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누나 (예고편)
Witten by. 데일리어리
또각또각 구두 굽소리에 이어 도어락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가 들린다, 내리 꽂혔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또 왔네, 그녀가 왔다. 벌써 1년째다.
핏기 하나 없는 창백한 피부에, 금방이라도 부러질 거 같은 팔 다리. 푸석푸석해 보이는 흑발 머리. 그와 대비 되는 연한 갈색의 눈동자. 화장기 없는 얼굴. 초췌해 보이는 그 얼굴은 보는 나로 하여금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어디 아픈 사람 같아 보여. 아무튼 이상하다.
"할배, 아줌마 왔어요."
"아이고, 왔구나."
손자와 다름 없는 나는 안중에도 없고 그녀를 반기다니, 이쯤 되면 솔직히 의심갈만 하다. 영화 '은교'가 떠오르기도 하고, 할배 재산을 노리는 건가. 아 씨, 영화를 너무 많이 봤나. 예순이 넘은 할배와 20대 초반 -내 추측이다. 본인은 열 아홉이라 우기지만.-의 지속적인 만남은 평범하지 않아 보인다. .
"야, 너 담배 있지. 그 거 줘봐."
"저 미성년자예요. 없거든요. 있어도 싫은데요."
"우리 이쁜이, 까칠하긴."
"아 진짜, 그딴식으로 부르지 마요."
"뒷 주머니에 있는 거 다 안다."
이쁜이? 열 아홉, 건장한 사내한테 이쁜이라니, 기분 좆같다. 이 거 성희롱으로 신고할만하지 않나. 씨발, 그리고 담배 있는 건 어떻게 알았지, 진짜 귀신 같네. 그녀가 내 엉덩이를 톡톡 두들기더니 뒷 주머니에 있는 담배값을 빼내갔다. 이 건 성추행 수준인데, 게다가 금품 갈취까지. 어휴, 한숨을 내쉬고 그녀를 노려 보았다. 그녀는 오 만원 권을 손에 쥐어주며 방긋 웃었다. 담배 값이랑 할아버지 빌리는 값. 이윽고 그녀는 할배 손을 잡고 비밀의 방 -그녀가 그렇게 부른다- 으로 들어가 버렸다. 누나, 방에서만 피우지 마요, 피우기만 해봐 진짜.
매캐한 담배 연기가 방문 틈 사이로 퍼진다. 기관지 안 좋은 할배를 앞에 두고 그녀가 담배를 뻑뻑 피워대는 게 확실하다. 대체 무슨 버르장머리인지. 씩씩대며 방문을 열어젖혔다. 내 두 눈을 의심했다, 믿지 못 할 광경, 입을 다물지 못했다.
"아, 이 거? 재떨이가 없길래."
그녀는 소름끼치게 차분했다, 할배 또한 흠흠거리며 콧소리를 낼 뿐 평온했다. 내가 보는 게 맞는 건가. 불씨가 꺼지지 않은 담배 꽁초를 할배 목덜미에 지지고 있는 그녀. 치이익, 기분 나쁜 소리를 내며 할배의 목덜미가 타 들어갔다.
"미,미친년!"
그녀에게 다가가 거세게 그녀의 뺨을 내리쳤다. 굉음과 함께 그녀의 뺨에 붉은 자욱이 선명하게 그려졌다. 꽁초는 힘없이 떨어지고, 그녀의 시선도 또한 떨어졌다. 이 거 누가 준건데, 아깝잖아. 그녀는 쪼그려 앉아 꽁초를 주운 뒤 필터를 빨아들였다. 눈이 훼까닥 돌아갔다. 그녀를 넘어뜨리곤 멱살을 잡아 올렸다. 정국아, 그만해라. 떨리는 할배의 목소리, 뒤를 돌았다. 할배는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할,배 울잖아, 마지막인데..마지막, 좀 잘 해드려라."
"뭐라 했어요, 방금?"
"우선 이 것 좀 놓고."
마지막? 그녀의 멱살을 그러쥐었던 손의 악력이 점점 약해졌다. 그녀의 눈동자는 무서울만큼 고요했다. 당신이 뭔데, 마지막이라는 건데. 이내 그녀는 신경질적으로 내 손을 낚아챘다. 켁켁대며 그녀는 숨을 몰아쉬었다. 씨발, 어린 게 힘은 존나 세네. 순간 그녀의 목을 비틀어버리는 상상을 해버렸다.
"아무튼 난 간다. 잘 있어."
다시금 그녀는 방긋 웃으며 내게 와락 안겼다. 건강하고, 몸 조심하고. 그녀는 내 등을 토닥였다. 상식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방금 전까지 내게 뺨을 맞고, 멱살을 잡힌 사람이 맞나. 소름이 돋았다, 그녀는 미친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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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배가 죽었다, 외딴 산 속에서. 할배의 목덜미에는 날카로운 이빨에 물린 자국과, 온 몸에는 날카로운 것에 베인 -맹수의 발톱으로 추정되는- 상처가 곳곳에 나있다-라고 들었다. 믿을 수 없었다. 할배가 그 시간에 산 속을 갈리가 없다, 맹수? 작은 동산에 맹수가 나타날 일이 뭐가 있는데. 재 수사를 요청했다. 솔직히 말이 안 되잖아요, 저 짐작 가는 사람이 있어요. 할배 저렇게 가기 전에 이상한 말을 한 여자가 있었어요, 있었다구요. - 학생, 학생이 눈으로 직접 봤듯이...아, 지금 가장 힘든 건 본인일 거지만, 무튼 물증 없이 심증만 가지고 재 수사를 할 수는 없어, 돌아 가요, 돌아 가.
그녀가 1년 넘게 나와 할배의 집을 제 집 드나들듯이 다녔지만 나는 그녀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할배는 그녀에게 이름을 부른 적 조차 없었으며, 나는 그녀의 이름을 궁금해 하지 않았다. 사는 곳, 나이, 이름... 어느 것 하나 아는 것이 없어 그녀를 찾을 수 없었다. 할배, 미안해요, 내가 정말. 할배는 그렇게 나를 떠나갔고, 그녀도 홀연히 자취를 감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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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1년이 지났다. 16학번, 대학생이 되어 누리는 새내기 캠퍼스 라이프는 신선했다. 그렇게 화창하고 아름다운 나날이 계속 되었다, 누나를 만나기 전까지.
"정국아, 인사 드려. 14학번 학회장 선배님이셔. 나는 그냥 누나라 불러."
"안녕하..."
경악을 금치 못했다. 한 학번 위인 15학번 남자 선배가 소개하는 학회장 선배라는 여자, 그녀와 닮았다. 하지만 윤기나는 갈색 긴 생머리에, 화사한 피부, 적당히 보기 좋은 몸매, 그리고 새까만 눈동자... 그녀와는 상반 되는 분위기를 가졌다. 정말 그녀인 것일까. 여러 가지 묻고 싶은 게 뒤죽박죽 되어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무엇이라도 물어봐야 한다, 물어봐야 한다. 그래, 이거.
"전정국, 인사 안 드리고 뭐해?"
"....담배, 피우세요?"
남자 선배의 얼굴은 일그러졌고 이내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학회장 선배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아니, 안 피우는데... 조금 당황스럽네."
"아니, 얘가 아직 새내기라 뭘 몰라서 실례를... 죄송해요, 누나."
"그럼 나도 남자한테 실례 하나 할까? 되게 이쁘게 생겼다,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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