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는 모르지만, 나는 꽤나 긴 시간 동안 너를 지켜봐왔다.
“보고 싶다.”
3년이라는 긴 시간을, 멀리 멀리 돌아오면서. 너를 지켜봐왔다.
“정국아.”
그리고, 다시 그 동네로 돌아온 너와 마주쳤다.
하얀 손목에 가득한 붉은 흉터. 그리고 한 여름에도 입고 다니는 긴 옷. 나는 긴 옷을 입고 다니는 이유를 알고 있었다. 너는 아빠에게 지독한 폭력을 받고 있었고, 나는 그걸 방관하고 있었다.
늘 새벽마다 늦은 시간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집에 가는 널 알고 있었다. 처음에는 너무 화가나서, 속상한 마음에 너에게 큰 화를 냈었던 것 같다.
‘누나, 생각이 있는 거에요 없는 거에요?’
‘……’
‘그 늦은 시간에 여자 혼자 돌아다니는 게, 말이나 돼요?’
‘……’
‘아르바이트? 장난해요? 그 동네 가뜩이나 위험……!’
풀이 잔뜩 죽은 듯한 너의 모습에 괜히 미안해져서 그 뒤에는 너의 거짓에 속아주었다. 감기에 걸려서 온 날, 아르바이트 했냐는 내 질문에 안 했다고 고개를 내저은 너의 얼굴에 너무나도 거짓말을 하는 티가 서려있어서.
‘……감기, 걸리지 마요.’
애써 모르는 척해가며 눈감아줬다. 너의 거짓을.
그리고 3년만의 본 너는, 여전했다. 가벼운 옷차림에 감기에 걸린 듯한 목소리. 나도 모르게 나를 부르는 널 보자마자 웃었다.
너무나도 보고 싶었던 얼굴이라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너의 눈가에 울음이 차오르고, 니가 눈물을 터트리며 날 끌어 안았다. 그런 너를 3년 전처럼 토닥였다. 나를, 잊지 않았구나. 다른 건 잊어도 나를 잊지는 않았구나.
“누구……세요.”
그리고 나서 후회했다. 잊은 것처럼 행동했어야 하는데. 모든 걸 기억하지 못하는 것처럼 행동해야 하는데 너를 보자마자 너무 반가워서 웃음이 나왔고, 토닥이고 말았다. 실수했다 생각했는데, 내 단순한 연기에 니가 속아넘어갔다.
여전히 가벼운 옷차림에 걱정이 되어 바로 옷을 벗어 너에게 건넸다. 여전히 아르바이트를 하는 건지, 가보려는 너를 붙들고 뻔뻔히 아는 이름을 물어본 것도, 전화번호를 물어본 것도 순전히 내 욕심이었다.
너는 검정고시로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독학으로 재수를 한다고 했다. 그런 너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이거 저거 알려준 것도 어느새 2주라는 시간이 흘렀다. 아무 것도 모르는 척, 너의 곁에서 널 지켜보는 건 너무나도 힘든 일이었다.
평소와 달리 유난히, 너는 힘들어했다.
“누나.”
그런 너에게 예전에 했던 약속이 떠올랐다. 학교 도서관에서 빤히 어떤 사진을 바라봤던 너. 그리고, 그 시선의 끝에 머문 사진은 겨울 바다.
‘겨울 바다 진짜 예쁜데. 가본 적 있어요?’
내 질문에 너는 아무 대답 없었다. 니 얼굴을 살짝 확인하고 난 뒤에야 내가 실수했다는 걸 느꼈다. 그리고는, 너에게 약속을 했다.
“나랑, 겨울바다 갈래요?”
그리고 3년 전의 약속을, 지금에서야 지키려 한다.
바다를 보고 환히 웃는 니 모습이 너무나도 예뻐서 사진을 찍고 싶었다. 그런 마음을 꾹 참으며 내 눈에만 담았다. 여전히 가벼운 니 옷차림에 내가 습관처럼 옷을 벗어 니 어깨에 걸쳐주었다. 작은 보폭의 걸음으로 바닷가를 걷던 니가 뒤를 돌아 날 바라봤다.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본심이 튀어나왔다.
“예쁘다.”
