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닉^♡^ |
♡수련꽃/천일염/디니♡ |
BGM. 단비 - 올해도 니가 그리운 날 (Piano ver.)
< 머릿말 >
114.
오늘도 어김없이 경수가 찾아왔다. 평소보다는 늦은, 석양이 하늘을 가득 수놓고 있는 그 찰나에 경수는 내게 찾아와선 대뜸 자신을 좋아하냐고 물어왔다. 순간 내가 자신을 좋아하는걸 눈치 챈건가 싶어 애써 진정하며 아니라고 둘러 대었지만 경수는 오히려 내 대답에 화가난 듯 거짓말 하지말라며 소리쳤다. 왜그러냐고 내가 경수에게 물어봤지만 경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나는 처음으로 경수가 울음을 참는 모습을 보았다. 어느덧 밖은 어두워졌고 경수는 그저 아까와는 달리 소리없이 혼자 눈물을 떨어뜨리고 있을 뿐이였다. 경수를 끌어안아 달래 주는 것 밖에 할 수 없었다. 툭 튀어나온 갈비뼈가 새삼 이 아이가 많이 말랐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너는 부디 나처럼 아프지 말길 바란다.
경수는 내게 자고 갈 것 이라며 보호자들이 쓰는 간이 침대를 꺼내어 무작정 눕고 보았다. 내가 왜이러냐며 말려 보았지만 경수는 다시 참았던 눈물을 터뜨리며 나와 떨어지기 싫다고 엉엉 울어보였다. 마치 내가 떠날것이란걸 알기라도 했나 걱정되었다. 경수를 다시 다독이며 나는 어디에도 안 갈 것이라며 달랬고 경수는 진짜냐며 수십번을 물어 보았다. 나는 그때마다 그렇다고 말헀고 그래도 못 미더웠는지 내 손을 꼭 잡고 잠이 들었다. 몹시 피곤했나보다. 발개진 눈끝이 괜히 신경쓰인다. 경수야. 너는 무엇을 들은거니. 내가 아픈 사실을 알고 있는거야? 자는 경수를 내려다 보다 괜스레 나 마저 슬퍼져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난생 처음으로… 죽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116.
경수는 아예 내 병실에서 같이 살기로 마음을 굳게 먹은듯 해 보였다. 나는 왜이러느냐고 부모님이 걱정 하실테니 얼른 집으로 돌아가라고 했지만 경수는 자신에게는 부모님이 없다고 말했다. 순간 아차 싶었다. 무거운 돌 하나가 심장을 짓누르는 듯 답답했다. 물론 말하는 경수는 아무렇지 않아 보였지만 나는 오히려 그런 경수에게 더욱 슬픔을 느꼈다. 괜히 그를 다독여 주자 싶어 끌어 안았으나 경수는 도리어 활짝 웃어보이며 아저씨 왜 그렇게 쳐다봐요? 라고 되물었다. 그 특유의 톡톡 튀는 말투는 나를 간지럽게 만든다. 경수야, 경수야. 미안하다 경수야.
118.
간호사들은 이미 경수를 다 알았다. 3층 306호실에 혼자 있는 시한부 소설가와 늘 붙어있는 꼬마아이 라고 하면 대부분 아! 하고 경수를 떠올렸다. 그래서인지 그 작은 꼬마아이에게 과자나 마실것들을 쥐어 내게 돌려보내기도 했다. 경수는 이제 무모히 나무를 타지 않고 병원 입구로 들어왔다. 내게 왜 이런 하얀 건물에서만 지내냐고 물었고 나는 그저 웃으며 나도 부모님이 없어서, 라고 대답했다. 내 말에 경수는 그럼 이 곳은 부모님이 없는 사람들이 쉴 수 있는 곳이냐길래 나는 그렇다고 대답하였다. 무척이나 기뻐하는 그 모습이 귀여웠다. 내게 안겨서는 그럼 나도 여기에 같이 살 거라고 힘차게 말했다. 나는 그의 목을 끌어 안으며 그러라고 말 해 주었다. 마냥 하얗기만 해 질리던 이 병실이 마치 경수와 나만의 따뜻한 공간이 된 듯 해 나도 모르게 절로 미소를 띄웠다. 그런 내 모습에 경수는 웃으며 내 손바닥에 자신의 입술을 마구 부벼 대었다. 나도 작은 경수의 손에 내 부르튼 입술을 갖다 대어 주었다. 사랑은, 이리도 예고없이 찾아오는 것인가.
