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일곱, 여자 하나
─ 15
93. 대기실에서의
"아니, 네가 먼저 그랬잖아!"
"아니라고! 네가 먼저 그랬다고!"
"하, 야, 너 진짜 장난할래?"
"어, 할 건데? 하면 어쩔 건데!"
"야!"
"뭐!"
"너 계속 그럴 거냐!"
"넌 계속 그럴 거냐!"
"내 말 왜 따라해!"
"누가 누굴 따라해!"
다툼.
"누나, 저 이거 결제할 건데 어때요?"
"그거 말고 저거. 어, 그거. 크리스탈만 많다고 좋은 거 아니다, 너."
"아니 근데 그 스테이지에 한 번 도전할수록 크리스탈이 필요하다더라고요."
"그렇긴 한데 그거 별로 안 어려워. 너 캐릭터 봐 봐. 레벨 업 전이지? 그럼 이 전 단계에서 레벨 업 먼저 하고 이거 깨 봐. 한 번에 안 될 수도 있긴 해도 두세 번이면 깰걸."
"헐, 몰랐네. 그럼 이거 현질 안 해도 되는 거죠?"
"딱히 필요는 없지."
"근데 지금 이벤트 중이잖아요……."
"야, 걱정 마. 이벤트는 언제나 해."
게임.
"야, 저거 춤 좀 따라해 봐."
"이거 저거 아니에요? 이렇게."
"올, 맞아. 저거 먼저 다 외우는 사람이 이기는 걸로 하자."
"퀄리티도 봐야죠. 솔직히 랩몬이 먼저 다 외우는데 이상하면 그건 안 되죠."
"야, 내가 뭐 어때서."
"그럼 춤 퀄리티에다가 먼저 다 외우는 사람?"
"콜."
내기.
"꺼져. 안 꺼져?"
"슈가 형 또 욕한다."
"욕할 걸 알면 왜 건드려, 이 미친놈들아."
"아, 꿀잼."
욕설.
"어, 하이, 경수!"
"오랜만이다. 잘 지냈어?"
"그럼. 노래 잘 들었음. 됴보컬 짱."
"나도 노래 잘 듣고 있어. 춤 힘들겠더라."
"당연하지. 저승길로 빨리 갈 수 있는 좋은 선택!"
"그게 뭐야. 또 연락해."
"어, 다른 멤버들한테 안부 전해!"
친목.
─들이 공존한다. 고로 그냥…….
"개판이네."
개판이라는 거지, 뭐.
94. 비글비글
"전정국, 김태형. 누가 화장품으로 장난치랬어."
"죄송합니다……."
"죄송해요……."
그럴 줄 알았지. 00이 스트레칭을 하면서 시무룩한 태형과 정국을 안쓰럽게 쳐다봤다. 가뜩이나 요즘 코디 언니들 몸 안 좋은데. 쯧. 요즘 태형과 정국은 활발해도 너무 활발했다. 잘 알지도 못하는 화장품을 가지고 다른 멤버들 얼굴에 낙서까지 하고. 오늘의 희생양은 지민이었다. 죽고 싶나 봐, 진짜. 아직도 거울에 비친 제 얼굴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듯 지민이 손가락으로 볼을 부비적댔다. 자고 일어났을 뿐인데 아이라인으로 인해 얼굴이 까맣게 물들다니. 나 참. 지민이 옆에 있는 00에게 제 얼굴을 들이밀었다. 이거 봐요, 누나……. 이게 말이 되냐고요…….
더 혼낼까, 00아? 한참 태형과 정국을 혼내던 코디가 살짝 뒤돌아 00에게 물었다. 00은 고개를 끄덕이고 싶은 욕망을 참고 그저 고개를 휘휘 저었다. 봐 줬다, 니네.
"봐 줬다, 니네."
"힝, 누나……."
"다시 지민이 담당 언니한테 죄송하다고 해."
"누나 진짜 죄송해요."
"저도 죄송해요."
"00이 덕에 산 줄 알아, 진짜. 으휴. 박지민 다시 화장할 거니까 똑바로 앉아."
지민이 울상으로 다시 고쳐 앉았다. 시간이 꽤 남아 있어서 다행이었다. 안 그럼 수정 화장도 못했을 테고, 지민도 그 얼굴 그대로 무대를 올라가야……. 으어, 끔찍해. 지민이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었다.
