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어떻게 됐어요?”
박혜진이 헤실헤실 웃으며 내게 다가와 물었다. 뭐가? 내 말에 박혜진이 눈을 크게 뜨고는 다시 되물었다.
“뭐긴요! 호석 선배한테……”
“……아.”
“아직 말 안해주셨죠?”
박혜진의 말에 내가 조심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천천히 해주셔도 돼요!”
“……어?”
“저, 사실 며칠 전부터 호석 선배한테 먼저 연락했었거든요.”
나 박혜진이랑 연락한다.
며칠 전 정호석과 길을 걷다가 정호석이 내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이미 알고 있었던 얘기지만, 정호석한테 들었다고 하는 건 뭔가 상황을 애매하게 만들 것 같아서 처음 듣는 얘기인냥 박혜진을 쳐다봤다.
“……그래?”
“호석 선배 진짜 완전 친절하세요.”
“……다행이다.”
“언니는 선배처럼 좋은 친구 두셔서 좋겠어요. 진짜 부러워요. 언니 그러니까 오늘 제가 뇌물의 의미로 밥 한끼……”
“아, 미안…… 나 오늘 속이 좀 안 좋다. 미안해. 다음에 사 줘.”
내 말에 박혜진이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가방을 챙겨 먼저 일어섰다. 나 먼저 가볼게. 내 말에 박혜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과방 문을 세게 닫고 나와서 벽에 기대섰다. 속이 안 좋다는 건 거짓말이었는데, 갑자기 속이 진짜로 안 좋아졌다.
그 속 말고, 다른 속. 배 말고, 마음이 안 좋아졌다. 나, 요즘 왜 이래. 진짜.
친구 이상 연인 이하의 관계
(2/3) 역시나
천둥
“이야. 이거 호석이 아니야. 얼마만에 보는 얼굴이냐?”
“에이. 형. 어제도 봤으면서.”
윤기 선배의 말에 정호석이 굽신거리며 윤기 선배의 팔을 붙잡았다. 도망치듯 과방을 빠져나오고 나서 집에 가는 길에 온 정호석의 전화에 나는 다시 학교로 올 수 밖에 없었다. 급하게, 할 말이 있다면서 학교로 와줄 수 있냐는 전화. 그 전화에 내가 발걸음을 다시 돌릴 수 밖에 없었다.
여전히 나는 윤기 선배가 달갑지 않았다. 여러모로 정호석을 굴릴 데로 굴리는 선배라서. 게다가 내가 굴려질 때도 정호석이 다 자기가 나서서 굴러서. 그래서 나는 윤기 선배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여주는, 여전히 무뚝뚝하네?”
“……아. 안녕하세요.”
“어. 그래. 여자애가 여우 같아야지 사랑을 많이 받지.”
“……네?”
“아이. 형도 참.”
윤기 선배의 뻔뻔한 말에 정호석이 선배 팔을 아프지 않게 내리치며 말렸다.
“여주는 참 곰같아서, 누가 데려가려나.”
“……”
“아유, 아무도 없으면 제가 데려가야죠. 형. 있잖아요. 그, 저번에 형이 시킨……”
윤기 선배의 무례한 말에, 정호석이 화제를 돌리려 애를 썼다. 화가 나는데 선배라 어떻게 할 수도 없어서 그냥 입술만 깨물며 시선을 피했다. 나를 감싸는 정호석을 보자마자 윤기 선배가 이때다 싶은 말투로,
“니네 둘이 사귀냐?”
아니라는 얘기를 몇 번이나 들었으면서 똑같은 질문을 했다.
“……”
“……”
“어쭈. 뭐야. 이것들 왜 대답이 없어.”
“……”
“아, 형. 저 지금 가봐야 될 것 같거든요.”
“……”
정호석이 안 좋은 표정의 나를 데리고는 그 곳을 빠져나왔다. 왜, 둘 중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을까. 아니라고.
“아. 진짜 미안하다. 그 날 약속이 잡혀버려서……”
“……괜찮아.”
서로 한 약속을 한 번도 깬 적이 없던 정호석이, 약속을 깼다. 아마 할 말이라는 게 이거였던 것 같다. 미안하다며 영화보자고 나를 영화관으로 데려온 정호석이 어두운 표정의 나를 보고는 어떻게든 분위기를 풀어보려고 노력했지만,
“……진짜 미안해.”
한 번 가라앉아버린 분위기는 정호석도 살릴 수가 없나보다. 진심으로 미안해하는 그 표정에 내가 더 미안해져서 고개를 내저었다.
“괜찮아.”
“영화나 보자. 호식이가 쏩니다.”
“……”
“음, 요즘 이거 재밌다던데. 미 비포 유. 봤어?”
