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그대들이 선물해준 표지들 |
인생그래프꼭짓점 등장인물 소개 |
인생그래프꼭짓점 11 |
찰싹! 우현이 성규의 뺨을 살짝 치자 성규가 흠칫하면서 눈을 뜬다.
"도착했어요. 얼른 내려요."
뒷좌석의 호원도 주섬주섬 선글라스를 챙겨쓰며 일어났다. 12시 40분. 태양이 미친듯이 작렬했다. 산 입구엔 주차장과 케이블카 탑승장 밖에 없어서 그런지 넓직하다못해 한산한 느낌이 들게 했다. 버스에서 내린 직원들이 가방과 여러 짐들을 들고 케이블카 탑승장으로 향했고 탑차는 산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산길을 따라 올라가는 탑차를 보던 성규가 우현에게 물었다.
"팀장님. 이 차도 산길 올라갈 수 있잖아요."
이미 줄에 서있는 호원이 우현과 성규를 향해 손짓을 한다.
"그럼 이 케이블카는 서동회사 사람들만 이용할 수 있는거에요?"
괜히 물어본 것 같다. 줄이 점점 줄기 시작하고 어느새 탈 차례가 코앞까지 다가왔다. 대충 보니 10명씩 타는 것 같은데…. 잠깐, 그럼 설마. 호원까지 케이블카에 타자 케이블카 관리인이 성규와 우현을 못 타게 막는다.
"죄송한데 두 분은 다음 케이블카에 탑승해주세요."
담담하게 다음 케이블카를 기다리는 우현과 달리 성규는 부루퉁한 표정으로 바닥만 툭툭 찼다. 다음 케이블카 문이 열리고 성규와 우현이 나란히 케이블카에 올라탄다. 넓직한 공간에 두 명이서만 있자니 여간 어색한 게 아니다. 우현과 성규, 서로 반대편 의자에 앉는다. 창밖을 내다보자 초록 나무들이 광활하게 펼쳐져있다. 백팩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낸 성규가 카메라로 그 모습을 담기 시작한다.
"그게 카메라도 되요?"
아랑곳하지않고 연신 찰칵대던 성규가 셀카도 찍기 시작한다. 그 모습을 보는 우현, 참 가관이다,라는 표정으로 쳐다본다. 케이블카가 서서히 하차하는 곳에 가까워지자 성규와 우현이 자리에서 일어난다. 케이블카 속도가 줄어들며 잠시 흔들리자 성규가 엄마야,하고 깜짝 놀라며 우현의 팔뚝을 잡더니 다시 깜짝 놀라며 손을 뗀다.
"왜,왜 이렇게 부실하게 만들었어요! 깜짝 놀랬네."
민망함에 소리치듯 말한 성규가 문이 열리자마자 후다닥 케이블카에서 내린다. 우현, 헛웃음을 지으며 따라내린다.
"우와…."
폐교 펜션이라고 했을때, 그냥 망한 학교를 대충 수리해놓은 정도로 생각했는데 생각외로 매우 근사했다. 페인트칠은 물론이고 잔디가 깔린 운동장에 말끔한 축구 골대가 놓여있었고 외곽엔 나무 테이블과 벤치가 파라솔이 활짝 펼쳐져있었다.
"이래서 서동서동하는구나…."
감탄을 뱉는 성규와 무심한 표정의 우현이 학교 중앙현관에 모여있는 사람들에게로 향했다. 방을 정하고 있었지만 우현은 그 곳에 있을 필요가 없었다. 예전부터 마지막 방은 우현과 호원만이 썼으니깐. 호원도 익숙하게 짐을 들고 마지막 방으로 향했다. 호원과 우현이 짐을 대충 정리하는데 방문이 열리고 성규가 고개를 쏙 내민다.
"무슨 일이에요?"
호원의 말에 우현이 골치아프게 됐다는 표정으로 머리를 벅벅 긁었다.
*
인생그래프꼭짓점
11.
한참 바쁜 레디락 레스토랑.
"…흠."
성열이 보이질 않는다. 따로 명수와 약속한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매일같이 찾아와 가운데 테이블에 앉아 조용히 커피나 차를 마시곤 했었는데…. 오늘은 까먹고 못 온 걸까, 아님 바빠서 못 온 걸까? 잠시 생각하던 명수가 다시 바쁘게 서빙을 하기 시작했다.
*
"성열아!"
방안에도 없는 걸 보니, 역시 외출했나보네. 말도 없이 나가다니. 성열이 약간 괘씸해지려고하는 순재가 스트레칭을 하며 욕실로 향해 세수와 양치를 하고 허기진 배를 채우려 주방으로 향하려는데 다락방에서 피아노 소리가 들려온다.
*
다락방 안.
"……."
그리곤 그 음표들을 피아노 건반으로 옮겨본다. 감미롭고 달콤한 음이지만 정작 자기 맘에는 들지않는지, 인상을 써가며 지우개로 음표 몇 개를 벅벅 지운다. 다시 음표를 그려넣고 피아노로 연주해보려던 순간,
"성열아?"