"가만히 있으랬지, 좀!"
"……미안해여."
혼났다는 게 함정. 태형과 정국은 다시 방긋방긋 웃으면서 00의 옆과 뒤에 달라붙었다. 누나, 뭐 해요? 누구랑 채팅해요? 남자예요? 누나 인기 많네요. 대박. 우리 버릴 거예요? 완전 나빠. 트위들 얘기가 왜 나와요? 그 정도로 친해? 우리만큼? 진짜 나빠.
"현오다, 현오, 새끼야!"
"……아."
"……0현오 휴대 전화 가루됐다고 저한테 연락 안 하던데."
"오늘 고쳤대. 니네가 내 스토커야? 또라이들아."
"……히. 누나 사랑해요!"
"아니, 난 아닌 것 같아……. 민슈가 어디 있어, 민슈가."
민슈가 옆으로 갈 거야. 거기가 제일 평안해. 00이 진이 다 빠져 윤기 옆으로 꾸물꾸물 갔다. 윤기는 쯧쯧 혀를 차면서 00을 토닥였다. 지랄견 같으니라고.
95. 리더는 인기가 많다
"앞으로 대기실을 나가지 말아야겠어요."
남준이 대기실 문을 닫았다.
"왜, 또 번호 따였어?"
"네. 우울하다. 앞으로는 대기실 밖은 안 나가야겠어요."
계속 거절하니까 미안한 마음도 들고, 괜한 소문 나는 것고 싫고요. 남준의 말에 00이 수긍했다. 이상한 소문 돌기 전에 아예 그런 일을 차단시키는 게 낫지. 남들이 들으면 그게 무슨 아쉬운 소리냐고 할 수 있겠지만, 멤버들에게는 당연한 이야기였다.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상태가 가장 위험하다고들 하니까. 이제 막 무언가를 보여 줄 때인데 조심, 또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 간혹 연애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긴 해도 아직까지는 음악이 더 중요하고 좋으니까. 지친 표정으로 앉아 있는 남준에게 석진이 말했다. 대기실 밖 돌아다닐 때는 다른 애들이랑 같이 다녀. 그러면 번호 안 딸 거 아니야. 00이랑 같이 돌아다니면 괜찮지 않나?
"연예인이 되려면 가장 필요한 게 뭐라고 했죠?"
"내가 알아요! 뻔뻔함이었나."
00의 물음에 수정 화장을 하고 있는 호석이 외쳤다. 어, 맞아. 00은 인공 눈물을 눈에 넣으면서 얘기했다. 자신을 욕하는 사람 앞에 서야 하는 게 직업이라서 뻔뻔함이 필요할 수밖에 없어요. 근데 그런 사람들이 다른 멤버랑 있다고 번호 안 따 갈 리가 없잖아요. 으, 흘렸다. 오빠, 거기 휴지 좀요. 하긴 그러네. 휴지 여기. 석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00의 손에 휴지를 쥐어 주었다.
"준이가 확실히 이미지가 좋아서 그런가. 인기가 많긴 많아."
"그래도 마냥 부러울 일은 아니네요."
"솔직히 난 조금 부럽다."
"미쳤냐."
"아니, 이미지가 좋다는 거요."
그렇긴 하지. 이미지가 한 번 딱 굳어 버리면, 사람들이 알아서 그 틀에 갇혀 생각하곤 하니까. 이미지 좋은 게 참 편하긴 해. 그래도 부럽다는 생각을 가질 만큼 정국이 이미지가 안 좋은 게 아니었다. 스태프들이 예뻐하기만 하는데, 왜. 정국보다 어린 아이돌들이 쏟아져 나와도 스태프들은 항상 정국을 아가 취급했다. 팬들이 오빠! 하는 분위기라면 스태프들은 아가야! 하는 분위기. 다들 부둥부둥하기에 바쁜 게 정국이었다. 그나마 남준과 다른 거라곤 이미지의 느낌 정도. 남준은 정국보다 조금 성숙한 이미지라서, 스태프들한테도 유독 인기가 많았다. 아이돌들도 스태프들의 분위기를 많이 신경 쓰니까 남준을 많이 좋아하는 것 같고. 아무래도 이왕 번호 딸 거, 스태프들이 아가 취급하는 사람 말고 똑같이 존중하고 성숙하게 생각하는 사람의 번호를 따는 게 더 좋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거지. 물론 일반화는 아니다. 단지 예시이고, 일부분일 뿐.
