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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 맥스







  일이라도 하면 잡념이 드는 횟수도 줄어들건만 하필 공휴일이라 모두가 문을 닫았다. 이렇게 태평해지면 어쩔 수 없이 상념 속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다. 그냥 걷고, 또 걷다가 다리가 아파서 잠시 의자에 앉았다. 할 것도 없고, 마음이 복잡해 바로 재헌과 약속을 잡았다. 갈 곳이 정해지자 정국은 부지런히 걸었다. 재헌은 토익 학원 수업이 끝나고 오는 중이라 결국 정국 먼저 카페에 들어갔다. 사람 구경을 하자니 계속해서 상념에 사로 잡혔다.

 햇살 하나는 기가 막히게 좋았다. 구석에 빈 자리에 자리 잡은 정국은 내리 한숨을 쉬다 뉴스 기사도 보고, 괜히 카페 쿠폰도 만지작거렸다. 그러다가도 언제 석진에게 연락이 다시 걸려올지 몰라 전전 긍긍하며 주머니에 넣어둔 핸드폰을 들여다봤다. 별 일 없겠지? 정국이 검지 손가락을 책상에 마찰하며 까딱 움직였다. 

 그렇게 간절하던 휴식이었는데 늘 바쁘게 일만 하다 갑자기 한가해지니 도저히 적응이 되지 않았다. 이래서 평소에 평소에 놀아본 놈이 잘 논다는 거였다.

 카페에 들어오자마자 익숙하게 디저트 몇 가지를 더 받아들고 온 재헌은 직행해 정국의 앞자리에 앉았다. 먹어. 재헌이 크로와상 한 개를 자른 후 먹으라는 듯 살짝 손을 흔들어 보였다. 정국이 고갤 끄덕이며 보기만 해도 단 초코 가루를 잔뜩 입주변에 묻히며 한 입 크게 베어 물었다.

 아니나 다를까, 쏟아지는 질문에 정신이 가득해져 진정 좀 하라고 몇 번이고 얘기하고서야 재헌은 목 끝까지 차오른 숨을 골랐다. 끝없이 날아오는 질문공세에 시달려야만 했다. 정국은 죽을 맛이 아닐 수가 없었다.

   “그때 그 사람은 뭔데? 너한테 무슨 볼 일이 있어서 왔대?”
 
  그런데 무슨 일인지 알려주지 않고 뜸만 들이니 궁금한 걸 넘어서 재헌은 속이 답답하기까지 했다.

   “… 미래그룹 김 석진 부회장님이,”
   “엉.”
   “나한테 결혼을 하쟤.”

  뭔가 있다고 생각하긴 했다. 그런데 이런 비현실적인 소리를 들을 거라고 가정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너무도 말이 안 되는 주제를 굉장히 덤덤하게 뱉어낸 정국 때문에 재헌은 순간 제 귀가 잘못됐나 싶어 대답이 한 박자 늦었다.

   “뭐, 겨, 결혼? 김 석진 부회장이?”

  말 그대로 미래그룹. 부회장. 결혼. 세 단어를 조합해 보자, 정신이 든 건지 재헌은 그대로 테이블을 박차고 일어나서 소리를 질렀다. 엄청나게 큰 소리가 카페 전체가 울렸다.

   “맨 정신에 꿈 꿨냐?”

  일단 어깨를 쥐고 앉히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결국 정국은 힘으로 눌러 자리에 앉혔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재헌은 어안이 벙벙한 채로 입만 뻥긋거렸다. 

 돈을 준대. 급한 사정이 있나 봐. 자연스럽게 돈이라고 말했다가 정국이 입을 꾹 다물자 다시 한 번 무거운 공기가 두 사람 사이에 내려 앉았다.
 
 궁금한 건 참지 못 하고, 무엇이든 집요하게 물어보는 재헌은 특수분장사를 꿈꿀 게 아니라 파파라치 기사가 돼야 했다. 대충 얼버무려 넘어가려 했는데 망했다 싶어, 덩달아 허리를 세우곤 그날 있었던 1시간의 대화 내용을 샅샅이 털어놔야 했다.