정호석이 영화 팜플렛을 가져와 내 앞에 흔들어보였다. 그냥 너 보고 싶은 거로 봐. 예전 같았으면 좋다고 받아들고는 골랐을텐데, 요즘따라. 아니, 오늘따라 더.
“여주야.”
“……”
“박여주.”
정호석이 몇 번이고 날 불렀다. 확 가까워진 얼굴에, 며칠 전과는 다른 느낌이 들었다.
“박여주? 너 내 말 듣고 있냐?”
정호석과 나는, 아주 오래 전부터 친구였다. 엄청 오래전. 10년도 더 됐지. 햇수로 치자면.
“오늘은 또 왜 그래. 어디 아파? 얼굴이 왜 이렇게 빨갛지. 너 또 감기 걸렸지.”
정호석이 내 얼굴이 빨간 게 감기 기운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지만, 나는 알고 있다. 그게 감기 때문이 아니라 정호석 때문이라는 걸.
매년 환절기만 되면 감기를 달고 살았는데. 그럴 때마다 정호석은 미리 내가 아픈 걸 눈치 채고는 늘 이렇게 손으로 이마를 짚어주고, 약을 사다주곤 했다.
“……”
“너 진짜 열 나는 거 같은데. 영화 볼 수 있겠어? 기다려 봐. 약 사올게.”
그래서 이런 행동들이 정말 우정에 불과한 행동이라는 걸 누구보다 더 잘 알지만.
“……아냐. 괜찮아.”
자꾸만 너를 향한 감정이 친구 이상의 감정으로 변해버려서. 너를 보고 있으면 이상한 기분이 들어서. 요즘따라 더하다. 주변에서 ‘너네 무슨사이야?’하고 물어보면 당당히 친구라고 대답했던 것 같은데, 왜 요즘에는 둘 다 그렇게 대답하지 못하는 걸까. 나는 이제야 알 것 같다. 내 마음이 정호석을 친구 이상으로 생각한다는 걸. 그래서 순순히 친구 사이라고 대답하지 못했다는 걸. 근데, 정호석은 어째서. 너는 왜 어째서, 대답하지 못했던 걸까. 혹시 내 마음을 눈치채고는 상처주기 싫은 배려였던 걸까.
“영화 보자. 나, 미 비포 유 보고 싶어.”
“진짜 괜찮은 거 맞지?”
“응.”
애써 니가 걱정하는 모습을 보기 싫어서 괜찮다고 얘기한다.
친구와 연인, 우리는 그 둘 중 어느 쪽에 더 가까운 걸까.
“자?”
미 비포 유를 보자고 해놓고, 잠에 빠졌던 박여주를 흔들어 깨웠다. 조심스레 어깨를 흔들자 내 어깨에 고개를 기댔다.
“일어나 봐. 영화 끝났다. 얼른 집에 가서 자야지.”
“……으.”
내 말에 박여주가 눈을 뜨곤 날 바라봤다. 참도 곰같다. 이렇게 여우 같이 생긴 애가 어디 있는데. 여우의 탈을 쓴 곰. 뭔가 웃긴 광경이라 웃음이 새어나왔다. 박여주가 여전히 정신을 못차린 듯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 주변을 확인하더니 그제야 제대로 일어섰다.
“지금…… 몇 시야?”
“몇 시긴. 10시지.”
“영화 끝난지 얼마나 됐어?”
“얼마 안 됐어. 얼른 가자.”
박여주가 아직도 잠에서 덜 깬 건지, 가방을 들고 휘청거렸다. 내가 그 가방을 빼앗아 들었다.
“내가 들게.”
“아냐. 이런 건 원래 남자가 들어주는 거야.”
그리고는 박여주의 등을 밀어 계단을 내려갔다. 진짜, 곰 맞네. 여우 탈 쓴 곰. 나 없이는 어떻게 살려고 그러나. 진짜 저러니까 내가 남자 만나는 거 일일히 관심을 쓸 수 밖에 없는 거지.
그런 생각까지 미쳤는데, 순간 박혜진이 떠올랐다. 누군가에게 짐을 떠밀 듯 내게 박혜진과 잘 해보라고 얘기한 박여주. 자꾸만 그때 그 표정이 거슬렸다.
생각해보면 예전에는 서로 불편한 거 불만 있는 거 다 털어놓았던 것 같은데, 점점 커가면서 그런 걸 말하지 않고 속으로 썩히는 버릇이 들었다. 나도 그렇고 박여주도 그렇고. 그래도 난 박여주에게 다 얘기하는 편인데, 박여주는 요즘따라 영 그렇지 않아서 나 혼자 일방적으로 벽에다 대고 얘기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여주야.”