"같은 아이돌분들도 아이돌분들이지만, 문제는 스태프분들이에요."
"왜요?"
"생각해 봐. 우리가 잘 보여야 할 건 방송국 국장님이 아니라 스태프들이라고 누나가 누누이 얘기했잖아. 스태프들이라도 은근 입김 센 거 알지? 아르바이트 스태프들도 일화 같은 거 커뮤니티에다가 많이 말하잖아. 아르바이트생들은 번호 교환 요구했는데 거절하더라, 라고 글 쓸 거고, 그냥 스태프를 거절하면 볼 때마다 마주치니까 불편할 뿐만 아니라 거절당했다는 걸 동료들한테도 다 말할 테고. 이미지에 타격이 없을 수가 없어, 스태프들 사이에선. 대중들에게 보여질 이미지는 좋아질 줄은 몰라도."
"……맞아. 그럴 때는 정말 답 없어."
경험이 있던 윤기도 공감했다. 그냥 대기실 안에만 있는 게 답이지……. 어쩐지 조금 분위기가 쳐졌다.
"신경 쓸 게 너무 많아요……."
"어쩔 수 없잖아. 그게 우리 직업인걸."
"직업이니까, 라고 수긍하기에는 너무 힘든 게 많다고요……."
누나 말대로 어린 탓인가. 한숨을 쉬는 지민을 호석이 위로했다.
─그리고 어느새, 한숨을 쉬고 있는 멤버 모두를 매니저들이 위로하고 있었다.
96. 실수
방탄의 안무 자체가 팀워크가 필요한 칼군무여서, 한 명이 틀리면 티가 확 났다. 무대를 망치고 싶기는커녕, 언제나 좋은 무대를 만들고 싶다는 신념 하에 올라야 하는, 오르는 무대이기 때문에 하루라도 연습을 거른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자신 하나 때문에 팀에 해가 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은 데뷔 전부터도 박혀 있는 관념이었다. 멤버들 중에서도 지민은 특히나 열심히 했다. 비교적 늦게 시작한 노래, 조금의 경험이라도 있는 다른 멤버들을 따라가기 위해 지민은 이를 악물고 했다. 펑펑 울면서도 연습해 봤고, 피를 철철 흘리면서도 연습해 봤다. 하루 종일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는 건 적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서인지 지민은 유독 자신에게 엄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무대 위의 자신에게 누구보다도 가혹했다. 지민은 무대 위의 자신이 완벽주의자가 되기를 원했다. 그러니까 작은 실수라도 하면 엄청 속상해 했다. 팬들 때문에 차마 무대 위에서 티는 내지 못하고, 무대 아래로 내려오자마자 모니터링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자책과 눈물. 지민과 멤버들에게는 익숙한 것이었다.
"……실수했어. 또 실수했어요."
저 부분, 연습할 때에도 틀렸던 부분이었어요. 지민이 분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말했다. 방금 무대를 하고 내려왔음에도 목소리가 가라앉아 있었다. 지민이 늘 그렇듯 00의 손목을 꽉 쥐었다. 손은 작아도 악력은 손의 크기와 비례하지 않았다. 지민이 실수를 할 때마다 00의 손목에는 꼭 멍이 하나씩 들었다. 지민이 실수를 하고 나서는 습관처럼 00의 손목을 쥐기 때문이었다. 00은 딱히 아픈 티를 내지 않았다. 그게 지민을 위로해 주는 방법 중 하나였다.
"본 무대에서도 이러면 어쩌죠."
"지금은 리허설이잖아. 이따가는 잘할 거야."
"……모르겠어요. 안아 주면 안 돼요?"
안아 주세요. 안아 달라는 요구는 항상 지민이 했지만 막상 먼저 안겨드는 건 지민이었다. 지민이 00을 확 끌어당겨 품에 안았다. 항상 이랬다. 안아 주는 건 지민, 안기는 건 00. ……안아 달라면서. 00의 못마땅하다는 듯한 말에 지민이 대꾸했다. 좋은 게 좋은 거잖아요.
