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하고 또 평범한 나와는 달리 전정국은 학교에서 꽤나 유명인사였다. 일단 그 잘생긴 얼굴이 가장 큰 몫을 했고 뛰어난 운동신경이나 노래 실력도 한 몫을 했다. 처음엔 내가 전정국과 연인 관계가 되리라곤 상상조차 못 했다. 그 아인 너무나도 빛나고 멋졌으니까. 처음엔 그저 같은 반 친구였다. 학기 초에 전정국과 나는 짝이 되었고 낯을 가리는 성격이라 먼저 입을 여는 일이 없었다. 그런데 여자들에겐 특히나 무뚝뚝하다는 친구들의 증언과는 다르게 나에겐 시덥잖은 농담을 던질 뿐더러 꽤나 다정한 말도 건낼 줄 아는 아이였다. 덕분에 나도 조금씩 전정국에게 적응했고 티가 안 나게 뒤에서 나를 챙겨주고 항상 내가 먼저인 전정국에게 시간이 흐를수록 나도 점점 익숙해져 갔다. 처음에는 나의 감정에 솔직하지 못했지만 너희는 사귀는 사이냐고 묻는 친구들에게 답을 하지 못하다가 내가 좋아한다고 답 한 동시에 정말 무드 없게 "전정국, 나랑 사귀자." 라고 고백하자 그에 전정국은 "그래, 우리 사귀자." 라고 답 했다.
부제: 친구는 그만해. 이제 더는 못 참아. "정국아, 우리 처음 만난 날 기억 나? 나 아직도 기억하는데."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정국이가 귀여워 웃음을 흘렸다. 나와 전정국의 얘기를 풀어보자면 고등학교 입학식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년 전 이라니. 세월 빠르네. ×××× "와, 강당 되게 넓다." 사실 난 지금의 고등학교를 1지망으로 적지 않았다. 친구들과 다 같이 여고를 1지망으로 적어 냈지만 예상 인원보다 몰리는 바람에 뺑뺑이를 돌려서 고등학교를 가야 했고, 덕분에 친했던 친구들과 강제이별을 해야 했다. 걱정이 앞섰다. 학교에 도착도 하기 전에 여러 생각이 나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이번에도 또 저번처럼 무섭게 생겼다고 나한테 말을 안 걸어주면 어쩌지, 밥은 누구랑 먹어야 하지, 공부를 열심히 해서 외고나 갈 걸, 인간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동물이니까 잘 하겠지, 친구들은 뭐 하고 있을까. 뭐, 이런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나를 더욱더 멘붕의 상태로 빠지게 했다. 사실 내가 표정 변화가 없는 편이라서 얼굴에 전혀 티가 나지 않을 뿐이지 난 아주 소심하고 찌질한 성격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3반은 이쪽에 앉아." 내가 배정받은 반은 3반이었고 3반의 담임 선생님으로 추정되시는 분이 이쪽에 앉으라고 말씀하시자마자 나는 재빠르게 뒷자리에 착석했다. 이런 지루한 곳에서 맨 앞자리에 앉아 교장선생님과 눈을 맞추며 고개를 끄덕여야 하는 부담스러운 상황을 원치는 않았기에 터벅터벅 뒷자리로 걸어갔다. 그때, 누군가 내 앞자리에 털썩 앉았다. 앉아서 두리번거리더니 이내 다시 내 뒷자리로 자리를 옮겼다. 내 앞자리에 앉은 사람이 신기해서 계속 쳐다보니 그 짧은 시간에 느낄 수 있었다. '잘생겼네' 하고 말이다.