 정국도 여전히 이해가 안 가지만 팩트는 석진이 결혼을 하잖다. 조금 지나친 농담, 혹은 몰래카메라라 부정하기엔 석진의 표정이 너무 진지했다. 물론 그의 말투 역시 조금도 흔들림이 없었다.

 정중한 부탁 뒤엔 어딘가 거만함이 있었고, 연락을 기다리겠단 말도 잊지 않았다. 정국은 많은 생각이 교차했다. 어떻게 선택해야 할지가 문제가 아니라 원초적으로 무슨 상황인가 상황 파악도 안 됐다. 그의 태도는 마치 결혼을 구애하기보단 계약을 앞둔 잘 나가는 사업가 같이 보였다. 그저 다 결정이 나버린 일을 통보하는 것처럼 들렸고, 들을 준비가 없던 정국은 그저 어안이 벙벙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무슨 사정? 주변에야 빵빵한 집안에 재력 좋고 얼굴 잘난 상대가 널리고 널렸을 텐데.”
   “그런 사람들이 싫대.”
   “대체 왜?”

  포크를 놓고 빨대로 스무디를 휘저으며 재헌이 말했다. 재헌의 말에 대답하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재헌 역시 정국을 잘 알기에 대답을 기대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왜 너가 좋대? 신기하네.”

  재헌의 말에 정국은 탁 소리가 나게 포크를 내려 놓더니 나도 그게 웃겨, 라며 공감했다. 물론 정국이라고 그 생각을 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팔짱을 낀 재헌이 언제 경악했냐는 듯 이성을 되찾고 한숨을 크게 한 번 내쉬었다. 그러곤 완고한 얼굴로 지금 상황을 짧은 단어로 요약시켰다. 계약 결혼이네. 그 괴상망측한 단어에 남아 있던 약간의 몽롱함이 싹 날아갔다. 한 마디로 상황을 정리했다. 


 계.약.결.혼.


   “부회장님이 무슨 의중인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내가 생각하기엔 결혼하고 나서 상대 집안이 문제 일으키면 싸잡혀서 욕 먹고, 재산분할이니 뭐니 거미줄처럼 얽히고 얽혀서 진흙탕 싸움으로 치닫고 싶지 않은 거 같은데.”

  어째 재헌이 정리한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정신이 멍하게 아득해지는 느낌이었다. 재헌은 정국을 개의치 않고 덤덤하게 이어 나갔다. 그 담백한 어조에는 과장이나, 흥미로운 가십을 푸는 것 같은 기색은 절대 없었다. 정말 있는 그대로의 혹독한 재벌가의 현실을 들려 주었다. 

 온갖 혼인 압박에 진절머리 난 석진과 살아남기 위해 자금이 필요한 저의 이해관계가 얽힌 계약 결혼이라는 게 가감 없이 느껴져 어쩐지 마음이 심란했다. 아무리 애정이 없는, 그저 형식에 불과한 결혼이라도 그 순간 법적으로 묶이는 거였다.

   “… 그렇지. 그게 현실이네.”

  대답과 동시에 무의식적으로 입에서 후, 하는 깊은 한숨이 나왔다. 심란한 걸 겉으로 내색하지 않기 위해 속으로 몇 십번을 더 연습하고 되새김질 하였다. 떨리고 타들어가는 마음에 음료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간절함을 담아 물은 말이었다. 제발 그냥 여기서 하지 말라고 말해주길 바랐다. 미쳤냐고 말이다. 하지만 재헌의 입술은 평소와 마찬가지로 단호했다.

   “그건 네 선택에 달린 거지. 어떤 게 더 이득일지 잘 생각해 봐. 중요한 문제니까 당장 결정하라고는 안 하실 거야.”