120.
주치의가 또 내게 찾아왔다. 다른 간호사들이 경수를 불렀고 경수는 이미 안면을 익힌 사이인지 쪼르르 그 간호사들을 따라 병실을 빠져 나갔다. 주치의는 차트를 휙 휙 넘기더니 이제 많아야 십오일 정도 살 듯 하다고 말하였다. 나의 수명이 끝나가는 이 사실을 이리도 무미건조하게 말 할 수 있을까. 그대가 이러한 상황을 많이 겪어서 그런 것일까. 그렇다면 적어도 이런 경험이 처음인 내게는 조금 다르게 말해줄 순 없는걸까. 눈앞이 캄캄해졌다. 눈물이 차오르진 않았지만 괜히 경수가 아른 거리곤 했다. 마치 여름날의 신기루 처럼 내 눈앞에서 한껏 아른거리다 이내 곧 사라지고 말았다. 아아, 경수야. 너를 두고 어떻게 내가 갈 수 있겠니.
122.
경수는 어디에서 가져왔을지 모를 동화책들을 한아름 가져와 간이 침대에 내려놓으며 한권 한권 내게 읽어주었다. 처음에는 빨간망토, 그 다음에는 피터팬, 신데렐라…. 오랜만에 동화를 들어 기분이 좋을 무렵, 들려오던 목소리가 점점 작아지더니 이내 들리지 않았다. 쌕쌕 거리며 잠을 자는 모습이 새삼 그가 어린것을 자각하게 되어 조용히 담요를 덮어주었다. 어느새 날이 몹시 쌀쌀해졌다. 겨울이 오려나보다. 아마 나는 너와 같이 한껏 내리는 눈을 보지는 못하겠지 경수야. 너의 그 맑은 눈동자에 부디 새하얀 눈을 가득 담아주렴. 내가 볼 수 있을 만큼.
125.
어느새 겨울이였다. 아예 헐벗은 나무들은 무척이나 앙상해 보였고 나도 말라갔다. 경수는 걱정을 가득 담은 눈으로 내게 괜찮냐고 물어왔고 나는 그때마다 괜찮다고 웃으며 둘러대었다. 이제는 몸에 힘도 다 들어가지 않는다. 이 일기를 얼마나 쓸 수 있을까. 그리고 너를 얼만큼 더 볼 수 있을까…. 침침해 오는 눈이 말썽이였다.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경수야. 네 사진을 한장이라도 남겨주길 바란다. 어린 너를 잊지 않고 자라나길 바란다. 지금처럼 씩씩하길 바란다. 낯을 가리지 않는 점도 그대로 이어나가길 바란다. 울지는 말아라. 네가 웃으면 모두가 기뻐 할 것 이다. 아름다운 아이야. 너는 몹시도 아름답다.
126.
오늘은 경수가 대뜸 사진을 찍자며 카메라를 가지고 왔다. 간호사 누나가 주었다며, 사진도 찍어 줄거라며, 너는 방방대며 신이난듯 내게 말해대었고 나는 그런 너의 모습이 귀여워 조용히 미소를 지어 보였다. 카랑카랑한 여 간호사의 목소리가 병실에 작게 울렸다. 이윽고 찰칵 소리와 함께 바로 흰 종이에 사진이 뽑아져 나왔다. 경수는 하나 더 찍자고 재촉했고 나는 알겠다며 또 한장을 더 찍었다. 내가 사진을 보여 달라고 하니 아직은 안된다며 강하게 거부했다. 그럼 언제 보여주려고 그러냐고 물으니 한참을 고민하더니 자신이 보여주고 싶을때 보여줄거라고 말 하며 간호사와 함께 총총걸음으로 병실을 나갔다. 시간이없는데….
129.
(*본 내용은 고인의 일기장이 아닌 고인의 녹음기에서 발췌했음을 알린다.)
