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 어떻게 죽이면 잘 죽였다고 소문이 날까요
"저 아까 주문하고 갔던 사람인데요."
"아, 주문하신 음료 한 잔 여기 있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카페에 가서 아까 주문하고 갔던 사람이라고 말하면 뭐 줄거라고 말했더니 알바생은 시커먼 음료를 나에게 건네주었다. 이건 뭐야. 뚜껑을 열고 냄새를 킁킁 맡으니 쓴 냄새가 확 올라와 내 코를 찔렀다. 아메리카노에 샷은 적어도 더블은 한 것 같았다. 이걸 나보고 먹으라고 시킨거야? 손에 아메리카노를 들고 빨대를 입에 갖다대고 한 번 빨아올리는데 정국선배가 야! 하고 달려왔다. 진격의 거인인줄. 진격의 정국?
"왜요."
"야!! 이거 먹으면 어떡해!!"
"이거 저 주실려고 시키신거 아니였어요?"
"뭔 멍멍이소리야. 내가 마실려고 시킨거구만. 빨리 줘."
"싫은데요."
"너 아메리카노 싫어하잖아."
"아니에요. 진짜 좋아해요. 아메리카노 덕분에 의대 붙었는데."
"뻥까지마. 니 얼굴에 '나 아메리카노 겁나 싫어해요. 저딴거 왜 먹는지 모르겠네-' 라고 써져있거든. 빨리 내놔."
눈치는 쓸데없이 빨라가지고. 나는 한숨을 쉬며 아메리카노를 선배한테 건네주었다. 그제야 굳어져있던 얼굴이 스륵 풀리고 아기처럼 빨대를 입에 물고 쪽쪽 빨았다. 쪽쪽 빨았다...뭐라고? 저 빨때 내가 입댄건데 도른거아니야?
"선배!! 저 그 빨때 입댔는데요."
"아."
"...아?"
"뭐, 문제있나? 우리는 그럼 서로 입술을 나눈사이가 되는거야?"
"뭔소리에요,진짜. 장난 좀 치지마요."
"미안미안. 너 할 거 많지 않나? 빨리 들어가서 하지."
본지 겨우 몇 시간 밖에 안됐는데 나한테 그런 짓궂은 장난을 치는 게 좀 그랬다. 그래서 선배보다 더 빠른 걸음으로 가서 엘리베이터를 잡고 나 혼자 타고 외과병동으로 갔다.
"정국 선배랑 같이 나갔다가 왜 너 혼자만 들어와?"
"아. 그런 일이 좀 있었어요."
"야 너 발걸음 왜이렇게 빠르냐."
"선배가 싫어서 빠른가보죠."
"야 진짜 너네 뭔 일 있었어?"
문을 열고 들어가서 내 자리에 앉으니 쉬고 있으셨던지 커피를 홀짝거리고 마시고 있는 지민선배가 왜 나 혼자만 들어오냐고 나한테 물어왔다. 그런 일이 있었다고 답하자 마자 뒤이어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고 정국 선배가 숨을 헐떡이며 왜 이렇게 빠른거냐고했다. 너님이 싫어서요. 뭔 일 있었냐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어오는 지민선배에 살짝 웃고 컴퓨터를 켰다.
"선배 여주 왜 그래요?"
"몰라. 내가 뭐 잘못했나보지."
선배는 시무룩한 표정을 하고 입술을 쭉 내밀고는 선배 자리에 앉았다. 선배는 나랑 조금이라도 친해지고, 가까워지고 싶어서 그런 장난을 쳤을 수도 있는 거였는데 괜히 내가 날카롭게 나간거 같아서 조금 찝찝했다. 나는 그 찝찝함을 무시하고 초록창에 선배가 알려준 토론 주제에 대해서 찾기 시작했다.
"흐음... 유전자 지도라..."
한참을 찾고 있는데 계속 선배의 시무룩한 표정이 떠올라서 도저히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선배 자리 쪽을 쳐다보니 환자 체크 하러갔는 지 안계셨다. 어떡해 해야할까, 하고 옆자리에 있는 지민선배의 어깨를 톡톡 쳤다. 그러니 쓰던 안경을 벗으시고 머리를 정리하시고는 왜? 하며 살풋 미소지으셨다. 헐...겁나 잘생겼어...
"선배 바쁘세요?"
"어...30분있다가 체크하러 가야되는 거 빼고는 괜찮아."
"아, 그러면 저 좀 도와주시면 안될까요?"
"왜? 뭐?"
선배가 나한테 장난을 쳤는데, 그걸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여서 예민하게 나간게 좀 걸린다고 말하니 선배는 내 어깨를 퍽퍽 치면서 못살겠다는 듯이 웃었다. 왜요? 나 되게 심각한데? 지민선배는 나를 한참 바라보더니 내 머리를 다 헝클어놓으셨다. 하지마요, 선배.
"정국선배 좀 그러다가 말아. 별로 신경안써도 돼."
"그래도 마음에 좀 걸리는데."
"그렇게 신경쓰이면 너 오늘 정국선배랑 토론하지않아?"
"네. 6시요."