  그래, 선택은 본인에게 있는 것이다. 하지만 결론이 안 나고 도돌이표를 치자 순간 정국의 머릿 속이 다시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중년 남자가 건넨 담배의 바코드를 찍다가도 문득 석진을 떠올렸다. 자꾸만 손님이 사간 담배 브랜드와 똑같은 것을 피어대던 그 얼굴이 어른거려 탈이었다. 제안을 받은 지는 채 이주일도 안 됐건만 하루도 안 빼먹고 불면증에 시달렸다. 베개에 머리만 댔다 자던 게 언제였냐는 듯이. 이리저리 뒤척여 보고, 수만 마리 양까지 세며 안간힘을 써도 잠들지 않아 욕을 달고 살았다.

 한참을 그러다가 동이 트고서야 기절하듯 잠들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불안해서 깨면 꼭 야속하게도 아르바이트 직전 시간에 기상을 하곤 했다. 꾸지람을 받고 계산대에 서는 게 익숙해진 일상이었다. 오늘도 별반 다를 게 없었다. 머릿 속이 너무 복잡했다. 허기가 들어 허겁지겁 먹어 치우던 삼각김밥이 역류할 것 같았다. 정국은 그대로 쓰레기통에 집어 넣었다.

 현관문을 잡아 열자 드러나는 집안은 휑했다. 바닥에 달라붙은 노란 장판은 금방이라도 벗겨질 듯했다. 순간 가슴 깊숙히부터 불쾌감이 치솟았다. 언젠가는 평범하게 살 수 있을 거라며 매번 되뇌어도 결국 종착지는 몇 평짜리 낡은 단칸방이었다. 힘들다. 색이 바랜 벽에 등을 대고 앉아 하릴없이 정국이 한 생각이었다. 아니라고 부정하고 싶은데, 결국은 한계가 왔다. 긍정회로만 돌리느니 그냥 잘못 꼬인 인생을 한탄이라도 하는 게 차라리 마음이 편했다.

 그동안 행복에 대해 제대로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돈 한 푼 끌어모으자고 악쓰는 인생이 신물 나지만 어쩌면 당연한 흐름일 뿐이었다. 그렇게 안 산 적이 없었으니 말이었다. 그런데 석진을 만나고 나선 조금 생각이 바꼈다. 

 결혼 후에 깔끔히 이혼하면 먹고 살 돈을 준다는데. 평생 행복이 뭔지, 평범하게 꾸려가는 삶이 뭔지 모르고 살던 정국에게는 실낱 같은 희망이었다. 어둠 속에서 쏟아지는 한 줄기의 빛 같았다. 크게 바라는 건 아니었다. 그저 당장 눈 앞의 밥벌이에 목매는 게 아니라 따뜻한 방에서 한숨 푹 자고, 미술을 계속 해 나가고 싶었다. 지극히 평범한 주변 또래들처럼, 딱 그 정도를 바랄 뿐이었다.  

 잠이 오지 않아 몸을 뒤척일 때마다 싸구려 바닥이 마구 삐그덕거렸다. 문득 씁쓸해져서 정국은 괜히 이불을 쓸어 보았다. 그 순간마저도 고민이 떠올라 시야가 온통 아득했다. 조금 더 생각해 보자. 그래도 쉽게 결정할 만한 일은 아니잖아. 억지로 잠을 청해 보려 이불에 얼굴을 묻어도 정국의 눈은 더욱 또렷해지기만 했다.




















  자꾸 울리는 전화에 정국은 난감했다. 계속해서 전화를 해 대는 사람은 바로 사채업자였다. 방금 전까지 다른 독촉 연락을 받고 겨우 몇 분 지났는데 또 사정하고 싶지 않았다. 며칠 시간을 달라고 빌어도 씨알도 안 먹혔다.


 통장이 압류된 후에야 빚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형이 제 명의로 대출을 받아 몰래 떠넘긴 빚만 오천 만원이었다. 부채 상황은 잠도 줄이며 소처럼 벌어도 감당이 안 되었다. 속사정을 어떻게 다 알겠냐느마는 정국이 보기엔 애초부터 가족의 끈을 끊을 생각이었던 것 같다. 불행의 씨앗은 오롯이 정국의 몫이 됐다.