"계속 실수해요. 짜증 나……. 왜 난 완벽하지 않을까요?"
"한 치의 오차 없는 프로그램으로 이루어진 로봇도 완벽하지 않은데 사람인 너라곤 완벽하겠어?"
"누나는 가끔 너무 현실적이어서 싫어요."
"난 너 좋아."
"사실 저도 누나 좋아요."
지민이 그제야 기분이 좀 풀렸는지 푸스스 웃었다. 00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오늘은 안 울어서 다행이네. 그래도 00은 자신을 껴안은 지민의 팔을 풀지 않았다. 서로의 체온을 나눈다는 게, 썩 기분 좋은 일이라.
97. 중재자
"그만해. 여기 우리만 있는 거 아니고 방송국이야."
00은 석진에게 팔에 매달리듯 기댔다. 멤버들이 무서워서였다. 정확히 말하면 웃고 있지 않은, 화가 난 멤버들의 모습이. 제 아무리 같은 멤버라고 해도 00이 다른 멤버들과의 싸움을 말리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웃고 있지 않은 남자들은 무섭기도 하고. 00이 조금 겁 먹은 표정으로 석진 뒤에 숨었다. 무서워. 확실히 더 거친 남자들의 생활에는 익숙해졌지만, 이런 것들은 아직 낯설었다. 석진은 지민과 태형을 떨어뜨려 놓았다. 너네 지금 뭐 하는 짓인데.
"형들 없다고 이래? 00이는 무시하는 거야, 너네?"
"……죄송해요, 누나."
"……죄송합니다."
"너네보다 나이도 많은 사람 앞에서 뭐하는 거야."
뒤늦게 온 호석이 00을 달랬다. 00은 조용히 호석의 팔에 매달렸다. 석진은 여전히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지민과 태형을 다그쳤다. 다그침이라기보다는 타이름이 맞겠지만. 아니다. 타이름보다는 조금 강한 모습을 나타 내는 게 꼭……. 그래, 훈육. 훈육이 맞겠다. 어른 아이 두 명을 훈육하는 연장자, 라고 해 둬야 하나.
확실히 석진의 필요성을 느꼈다. 멤버들을 모으고 중재하는 건 어쩌면 남준보다 뛰어나다. 엄연한 맏이라는 게 느껴진다고 할까. 00은 자신의 팔을 리드미컬하게 토닥이는 호석의 리듬에 적응하며, 동글동글한 뒷통수 세 개를 바라봤다.
"너네 이런 말 들을 때도 지났어."
"……."
"너네보다 어린 애들이 수두룩하게 쏟아지고 있다는 말이야. 너네 걔네들 앞에서도 어리게 행동하고 싶어?"
"……."
"그것보다 너네들보다 연장자 앞에서 상당히 무례한 짓이었어. 00이를 무시하는 행동이었잖아, 방금."
"……."
"사과 안 해?"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나 말고 00이한테."
"죄송해요, 누나."
굳은 표정의 지민과 태형이 고개를 숙이면서 00에게 사과했다. 00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굳이 심각하게 만들고 싶진 않았지만, 이건 사과해야 하는 것이 마땅했다. 자신보다 연장자 앞에서 무례한 모습을 보이는 건 아무래도 좀. 이런 일을 그냥 놔 둬 버리면 나중에 가서 어떤 말이 나올지도 모르고, 이런 상황을 당연스레 넘기게 될지도 모르고. 연습생 때 그렇게 받았던 인성 교육을 물거품되게 만드는 것도 싫었다. 물론 지민과 태형이 그럴 만한 아이들이 아니라는 걸 잘 알지만서도, 언제나 예외라는 게 있으니까.
"공과 사 지켜."
"네."
"여기 일하는 곳이지 개인적인 감정에 휘둘러서 행동하는 곳 아니야."
"네."
"됐어. 둘이 빨리 안아."
"……미안해."
"……나도 미안."