내가 말 해놓고 당황했다. 그냥, 동생으로써 옆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3년 전에도 그랬다. 근데, 자꾸 가까이 있다 보니까. 너와 내 사이를 막는 장애물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니까 자꾸만 욕심이 생긴다.
“그러고 서 있으니까, 진짜 예뻐요.”
내가 그렇게 말하곤 너에게 큰 걸음으로 다가갔다. 흔들리는 눈동자에 너의 양 볼을 손으로 감쌌다. 한 손에 들어오는 작은 얼굴.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나를 한참 바라보던 그 눈이 스르르 감기고, 너의 눈꺼풀이 떨려왔다. 천천히 니 붉은 입술 위에 내 입술을 붙였다가 뗐다. 그리고는, 너를 내 품 안에 끌어 안았다.
“나 바다 되게 좋아하는데.”
“……”
“누나랑 와서 더 좋다.”
점점 더 커지는 마음을, 어떻게 해야만 하는 걸까.
너를 지켜준다는 핑계로 방을 따로 잡았다. 다른 의도가 있어서 1박 2일로 놀러온 건 아니지만, 나름의 사정이 있었다. 허벅지에 깊게 남은 흉터. 3년 전, 너를 위해 남길 수 밖에 없었던 흔적이었다.
“……”
흉터를 보여주기 싫어서 방을 따로 잡았던 거였다. 이 흉터 때문에 한 여름에도 긴바지를 입고 다녔다.
너는, 아마 이 흉터에 대해서 기억하지 못하겠지.
문이 열리고, 니가 들어왔다. 내 흉터를 보고 걱정하는 너에게 매몰차게 말했다. 니가 이 흉터를 기억하게 될까 봐. 그래서, 또 다시 도망쳐야 될 까봐. 영영 너를 옆에서 잃게 될까봐.
너에게 화를 낸 것은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너는, 기억하지 못하는……
아니, 기억할 수 없는 그 날을.
‘나, 나…… 너무 무서워…….’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너의 떨리는 목소리에 내가 바로 택시를 잡아 너의 동네로 왔다. 겉으로 보기에는 굉장히 조용한 너의 집이었다. 내가 자연스레 문고리를 잡아 당겼다. 역시, 문이 열려있었다. 안에는 술냄새가 가득했다. 빠르게 내 눈은 너를 찾았다. 너는……
‘정국아!’
‘저 새끼는 또 뭐야? 걸레 같은 년. 니 애미랑 똑같은 짓 하고 다니네. 씨발년.’
‘누나!’
내가 누나를 때리는 남자를 밀쳐냈다. 남자가 벽에 부딪히고는 화가 난 얼굴로 내 멱살을 쥐어 잡았다. 남자의 큰 손이 내 뺨을 내리쳤다. 얼얼히 느껴지는 고통을 누나는 다 맞아오고 있었던 걸까.
‘정국아! 아빠! 그러지 마세요! 정국이는!’
‘씨발, 걸레 같은 년아. 붙지 마!’
처음에는, 그저 누나를 데리고 나오려 했었다. 근데, 남자가 누나를 팔로 밀치고 누나가 벽에 세게 부딪히는 그 순간에 너무나도 화가 나서 남자를 밀쳐버렸다. 그리고는 바닥에 떨어져있는 소주 병을 나도 모르게 집어 들었고 남자의 머리에 내리쳤다.
‘정국아!’
누나의 날카로운 부름과, 유리가 깨지는 소리가 집안에 울려퍼졌다. 남자의 이마에서 피가 흘렀다. 남자가 몸을 겨우 가누며 일어섰다. 내가 그런 남자의 배를 사정없이 찔렀다. 남자의 입에서 피가 난자하게 흘렀다. 내 옷까지 남자의 피로 범벅이 되었다. 결국, 내가 소주병을 떨어트렸다. 남자가 피를 흘리며 이불 위로 쓰러졌다. 누나가 덜덜 떨리는 손으로 내 팔을 붙들었다.
‘……누나.’