문이 열리더니 순재가 들어온다. 피아노 위에 올려져있던 악보를 후다닥 덮은 성열이 어색하게 웃어보인다.
"외출한 줄 알았더니 여기 있었어, 계속?"
성열의 옆자리에 앉은 순재가 가늘고 하얀 손가락으로 건반들을 살짝씩 눌러본다.
"오랜만에 쳐볼까?"
성열이 벙찐 표정으로 잠시 순재를 쳐다보다가 이내 미소를 지으며 건반에 두 손을 얹는다.
"시작!"
순재의 말과 함께 젓가락 행진곡이 경쾌하게 연주된다. 똥똥똥 똥똥똥 땅땅땅 땅땅땅…. 연주가 끝난 후, 성열과 순재가 나란히 마주보고 환히 웃었다. 바들바들 떨리는 손을 순재가 애써 감춘다.
"근데 저 악보는 뭐야?"
의자에서 벌떡 일어난 성열이 순재를 밀어내며 다락방을 나와 문을 닫는다. 문이 닫히며 피아노 의자에 얹어져있던 악보 맨 첫 장이 바닥으로 나풀거리며 떨어졌다.
'Want to see MS'
보고싶은 MS.
*
기획부와 홍보부의 전체적 평균 나이는 28.5세. 다들 젊고 싱싱한 피가 흐르는 사회인들이었고 성규는 신입사원치고는 조금 많은 나이에 해당됐다.
"어우, 무슨 축구야…."
운동과는 담쌓은 성규는 축구 경기에 출전하지도 않으면서 볼멘소리를 하며 벤치에 앉았다. 점심은 제육볶음이 일품인 밥차로 해결했고 저녁은 바베큐 파티를 준비하고 있었다. 온통 먹을 생각만 하고 있는 성규와는 다르게 유니폼으로 갈아입은 호원과 우현은 열심히 몸을 풀고 있다. 사내 친선경기지만 몸을 풀고 있는 선수들은 뜨거운 승부욕으로 활활 불타올랐다. 성규가 앉아있는 벤치 앞에 우루루 뭉쳐있는 여직원들은 꺅꺅 소리를 질러대며 우현과 호원에게만 편파적인 응원을 보내고 있었다. 시끄러워 죽겠네. 짜증섞인 표정으로 귀를 후빈 성규, 혀를 차며 자리를 옮긴다. 날씨는 왜 이리 더운거야. 부채질을 하며 인상을 찌푸리는데 허리를 돌리며 스트레칭을 하던 우현과 눈이 마주친다.
"…왜요?"
우현이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젓는다. 흥, 응원도 내켜야 하는 게 응원이지. 성규가 입을 삐죽이며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빈 페트병 두 개를 주워오더니 팡팡 두드린다.
"비! 아! 씨! 티! 오! 알! 와! 빅토리! 빅토리! 호대리님 파이팅! 팀장님도 화이팅!"
성규의 응원소리를 들은 호원이 브이를 하며 윙크를 날렸지만 우현은 그저 피식 웃을 뿐이다.
*
축구 경기는 2 : 1로 기획부가 이겼다. 첫번째 골은 우현이 넣었고, 두번째 골은 호원이 넣었다. 땀을 식히려 계곡으로 가는 길, 성규가 넌지시 축구 얘길 꺼낸다.
"축구 잘 봤어요. 호 대리님이랑 팀장님이 제일 재빠르던데."
두 손엔 물총을 쥐고 있는 호원이 껄껄 웃었다. 놀고들 있네. 우현이 작게 콧방귀를 뀌며 계곡으로 향하는 비탈진 길을 조심스럽게 내려간다. 뒤이어 내려오던 성규가 비탈길을 천천히 내려오다가 순간 삐끗하더니 앞서가는 우현의 어깨를 덥석 잡았다.
"엄마야!"
귀찮고 짜증난 표정의 우현이 성규의 손목을 붙들고 천천히 비탈길을 내려가자, 그 모습을 빤히 보던 호원, 우현에게 손을 내민다.
"나도나도 잡아줘."
호원이 궁시렁거리며 폴짝폴짝 뛰어 비탈길을 내려온다. 기획부와 홍보부 직원들이 맑은 계곡물을 보자마자 너나 할 것 없이 계곡물에 풍덩 뛰어들었다. 미친듯이 물장구를 치며 노는 직원들과는 다르게 첨벙첨벙 발만 담그고 있던 성규가 홱 뒤돌아 바위 위에 앉아만있는 우현을 쳐다봤다.
"팀장님은 물에 안 들어가세요?"
생각해서 물어본건데 대답하는 싸가지하고는. 성규가 혀를 차며 하얀 발가락만 꼬물꼬물거리다가 무언갈 발견했는지 쭈그려앉아 열심히 돌멩이 사이를 뒤적거린다.
"…잡았다!"
