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폰서 너탄 X 배우 민윤기
*
두 달 전, 여우가 죽었다. ‘여우’는 회장의 세번째 재혼 상대였던 여자를 지칭하는 별칭으로, 박지민이 붙인 것이었다.
오랜만에 집안 사람들이 모두 모인 어느 아침의 밥상머리에서, 박지민은 집에서 키우던 개새끼 중 한마리가 죽었다는 듯, 일상적인 투로 그녀의 부고를 알렸다.
그 쌍년이 어떻게 뒤진 줄 알아?
내 귀에 입을 바짝 붙인 그가 속삭였다. 불쾌했으나 사람들 앞에서 감정을 드러내는 게 멍청한 짓이라는 것 쯤은 잘 알고 있었다. 특히나 그 대상이 역겨울 정도로 눈치가 빠른 회장의 식구들 앞이라면 더더욱. 나는 에그 베네딕트를 썰던 나이프를 고쳐쥐는 것으로 뒤틀린 심기를 대신 표출했다.
김 실장이 그년을 오 톤 짜리 트럭으로 뭉개버렸어. 두번이나.
박지민이 음절을 내뱉을 때마다 베이컨 냄새가 코를 찔렀다. 나는 한쪽 눈썹을 치켜 올리고 접시에 담긴 팬케이크를 얇게 썰었다.
회장님이 계신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어깨를 떨며 처웃는 꼴이라니, 천박하기 짝이 없다.
이래서 혈통이라는 게 중요하다는 거에요, 아버지. 비아냥대고 싶은 욕구를 이를 악물고 참았다
.바득, 뒤틀리는 입가를 바라보던 박지민이 이를 드러내고 킥킥 웃었다. 입을 꾹 다문 나는 메이플 시럽이 담긴 유리병을 향해 손을 뻗었다. 박지민은 틈을 놓치지 않고 잽싸게 병을 가로채 제 앞에 놓인 빈 접시 위로 시럽을 모조리 부었다. 갈색 액체가 뱀처럼 원목 테이블 위로 넘쳐흘렀다. 웅덩이가 고인 메이플 시럽 안으로 손을 밀어넣었다 뺀 그가 손가락에서 뚝뚝 떨어지는 시럽을, 길게 혀를 내어 핥았다.
그 뻔뻔함에 치가 떨렸다. 나는 기어코 미간을 찌푸리고 말았다.
“웁스, 실수.”
말꼬리를 얄밉게 늘리면서 야살스럽게 웃는다. 저따위로 안하무인인 놈을 보고도 입 하나 뻥긋거리는 사람이 없다니, 입맛이 뚝 떨어진 나는 포크를 천천히 내려놓고 식탁에서 일어섰다.
TK그룹의 로고가 크게 박혀 있는 서류를 읽던 장남은 의자 끄는 소리에 잠깐 고개를 들었다가 별 일이 아니라는 듯 시선을 내리깔았다. 포크로 팬케이크 부스러기를 휘젓던 차남 역시 고개를 돌렸다.
투명인간 취급은 늘 겪어도 언짢다. 부아가 치밀었다.
“계집의 자리는 네가 채우도록 해라.”
근 세달 만에 얼굴을 보는 회장, 그러니까 아버지는 조간 신문에서 눈을 떼지도 않고 아주 무심하게 명했다.
이 문맥에서 ‘너’라는 것이 나와 박지민 중 누구를 지칭하는 것인지 잠시 헷갈렸으나, 답은 너무나도 자명했다.
한국의 자본주의를 의원 내각제에 빗댄다면, 아버지는 수상이었다.
회장이 이빨과 발톱을 숨겨 경쟁자들의 경계를 풀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직접 얼굴을 드러내는 대신 젊고 아름다운 꼭두각시를 내세우는 것이었다.
TK의 얼굴, 마스코트. 아버지가 수상이라면 여우는 여왕이었다. 비록 꼭두각시일 뿐이라 해도 회사의 형식적인 업무들은 모두 도맡았으니까.
대웅 전자가 빠르게 주가를 올리며 TK를 따라잡는 상황에서, 안주인의 자리가 비었다는 것은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놈들에게 약점을 내주는 셈이었다.
그러니까, 아버지는, 죽은 여우 대신 나를 꼭두각시 여왕의 자리에 앉히려는 심산이었다.
“왜 하필, 접니까.”
“토를 다는 게냐?”
“너무 갑작스럽습니다. 무리입니다. 저 대신 다른 사람을 세우시는 게-,”
“아가, 넌 지금 이게 부탁으로 들리니?”
“…아닙니다, 회장님.”
“김실장이 내일 아침에 차를 보낼 거다. 시간에 맞춰 출근하도록 해라.”
“…예.”
주먹에 힘을 쥐어 떨리는 목소리를 겨우 감추었다. 계단을 한걸음 한걸음 올라가는 것 자체가 곤혹이었다.
모두의 시선이 나에게 몰리는 것 같아 숨이 가빠지고 심장이 조이듯 아파왔다. 겨우 방문을 닫자마자 주르르 주저앉아버렸다.
사장이라. 여우가 회장의 후처로 들어오기 전에는, 내 친모에게 억지로 쥐어졌던 직책이었다.
마지막으로 발을 들인지 10년이 넘었어도 어머니가 앉아있던 사장실의 구조 만큼은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있다.
잠긴 문을 강제로 따자마자 눈에 들어온 건 아무렇게나 흩뿌려진 서류 다발과 깨진 유리조각들 사이에서 눈에 띄던 정갈한 유언장, 그리고 천장에 목을 맨 모친의 시체였다.
씨발,
심하게 떨리는 손으로 수납장을 뒤져 안정제를 털었다. 다섯 알 모두 천천히 씹어먹었다. 기분나쁘게 입안 가득 퍼지는 알약의 쓴내에 문득 억울해졌다.
좆같은 노인네, 결국 죽어도 박지민을 사장으로 앉힐 수는 없다, 이거지. 그 새끼를 세상에 알리는 건 두렵고, 나는 뒈지든 말든 아무렇게나 내팽개쳐도 괜찮아?
아래층에서 와장창, 하고 유리 깨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방문 틈으로 흘러들어왔다.
<사담>
1.
반응연재, 댓글 많이 달아주셔요ㅎㅎ
2.
지민이와 탄소는 이복남매구요, 22살 동갑이에요ㅎㅎ서로 못잡아먹어서 안달이랄까.
지민이는 회장의 첩의 자식이라 정식으로 호적에 등재가 안 되어 있어요. 그것 때문에 콤플렉스가 많아서 또라이가 된 타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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