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치환 하시고 가세요!
w. 정략결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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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리는 저 요망스러운 것들을 치우려고 달려들었다.
가만히 있자니 더 숨막히기만 할 뿐이었다. 아. 내가 전정국이랑 이런 분위기를 느껴보다니. 인생의 수치이자 흑역사다.
" 백퍼센트 꽃잎이랑 향초는 이모랑 삼촌 아이디어다. "
" 확실함. "
전정국이 이불을 팡팡 털어내며 말한다. 나는 그 말에 양초를 하나씩 끄며 동의한다.
네 분 다 소녀감성이긴 하지만 우리 엄마 아빠가 조금더 중증에 가깝기 때문에 드라마에서 본 건 꼭 한번씩 따라해본다.
대체 최근에 뭔 드라마를 본거야.
저 불건전한 노래도 당장 끄고 빨간 조명도 끄고 멀쩡한 백열등을 켰다. 드디어 숨통이 좀 트이고 어색한 분위기가 가시는 것 같다.
부모님들이 벌려놓은 난리통을 수습하느라 피곤함이 배가 된 것 같아 나는 소파에 쓰러지듯 드러누웠다.
" 어쩐지 며칠 전부터 손주보고 싶다고 찡찡대더라니. "
내 발밑 옆에 앉더니 상상하기도 더러운 이야기를 꺼내는 전정국. 윽. 허니문 베이비라니. 토나올 것 같다.
" 니 내 몸에 손댈 생각은 하지도 마라. "
" 상대방의 입장도 생각하는 사람이 됩시다^^^ "
그럴 일은 있을리가 절대 없지만 그냥 시비걸고 싶어서 말해봤다. 역시나 전정국은 똥씹었단 표정으로 대꾸했고 둘이 그렇게 킥킥대며 시덥잖은 농담따먹기를 이어갔다.
저녁을 굶었더니 아니 사실 난 웨딩드레스 입는답시고 점심부터 굶었더니 좀 많이 허기지다.
전정국도 마찬가지였는지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전정국은 전화기를 집어들어 룸서비스를 시킨다. 역시 척하면 척이다. 20년 세월이 허투루 보낸 건 아니었어.
주문을 마친 전정국과 나는 음식이 올라오기 전에 먼저 씻기로 했다. 가위바위보에서 이긴 내가 먼저 씻기로 했는데
내가 세면도구를 챙기는 순간 화장실 안으로 쏙 들어가버린다. 레이디 퍼스트다. 이 새끼야. 열이 뻗친 나는 화장실 문을 쾅쾅 부실 듯 두드리며 소리쳤다.
" 시발. 남은 여생을 화장실에서 보내고 싶냐. "
" 나 이미 옷 벗었다. "
" 알게 뭐야. 개새끼야. 닌 볼 것도 없어. 당장 나와. 뒤지고 싶지 않으면. "
" 볼 거 없는 동지끼리 이러지 말지. "
전정국 말에 나도 모르게 내려가는 시선... 그래 시발. 나 음식 흘릴때 가슴보다 배에 먼저 떨어진다. 치토스 새끼야.
지금 당장 나와 싹싹 빌어도 모자랄 마당에 안에서 저런 망언이나 해대고 있는 전정국이 못마땅해 죽을 것 같다.
어떻게 하면 전정국 새끼를 엿먹일 수 있을까 머리가 빠르게 굴러간다. 그러던 중 내 눈에 띈 건 샤워가운이었다.
순간 좋은 생각이 떠올랐지만 전정국을 엿먹이려다 나까지 엿먹는 기분이 들것만 같았다. 하지만 전정국 기분이 좆같아지는 게 내 최우선이었기에
망설이는 건 그만두고 안방으로 들어가 옷을 최대한 간략하게 입어 샤워가운 밖으로 보이는 옷가지가 없게 했다.
안에는 반팔과 반바지를 입었지만 샤워가운을 두른 상태에선 안에 아무것도 안입은 것처럼 보였다.
전정국이 기분나빠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입가에서 사악한 미소가 떠나질 않는다.
*(정국)*
샤워를 마치고 나왔다. 악다구니를 써대며 내가 나올때까지 지랄지랄해댈 줄 알았던 탄소는 의외로 쉽게 물러났고 덕분에 여유롭게 목욕을 즐길 수 있었다.
김탄소를 보면 잘했다고 칭찬이나 해주려 했는데 머리 위에 얹어진 수건을 걷어내니 보이는 건 샤워가운 차림으로 침대에 기대앉아 있는 김탄소였다.
그리고 그 사이에 다시 켜놓은 그 붉은 조명. 야릇한 음악까지.