푸핫. 00은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석진도 그만 푸스스 웃음을 터뜨려 버렸다. 성인 남자 둘이서 껴안고 미안해, 하고 있는 꼴이란 상당히 귀여웠다. 아, 저게 아가지 무슨 어른이냐고. 호석은 역시나 또 사진을 찍었다. 이런 상황은 공유해야 하나 뭐라나.
"다음부터는 그러지 마."
"네에."
석진의 말을 끝으로 석진과 00은 눈을 마주치고 씩 웃었다. 애를 키우는 기분이다, 하여간. 그 애가 00한테는 좀 무섭긴 해도 석진이 있으니까 뭐. 다시 평화롭게 흘러 가는 일상에 00이 석진의 어깨를 베개 삼아 누웠다.
98. 전직 군기반장
"전정국 너 거기 틀렸잖아. 정신 안 차릴래?"
"죄송합니다."
"지금 보는 팬들 없다고 설렁설렁 하지 마."
정국이 고개를 푹 숙였다. 처음 배울 때부터 지적받았던 동작이었다. 지난번에 겨우겨우 고쳐 호석에게 확인받았는데, 며칠 안 했다고 그새 다시 동작이 틀려 버렸다. 호석은 정국을 다그치고는 다시 제자리에 서곤 후, 한숨을 쉬었다. 나 빠져 있을 테니까 나 없이 해 봐. 결국 안 되겠다 싶었는지 호석이 앞으로 빠져나왔다. 우리만 쓰는 세트라 다행이지.
이번 녹화는 원테이크로 촬영될 예정이었다. 그러다 보나 안무도 신경 써야 하고, 동선도 신경 써야 했다. 촬영 감독과도 동선이 잘 맞아야 하니까 모두가 지친 기색이었다. 힘들어. 00이 철푸덕 앉아 있다가 윤기가 끌어 주는 힘에 일어났다. 동선이 복잡해도 너무 복잡했다. 호르몬 전쟁 때도 이랬었는데. 아. 머리가 다 아프네. 처음부터 시작해. 호석이 손으로 박자를 맞췄다.
"동선 거기 엉키잖아. 김태형이랑 전정국. 거기 내가 들어갈 거잖아, 이따. 지금 니네가 하는 상태로는 나 못 들어가."
"거기 카메라 걸릴 것 같은데. 확실히 나와 주세요, 누나."
"박지민 이 와중에 안무 틀릴래? 전정국, 박지민 발 신경 쓰지 말고 하랬지. 너 자꾸 박지민 발 신경 쓰니까 스텝 엉키는 거 아니야."
"거기서 동선이 왜 그렇게 돼. 왜 오른쪽으로 돌아서 와. 왼쪽으로 돌아서 와야지. 다시 가 봐."
힘들어. 죽을 것 같아. 차라리 그냥 쓰러지고 싶다. 힘들지만 내색은 할 수 없었다. 다 힘든데 뭐라고 해……. 무엇보다 지금 호석에게 무어라 하면 죽일 것 같았다. 무서워. 사람 하나 집어삼킬 것 같은 눈빛……. 퍼포먼스에 관해서는 호석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안무 자체에 직접 공을 들인 게 호석이라서, 호석의 노력을 무시할 순 없었다. 항상 먼저 습득해서 안무 가르쳐 주는 게 얼마나 고마운데. 호석이 리허설 때는 이렇게 예민하지만 끝나면 또 칭찬해 주니까. 윤기를 배를 깔고 누워 있던 00이 움직였다.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어요. 수고하셨습니다."
"모니터링하자."
멤버들이 호석만 쳐다봤다. 물도 쥐어 주고, 땀도 닦아 주고. 호석은 굳은 표정을 풀더니 말했다.
"다들 잘했네. 다들 춤 진짜 많이 늘었어. 됐다."
오예. 끝났다. 다시 안 찍어도 된다.
"끝!!!!!"
"났!!!!!"
"다!!!!!"
멤버들이 미친 듯이 세트장을 뛰어다녔다. 역시 전직 군기반장은 무서워.
"누나, 누나 옆에 벌레 있어요! 조심해! 죽을지도 몰라!"
"……."
"악, 가까이 오지 마! 나 진짜 무섭다고!"
"……한심한 새끼……."
비록 평소 때는 욕이나 먹고 다니지만, 군기반장은 군기반장이었다.