‘저, 정국아……’
누나가 그렇게 말하며 나를 끌어안았다. 그리고는 내 등을 토닥였다. 그런 누나를 끌어 안고 싶었는데, 내 손에는 이미 더러움이 묻어버려서 그럴 수가 없었다. 덜덜 떨리는 손을 그저 허공에 들고 있을 뿐이었다.
‘……정국아, 너 이제 어떡해…… 나 때문에…… 나, 나 때문에……’
누나가 울음을 터트렸다. 그런 누나를 끌어 안고 싶었는데, 그럴 수가 없었다. 결국 내가 조심스레 누나를 떼어냈다. 그리고는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하며 덜덜 떨리는 손을 애써 숨겼다. 남자를 화장실로 옮기고는 방에 남아있는 남자의 잔해를 모두 치웠다. 큰 쓰레기 봉투에 남자를 우겨 넣은 후 모든 자국들을 지워버렸다.
‘……’
‘누나. 나는, 누나를…… 구하기 위해서……’
‘정국아…… 정국아……’
방 안의 모든 자국은 지웠지만, 나와 누나의 옷에 묻은 흔적은 지워지지 않았다. 그리고, 너무 진하게 묻어버린 벽의 흔적. 결국 내가 유리병 조각을 봉투에서 하나 꺼내 바지를 찢었다. 그리고 내 허벅지를 인정사정 없이 내리쳤다. 날카로운 것이 생살을 찢는 고통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누나가 울먹이며 내 손을 붙들었다.
‘정국아! 하지 마! 왜, 왜 그래! 하지 마!’
내가 허벅지에서 흐른 피를 벽에 칠하고, 누나와 내 옷에 칠했다.
‘…… 벽에 묻은 이 피는, 아저씨 거가 아니라 내 거에요.’
‘정국아! 너, 너, 피 많이 나. 어떡해. 정국아.’
‘나는, 지금부터 찬장을 열다가 실수로 컵을 깨트렸고, 그거를 치우다 허벅지에 큰 상처가 난 거에요.’
‘정국아! 너, 너 피 많이 난다고!’
‘우리는…… 아무것도 본 게 없는 거에요…….’
‘정국아, 너 다리. 다리!’
크게 소리치는 누나를 끌어 안았다. 그리고는 그제야 토닥였다.
‘……그리고, 우리는……’
‘정국아. 너, 너 피……!’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이인 거에요…….’
그리고 나서 나는 도망쳤다. 남자는 워낙 인생을 험하게 살아 온지라, 피붙이도 자기 자식 밖에 없었고 덕분에 덜미가 잡히지는 않았다.
나는 도망치기 전, 누나를 재웠다. 그러면 안 되는 걸 알지만 수면제를 먹이고는 재웠다. 뒤늦게 나에게 온 연락으로 접한 사실이었지만, 누나는 내가 수면제를 먹이고 모텔에 재우고 나간 후에 수 차례 일어나 수면제를 다량으로 먹었고, 다행하게도 슬리퍼가 문틈 사이에 끼여 있어서 늦은 밤 순찰을 도는 주인 아주머니에 의해 누나가 바로 발견이 되었다고 했다.
나에게 전화가 왔을 때 나는 도망치던 것도 멈추고 누나에게로 달려갔었다. 누나 핸드폰에 있는 유일한 전화번호가 내 전화번호였다고 했다. 병실 문 앞에 쓰여있는 선명한 세 글자의 이름. 그리고, 곤히 잠들어 있는 모습.
담당 의사를 찾아갔을 때는, 어쩌면 내가 제일 원했었던 걸지도 모르는 대답을 들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
‘환자가, 후유증이 큰 것 같습니다.’
‘……’
‘보호자 분이 오시기 전에, 잠깐 일어났을 때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누군가를 찾았는데……’
‘……’
‘자기가 누군가를 죽였다면서, 계속 앞 뒤가 맞지 않는 허구의 이야기를 하더군요.’
‘……’
의사의 그 말에 나는 일어섰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병원을 빠져나왔다. 정말, 내가 원하는 대로 된 것 같은데, 어째서 이렇게 꽉 막힌 듯 답답한 걸까.
그 날 일은 누나의 기억에서 지워진 것이 확실하고, 또 다른 앞 뒤가 맞지 않는 기억이 그 곳에 자리한 것이 틀림 없는데, 도대체, 왜. 어째서.
