠에서 깨니 눈은 아직 잘 떠지지 않았고 내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남자의 목소리라는 것뿐이 느껴지지 않았다. 잠에서 깨니 배에 고통이 다시 느껴졌고 정신은 혼미했다. 힘겹게 한쪽 눈을 떠보았으나 아직 제정신을 찾기란 힘들었다.
"세인아,괜찮아?" "...전정국?" 눈을 떠보니 정국이는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힌 채 침상의 난간에 힘든 몸을 의지하며 나의 손을 붙잡고 숨을 헐떡이며 내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정국이는 핫초코를 사서 뛰어 왔던 그때 보다 지쳐 있었고 그때의 핫초코보다 더 뜨거운 손으로 내 손을 붙잡아 주었다. 설마 정국이는 그때 보다 더 빠르게 내게 달려 온걸까. "뭐야...너 어떻게 알고 왔어.학교는 어쩌고." "지금 학교가 문제가 아니잖아!" "어.......?" "너 진짜 괜찮은거 맞아?" "정국아,나 괜찮아.약도 이렇게 잘 들어가고 있고 수술해야하는 그런 것도 아니야." "......나 때문이지." "무슨 소리야?뭐가 너 때문이야." "나 때문이잖아.너 배 아픈거." "아니야.뭐 때문에 아픈건지 아직 몰라.왜 너 때문일거라 생각해.우선 물 부터 좀 마시고 숨도 고르고 진정하면 여기 앉아서 얘기해." 정국이는 내가 따라준 물을 받아 들더니 한숨에 들이키고 숨을 두어번 크게 내쉬더니 의자에 앉았다. "어떻게 알고 왔어." "너 어제 배 아픈거 좀 괜찮나 보려고 점심시간에 너가 없길래 너 친구한테 물어보니까 너 안나왔다길래 학교 끝나자마자 전화 받아서 너희 어머니한테 전화했더니 너 입원했다고,여기 503호라길래 왔어." "밥은 먹었어?" "포괄병동은 면회 시간 아침 저녁 30분씩 정해져 있다길래 맞춰서 오려고 석식 시간에 담 넘어 온건데." "왜 그렇게까지 했어.괜히 미안하게." 그 순간 병동 밖 복도에서 우리 병동으로 오는 듯한 카트 소리가 들렸고 하필 그 간호사가 들어 왔다.
"성세인 환자,진통제 놓을 시간입니다." 어쩌다 보니 이렇게 급하게 하루만에 오게 되었네요. 계획 된건 10화 정도로 봄꽃이 필쯤 마무리를 지을 생각입니다. 무엇보다 계획 상이기 때문에 언제던 변동은 있을 수 있습니다. 아무도 안읽어주실줄 알았는데 읽어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정말 감사히 생각하고 있습니다. 00화보다 재미가 떨어지면 어쩌나...걱정이네요ㅠㅠ 분량 조절 실패로 급마무리 같은 감이 없지 않아 있기도하구요. 02화도 최대한 빨리 들고 오겠습니다. 재미도 뭣도 없는 글인데 기다리시게까지 하고 싶지 않아서라도 일찍일찍 들고 오려합니다! 오늘도 잘부탁드립니다. +)가끔 나오는 석진이의 움짤과 여주가 석진을 부르는 호칭 탓에 의사로 혼동하실 것 같아 짧게 정리를 해드립니다. 여주탄소:98년생,고3.낯가림 1도 없는 붙임성 좋은 성격.엄청난 털털함과 두꺼운 낯짝. 전정국:98년생,고3.여주와 9살 때부터 소꿉친구.ㅇㅕ주와 같은 고등학교,다른 반. 김석진:포괄 병동 유일한 남자 간호사.여주는 김석진에 대해 아는건 성이 김씨라는 것뿐.아직 여주가 이름을 몰라서 쌤,간호사님이라고 부름. 암호닉
| 더보기 |
단미, 단결, 또비또비 항상 감사합니다. |
모든 시리즈
아직 시리즈가 없어요
최신 글
위/아래글
공지사항
없음
아직 시리즈가 없어요
최신 글
위/아래글
현재글 [방탄소년단/전정국/김석진] 503병동에 꽃이 피었습니다 01 13
9년 전공지사항
없음

인스티즈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