“……어?”
내 부름에 박여주가 뒤를 돌아봤다. 익숙한 박여주 향이 내 코끝에 닿았다.
“……내가 요즘 뭐,”
“……”
“너한테 잘못한 거 있어?”
내가 결국, 박여주에게 먼저 물어봤다.
잘못한 거 있냐는 정호석의 질문에 내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고 그냥 바라보기만 했다. 잘못. 잘못……. 잘못이란 게 있다면, 아마 정호석이 아니라 나에게 있겠지. 친한 친구를 좋아하게 되버린 큰 죄. 큰 잘못을 저질러 버렸지. 그래도 나름 지금의 관계를 깨기 싫어서 혼자 아니라고, 좋아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해가며 참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어?”
“그니까, 요즘 우리…… 조금 멀어지는 것 같다.”
그게 아니었나보다. 정호석에게는. 다 티가 났나보다. 내가 자기에게 조금 거리를 두고, 예전과 같은 마음으로 자기를 대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근데, 그럴 수 밖에 없는 걸 어떡해. 너무 좋아서 예전처럼 가까운 친구처럼 대하면 심장이 너무 뛰어서 자꾸 더 가까워지고 싶고, 친구 이상의 욕심이 생겨버리는데.
“……아냐. 그런 거 아니야.”
“솔직히, 얘기하고 풀자. 우리.”
“……진짜 그런 거 아니야.”
내 말에 정호석이 그냥 날 바라보기만 했다. 그냥, 내가 요즘 니가 너무 좋아져서 그래. 끝까지 하지 못한 말이 내 입 안에 맴돌았다.
우리, 조금 멀리하는 게 어떨까.
영화를 봤던 날 헤어지면서 박여주가 내게 했던 그 말에 조금 섭섭하기도 했다. 너랑 나랑 어떤 사이인데. 박여주. 진짜 너 되게 이기적이다. 목 끝까지 차오른 말을 그냥 속으로 꾹 참아냈다. 이유도 제대로 듣지 못하고 며칠 째 박여주와 냉전 중이었다. 부부싸움을 한 것도 아니고, 뭐 서로 기분 나쁜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리고 이제와서 서로 잘 안 맞는 것 같다고 하기에는 너무 오랜 시간을 같이 지내왔고.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에 나는 며칠 내내 날 피하는 박여주를 쫓았다.
곰같은 애가 언제 이렇게 빠른 여우가 된 건지, 쏙쏙 내가 가는 곳마다 피해다니는 데 머리가 지끈 지끈 아파왔다. 뭐 알아야 풀든가 말든가 하지. 얼굴도 안 보여주고 어떻게 코빼기 하나 보이지 않는 건지.
우리꿀꿀이(ㅇㅇ)
박여주
카톡 좀 보지?
차단한 건가
프사는 바꾸면서
아 진짜 너무한다 어떻게 한 번을 안 읽냐
야 너 진짜 나랑 평생 안볼거야?
그냥 거리만 조금 두자며
뭐야 연락도 씹고
보면 전화해
열심히 연락을 보낸 의미가 있는 줄 알았다. 전화가 울리길래, 그리고 화면에 뜬 이름이 박여주길래 빠르게 받으니,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 쪽 누구세요. 누군데 박여주 폰……”
- 아, 나, 그 여주 스터디 같이 하는 선배인데.
“……스터디요?”
의심스러워 다시 되물어봤는데, 전에 박여주가 스터디를 한다고 했던 게 떠올랐다. 아, 맞네. 그 남자만 가득한 스터디.
“근데, 왜 박여주 폰을 그 쪽이.”
- 얘가 지금 많이 취했거든.
“네? 애가 취했다구요?”
많이 취했다는 말에 당황해서 큰 소리를 냈다. 상대편에서 데리러 오라는 말을 아직 꺼내지도 않았는데 본능적으로 몸은 겉옷을 챙기고 신발을 신고 있었다.
- 얘가 계속 너 찾길래. 호식이 호식이 노래를 부르길래. 검색하니까 니 번호가 뜨더라고.
“거기, 어디에요.”
- 어?
“지금 데리러 간다구요. 어디에요.”
어디인지 듣고 나서는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고 바로 택시를 잡았다. 아, 진짜. 여자애가. 하여간 진짜 곰 같아서는. 어디 남자만 있는데 술이 떡이 되게 마셔. 진짜. 아.
“못 살아. 내가 진짜.”
| 친구 이상 연인 이하의 관계 (2/3 |
치환의 오류와..... 영화 제목이 너무 구닥다리인 관계로.... 다시 올릴게여.. 또 오류 생기면 나 울거야.. 우럭ㅇ... |
아직 시리즈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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