다시 도망치고 싶지 않아서, 너를 붙잡았다. 말을 할까 말까 망설이다, 모래 사장위에 쪼그려 앉아 있는 너의 모습이 너무 예뻐서 더 이상은 놓치고 싶지 않아 너의 손을 꽉 붙잡았다.
“내가 누나 많이 좋아해요.”
3년 전이나, 지금이나, 아니, 어쩌면 누나를 처음 봤을 때 부터. 늘 목 끝까지 차올랐던 그 말.
“얼마나 좋아하는지, 누나는 모를테지만.”
이제는, 조금 욕심내보려고.
“대답해줘요.”
주체할 수 없이 커져버린 욕심이 결국 나를 집어 삼켰다. 너무나 커져버린 기억이 누나를 삼켰듯이.
| 흐린 기억 속의 그대 (2/2) 해석 |
해석이라고 할 것까지도 없지만..... 1. 일단 처음에 여주가 꾸는 악몽은 주인공의 만들어진 기억이에요. 2. 편두통처럼 정국이를 만난 후에 띵하게 울려오는 머리는, 여주가 자기가 만들어낸 가짜 기억 위에 정국이라는 진짜 기억이 나타나니까 자꾸 무언가가 기억나려고 해서 그런 거에요. 3. 실제로 '아빠'를 죽인 건 여주가 아닌 정국이. 4. 초반에는 정국이가 울면서 여주를 안아주고 토닥여줬다고 나오는데, 그건 주인공이랑 정국이의 위치가 뒤집힌 채로 저장되어버린 기억. 한마디로 정국이가 여주를 토닥인 게 아니라 여주를 정국이를 토닥였다는.. 5. 정국이가 '아빠'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결국 스스로 몸에 상처를 만들어 냅니다. 여주를 위한 상처. 더 말하자면 여주를 만들었다고 해도 무방한 흉터. 5.5. 그래서 정국이가 허벅지 흉터를 여주에게 보여주기 싫어했던 거고, 여주에게 화를 낸 것도 여주가 그 흉터를 보고 혹시나 그 날 일을 기억하게 되어버릴까봐 걱정이 되어서.. 6. 모텔에서 아줌마에 의해 발견된 여주의 연락이 정국이에게 간 이유는, '아빠'는 피붙이도 없는 사람이어서. 여주 또한 피붙이가 있을 리가 없죠. 유일한 여주의 버팀목이었던 것이 정국이었으니까 당연히 정국이에게 연락이.. 7. 병원에서 사람을 죽였다던 여주의 말을 믿어주지 못했던 건, 수면제를 다량 먹었을 때의 충격으로 기억이 뒤죽박죽 섞여버렸고 그렇기에 앞 뒤가 전혀 맞지 않는 말을 하고 있을 거라고, 정신 이상자의 헛소리일 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8. 정국이는 자기가 더럽다고 생각해서 3년 동안 꽁꽁 숨어버린 거에요. 서로가 본인이 더럽다고 여겼던 거죠. 9. 여주의 일그러진 기억 속에는, 본인이 아빠를 죽이고 나서 불까지 질렀다고 나와요. 근데 사실은 불 같은 건 나지도 않았죠. 여주가 불을 질렀다고 기억하게 되는 이유는, 아빠가 죽은 장면까지는 기억나는데 그 뒤의 장면들이 기억이 나지 않아서, 아빠의 시체라던가 그런 장면들이 기억 속에서 사라져서. (정국이가 처리를 해버려서) 그 날 저녁에 라이터를 들고온 것과 아빠를 죽인 거기 까지의 기억만 남고 나머지 기억은 생략되어 버려서 '집이 불에 탔다' 라는 정말 단순한 가짜 기억이 만들어진거에요. |
| 흐린 기억 속의 그대 (2/2) |
내용 진짜 별 거 없네요... (슬픔) 앞 뒤가 안 맞는 부분이 있어도 봐주세요.... 나름 몬촌한 머리루 열심히 쓴거랍니다.. 총총.. 늘 읽어주시는 분들 감사합니다.. 궁둥이 팡팡 해드릴게요 일리와봐욤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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