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아줘 ; 02
(부제: 너에 관한 모든 것)
"저기, 근데 있잖아요...."
"뭐."
"몇 살이신데 자꾸 반말 쓰시는 거에요?"
"나 스물 다섯."
"......동갑이네."
나보다 나이가 어렸으면 좋았을 텐데. 찍찍 반말 쓰는 게 아니꼬와서, 왜 반말을 쓰냐고 묻자 돌아오는 건 나랑 같은 나이라는 답변 뿐이었다.
하여간 재수 없다. 꼭 이런 식으로 치료를 해야 하는 건가, 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만큼 소중한 사람이었으니까, 어쩔 수 없었다.
"정말 아무 생각 안 나?"
"정말 아무 것도 기억 안 나요."
"내가 그 사람이면 싫을 거 같은데."
"뭐가요?"
"외간 남자랑 집 앞까지 가는 거."
"......아, 그 사람 그런 거 별로 안 좋아했어요."
기억이 하나 떠올랐다. 굉장히 그런 걸 싫어했었던 것 같다. 아무 것도 아닌 일에 예민하게 굴었었지.
권순영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봄치고 많이 더운 날씨에 등 뒤로 땀이 송글송글 맺히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우린 아무 사이도 아니잖아요!"
"......."
"서로 상부상조 하는 걸로 합시다. 네? 하하."
"글쎄."
"뭐, 뭐가 글쎄에요!"
"너가 나 안 좋아한다는 보장 있나."
무슨 자신감으로 그런 말들을 내뱉는 건지는 모르겠는데요, 그럴 일 정말 없거든요? 뻔뻔한 권순영의 태도에 혀를 찼다.
살다 살다 저런 사람은 처음 보네. 집 앞에 도착하고, 인사는 해야 할 것 같은데 뭐라고 해야 할 지 모르겠어서, 손을 흔들었다.
"아, 안녕히 가세요!"
"동갑인데 말 편하게 하지."
"저는 존댓말이 더 편해요."
"아, 아직 안 친해서?"
"......어떻게 아셨어요?"
"나 원래 눈치 빨라."
눈치가 빠른 건 아닌 것 같고, 그냥 사람 보는 눈이 있는 것 같네요. 미심쩍은 표정으로 권순영을 몇 번 훑어본 뒤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그 찰나에, 누군가가 내 이름을 크게 부르길래 고개를 돌리자 한솔이가 보였다. 어, 최한솔. 오늘 좀 멋있게 입었네. 웃으면서 인사를 건네는 와중,
멀어져 가던 권순영이 갑자기 내 쪽으로 걸어 왔다.
"누나 어디 갔다 왔어?"
"아, 그냥 볼일 보려고.... 넌 어...."
"아, 그걸 못 물어 봤네."
"......."
"내일 언제 보면 되는데."
아, 그러게요. 내일 일도 있고, 그래서 5시까지는 못 볼 것 같은데.... 근데 둘이 아는 사이에요? 기분 탓인가, 권순영이 눈빛이 어딘가 모르게 매서웠다.
한솔이도 권순영을 좋지 않은 눈으로 훑어보고 있었다. 낯선 사람이랑 집 앞까지 같이 와서 걱정하는거겠지, 싶어 이유는 굳이 안 물어보기로 했다.
"어.... 전에 찍어 주신 번호로 연락 할게요!"
"난 문자보다 전화가 더 좋아."
"저...전화요? 언제 자는데요."
"내가 눈치껏 걸 테니까 빨리 들어가."
뒤도 안 돌아보고 자리를 뜨는 권순영의 뒷모습에 대고 손을 흔들다 뒤를 돌아보는 그 눈과 마주쳤다. 좀 민망하네요, 하하.
옆을 돌아보니 한솔이가 여전히 고까운 표정으로 권순영을 쳐다보고 있었다. 좀 이상한 남자긴 한데,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아.
"아, 한솔아. 저 사람이 누구냐면."
"마음에 안 들어."
"......."
"아, 그냥 마음에 안 들어."
*
-여보세요.
"아씨.... 여보세요. 누구세요...."
-나 권순영인데.
"아니.... 지금이 몇 신데 전화를."
-일곱시 반인데 기상 안 하시나.
"이, 일곱시 반이요?"
아, 나 출근해야 하는데! 교생이라 찍히면 안 된다고.... 씻고 머리 말라는 시간, 밥 먹는 시간, 화장하는 시간 등등만 합쳐도 한시간은 족히 걸릴 텐데,
8시 40분까지 학교에 가는 건 무리였다. 분명히 알람 맞춰 논 것 같은데, 왜 이제 깼지. 내 정신 좀 봐. 권순영이 전화를 하지 않았다면 정말 큰일날 뻔했다.
한숨을 내쉬며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머리만 감아야 하는 건가.... 요새 하도 병원을 들락날락거린지라, 병원 냄새가 미미하게 나는 옷가지를 챙겨 화장실로 들어갔다.
"여보세요. 아직 안 끊었어요?"
-어.
"저 지금 씻어야 돼요...."
-머리 못 감더라도 아침은 챙겨 먹어.