엄지와 검지로 요상한 물체를 잡은 성규가 씨익 웃으며 바위 위에 앉아있는 우현에게 다가간다.
"팀장님."
그러더니 우현의 무릎 위에 가재를 슥 올려놓는다. 소리는 안 질렀지만 깜짝 놀란 우현이 몸을 벌떡 일으켜 무릎에 붙은 가재를 거칠게 떼어낸다. 호흡까지 거칠어진걸 보니 꽤 많이 놀란 모양이다. 성규가 배를 잡고 깔깔 웃기 시작했다.
"아, 웃겨. 팀장님 방금 표정 진짜 못 생겼었던 거 알아요?"
눈가에 맺힌 눈물까지 닦아낸 성규가 룰루랄라 가벼운 발걸음으로 물총에 물을 채우고 있는 호원에게 향했다. 아직도 바위 위에 찰싹 붙어있는 가재를 발로 휙 걷어찬 우현이 성규의 뒷모습을 노려봤다. 호원이 물총에 몇 번 압력을 주더니 성규의 엉덩이에 찍 물줄기를 쏜다.
"앗! 따가워요!"
물총을 받아든 성규가 물을 가득 채우고 몇 번 펌프질을 한 뒤 하늘을 향해 물총을 쐈다. 커다란 크기에 맞게 물줄기도 굵직굵직하다.
"…유치하긴."
서로 물총을 쏴대며 노는 성규와 호원을 향해 중얼거린 우현이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비웃음을 날렸다. 한참을 놀던 성규가 물통에 물을 리필하더니 바위에 앉아있는 우현을 향해 물총을 찍 쏜다.
"…찍."
호원과 성규가 양쪽에서 물을 찍찍 쏴댄다.
"아씨, 진짜!"
우현이 바위에서 벌떡 일어나자 성규와 호원이 모두 움찔하며 뒤로 물러난다.
"하지마요. 한번만 더,"
호원의 물총이 정확히 우현의 얼굴에 물줄기를 명중시켰다.
"…찍."
이번엔 호원이 아닌 성규다. 흠뻑 젖은 얼굴을 쓸어내린 우현이 굳은 얼굴로 바위에서 내려오자 눈치빠른 호원은 이미 후다닥 달아났다. 뒤늦게 달아나려던 성규의 뒷덜미를 낚아챈 우현, 직원들이 다이빙하고 있는 높은 바위로 향한다.
"아, 알았어요! 안 할게요! 서,설마. 하지마요!"
다이빙을 하려던 남자직원들이 우현에게 끌려오는 성규를 보며 환호성을 지른다. 소리지르지마! 지르지마 새끼들아! 지르지마! 마음속으로 바락바락 소리친 성규가 우현의 품을 벗어나려고 아둥바둥거렸지만 힘줄이 솟아있는 우현의 팔뚝을 내치기엔 역부족이었다.
"살려줘요. 아, 진짜, 그럼 시,심장에 물만 묻힐게요."
뒤에서 성규를 붙들고 있는 우현이 슬금슬금 바위 끝 쪽으로 성규를 내몰자 성규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기 시작한다. 다행히 바위 아래의 계곡물은 꽤 깊어서 바닥에 대가리를 빻을 일은 없겠지만, 높은 바위에서 내려다보는 계곡물은 꽤 오싹한 느낌을 줬다. 성규를 거의 바위 끝으로 끌고 갔을때,
"어어!"
어디선가 후다닥 달려온 호원이 우현의 등을 세게 밀쳤다. 풍덩! 바위 끝에 서있던 우현과 성규가 나란히 계곡물에 빠졌다.
*
인생그래프꼭짓점
운동장 한 편, 쭈욱 늘어선 바베큐 그릴 위에 삼겹살이 노릇노릇하게 구워지고 있다. 계곡에서 우현과 커플 다이빙을 하게 된 성규가 물먹은 코를 들이키며 나무젓가락만 쪽쪽 빨고 있자 빈 접시에 고기를 가득 담아온 호원이 헤실헤실 웃으며 성규앞에 접시를 내려놓는다.
"성규씨. 이거 먹어요. 내가 구워온 거에요."
다이빙 직후, 온몸 구석구석 파고드는 차디찬 계곡물에 정신을 못 차린 채, 우현의 어깨만 붙잡고 동동 매달렸던 걸로 기억한다. 마치 코알라 새끼처럼…. 우현은 성규와 꽤 먼 테이블에 앉아 홍보부 부장들과 따로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래도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자신을 잘 붙들어준 우현에게 잠자리 눈동자만큼은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얼굴엔 짜증이 가득했었지만.
"아이구. 우리 신입 성규씨 잔이 비어있네?"
소주병을 든 기획부 거남 대리가 다가오더니 벌게진 얼굴로 성규의 컵에 소주를 한가득 채워준다. 얼른 두 손으로 컵을 쥐고 술을 받은 성규가 꾸벅 인사를 하며 맑은 소주를 들이켰다. 야외에서 먹으니 평소보다 두 배로 더 감칠맛이 난다. 그 후로 성규의 술잔은 여러 상사가 번갈아가며 가득 채워주었다. 성규뿐만 아니라 다른 신입사원들도 상사가 따라준 술을 이미 연거푸 마셔서 얼굴이 벌게진 상태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우현이 조용히 성규에게 다가갔다.