" 니 뭐하냐.. "
어디서 본건 있는지 나름 요염하다고 생각되는 자세로 앉아있는데 팔다리가 짧아 실패다.
" ..너 설마 안에 아무것도 안 입었냐? "
가운 안으로 슬쩍슬쩍 비치는 살색과 드러난 맨다리. 눈을 썩게 만들기 충분했다. 이 새끼 분명 나를 엿먹이려는 수작인게 분명하다.
아니. 그래도 눈을 썩게 만드는건 너무하지 않냐.
내 질문에 김탄소는 고개를 끄덕였고 동태눈깔을 한 채로 나를 한참 쳐다본다.
**
나른하게 뜬거라고 하는거다 시발놈아.
*(정국)*
" 뭘 꼬라. "
머리를 탈탈 털어내며 침대로 다가가니 느릿느릿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 착 달라붙어 온다. 아니 더럽게 어디다 손을 대.
매정하게 쳐내려다 뭔 짓을 하나 궁금해서 가만히 있어봤다.
" 정국아. "
벌써 소름이.
" 이왕..이렇게 된거.. "
아니 말할때 숨소리 좀 빼봐.
" 부모님이 원하는대로..해드릴까?... "
참다참다 못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소름이 발끝까지 돋고 오한이 등골을 타고 올라온다. 저 새끼가 미쳐도 단단히 미쳤지.
장난이라고 해도 그 딴말을 들었을 때 내 기분은 하나도 생각 안한게 분명하다. 개더럽다고!!!!!!
목에 걸친 수건을 김탄소 얼굴에 집어던졌다. 하지만 김탄소는 아랑곳 않고 덩달아 일어나 다시 내 어깨에 손을 올리고 바짝 달라붙는다.
" 응?..싫어? .. 난 괜찮은 것 같은데. "
" 적당히 해라. 제주도까지 와서 맞기 싫으면. "
" 나 가운 안에 아무것도 안 입었다?..정국아. "
캐리어에서 당장 옷을 꺼내 던져줬다. 그래도 김탄소. 불굴의 한국인. 안면경련을 일으키며
**
윙크한거야. 개새끼야.
*(정국)*
샤워가운 끈을 풀려고 한다.
" 아!!알았어!! 내가 잘못했어!! 미안!! 내가 씻어서 정----말 미안!!!!! "
마음에도 없는 사과를 하고 나자 그제서야 이겼다는 듯 의기양양한 미소를 짓곤 씻으러 들어간다.
그제서야 샤워가운 사이로 보이는 반팔과 반바지가 보였고 졌다는 기분이 파도처럼 몰려온다. 뒤졌어. 김탄소.
' 띵동'
그 사이에 주문한 룸서비스가 문 앞에 도착했고 문을 열어주자 직원이 카트를 끌고 방안으로 들어온다.
테이블 위에 음식들을 셋팅해주셨고 그 사이 가방을 뒤져 팁을 꺼내 드렸다. 팁을 받아든 직원은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주섬주섬 꺼내 내 손에 조심스럽게 얹어주셨다.
" 예약하신거.. "
그러더니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히곤
" 화이팅 하세요!! "
카트를 요란스럽게 끌고 나가버린다.
건네준게 무엇인가 싶어 들여다 보니 전부 영어로 써져있어 읽을수가 없다. 무슨 로션통같이 생긴건데. 분홍분홍하니 참 남사스럽게 생겼다.
근데 뭐 이런걸 예약해놨다는거지. 우리 로션 챙겨왔는데.
용도를 알수없는 그 물건을 협상 위에 올려놓고 먼저 먹기 시작했다.
**
이 새끼가. 의리도 없이 먼저 쳐먹고 있어.
씻고 나오자 시켜놓은 음식을 내 허락도 없이 먼저 우적우적 씹고있는 전정국이 보여 개운하던 기분을 확 잡쳤다.
이러다 다 뺏길 것 같아 전정국은 나중에 혼내기로 하고 옆으로 가서 나도 전투적으로 먹기 시작했다.
" 돼지새끼. "
" 나를 돼지라고 부를 수 있는건 그 사람 밖에 없어. "
" 그 새끼는 니가 이렇게 먹는 모습을 못 봤잖아. "
" 그렇지. 앞으로도 안 보여줄 예정이고. 그리고 어따대고 새끼래. 니보다 형이야. 예의를 갖춰. 장유유서도 모르는 새끼야. "
" 돼지랑 인간은 사랑에 빠질 수 없어. "
하여간 일부터 십까지 마음에 안드는 새끼. 한참 정신없이 먹던 중 협상에 못 보던 것이 올라와 있어 집어들었다.