어느덧 입학한지 1달이 넘었고 내 걱정과는 다르게 반 친구들이 모두 착해서 혼자 앉아있는 나에게 말도 걸어주었고 같이 밥도 먹자며 웃어보였다. 너무나도 반가운 나머지 나는 방방 뛰며 그래라고 답했고 빠른 속도로 친해졌다. "아, 맞다! 오늘 우리 자린 바꾼다던데?" 가만히 있다가 손뼉을 짝- 치는 수지에 놀라 책에 파묻었던 얼굴을 들었다. 자리를 바꾼다고? 아... 하긴 벌써 입학한지 1달 넘었네. 시간 지인짜- 빠르다. 입학식 날에 어떡하냐고 징징대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적응도 다 하고 장하다, ㅁㅁㅁ. "제비뽑기래?" "그건 잘 모르겠어... 근데 난 같이 앉고 싶은 애 있다, 헤헤" 그런 수지의 말에 깜짝 놀라 누구냐고 되묻자 얼굴이 금세 붉어지더니 나에게 귀를 대보라며 손짓했다. 빠르게 귀를 내어주니 수지가 망설이다가 그... 걔 있잖아, 전정국...! 하고 나에게 말했다. 전정국이라면 입학 첫날에 내 뒤에 앉았던 애를 말하는 거겠지? 처음 그 아이를 보자마자 했던 생각은 모든 여자애들도 마찬가지로 했던 생각인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얼굴만 잘생긴 게 아니라 키도 은근히 컸다. 고작 1달 본 게 다였지만 어째 볼 때마다 쑥쑥 크는 느낌이었다. 신체검사에서 여자고 남자고 할 것 없이 반장이 아주 큰 목소리로 또박또박 결과를 불러주었는데, 전정국의 피지컬은 심하게 바람직했다. "12번 전정국. 178cm, 70kg" 한눈에 보기에도 우락부락한 근육은 아니지만 제법 잔근육이 잡혀있는 게 밸런스가 잘 맞춰진 몸 같았다. 듣자 하니, 중학교 2학년 때까지 축구부로 활동을 했다더니 허벅지도 탄탄했고 가끔 체육시간에 땀이 비 오듯이 흐르면 제 체육복으로 땀이 난 얼굴을 스윽- 닦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조금씩 고개를 내미는 복근이 유치하지만 소설 속에 나오는 속된 말로 '엄친아'와 같았다. 그러니 전정국을 남몰래 좋아하는 아이들이 없는 게 이상했다. 아직 학기 초라 창피한지 말 못하는 아이들과 대놓고 좋아한다며 은근히 주위를 맴도는 아이들까지 합하면 열 손가락도 부족했다. 잘생겼다고 매번 생각은 했지만 그렇다고 친해지고 싶다거나 말을 걸고 싶진 않았다. 왜냐, 전정국은 생각보다 어마 무시한 철벽남이었기 때문이다. 조별 수업에서 말을 걸어도 응, 그래. 가 전부였고 체육시간이 끝나고 음료수를 건네면 됐어. 용기 있는 한 아이가 정국아 좋아해! 라고 고백하자 미안. 이러니 우리 반 여자애들이 어쩌다가 반 톡에서 전정국이 한 번 답을 하면 캡쳐하고 귀엽다면서 혼자 끙끙 앓지... "한명씩 뽑고 칠판에 적힌 숫자대로 앉아." 나는 13번을 뽑았다. 칠판을 보니 옆자리엔 19번이라고 적혀있었다. 누구일까? 이왕이면 여자애랑 짝하고 싶은데... 아직 남자애들과는 안 친하기도 하고 낯을 가려서 불편할 것 같아서였다. 그때 내 옆자리에 누군가 의자를 빼고 앉았다. 궁금했던 나는 바로 고개를 돌려 쳐다봤고 그 상대를 알자 입이 떡 벌어졌다. 전정국, 왜 쟤가 내 짝인 거니...? 너무 당황스러운 나머지 전정국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내 시선을 느꼈는지 핸드폰에서 시선을 거두고 내 눈을 마주치더니 한마디 했다. "안녕." 내게 말을 걸 줄은 몰랐다. 