"김성규씨."
그러더니 성규의 종이컵에 가득 들어있던 술을 잠시 한 눈 팔고 있는 호원의 잔에 휙 부어버린다. 그 모습에 인상을 찌푸린 성규가 퉁명스럽게 대꾸한다.
"그러는 팀장님은 안 마셨어요?"
얼른 두 귀를 잡아가리는 성규의 모습에 우현이 소리 없이 웃으며 성규의 앞자리에 궁둥이를 붙이고 앉는다. 술을 마시거나 쑥쓰러울때면 양 쪽 귀가 빨게지는 특이 현상을 우현이 알아챘다는게 조금은 자존심이 상했다. 내가 그렇게 이 사람한테 다 보여줬었나,하는 마음이 든다. 한참 바베큐 파티가 마무리 될때쯤, 노래방 기계의 마이크를 잡은 직원이 사회자 역할을 하며 장기자랑을 진행하기 시작했다. 일만 하는 일쟁이들인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다들 노는 것도 선수다. 심드렁한 표정으로 무대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우현과 달리, 성규는 꽤 신이 났는지 어깨까지 들썩여가며 박수를 쳐댄다. 확실히 취했다. 아무리 봐도 나보다 두 살이나 많다는게 믿겨지지가 않는다. 하얗고 보들보들하게 생긴 액면가로 봐서는 나보다 한참 동생같은데. 장기자랑 순서는 무대에 올라간 사람이 자신의 다음 순서를 찍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한참 열기가 무르익었을때 기획부 여직원이 쑥쓰러운 얼굴로 호원을 가리켰다. 머쓱하게 웃은 호원이 뒷머리를 매만지며 무대로 나가자 기획부와 홍보부의 모든 직원이 환호성을 질러댄다.
"환호성 장난아니네…."
호원이 번호를 누르고 자세를 잡았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부른 '난 알아요'의 반주가 시작되자, 주머니에서 선글라스를 꺼내 쓴 호원이 몇 번 몸을 풀더니 본격적으로 랩을 시작했다.
"난 알아요! 이 밤이 흐르고 흐르면 누군가가 나를 떠나버려야 한다는 그 사실을 그 이유를 이제는 나도 알 수가 알 수가 있어요!"
완전 연예인이다. 노래 실력은 물론, 춤추는 몸짓부터 무대 매너까지! 노래가 클라이맥스에 다다르자 갑자기 바닥에 엎드린 호원이 다리를 번쩍 들어올려 요즘 인피니티인가 뭔가하는 그룹이 추는 전갈춤을 선보였다. 운동장이 열광의 도가니에 빠졌다. 노래가 끝났지만 여기저기서 환호성이 멈추질 않는다. 숨을 가다듬은 호원이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마이크에 대고 성규의 이름을 호명했다.
"성규씨."
아무것도 준비 안 했는데! 얼떨떨한 표정의 성규가 귀가 빨개져서는 주춤거리며 일어나 무대로 올라가 마이크를 건네받는다.
"큼큼. 아아…! 안녕하세요오. 기획부 신입사원 김성규라고 합니다."
인사만 했을뿐인데 환호성이 터진다. 약간 어리숙해보이면서도 얼굴에 홍조를 띄우고 있는 성규의 모습은 나이에 맞지않게 깜찍했다. 방금전까지 심드렁하던 우현이 흥미로운 표정으로 턱을 괴고 무대에 올라가 있는 성규를 쳐다봤다.
"어…. 제가 춤은 정말 젬병이거든요? 근데 노래 하나는 자신있어가지구요. 히히. 잠시만요. "
술이 약간 들어간 성규가 말꼬리를 질질 끌며 히죽 웃더니 노래방 책을 뒤져 선곡을 한다. 그 모습에 직원들이 웃음을 터트리며 박수를 보냈다.
"성규씨 귀엽네."
호원의 말에 우현이 고개를 끄덕거리다가 멈칫한다. 귀엽긴 무슨…. 하얗고 기다란 손가락이 시작 버튼을 누르자 토이의 '좋은 사람'이 흘러나온다. 마이크를 두 손으로 잡은 성규가 천천히 노래를 시작했다. 여직원들이 '귀엽다!'하고 크게 소리치자 성규의 귀가 더 빨게진다.
"니가 웃으면 나도 좋아~ 넌 장난이라 해도~ 널 기다렸던 날, 널 보고 싶던 밤~ 내겐 벅찬 행복 가득한데~."
노래 하난 자신있다더니 정말이구나. 맨날 틱틱대고 딱따구리처럼 쏘아대는 말투만 들어서 잘 몰랐는데 꽤 듣기 좋은 목소리다. 성규의 노래가 끝나자 호원 못지않은 박수와 환호가 터져나왔다.