그러면... 지민선배는 나보고 손짓으로 자기한테 가까이 오라고 하셨고, 나는 의자를 밀어서 지민선배 쪽으로 갔다. 지민선배는 내 손목을 확 잡아당겨 자신의 바로 앞까지 오게 했다. 잠깐만, 이거 너무 가깝지않아? 지민선배의 숨이 나한테까지 느껴질 정도의 거리였다. 지민선배는 이런건 신경 안쓰는지 입을 내 귀쪽으로 갖다대었고, 작은 목소리로 내 귀에 대고 소곤소곤거렸다.
"알겠어? 이러면 완전 풀릴껄?"
"오오. 감사합니다, 선배."
"화이팅! 나 체크하러 갔다올테니까 꼭 성공하길 빈다."
"옙. 잘 다녀오십시오."
지민선배의 팁을 듣고 정국선배의 반응을 머릿속으로 그려보니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나였다. 근데 그것보다 토론 준비를 해야되는데. 암만 찾아봐도 뭐가 뭔질 모르겠단 말이야. 턱을 괴고 모니터만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는데 내 옆자리에서 털썩 하고 힘없이 앉는 소리가 났다. 그에 옆을 돌아보자 빨간 머리 김태형이 앞머리를 정리하면서 한숨을 푹 내쉬고 있었다. 왜그러는거지? 뭔 일 있었나?
"김태형. 너 똑바로 해. 알겠어?"
"..."
"대답안해? 넌 지금 기본 예의도 안지키고 있어, 알아?"
"...죄송합니다."
"죄송하다고만 하면 단줄 아나."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교수님 뵈러 갔다 올테니까 그때까지 다시 해가지고 와."
"..예."
털썩 주저앉은 김태형을 보고 윤기 선배는 무표정으로 제대로 하라며 소리를 질렀다. 으아...무서워... 만난지는 하루도 채 되지 않았지만 이때까지 윤기선배가 보여준 선배의 모습은 자상하고, 착한 모습이었는데, 그렇게 화를 내는 것은 처음봤다. 안그래도 방에 호석선배도, 지민선배도, 정국선배도 없이 나 혼자만 있었는데 둘 사이에 내가 낑겨서 있으려니 좀 눈치가 보였다. 옆을 돌아보면 아..씨 하는 김태형이, 검색할려고 컴퓨터를 보면 여전히 무표정인 윤기선배가 보이니. 참.
"...하..."
김태형은 책상위에 올려진 담배갑을 손에 쥐고 머리를 헝클이며 문을 열고 나갔다. 엄마..쟤 무서워... 김태형을 한껏 째려보다가 고개를 돌려 정면을 보는데 나를 보고 있었던지 윤기선배와 눈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순간 심장이 쿵 하고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멍하게 선배를 계속 쳐다보고 있자 좀 민망했던지 입꼬리를 올려 씩 웃으셨다.
"선배, 쟤 왜저래요?"
"별일 아니야. 태형이가 조금 잘못한거 뿐?"
"아... 엄청 심각해보이는데..."
"아니야, 신경 안써도되. 여주후배는 정국이랑 토론할꺼 열심히 준비하세요."
"네..."
그래. 선배는 역시 내 머릿속에 저장된거처럼 젠틀했다. 선배는 신경쓰지말라고, 토론준비나 열심히 하라고 하셨다. 열심히 하려고 하는데 도저히 집중이 안되었다. 첫날이라서 붕떠서 그런가 한 30분정도 찾다가 페이스북들어가서 맛집을 찾고있었다. 윤기선배라면 어떻게해야 집중을 잘 할 수 있는 지 아실 것 같아서 한번 물어보기로 했다.
"선배 있잖아요."
"왜?"
"집중 안될때는 어떻게하세요?"
"흠..."
"..."
"나가자. 뭐 마실거라도 사줄게."
물어봤는데 갑자기 나가자는 선배에 시속 300km정도 되는 속도로 빠르게 손사래를 쳤다. 아니에요, 괜찮아요. 제가 뭐 사달라고 저런 얘기를 한것도 아닌데... 선배는 내 말에 피식 웃으시더니 내 자리로 성큼성큼 오셔서 내 손목을 잡고 나를 자리에서 일으켰다. 집중 안될때는 시원한게 최고야. 선배는 내 손목을 계속 잡고 1층에 카페로 데리고 가셨다. 하...역시 누구랑은 달라.
"마시고 싶은거 있어?"
"저 그냥 아이스초코할래요."
"그래, 저기 앉아 있어."
"네. 감사합니다."
주문을 하는 윤기선배의 뒷모습은 딱 내꺼 같이 생겼다. 턱을 괴고 감상을 하고 있는데 내 앞에 어떤 사람이 앉았다. 당연히 윤기선밴 줄 알고 감사합니다- 라고 말하는데 뭔가 느낌이 아닌 거 같아서 똑바로 쳐다보니까 정국선배가 나랑 같은 자세로 턱을 괴고 눈살을 찌푸리고 있었다. 뭐야, 이사람.
"우리 여주 후배는 토론 준비 안하고 여기서 뭐하고 계시나?"
"예...?"