 단기 알바라도 하나 더 다녀야 하나. 머리를 열심히 굴려 정국이 상황을 파악하는데, 이번에는 메세지가 귀찮게 했다. 또 사채업자였다.

   [어쭈 전화를 씹어? 예전처럼 학교 가서 한 번 난동 피워줘?]

  휴대폰 너머로 말투만 봐도 역시 살벌했다. 6년을 넘게 독촉에 시달려 온 정국은 분위기 파악을 잘 했다.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라면 수중에 쥔 단돈 몇 만원이라도 이체해야 살 수 있었다. 짧은 시간 판단을 끝낸 정국이 은행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두려움은 정국을 덮쳐 왔다. 그날 이후로 악몽에 시달리기도 했고, 돈 앞에서 굴복할 수밖에 없는 자신이 미워져 속앓이를 했다. 한 번은 석진에게 혹시 결혼을 하면 어떻게 행동해야 하냐고 물어봤었다. 그런 정국에게 석진의 대답은 실로 간단했다. 그냥 옆에 있으면 된다는 거였다. 좋게 순화했을 뿐이지, 결국은 그저 후계자로서 위치가 공고해질 때까지만 자리 지키라는 것이었다.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결혼이란 게 허무하게 느껴졌다.

 유독 컨디션이 나빠졌다. 안 그래도 할 일이 많은데 머릿 속까지 쉴 틈이 없으니 죽어 나갈 지경이었다. 그렇지만 그 누구에게도 털어 놓지 않았다. 정국은 어릴 때부터 이랬다. 아프다고 말 안 하고 혼자 참아 내는 게 당연했고, 모든 것을 혼자 감당하려고만 했다.

 어쩐지, 지금은 이 모든 게 비참했다. 그래도 나름 결혼이라는 일생일대의 거창한 사건인데, 석진이 도통 무슨 꿍꿍이를 가졌는지 알 수 없었다. 나에 대해서 궁금한 게 있기나 할까. 뭘 바랄 수도 없겠지. 애초에 돈 목적으로 결혼하는 나도 떳떳하진 않으니까. 그런데, 다 그렇다 쳐도 이혼남 딱지는 어떡하지. 평생 혼자 살아야 하나. 아니, 그 전에 결혼하면 돈 많은 남자 꼬드겨서 결혼했다고 어딜 가든 수군거리는 거 아냐? 

 이러한 일련의 고민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머리통이 금방이라도 깨질 것만 같아 정국은 관자놀이를 꾹 눌렀다.




















  곤히 수면하던 정국이 번뜩 눈을 떴다. 휴대폰으로부터 흘러나온 경쾌한 알람 소리가 좁은 방에 진동했다. 카페 아르바이트 교대까지 약 한 시간이 남았다는 의미였다. 자는 사이 엉망이 된 머리칼을 대충 털고는 고개를 돌렸다. 제 허리에 착 붙어 있던 파스는 어느새 잔뜩 주름져 있었다. 볼품 없이 구겨진 게 꼭 자신 같았다. 정국은 체념한 듯 방 끄트머리에 앉아 푹 한숨 쉬었다. 알바 세 탕에 시험공부까지, 몸이 축나는 게 느껴질 만큼 버겁기만 했다.

 번갈아 내리 고된 아르바이트생을 자처하다가 가게 사정으로 얼마 전 고깃집이 문을 닫자 전전긍긍 했다. 어느새 통장의 중간 쯤 적혀 있는 잔고는 빈곤을 넘어 안쓰럽기만 했다. 가뜩이나 등록금을 내고자 요금 납부를 미뤘던 전기는 진작부터 먹통인데, 이러다간 꼼짝 없이 월세가 또 밀려 집에서 쫓겨날 거란 불안감이 엄습했다. 등골이 서늘해졌다. 백방으로 알아본 끝에, 다행히도 사정이 있어 동기가 관둔다는 카페에서 일하게 되었다. 이름난 프랜차이즈도 아니고 말 그대로 작은 동네 카페인지라 특별히 까다롭지도 않았다. 그렇게 손님을 받다 보니 어영부영 익숙해졌다. 딱히 튀는 부분이 없어 일하기엔 그만큼 편하고 좋은 곳이었다. 