"감사합니다. 다음 순서는 제가 뽑으면 되는거죠? 저는 그럼…."
서스럼없이 우현을 가리킨 성규가 '팀장님! 나오세요!'하고 크게 외친다. 순간, 분위기가 잠시 애매모호해졌다.
"얼른 안 나오시고 뭐해요! 얼른얼른!"
성규가 빨리 나오라는듯이 손짓하자 인상을 구긴 우현이 어거지상을 쓰며 무대로 올라갔다. 여직원들이 기대에 잔뜩 젖은 얼굴로 우현을 쳐다본다. 저 얼굴에 노래까지 잘 하면 정말 뿅 갈지도 몰라! 야유회 장기자랑에서 우현이 호명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직원들은 성규의 당돌함에 놀랐고, 또 우현이 진짜 노래를 할까,하는 호기심도 들어왔다. "기획부 팀장 남우현입니다."
무뚝뚝한 인사에도 직원들이 환호를 한다. 생존법칙이다. 무조건 리액션하기. 성규, 자리로 돌아와앉아 빨게진 볼을 식히며 무대로 시선을 옮긴다. 마이크를 잡고 어정쩡하게 서있는 우현의 폼이란. 어디 한번 당해봐라,하는 식의 표정을 지은 성규가 오이를 집어 오독오독 씹어먹으며 박수를 쳤다.
"성규씨 가수해도 되겠어요?"
성규, 내심 우현의 노래가 기대된다. 별 말 없이 노래 번호를 꾹꾹 누른 우현이 목을 가다듬었다.
"어? 이 노래…."
익숙한 멜로디. 이기찬의 '미인'. 좋아하는 노래라서 가사도 외우고, 꽤 오랜 시간동안 자신의 통화연결음을 차지했던 노래였는데…. 이젠 질려서 바꿨지만.
"다시 사랑한다 해도 다른 누군갈 만나도. 나는 너와 같은 사람 다신 만나지 못해."
백 번 천 번을 말해도 울며 다짐을 해 봐도 떠나가는 네 얼굴 보고 싶은 내가 정말 싫어. 성규가 우현의 목소리를 들으며 노래를 따라불렀다. 이미 여직원들은 우현의 노래에 반쯤 맛이 가버렸다. 그런데 노래가 좀 많이 애절하다.
"미친놈. 저러다 울겠네."
호원의 말에 성규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목소리에 슬픔이 가득 묻어나는게 코 끝이 찡해질 정도다.
"감사합니다."
노래가 끝났다. 호원과 성규, 그리고 우현까지. 수준급의 노래 콤보로 여직원들의 유스타키오관이 녹아내렸다. 자리로 돌아와앉은 우현이 목이 타는지 생수를 벌컥벌컥 들이킨다.
"노래. 잘 들었어요, 팀장님."
이 어색함은 뭐지? 우현을 무대로 불러낸 건 자신이었지만 이상하게 쑥쓰럽고 부끄러운 기분이 드는 성규가 오이로 괜한 쌈장만 꾹꾹 짓눌렀다.
바베큐 파티가 마무리 되고 슬슬 잠에 들 시간. 교실을 개조해놓은 특성상, 샤워실과 화장실은 바깥 쪽에 따로 위치해있었다. 단체로 씻는 공동 샤워실이 아니라 한 명씩 쓰는 칸막이 샤워실이 길게 늘어서 있었고 그 뒷편에 있는 화장실은 깨끗하긴 했지만 조금 음습한 기운을 풍겼다. 문득, 귀신이 많다는 우현의 말이 진짜일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왔다. 샤워를 마치고 방안으로 들어오자 가방에서 주섬주섬 보드게임을 꺼내는 호원의 모습이 보인다.
"그게 뭐에요?"
수건을 목에 걸고 호원과 카드를 정리하는데 물통에 물을 받아온 남우현이 바닥에 난잡하게 펼쳐진 할리갈리 카드를 보고는 인상을 찌푸린다.
"…이게 다 뭐야. 잠잘 시간에."
피곤해서 얼른 자고 싶기만한 우현을 호원이 억지로 끌어다 자리에 앉힌다. 카드를 골고루 섞던 호원, 흥미로운 제안을 한다.
"…그냥 하면 재미없으니깐 돈 걸고 할래요?"
성규, 기겁하는 표정으로 가방을 끌고와 지갑을 꺼내 지갑 안에 든 금액을 확인한다. 만원짜리 여덟장. 할까말까 고민을 하는데 우현이 성규의 지갑 안을 힐끗 보더니 피식 비웃음을 날린다. 자존심이 팍! 상한 성규가 일부러 자신있는 척을 하며 바로 콜을 때렸다.
"콜! 좋아요! 해요!"
그렇게 시작된 26세 호원과 우현, 그리고 28세 성규의 할리갈리 게임. 게임을 시작할때, 그들은 그 게임이 단순히 '게임'으로 끝날 줄 알았다. 하지만 정확히 20분 후.