분명 먼저 말 걸지 않으면 입도 안 열고 인사는커녕 옆 친구가 등교해도 쳐다보지도 않는다면서 왜 나에게 인사를 한 건지 모르겠다. 나에게 인사를 했단 사실을 잊어버리고 눈동자만 이리저리 도르륵 굴리며 어쩌지- 하고 상황 파악을 하던 찰나에 다시 내게 말을 건넸다. "인사. 안 받아주나?" "어? 어... 안녕." 바보같이 말을 더듬었고 그에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제 핸드폰으로 시선을 고정했다. 전정국과 짝이 된지 일주일쯤 되었을까, 평소와 다름없이 간당 간당하게 지각을 면하고 숨을 헐떡이며 자리에 앉았다. 숙제를 한답시고 거의 밤을 꼴딱 새운 나는 천하 장사도 이기지 못한다는 졸음신이 찾아와 결국 꿈나라로 향했다. 학교에 뛰어와서 더운 나머지 겉옷을 벗고 잠을 청했는데 으슬으슬 추워서 정신을 차려보니 내 어깨에 주인 모를 마이가 곱게 덮어져 있었다. 누구 꺼지...? 품이 큰 걸 보니 남자애 것 같은데, 도대체 누가 이걸 덮어주고 가냐... 나 아직 남자애들이랑 말도 못 튼 찐딴데...큽 "깼네. 잘 자더라." 누구지, 누가 덮어줬을까 하며 골똘히 생각 중이었는데 옆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에 화들짝 놀라 바라보자 전정국이 무덤덤한 얼굴로 잘 자더라.라며 감상평을 선사했다. ㄴ...내가 자는 얼굴을 봤다고? 그럴 리가 없는데. 나 완전 머리로 커튼 치고 자는데? 아, 자는 얼굴 추했을 거 아냐? 으어억... ... 속으로는 아주 난리가 났지만 애써 아닌 척하며 이 마이 네가 덮어주고 간 거냐고 물어보니 응. 하길래 더욱더 당황스러웠다. 평소에 얘랑 나랑 친했던 사이도 아니고 용건만 간단히 물어보고 대화도 없었는데 이게 무슨 상황...? 심지어 같은 반 친구라고 말하기가 무색할 정도로 어색하고 숨 막힌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엊그제 영어시간에 짝꿍끼리 교과서 본문에 나와있는 말을 주고받으며 외워서 검사 맡는 수행평가가 있었는데 둘 다 입을 꾿 닫고 있다가 선생님이 시켜서 겨우겨우 끝낼 수 있었다. 다시 생각해도 숨 막히는 상황에 정신이 아득해져왔지만 애써 정신을 붙잡고 다시 물었다. "이거 왜 덮어준거야...?" "너 안에 살짝 비치길래." 오늘 급하게 준비를 한 나머지 셔츠 안에 나시를 깜빡 잊고 교복을 입었는데 안에 속옷이 비친 모양이다. 부끄러운 나머지 그대로 다시 책상에 엎드려 중얼거렸다. 대미친... 그 후에도 전정국은 말없이 꽤나 깜찍한 짓을 자주 했다. 내가 코코팜을 좋아한다며 먹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니, 그 다음날 나의 서랍에 코코팜을 놓고 간다거나. 다른 여자친구들에겐 싸가지가 없는 것 같다. 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말이 짧고 표정이 굳어있었는데 나를 보면 동네 바보처럼 실실 웃음을 흘린다거나. 뭐 대충 이런 남자애였다, 전정국은. 좋아하는 여자 앞에서 어쩔 줄 모르는 제 또래 남자애들과 똑같았다. ×××× 전정국 답다고 하면 전정국답게, 전정국 답지 않다면 답지 않게 내 고백을 받아들였다. 야자를 끝내고 나를 바래다주겠다던 말을 굳이 거절할 필요는 없었다. 늦은 밤 혼자 걷는 길은 무서웠으니까. 그런데 문득 생각이 들었다. '난 얘랑 무슨 사이지. 