 일과 공부에 치여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더없이 소중한 주말. 그 황금 같은 일요일 아침, 정국은 휴식 대신 카페 일에 몰입했다. 아직 제대로 불도 켜지지 않은 카페를 환하게 밝힌 정국이 곧 뒤돌아 바쁘게 오픈 준비를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슬리퍼를 끄는 소리가 들리자 정국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그러다가도 금세 고개를 꾸벅였다. 형 오셨어요? 같은 시간대의 아르바이트생 민우였다. 민우는 한 손을 들어 흔드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촤르륵, 작은 소음과 함께 빛이 쏟아졌다. 그에 정국이 컵을 씻다 말고 퍼뜩 놀랐다. 하얀 커튼을 잡고 힐끗 뒤를 넘겨 보던 민우가 곧 옆의 커튼도 젖혔다. 정국이 선 자리까지 깊게 햇빛이 스며들었다. 단단히 리본을 묶으면서 민우는 혀를 찼다.

   “광합성 좀 하라고. 너 곧 말라 죽을 것처럼 보이는 거 알아?”

  햇빛을 받아 더욱 창백하게 빛나는 얼굴로 정국은 머쓱하게 뒷머리를 쓸어내렸다.

 어쩐지, 조금 솔직해지자면 민우의 말처럼 오늘따라 곧 비틀어질 것 같은 컨디션이었다. 몸살 감기가 오려나? 초조하게 입술을 말아 물던 정국이 조금 타 놓은 커피를 입 속에 털어 넣었다. 그러나 아플 새도 없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돈은 벌어야 했다. 하지만, 정국의 바람과 달리 카페 안에 잔잔히 흐르는 클래식은 물을 먹은 듯 귓가에 웅얼거리기만 했다. 

 어서 오세요. 잠시 늘어진 몸을 기대어 있던 정국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손님은 정국을 한 번 보다가 위에 있는 커다란 메뉴판을 보며 무엇을 먹을까, 하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워낙 커피 메뉴가 많으니 고르는 데에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골이 울렸지만 정국은 속으로 한숨을 삼키며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표정을 유지했다.

 주문대로 익숙하게 포스기를 찍고, 커피를 끓여 쟁반에 담아 손님에게 내밀었다. 똑같은 레파토리의 반복이었다. 평소라면 돈 버는 재미가 쏠쏠해 퍽 웃으며 했을 일인데 오늘따라 뭔가 이상했다. 몸도 안 좋고, 생각도 많았다. 애써 잡념을 지우려 진동벨을 받아 급히 정리하려는데 따가운 눈초리가 느껴졌다. 생각할 필요도 없이 그 시선은, 민우의 것이었다. 

   “너 요즘 다크써클 장난 아니야. 살도 엄청 빠진 거 같은데? 그러다 진짜 죽어, 임마. 장난 아니라니까?”

  민우는 조금은 뜬금없는 말을 던졌다. 평소엔 묻지도 않은 것을 줄줄 늘어놓으며 항상 수다스럽던 사람이 오늘은 유달리 조용하길래 웬일인가 했더니 분위기를 살피나 보았다. 아프다고 하면 대신이라도 일을 할 사람이었다. 아무리 힘들어도 민폐 끼치는 건, 정국의 성격 상 딱 질색이었다. 어떻게 대답할까 몇 번이고 곱씹고, 다시금 머리를 빠르게 굴렸다.

   “괜찮아요 형.”