"……."
성규가 뒤집는 카드를 확인한 우현이 재빠르게 종을 내리쳤다. 바닥에 깔려있는 바나나 두 개와 성규가 뒤집은 바나나 세 개. 총 다섯개. 우현이 씩 웃으며 가운데에 놓인 만원짜리를 모조리 쓸어갔고 호원과 성규의 표정은 바싹 썩어갔다.
"아, 짜증나."
벌써 6만원을 잃었다. 호원과 성규의 6만원을 가져가 총 12만원을 얻게된 우현이 돈을 착착 접어 지갑에 끼워넣었다. 제일 하기 싫어하더니만! 재수없는 인간!
"이제 그만 하죠. 둘 다 많이 잃은 것 같은데."
호원이 훌쩍거리며 카드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성규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지갑을 열었다. 휴우…, 정말 딸랑 이만원 남았, 아우 화나.
"피 같은 제 돈이니깐 꼭 좋은데 쓰세요. 허튼데 쓰지말고."
베게를 끌어안고 침대에 눕자, 우현이 니가 왜 거길 눕냐는 표정으로 성규를 툭툭 친다.
"왜요? 자는 시간이라 자려고 했는데."
우현이 결국 한숨을 쉬며 손을 내밀었다.
"안 내면 바닥, 가위 바위 보!"
모두가 보자기를 낸 가운데, 혼자 바위를 낸 우현, 손이 새하얘질 정도로 주먹을 쥐며 어금니를 꽉 깨문다. 신이 난 성규와 호원이 이불 속으로 쏙 들어갔다. 캐비넷을 열고 이불을 꺼내온 우현이 바닥에 이불을 깔고 한숨을 쉬며 드러누웠다.
"…팀장님."
우현이 콧방귀를 뀌며 등돌려눕자 성규가 입술을 삐죽이며 중얼거린다.
"…그럼 10만원?"
그제서야 방안이 잠잠해졌다. 호원의 귀에 꽂힌 이어폰에서 새어나오는 팝송을 들으며 성규의 두 눈이 점점 무거워졌다.
*
어두컴컴한 집안. 순재의 방문을 빼꼼히 열어 안대를 쓰고 자고 있는 순재를 확인한 성열이 조심스럽게 문을 닫고 다락방으로 향한다.
"……."
다락방 불을 켜고 피아노 앞에 앉은 성열이 바닥에 떨어져있던 악보를 주워들고 다시 곡을 쓰기 시작한다. 직접 연주하며 곡을 쓰는게 쉬웠지만 자고 있는 순재때문에 피아노 건반을 치는 대신, 머릿속으로 건반을 떠올리며 곡을 써내려갔다.
"……."
잠시후, 다락방 문이 살짝 열리더니 파자마 차림의 순재가 성열의 모습을 몰래 훔쳐본다. 쟤가 지금 이 새벽에 다락방에서 뭘 하고 있는거지? 문을 열고 들어가 묻기에는 성열의 표정이 너무나도 진지했다.
*
찌르르르 풀벌레 소리, 개굴개굴 개구리 소리, 우우우엉 이름 모를 새소리까지. 산중턱에 있는 펜션이라서 그런지 이 모든 자연의 소리가 생생한 입체사운드로 들려온다. 오줌이 마려워 잠에서 깬 성규가 침대에서 꾸물꾸물거리며 일어났다.
"……."
바닥에서 자고있어야할 우현이 없다. 부스스한 머리를 벅벅 긁은 성규가 문을 열고 바깥으로 향한다.
"으으… 추워…."
반바지에 반팔을 입고 있는 성규가 소름이 돋아오는 팔뚝을 슥슥 비볐다. 강원도가 다른 곳보다 추운 건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어?"
현관 앞 벤치에 카디건을 걸친 우현이 가만히 앉아있었다. 하얀 팔뚝을 비벼대며 다가간 성규, 자다깬 목소리로 우현을 부른다.
"…팀장니임…."
갑자기 들려오는 목소리에 우현이 깜짝 놀라며 뒤돌아본다.
"…아씨, 깜짝 놀랬잖아요!"
성규, 하품을 하며 중얼거리더니 터덜터덜 화장실로 걸어간다. 조금 으슬으슬해진 우현이 벤치에서 일어나 다시 안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으아아아아악! 으악! 으아아악!"
화장실에서 성규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일이지? 서둘러 화장실로 달려갔다.
"갑자기 무슨,"
소변기 옆에 꿈틀거리는 저 생명체는 뱀이 분명했다. 성규는 단단히 놀랬는지 어버버거리며 화장실 구석에 박혀 눈물콧물만 질질 흘리고 있었다. 꽤 큼지막한 뱀 사이즈에 우현도 조금 겁을 먹었는지 애써 움직이지않는 몸을 움직여 화장실 벽에 걸려있는 집게를 잡아들었다.
"가,가만히 있어요."