"여주 집중 안된대서 내가 데리고 나왔어."
"형 여주한테 너무 잘해주지마요."
"내가 잘해주고 싶어서 그런건데 니가 왜."
맞아맞아. 윤기선배의 말에 엄청 동의를 하며 고개를 끄덕이는데 정국선배와 눈이 마주쳤다. 뭔가 표정이 안좋은거 같은데, 윤기선배랑 마주앉아서 아이스초코를 먹을 생각에 그냥 무시했다. 정국선배는 빨리 먹고 올라오라고 하셨고 나는 그에 대충 답을 하고 선배가 가져온 아이스초코를 한입 쪽 빨았다. 하, 역시 아이스초코. 달달하지만 약간 쌉쌀한 초코향이 입속 가득히 퍼지자 눈을 감고 그 기분좋은 향을 느꼈다.
"이제 좀 괜찮아?"
"네, 완전. 저 단거 진짜 좋아하거든요. 아이스초코는 진짜, 말로 표현할 수가 없어요."
"다행이네. 천천히 마셔, 누가 따라오나."
"예. 전정국선배요. 아까 눈빛 봤어요? 겁나 포식잔줄."
선배는 내 말에 팔로 입을 막고 한참을 끅끅대며 웃으셨다. 웃기시나요? 어디에서 그렇게 터지신지를 몰라서 선배한테 진지하게 물어보자 잠시 웃는 걸 멈추시다가 내 눈을 보고는 다시 또 빵 터지셨다. 어...빵 옆구리 터졌다. 너 말하는 거 진짜 웃겨, 알아? 제가 그걸 알겠습니까... 몰라서 물어보는건데.
"너 되게..."
"되게...?"
"아니다. 그거 그냥 들고 올라가자. 정국이가 나까지 뭐라 하겠다."
"그럽시다. 예."
***
"여주? 가자."
"아, 네. 잠깐만요."
드디어 그 시간이 다가왔다. 준비가 거의 막바지에 다다랐을때, 그걸 어떻게 알았는지 정국선배는 내 자리에 와서 가자고 했다. 화이트가운이 아니라 검은색가운이었으면 겁나 저승사자인줄 알뻔했다. 열심히 준비한걸 다 챙기고, 선배의 뒤에 섰다. 근데 선배는 가지 않고 그냥 우두커니 서있기만 했다. 지가 가자고 그랬으면서 왜 안간대?
"선배 안가요?"
"아. 가자가자."
선배와 나는 아까 윤기선배랑 같이 갔던 1층 카페에 갔다. 윤기선배랑 왔을 때랑 뭔가 느낌이 달랐다. 윤기선배랑 왔을 때는 분홍분홍하고, 막 데이트하는 분위기였는데 정국선배랑 오니까 딱 공부하러, 의학얘기하러 온 것 같았다. 정국선배는 나보고 저 구석에 앉아서 기다리라고 하시고는 카운터로 가서 음료를 주문하러 가셨다. 내가 자리에 앉아 자료를 정리하고 있자 쟁반에 거무튀튀한 음료 두잔을 들고오셨다. 하나는 보나마나 아메리카노겠고, 이거는 뭐지? 엥? 아이스초코?
"선배 저 아이스초코 좋아하는 거 어떻게 아셨대요?"
"아까 윤기형이랑 먹는 거 보고. 단거 좋아하나봐?"
"예, 저 단거킬러에요. 진짜 좋아해요."
"흐음... 그렇군. 그럼 일단 한 입 마셔. 마시고 시작하자."
달달한 초코향에 기분이 좋아서 입꼬리를 올리니 정국선배는 그걸 또 그새 봤는지 단거 좋아하는거 티내지 말고 시작하자고 하셨다. 에이씨.
"주제가...민간업체에 유전자지도를 제공하면..."
"...히히 좋다."
한 입 먹은 게 입가에 계속 맴돌아서 못참고 한 입 더 마셨다. 역시 초코는 진짜 신의 한수야. 선배가 주제를 말하는 것을 못듣고 좋다고 헤실헤실 웃고있었는데 옅게 떠진 눈 사이로 굳은 정국선배가 담겼다. 잠만, 이거 뭔가 내가 좀 잘못한거 같은데?
"이여주."
"...네?"
"나한테만 집중해. 지금."
안쪽에서 펑-하고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이거 분명히 내가 잘못해서 그런건데, 왜 다른 쪽으로 들리는 거지? 내가 이상한건가.
암호닉♥내이삐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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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공삼공구입니당
진짜 넘나 많은 사랑주셔서 제가 어떻게 해야할지를 모르겠어요ㅜ.ㅜ
진짜 감사합니다ㅜㅜㅜㅜ
댓글 다 하나하나 읽어보고 있구요..진짜 사랑해요ㅜㅜㅜ
또 암호닉은! 암호닉 신청방에서 해주신거만 적어드려요~!!
그럼 3화에 뵙시당
+)정국이 다 큰줄 알았는데 역시 형아들 품 밖은 위험한가봐요.
지금 당장이라도 제주도가서 우리 정구깅 쌈싸서 델꼬오고싶은데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