  복잡한 속과 달리 정국의 대답은 간결했다. 정반대의 마음을 던지며 맥없이 괜찮다는 말만 읊조렸다. 아무리 괜찮은 척 해도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하며, 아픈 티가 나기 마련이었다. 김이 샜다는 듯, 사뭇 진지하게 답을 기다리던 민우가 픽 웃었다.

   “너가 아프다 할 애냐. 됐다 됐어.”

  타박을 하면서도 민우는 정국의 안색을 이리저리 살폈다. 말투는 잔뜩 퉁명스러워도 가방속에서 감기약을 꺼내주는 태도는 꽤 다정다감 했다. 정국은 바로 그 속내를 알아챘지만 모른 척 하려던 차, 중년 무리가 삼삼오오 자리에서 일어나자 다시 몸을 틀었다.

 자리로 가서 잔을 치우려는데 민우가 어깨를 붙잡아 왔다.

   “내가 할게. 조금이라도 한가할 때 앉아둬.”

  대답할 틈도 안 주고 멀어지는 민우의 뒷꽁무늬를 눈으로 쫓던 정국은 잠시 벽에 기대었다. 눈 앞이 핑글핑글 돌았다. 술을 몇 병 들이부은 것처럼 모든 세상이 순식간에 몇 바퀴 원을 그렸다. 그리고 동시에 속이 울렁거렸다. 헛구역질이 나오고 어지러운 게 보통 일이 아니었다. 이 기분은, 참담한 몸 상태는 어쩌면 금방 멈추지 않을 거란 불안감이 덮쳤다.

 쉽게 가라앉질 않았다. 오히려 숨은 더 가빠졌다. 턱 끝까지 숨이 막혔다. 눈 앞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둘로 쪼개져 보였다. 심장이 벅차 올랐다. 지금 당장 기절해도 이상할 것 같지 않아 정국은 흐릿한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나 왜 이러지. 왜 이렇게 어지럽지. 

 그 찰나, 민우와 눈이 마주쳤다. 민우가 잔뜩 놀란 눈으로 왜 그래? 하며 입모양을 내었다. 밀려오는 두통을 참으며 괜찮다고 고개를 저으려던 즈음이었다. 

 빠르게 민우가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형체가 보이긴 커녕 눈 앞의 시야가 어두워졌다. 싱크대를 짚기 위해 뻗은 손이 닿기도 전에, 반쯤 정신이 나간 몸이 아래로 떨어지고 있음을 느꼈다. 몸이 타일 바닥에 부딪히며 큰 굉음이 퍼졌다. 몸을 일으키고 싶은데 기운이 나지 않았다. 아플 새도 없이 눈두덩이가 잔뜩 무거워졌다. 꿈뻑꿈뻑, 눈을 깜빡이는 속도가 더뎌졌다. 


 초점이 나갔다. 

 새파랗게 질린 얼굴의 민우가 무어라 하는 거 같은데 잘 들리지 않아서, 결국 마지막으로 정국은 눈을 감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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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독자님들 맥스입니다. 

저번주에 업로드를 못 했어서 4,5편 연달아 올라갑니다 :)

 

저는 블로그 글 '석진정국/진국 팬픽션 모음'에서 언급했다시피 작년에 레지던트를 마치고 올해는 쉬고 있습니다.

전문의 시험은 다행히 합격했고, 올해 충분히 충전하고 내년엔 수부외과 펠로우로 나갈 생각입니다 :)

주어진 1년을 독자님들과 알차게 보내고 싶어요 헤헤





**문의 관련해서 메일 및 댓글로 다 받습니다.



어쩌다 결혼.

written by. 맥스


2022.03.03~

지독한 클리셰를 담은 계약결혼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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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정국이 인생이 정말 너무 짠하네요ㅜㅜㅜ 형은 정말 뭐가 잘났다고 저번에 그렇게 당당했냐구요ㅜㅜㅜ 한 번애 2편은 사랑입니다💜 맥스님 전문의 시험 합격 너무 축하드리고 1년동안 푹쉬세요!
2년 전
비회원도 댓글을 달 수 있어요 (You can write a com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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