슬리퍼를 신은 성규의 발등에서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우현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흐어어엉! 독사면 어떡해요! 난 몰라! 혼삿길도 안 가봤는데 황천길가게 생겼어, 으어어엉!" "입 좀 다물어요!"
독사면 정말 큰일나는데. 미간까지 찌푸리며 성규에게 짜증을 낸 우현이 집게를 조심히 뱀 몸통을 집은 뒤, 뱀의 대가리 모양을 살폈다. 머리가 삼각형이면 독사고, 둥그스름하면 독이 없는 뱀이라고 어디서 들은 것 같은데, 이 뱀은 참 정체성이 없게 생겼다. 일단 뱀을 화장실 밖으로 질질 끌어냈다. 산쪽으로 휙휙 쳐내자 반항 한번 없이 조용히 사라진다. 저렇게 얌전한 놈인데 도대체 왜 물린 걸까.
"흐어어엉!"
이럴 줄 알았어. 일단 애처럼 엉엉 울고 있는 성규에게 다가가 발등을 살폈다. 뱀이 물자마자 기겁을 하고 뿌리친 탓에, 가로로 길게 상처가 나있었다.
"느낌은 좀 어때요?"
때아닌 소란에 잠에서 깬 직원들이 모두 화장실 앞에 모여있었다. 성규가 절뚝거리며 우현의 부축을 받으며 나오자 여기저기서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만약 독사한테 물린거면은 진짜 보통일이 아니다, 심각한 일이다,하며 성규의 공포심을 더욱 불러일으키는 얘기들만 해대고 있다. 호원이 어디선가 구해온 노끈으로 성규의 발목 윗 부분을 묶는다. 우현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병원에 가야하는데 어떡하지?"
케이블카는 전원이 내려간 상태다. 테이블과 노래방 기기를 날랐던 탑차는 내일 아침까지 오지 않을텐데…. 그때 우현의 눈에 펜션 한 쪽에 세워진 낡아빠진 자전거가 눈에 들어왔다.
"…저거라도 타야겠다. 호원아. 방에 들어가서 내 차키랑 지갑 좀 가지고 나와줘. 내 가방 제일 앞 주머니에 있어."
훌쩍거리는 성규를 벤치에 앉히고 자전거를 끌어왔다. 우현, 먼지가 뽀얗게 내려앉아있는 안장을 닦지도 않고 철퍽 앉아 페달에 발을 올린다.
"타요. 산 입구까지는 이거 타고 가야하니깐."
쭈뼛거리며 다가온 성규가 뒤에 올라탔다. 호원이 가져온 차키와 지갑을 성규에게 맡긴 우현이 천천히 페달을 밟았다. 낡은 자전거에서 끼릭끼릭거리는 요상한 소리가 났다.
"흐어엉…."
성규가 엉엉 울며 우현의 등에 얼굴을 묻었다. 우현의 카디건이 금새 눈물로 젖었다. 사실 우현도 겁이 났다. 정말 의사가 다리를 절단해야한다고 하면 어쩌지? 내 다리는 아니지만 다리 한 쪽이 없는 성규를 생각하니 눈앞이 깜깜해져오는 기분이다.
"그러길래 가만히 있는 뱀을 왜 밟아서 이 난리에요!"
뱀을 밟았을때 그 물컹함이란! 성규가 그때 그 감촉을 생각하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리고, 살 좀, 빼요. 페달이 안 굴러지네."
성규, 우현의 말에 눈물젖은 눈으로 우현의 등을 홱 째려본다.
"지금 그 말이 나와요! 사람이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인데!"
그러더니 또 울기 시작한다.
"미치겠네."
이거 입어요. 자전거를 잠시 멈춘 우현이 입고있던 카디건을 벗어 성규에게 건넨다. 카디건 안의 반팔티는 이미 땀에 젖어있었다.
"…팀장님은요."
돼지라는 말에 눈썹을 찌푸리면서도 카디건은 주섬주섬 끼워입는다. 몇 분을 더 달려 도착한 산입구에 자전거를 세워두고 성규를 부축해 조수석에 태운다.
"발 어때요? 부었어요?"
그나저나 이 시간에 병원 문이 열렸으려나. 차 시동을 건 우현이 서둘러 시내로 차를 몰았다.
*
인생그래프꼭짓점
"독사의 침샘에서 분비되는 트립신과 유사한프로테아제는 단백질분해작용으로 혈관벽을 가해하여 혈압을 하강시키고 혈액을 응고시킵니다. 다행히 혈압도 정상이고 독소 반응도 없고 그냥 날라리 뱀한테 물리신 것 같네요. 상처부위에 되도록 물 안 닿게 하세요. 항생제 처방해드릴테니 받아가시구요. 그리고 주사 한 방 맞으셔야겠네요."
다행히 시내의 종합병원은 새벽까지 진찰을 받고 있었다. 엉덩이 주사를 맞은 성규, 뻘쭘한 표정으로 엉덩이를 문지르며 주사실에서 나온다. 절뚝거리는 것도 근육이 놀래서란다. 참나, 어이가 없어서. 우현이 헛웃음을 지으며 반창고가 붙혀진 성규의 발목을 쳐다봤다.