"네.... 네. 끊을게요!"
근데 이 사람은 하는 일이 뭐길래 지금 이 시간에 일어나지? 머리색을 보니 직장인은 아닌 것 같았다. 그럼 도대체 뭘까. 궁금했지만 낯을 많이 가리는 터라 좀 더 친해지고 나면,
그 때 물어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아, 어떡해. 진짜 늦었다. 입에 토스트 하나를 물고 버스 정류장으로 뛰어가는 내 모습이 남이 보기에 참 추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 진짜 학년부장 선생님한테 찍히면 안 되는데.... 그 분 무서우시던데.
[안 늦으셨나 모르겠네.]
-늦었어요ㅠㅠㅠ
[늦었으면 뛰어 답장할 시간이 어디 있다고ㅋㅋ]
자기가 문자했으면서, 진짜 알다가도 모를 사람이다. 혀를 내두르고는 뛰기 시작했다. 애들 보기에 쪽팔려 죽겠어, 아주.
학년부장 선생님이 8시 40분까지는 와 있어야 한다구 했는데, 벌써 50분이다. 난 망했다. 안으로 들어가니 역시나 학년부장님이 구석에 낑겨 있는 내 자리 주변에 서 계셨다.
"세봉 선생님. 늦지 말라고 그렇게 말했을 텐데요."
"죄송합니다. 아, 정말 죄송합니다...."
"김연수 선생 제자라, 야무지다고 해서 기대 많이 했는데."
"......."
"검증이 필요할 지경인데."
이 순간, 정말 증발해 버리고 싶다. 제가 학창시절에 야무졌다는 얘기는 또 언제 하신 거에요. 난 정말 쥐 죽은 듯이 조용히 살았었다고.
검증이 필요할 것 같다는 말에 등골이 오싹했다. 선생님들 왈, '검증'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신물이 날 것 같다고....
눈치를 살피며 자리에 앉았다. 이윽고 선생님이 사라지셨고, 오전 수업이 없는 터라 핸드폰을 몰래 켜 보았다.
[늦어서 혼났지]
-네ㅠㅠㅠ어떻게 아셨어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
-본인은 엄청나게 부지런하신가 봐요.............ㅜ
내가 보내놓고 흠칫했다. 너무 싸가지 없이 보낸 것 같아서. 화나면 어떡하지. 갑자기 느려지는 답장에 손에 땀이 날 것만 같았다.
나름 나 도와주겠다고 팔 다 걷어부친 사람인데.... 원래 사소한 일에 신경을 많이 쓰는 성격이라 그런지 더 걱정스러웠다.
[응 나 부지런해]
-아하...............
[나 안 삐졌으니까 걱정하지 마]
-걱정 안 했거든요...
[아니면 말고]
뭐 저렇게 사람 속을 잘 아는 거야. 이 쯤 되니까 신기가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든다. 대단해.
부지런해 보이지는 않았는데, 의외네. 아침부터 일어나고. 대충 문자 답장을 보낸 다음에 수업 들어갈 준비를 했다.
언제 붙여 놨었더라. 최근에 붙여놨었던 것 같은 포스트잇이 눈에 띄었다. 이거 내 글씨는 아닌데....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하고 싶은 일을 한다]
*
"생각해 봤어?"
"......몇 개는요."
오랜만에(는 좀 아닌 것 같고 며칠 후에)권순영을 만났다. 정말 사무적인 이유로. 생각해 봤냐는 말이 무슨 의미일까 싶어 눈을 도륵도륵 굴리다,
'그 사람'에 관한 이야기구나 싶어 몇 개만 기억난다고 답했다. 사실 기억들은 하나 둘 씩 나고 있어요.
'그 사람'만 블러 처리 된 채로 머릿속에 둥둥 떠다닌다는 게 문제지만.
"말해봐."
"자기 할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이었어요."
"......."
"향수 냄새는 별로 안 좋아했던 것 같아요."
"또."
"......지, 지금은 생각이 안 나요."
사실 댁한테 말하기엔 좀 그런 기억들이 생각났단 말이에요.... 19금 딱지 붙어야 될 만한 거.
얼마나 깊은 사이었는지 모르겠지만! 그 상황이 기억나던 걸요. 생각이 안 난다는 걸로 대충 무마했다.
분명히 물어볼 게 뻔하다 생각해 핑계거리들도 생각해 놨는데, 권순영은 그런 것에 관해서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런 거 말고. 이런 거 했다, 그런 거."
"......그런 건 잘 기억이 안 나요."
"하나도?"
"한 밤중에 불러내서 영화 본 적 있었던 것 같아요."
"무슨 영화."
"뭐였더라.... 아...."
"킹스맨?"
아, 기억 났어.
"그거 맞는 것 같아요...."
"그냥 생각나서 말해봤는데 맞아?"
"그거 맞아요."
이 사람 진짜 이쯤 되면 도사야. 킹스맨 봤었던 것 같다. 잔인하다고 나는 별로 안 좋아했었던 것 같고.
그래도 보고 싶다길래 꾹 참고 봤던 기억이 있다. 그 영화 좋아했으니 망정이지, 보고 나서 재미 없었다고 했으면 정말 한 대 때렸을 거야.