남자친구도 아닌데 왜 날 데려다주고, 날 걱정하고. 날 신경 쓰는거지." "전정국." "왜 불러." "우리 사귀자." 뜬금없는 나의 말에 걸음을 멈춰 나를 바라보더니 "그래. 우리 사귀자."라며 나에게 한걸음 더 가까이 다가왔다. "근데... 그거 알아?" "뭘?" "이제 등하교 같이 하자고 전정국이 이 말 꼭 전해달라는데?" 끝까지 잔망스러운 전정국의 말에 나는 되물었다. "전해달래? 그랬구나~ 또 뭐 전해달라는 말 없었어?" "밀당 좀 그만하래. 속이 엄청 탄다고 하더라." 괜히 부끄러우니까 전정국이 던해달라고 했다며 본인의 불만을 토로하는 게 너무나 귀여웠다. 불만이라고 해봤자 그만 예뻐라. 남자애들이랑 너무 친하데 지내지 마라, 질투 난다. 뭐 이런 기분 좋은 불만이었기 때문에 집에 가는 길 내내 간질간질 난생처음 느끼는 기분이었다. ==== "정국아. 우리 처음에 진짜 어색했지?" "그랬나? 잘 모르겠는데..." "네가 먼저 말 걸어줬잖아. 사실 엄청 놀랐거든." "네가 좋은 걸 어떡해." 대답을 하면서도 내 손을 살펴보기에 정신이 팔려있었다. 저보다 작은 손이 신기한 건지 이리 저리 살펴보다가 핸드크림을 발라주며 조물 조물거렸다. 제 손과 대보며 진짜 아기손이네 중얼거리기도 했고 귀엽다며 깍지를 끼더니 실실 웃기도 했다. 난 전정국이 제일 귀여운 것 같은데. "손 그만 봐. 닳겠다." "싫어. 계속 봐야지." "이제부터 손 잡지말까?" 내 말에 바로 손을 놓아주더니 또 입을 내밀고 나를 쳐다본다. 또, 또 버릇 나왔네. 귀여운 척하면서 입술 내미는 거. 전정국 저거 일부로 저러는 거야. "그럼 나 뽀뽀." "학교잖아. 애들 보는데?" "뭔 상관이야. 해 줘." "안 돼." "너무해." 말로는 미워 죽겠다면서 자꾸 절 껴안는 남자친구, 비정상인가요, 정상인가요?
능글 맞게 내 말에 대꾸하고 볼에 쪽- 뽀뽀를 하자 내 앞에 앉은 정호석이 인상을 쓰며 까불대기 시작했다. "사랑꾼 전정꾼~ 이대로 무뚝뚝한 컨셉은 버리는 건가요? 1년 넘게 허세란 허세는 다 부리더니 결국 사랑 앞에서 무너지고 마네요~~~ 아아... 안타까워라." "네 남은 인생 무너지게 해줘?" 항상 정호석은 우리 앞에서 커플 냄새가 난다며 까불거리다가 정국이에게 정강이를 한번 맞고 기절할 때가 다반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희가 헤어지는 날까지 응원하겠다며 커플 브레이커의 면모를 지켰다. "어휴... 정국아. 우리 매점 가자." "응." 야 이 자식들아! 날 환자로 만들고 어디로 튀는 거야! 호석이의 처절한 외침을 뒤로하고 손을 꼭 잡은 채 매점으로 가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별 거 아닌 일에 실실 웃음이 나오는 게, 아무래도 내가 진짜 사랑을 하긴 하나보다. ☺ 안녕하세요+ 희주입니당 오늘은 정국이와 연애썰 과거편을 가져와봤어요. ㅎㅎ 저번편까지는 짧게 짧게 달달했다면 다음편부터는 지금처럼 길게 이어지는 달달한 내용입니당 봐주셔서 감사하고 아직 부족하지만 열심히 쓸테니 같이 달려주세요ㅜㅜ 너무 자주 와서 부담스러우신 건 아니겠죠..? 아 그리고!! 암호닉 신청해주시고 안 오시면 섭섭해요...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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