"…진짜 놀랬다구요, 난…." "누가 뭐래요? 쪽팔려서 어떻게 돌아갈래요? 눈물 콧물 질질 다 짜놓고."
병원 약국에서 약을 처방받는 동안, 슬리퍼 밖으로 튀어나온 발가락만 꼼지락대던 성규가 카디건 소매를 만지작거리며 말을 꺼냈다.
"고마워요."
우현이 손을 들어 입가를 매만졌다. 자신도 모르게 웃고 있었다.
*
주차장에 멈출 줄 알았던 차가 산길을 타고 올라가기 시작한다. 성규가 깜짝 놀란 눈으로 우현을 휙 쳐다봤다.
"자전거는 어떡하고요?"
후웁. 성규가 숨을 들이쉬며 시선을 창밖으로 돌렸다. 갑자기 뭐야, 이 낯간지러운 멘트는.
"저 김성규씨가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야박하고 치졸한 사람 아닙니다."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었다. 재수없고 재수없고 또 재수도 없고 게다가 재수도 없는 그냥 재수없는 인간. 근데 자주 부딪히며 지내다보니 생각보다 그렇게 재수없는 인간은 아닌 것 같다. 그러니까 내 말은, 선량함을 베이스로 깔고 그 위에 토핑으로 재수없음을 끼얹은 타입이랄까?
"성규씨! 괜찮아요? 다리는? 다리는 멀쩡해요? 안 잘랐어요?"
아직까지 안 자고 기다린 호원과 직원 몇 명이 걱정스런 얼굴로 조수석에서 내린 성규의 몸을 살핀다.
"그냥 독없는 뱀한테 물린거래요…."
직원들이 다행이라는 말을 하며 하나 둘씩 다시 안으로 들어간다. 뽀송뽀송한 자신과는 달리 땀을 흠뻑 흘린 우현은 한번 더 샤워를 마치고 방안으로 들어왔다. 호원은 성규를 부축해 방안으로 들어오더니 침대에 눕자마자 다시 잠들었다. 침대위에 앉아 발등에 붙혀진 반창고를 매만지던 성규. 샤워를 마치고 들어오는 우현을 보며,
"팀장님.정 못 주무시겠으면 침대에서 주무실래요?"
군소리없이 고분고분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다. 펑펑 울어서 그런지 머리가 지끈지끈거려왔다.
*
다음날. 다시 서울로 돌아가는 길.
"아, 피곤하다…."
벤츠 뒷좌석에 벌렁 누운 호원이 숨을 쉬는듯하더니 바로 곯아떨어졌다. 아침에도 못 일어나는 걸 우현이 간신히 걷어차서 깨웠었는데 참 잠 많다. 반면에 우현은 피곤한 기색없이 아침 일찍 일어나 샤워를 하고 옷까지 단정하게 입은 채 묵묵히 운전을 하고 있었다.
"팀장님 안 피곤하세요?"
맞는 말이다. 새벽에 그 난리를 폈는데 안 피곤할리가 없었다. 하품을 연달아 하던 성규가 몇 번 눈을 꿈벅거리더니 이내 창가에 머리를 기댄 채 잠이 들었다. 안 그래도 작은 눈이 펑펑 울어댄 탓에 더 작아졌다. 잠든 성규를 위해 우현이 라디오 볼륨을 줄였다.
*
"성열아!"
늦잠자는 줄만 알았던 성열의 방엔 차가운 냉기만 흘렀다. 책상위에 핸드폰과 지갑도 그대로인걸 보면 아직 집안에….
"…아!"
방문을 닫은 순재, 서둘러 다락방으로 향한다. 문을 열자 피아노 건반에 기대 연필을 쥔 채 잠이 든 성열의 모습이 보인다.
"…Want to see… MS?"
지우개 가루가 가득한 악보를 든 순재가 곤히 잠든 성열을 깨우는 것도 잊은채 음표들을 눈으로 읽어내려갔다. MS……. 성열이 MS를 보고 싶어한다? MS? 서둘러 성열을 흔들어 깨웠다.
"성열아. 성열아."
뽀얀 얼굴에 건반 자국이 빨갛게 남아있다.
"너 여기서 잠들었어."
순재의 말에 성열이 눈을 비비며 주위를 둘러봤다. 새벽까지 정신없이 곡을 쓰다 깜빡 잠이 들은 모양이다.
"근데 성열아."
순재의 손에 들린 악보를 빼앗은 성열이 당황한 얼굴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씻어야겠다며 다락방을 나갔다.
"…MS?"
도대체 MS가 누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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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밌게 보셨나요? ㅠㅠㅠㅠㅠㅠ
ㅠㅠ댓글 부탁드려요S2
인생그래프꼭짓점은 매주 주말 8~10시사이에 연재됩니다!
그러므로 신작알림은 필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