" 켘ㅋㄱ... "
그리고 그 물건이 무엇인지 알아본 순간 씹고있던 고기가 탁 얹혀버렸다. 켁켁 거리며 기침을 해대자 전정국은 그럴줄 알았다며 물을 따라 건넸고
물을 나시고 나자 숨을 좀 고를 수 있었다.
" 너 .. 이거 어디서 났어. "
" 아 직원이 주고 가던데. 부모님이 우리 로션 안 가져간 줄 아셨나봐. "
" 로션? 미친놈이. 설마 영어를 못 읽어서. 아. 그래 차라리 그냥 그렇게 알고 있어. "
내 말에 전정국은 금새 표정을 굳히며 왜 본인을 무시하냐며 따지고 든다. 아니 제발 이게 뭔지 물어보지마 제발.
내가 어떻게든 대답을 회피하려고 하자 머리통을 그 억센 손으로 고정시키고 대답을 요구한다.
" 뭔데. "
" 니 인생 살면서 절대 1도 쓸모없는거야. 제발 로션이야. 그냥 그렇게 알아. "
하지만 고집하면 전정국이나 나나 절대 지지 않는 황소고집들이다. 절대 내가 입을 열때까지 이 실랑이가 끝나지 않을 게 분명하다.
" ㄹ.ㅂ..ㅈ......"
" 뭐? "
" 럽..ㅈ.. "
" 안 들.. "
" 아 씨발!! 러브젤이라고!!!!!! 러!!브!!젤!! 그래 시발!! 그거 할때 쓰는거!!!! 됐냐?? 됐어?? 이 썅놈아!???
그 때 아프지 말라고 쓰는거!!!! 어디껀지도 말해줘야 되냐?!?? 듀렉스네 씨발!!! 좋은것도 줬네!!!! 몰라. 나 쳐잘거야!!!!! 시발!! 닌 소파에서 자!!! "
" ..... "
참다 못해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고 침대에 드러눕자 민망해진 전정국은 말이 없었다.
" ..말..예쁘게...해...잘자.. "
**
다음 날이 되고 단세포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는 우리둘은 그새 어제 일을 까먹고 아침부터 뭘 먹을까 아웅다웅대고 있었다.
하룻밤 더 자야 되니까 캐리어는 챙기지 않고 간단한 짐만 챙겨서 나가려 했다. 전정국은 먼저 로비로 나가 있었고 난 방정리를 조금 한 뒤 방을 나섰다.
로비로 내려와 전정국 얼굴을 보자 지갑을 가지고 오지 않은게 생각이 났다.
" 아 맞다. 지갑. 다시 갖다올게. "
" 하여간 뇌 뒀다가 뭐하냐. "
전정국이 비아냥 대는 걸 꾹 참고 지갑을 가지고 다시 내려오자 이번엔 핸드폰을 두고 온게 떠올랐다.
" 아 미안. 나 핸드폰. "
" 작작해라. "
핸드폰을 들고 내려오자 이번엔 키를 꽂아놓고 그냥 나온게 기억이 나 이번엔 직원까지 동원해 다시 방에 갔다와야 했다.
오늘따라 왜 이러지. 유독 오늘따라 덤벙댄다. 전정국이 꾹 참고 있는게 표정에 다 드러났고 슬슬 눈치가 보이기 시작한다.
다행히 이젠 두고 온게 없어서 사십분만에 로비에서 탈출할 수 있었고 꽁한 전정국의 표정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
가이드를 만나기로 한 곳까지 얼마 되지 않아 걸어가기로 했다. 잠시 걷던 중 전정국이 화장실에 가고 싶다했고 마침 큰 대형상가가 있어 거기서 해결하기로 했다.
난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기로 했고.
잠시 전정국을 기다리던 중 내 눈에 포장마차가 눈에 띄었다. 아침밥을 아직 못 먹은 상태라 배가 고파 홀리듯이 그 곳으로 이끌려갔다.
근처니까 전정국이 발견하고 이쪽으로 오겠지 싶어 맘놓고 떡볶이를 시켜 혼자 우적우적 씹어먹고 있었다.
한 십오분쯤 지났을까 전정국이 너무 안온다 싶어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 미친..이게 뭐야.. "
부재중 전화 10통.
그리고 읽기도 무서운 문자 3통.
' 어디야. '
' 어디냐고. '
' 야. 전화 왜 안받아. '
아씨 좆됐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거였고 문자를 확인하자 마자 포장마차를 뛰쳐나가려 했지만
그럴 필요 없었다.
" 야. "
진심으로 화가 난 듯한 전정국이 내 뒤에 와있었니까.
내 예상컨데
신혼여행은 여기서 끝이 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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