99. 프로듀서
"인이어 피드백 좀 줘 볼까요? 랩몬부터."
"일 번에 목소리 좀 더 넣어 주실 주 있을까요. 감사합니다."
"목소리. 네. 진?"
"이 번에 MR 살짝만 키워 주실 수 있을까요. 감사합니다."
"MR 살짝. 네. 정국?"
"네. 저 괜찮습니다."
"괜찮고. 제이홉?"
"저 한 곡 더 해 봐도 될까요?"
"네. 지민?"
"저 괜찮은 것 같습니다."
"괜찮고. 태형?"
"네. 저도 괜찮은 것 같습니다."
"네, 00?"
"저 홉이 목소리랑 지민이 목소리 좀 살짝 낮춰 주세요. 감사합니다."
"목소리 낮추고……. 슈가는?"
"네. 저 밴드 셉션 1db만 올려 주시고요. 프로툴 1db 낮춰 주세요."
"네, 밴드를 자체적으로 좀 높이고, 프로툴을 낮추고요."
"아, 3번도 MR 1db 올려 주세요."
"3번에 1db 더. 네."
이럴 때는 정말 천재 같단 말이야. 00이 속으로 감탄했다. 1db, 즉 1데시벨. 고작 그 1db를 어떻게 구별해 내는지. 자신도 간신히 구별해 내는 정도였다. 물론 일반 사람의 귀로는 구별해 내기 아주 힘들고. 밴드 셉션, 프로툴. 00도 얼마 전에 배운 것들이지만 이렇게 응용해서 쓰기는 아직까지는 힘든데. 하긴 음향장비에 대해서는 웬만한 교수 뺨치게 자세히 안다고 하니까. 데뷔하기 전에도 대구에서 유명한 비트메이커이기도 했고. 생각해 보니까 엄청나잖아……. 작곡은 이제 막 익숙해지기 시작했고, 프로듀싱은 이제 막 간단한 것들만 건드린 상태. 윤기처럼 될 생각도 없지만 윤기만큼 하려면 프로듀싱에 대한 애정과 노력이 있어야 하겠지. 재능도 따르겠지만. 아쉽게도 00은 프로듀싱에 작사만큼의 애정이 없었다. 그래도 무언가를 배운다는 것에 대한 즐거움은 많아서, 윤기가 만족하고 있는 중이었다.
"1db를 구별해 낼 때의 기분은 어때?"
"……별 느낌 없는데? 그냥 아, 올리고 낮춰야겠구나. 거슬린다."
"신기한 놈……."
"1db는 너도 구별하잖아. 뜬금없네."
"나는 아주 자세히 들어야 하잖아."
"그럼 뭐 나는 대충 듣냐. 나도 자세히 듣고 피드백하는 거지."
"음."
생각해 보니까 그러네.
"바보야."
"……민피디 짱짱맨."
"그거 아닌데. 민윤기천재짱짱맨뿡뿡인데."
"……."
"민피디도 좋긴 하다."
"……."
"천재 민피디 물 마시러 간다. 물 갖고 와?"
"……응."
그럼 그렇지. 윤기의 모습이 너무 낯설 뻔했다. 00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우지 않고 윤기가 가지고 온 물을 마셨다.
100. 뻔한 인터뷰
에디터_ 멤버가 많다 보니 조용할 날은 없겠어요. 이런저런 일도 다 생길 것 같고.
슈가_ 정말 별일들이 다 생기죠.
진_ 가끔 감당이 안 될 일도 많아요.
뷔_ 그래서 멤버 수가 많은 게 좋은 것 같아요. 왜냐면 각자 다 잘하는 분야가 한 가지씩 있으니까! 어떤 일이 생기면 누가, 다른 일이 생기면 다른 멤버가 처리해 준다고 해야 하나.
지민_ 우리 능력 밖의 일들은요?
랩몬_ 그거는 이제 매니저 형들이…….
제이홉_ 회사가 괜히 있는 게 아니니까요. 네.
정국_ 형들이 우리 밥 시켜 주는 게 우리 능력 밖의 일이냐고 화내겠다.
00_ 메뉴 통일이 세상에서 제일 힘든 것 같아요. 맛있는 게 세상에 너무 많아.
지민_ 현실은 다이어트해야 하는데.
전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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