옛 추억들을 되짚어 보니 묘한 느낌이 온 몸에 퍼졌다. 도대체 어디에서 뭘 하고 있을까. 난 이렇게 그리워하는데, 넌?
곧 여름이라 그런지 밤인데도 미미하게 더웠다.
"너는."
"......네?"
"너는 어떤 사람인데."
권순영의 말에 잠시 당황했다. 이런 질문이 처음이라 그런가. 넌 어떤 사람이냐는 질문이 그렇게 훅 들어올 지 몰랐다.
내가, 어떤 사람이더라.....
"......어, 그러니까."
"응."
"실수도 많이 하고, 덤벙거리고, 낯도 많이 가려요...."
"또."
"답답하다는 소리도 들어본 적 있고, 말도 그렇게 많은 편도 아니고.... 마음도 약하고."
"........"
"그냥, 전체적으로.... 평범한 사람이에요. 하하."
나열해 놓고 보니 내가 참 보잘 것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다 하고 자랑할 거리가 한 개도 없네. 그냥 실수투성이, 상처투성이.
그게 나인 것 같다는 생각에 풀이 죽었다. 평범한 사람보다 못한 사람인 것 같았지만, 애써 평범한 사람이라고 포장해 보았다.
물어본 사람이 이렇게 반응이 없어도 되는 건가. 권순영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너무 내가 명료하게 설명한 건가?
"그 사람이 너 많이 좋아했던 것 같아?"
"......아마요. 저는 그랬는데, 그 사람은 그랬는지 잘 모르겠어요."
"왜 그렇게 확신이 없어."
"......말해놓고 보니까 예뻐할 가치가 있는 사람은 아닌 거 같아서요. 별 볼 일 없는 사람 같기도 하고요."
그래서 쏙 숨어버린 건가 싶기도 하구요. 원래 나한테 자신감이 별로 없었는데, 더 없어진 것 같아요.
그 사람한테도 내가 과연 소중한 존재였을까? 이런 생각이 하루에 몇 십번도 더 들어요.
내가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멋쩍게 웃으며 신발코를 계속 땅바닥에 툭툭 쳤다. 산 지 얼마 안 됐는데, 벌써 헤졌네.
"내 눈에는 넌 그런 사람 아닌데."
"......네?"
"너가 왜 별 볼일이 없어."
"......."
사뭇 진지한 말투로 말해오는 권순영에 입을 앙 다물었다. 왜 별 볼일이 없어, 너가. 그 말에 어딘가 녹아내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딱딱하게 내뱉어진 말과는 다르게 권순영의 눈빛은 유했다. 그 눈빛을 받아 낼 용기가 없어서, 이리저리 눈을 굴리며 대화 화제를 돌리려 애썼다.
"......그, 그럼, 승관 씨가 하라고 한 건 언제부터 하면 될까요...."
"지금부터."
"......."
"그냥 마음 편하게 생각해. 기억 날 때까지 써먹으면 되는 거야, 나를."
"......."
"대신에 나랑 약속 하나 해."
무슨 약속이요? 골치 아프단 듯 그를 바라보자 살풋 웃어보이는 그였다.
"앞으로 나한테 반말하기."
"......네에."
"내 이름 부르기."
"......."
"연락하면 제때 제때 받기."
"......뭐 그렇게 많아요."
"김세봉이의 좋은 점 매일 열 가지 생각해 오기."
"......그, 그런 게 어디 있어요!"
"그리고 나 조심하기."
마지막 말은 도대체 뭐에요. 순진한 미소를 띄우며 온갖 요구사항을 말해오는 권순영 때문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이상한 사람 아니라면서요!
"마지막 뭐에요."
"좀 있으면 알게 될 걸."
"......에?"
권순영이 눈이 휘어지게 웃으며 여름 바람에 흩날리는 내 머리칼을 쓸어 넘겼다. 예상치 못한 손길에 움찔하자, 피식 웃는 그였다.
"내가 위험할 걸, 아마도."
*
본격 알아도 모르는 척 해야 할 지도 모르는 글! 이네요.
과연 '그 사람'은 누구일까요? 'A'
앞으로 나올 떡밥들을 잘 종합해 보시면 아실 거에요 이미 아시는 분도 계실수도....
그치만 끝나기 전까지는 끝나는 게 아니므로 ! 여러분 늘 궁예 레이더 키고 계세요!
전 반전을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하하하!
아무튼....... 위험남 권순영 .... 과 여러분은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그동안 참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헤헤
학교 행사 준비에, 영상 편집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폰트도 샀어요 호호..
여러분은 랜섬웨어 안 걸리게 조심하세요!! 저처럼 모든 문서가 다 날라간답니다....
미리미리 백업해 두시는 것도 잊지 마시구요! 암호닉은 언제나 받습니다~
자주 못 찾아오는 점 양해 부탁드리고, 쿱데 포드레도 계속 수정하고 있으니(+날라간 번외도 다시 머리를 굴려서 적어내고 있읍니다ㅠㅡㅠ)
기다려 주세요! 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