내 몸이 더이상 회복이 될 수 없다는건 내가 제일 잘 알고있다. 이제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게 없다. 경수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도, 그를 향해 웃을수도…. 수명이 다 해 간다는 기분은 이런 것 이구나. 숨 쉬는것이 몹시 힘들다. 폐가 짓 눌리는 기분이라 갑갑함 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경수가 이 순간을 안 봐서 참으로 다행이라 생각된다. 경수야 나는 네게 할 말이 무척이나 많다. 이 많은 이야기들을 어떻게 네게 해 줘야 할 지 모르겠지만 네가 이 녹음기를 꼭 듣길 바란다. 못 듣는다면 내가 몇일 전 일기장 맨 앞에 적어둔 내용(*이 책의 머릿말부분. 챕터 113때 쯔음에 작성한 것으로 예상된다.) 으로 누군가 이것을 꼭 책으로 내어주길 바란다. 이것을 책으로 낸다면 아마 이것을 읽는 모든 이들이 너를 향한 나의 마음을 알아주지 않을까 싶다. 경수야. 나는 이리도 너를 좋아했다. 내가 이 세상에서 제일 좋아한 사람이 너였으리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 만큼 나는 너를 좋아하였다. 경수야. 내가 죽더라도 슬퍼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처음은 몹시도 힘들것이다. 믿기지 않겠지만 이것이 당연한 것이니 너는 다시 웃어 주었으면 좋겠다.
경수야. 내 경수야. 너는 부디. 나를 잊지 말아다오. 잊으라고 말하고 싶지만 나는 그렇게 말할 수가 없구나. 너는 나를 잊지 말아다오. 잊지말아줘. 나를. 영원히…….
130.
경수야. 나는 네게 마지막이라 생각되는 메세지를 남긴다. 말 하는것이 몹시 더디지만 너는 내 목소리를 끝까지 들어주기를 바란다. 경수야. 너를 처음 보았을 때가 아직도 생생하다. 너는 무척이나 개구장이 같았고 그 모습은 내가 느끼지 못한 유년기를 보는 듯 해 더욱 눈길이 갔다. 경수야 네게 한번도 먼저 말한 적 없지만 나는 태어날 때 부터 몹시 허약했다. 나를 낳자마자 부모는 나를 고아원에 맡기고 도망갔고 나는 하루하루를 살아간다기보단 죽어나가고 있었다. 너를 만나기 전까지 나는 친구도, 연인도, 가족도 없었고 그저 내게는 글을 쓰는 일이 유일한 취미이자 특기, 또 인생의 즐거움 이였다. 그런 내 인생에 네가 나타난것이다. 나는 너를 만나서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 경수야. 내 경수야. 너를 만나서 기쁘다. 고마워 경수야. 너를 만나서 기쁘다. 기뻐. 아름다운 내 경수야….
132.
2013년 12월 23일. 변백현님 사망.
-옮긴이 도경수
안녕하세요 윤동주입니다 :)
이번에는 여태 적은거랑 다른 새드글을 가지고 왔는데요
뭔가 너무 느슨한 ㄴ분위기 인 것 같네요ㅠㅠㅠ
아 백현이를 시한부로 만들어서 정말 죄송합니다ㅠㅠㅠㅠㅠ
혹시나 이해 안가시는 부분 있으면 언제나 덧글로 말씀해주세요
읽어주셔서 늘 감사합니다 :)
맨 위에 만년필은 일부러 글을 막 쓴듯한 느낌을 주려고 넣어본 거예요!!!1
어떤 느낌으로 와닿으셨을지 모르겠네요ㅠㅠ
아 그리고 사실 이 글은 김광섭 시인의 "생의감각" 이란 시를 보고
그런 느낌의 소설을 쓰고싶다고 생각해서 쓰게 된 것 입니다!
혹여 시 내용이 궁금하신 분들은 밑에 더보기 눌러주세요 :^>
김광섭 - 생의감각 |
여명의 종이 울린다. 새벽별이 반짝이고 사람들이 같이 산다. 닭이 운다. 개가 짖는다. 오는 사람이 있고 가는 사람이 있다. 오는 사람이 내게로 오고 가는 사람이 다 내게서 간다. 아픔에 하늘이 무너졌다. 깨진 하늘이 아물 때에도 가슴에 뼈가 서지 못해서 푸른빛은 장마에 넘쳐흐르는 흐린 강물 위에 떠서 황야에 갔다. 나는 무너지는 둑에 혼자 섰다. 기슭에는 채송화가 무더기로 피어서 생의 감각을 흔들어 주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