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안의 문장은 영어입니다
July- in love
그렇지만 멍한 얼굴로 절 바라볼 뿐, 대답이 없었다. 그리고 곧 잠에 빠져들 듯이 눈꺼풀이 느릿하게 밑으로 쳐졌다. 안 돼. 다급해진 태형은 그녀의 손을 잡아 흔들었다. 다시금 눈꺼풀을 들어올려 저를 바라보는 그녀에게, 태형은 재차 물었다.
"지금은, 나 좋아해?"
잠기운이 서린 눈동자가 태형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태형은 맞잡은 손이 동아줄이라도 되듯이 꼭 잡으며 간절하게 빌었다. 제발, 제발. 그녀에게서 들려올 대답을 기다리는 1분 1초가 마치 1년처럼 길게만 느껴졌다.
한동안 그렇게 가만히 있나 싶더니, 여주의 입가에 호선이 그려진다. 이어지는 그녀의 대답은, 아까와는 다른 의미로 태형의 심장을 쿵 떨어지도록 만들기에 충분했다. 좋아해,
"항상."
따스하게 미소짓고 있는 눈동자에는, 부정할 수 없는 사랑의 감정이 담겨 있었다.
베리 메리 체리
08
"됐거든요? 일이나 열심히 하세요."
민윤기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받던 나는 툭 쏘아붙였다. 그러자 저 너머에서 미약하게 끙, 하는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 내가 어떻게 하면 용서해줄거야.
날 바라보고 있는 박지민과 정호석의 눈빛은 쟤 좀 봐라, 하는 시선이었다. 그도 그럴 만했다. 완전 삐졌다는 것을 티내고 있는 쌀쌀맞은 목소리와는 달리, 내 얼굴은 재밌어 죽겠다는 표정으로 가득했으니까. 입술을 살짝 깨물고 나의 기분을 달래주려 애쓸 민윤기의 표정을 생각하니, 나도 웃음이 나올 것만 같아서 허벅지를 쿡쿡 찌르며 간신히 참아냈다.
"음...애교 부리면?"
- ........
"애.교."
내가 한 글자 한 글자 끊어말하자 민윤기 측에서 긴 침묵이 이어졌다. 잠시동안 결정할 시간을 주고서는 입을 열었다. 안 할 거죠? 다 알아요. 됐어요, 나 버리고 가서 잘 살던지 말던지. 나는 재차 쌀쌀맞은 목소리로 말하고 단칼에 전화를 끊으려고 했다. 애교 젬병인 민윤기를 이렇게 해서라도 볼 수 있다면 좋지만, 뭐 당장 안하더라도 상관은 없다. 연애에 가끔 밀당은 필요한 법이니까.
그 때였다. 내 귀를 의심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 ...자기야, 윤기가 미안해.
헉 미친. 나는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던 심장을 간신히 집어삼켰다. 지금 뭐라고 한 거지? 심장이 미친듯이 쿵쿵거렸다. 내 귀가 잘못되지 않았다면 민윤기는 방금 '자기야'와 '내가 미안해' 대신 '윤기가' 미안해, 라고 말했다.
세상에, 그렇게 질색하는 3인칭으로 말한거야?!?!?!?! 와이씨 저 오늘을 위해 살았나봐요!!!!!!!!
광분한 나는 기쁨을 주체하지 못해서 옆에서 밥을 먹고 있떤 박지민의 등을 팡팡 때렸다. 난데없는 풀 스윙에 고통받는 박지민은 내 알 바 아니다. 그저 내 옆에 앉아있던 게 잘못일뿐.
- 자기야, 듣고 있어?
"큼, 큼. 뭐... 용서해줄게요."
이렇게 나오시면야 용서를 안해줄 수가 없다. 온 얼굴에 미소를 띄운 채 그저께의 이불킥 사건은 이쯤에서 용서해주기로 했다. 사실, 그날 술을 진탕 마신 후 잠을 자고 일어나니 전날 민윤기에게 잠자리를 차였다는 걸 상기했음에도 그다지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그냥 뭔가 속이 뻥 뚫린 기분이라서 그런지 괜찮았다. 아무래도 김태형에게 민윤기 욕을 진탕 늘어놓으면서 화풀이를 한 모양이었다.
그러고보니까 김태형도 진짜 좀 어떻게 해야 할 텐데. 나는 생각에 잠겼다. 하루에 뽀뽀 세 번을 할 것이라던 김태형의 발언은 빈말이 아니었다. 학교가기 전, 학교에서 돌아온 후, 그리고 자기 전 이렇게 세 번씩 나에게 달려와 눈 깜짝할 새에 뽀뽀를 해버린다. 다행히도 입에다가는 하지 말라고 강력하게 표현했던 내 말 때문인지, 이마에다가 하긴 했지만. 걘 좀 이상한 데에 집착한다.
- 비행기는 예약했어. 다음주 시험 보면, 종강이랬지? 그럼 끝나고 자세한 거 정할까?
민윤기의 말을 듣던 나는 남은 기간을 가늠했다. 2주 남짓 남았으니까... 그래도 숙박은 그 전에 정해야 할 거 같은데. 그러려면 어디 갈지도 의논해봐야 할 거고. 생각을 마친 나는 대답했다.
"끝나고면 일주일밖에 안 남으니까, 미리 정하는 게 나을 거 같은데. 숙박은 정해둬야 할 거 같아요. 이번주에 만나서 대략적으로 갈 곳 정하는 거 어때요?"
- 네가 편하면 그렇게 하자.
"그럼 그때 봐요."
- 그래.
"일 열심히 해요! 화이팅!"
앙증맞게 주먹까지 쥐어가며 귀여움이 넘치는 말투로 끝말을 맺은 나는 나를 향해 '우웩'이라는 표정을 지어보이는 정호석과 박지민을 보고서는 진하게 웃어보였다. 뭐 어쩌라고. 조용히 밥이나 드십시다?
"레알 이중인격이다..."
조용히 읊조리는 친구들의 말을 한 귀로 흘려보낸 나는 콧노래를 부르며 제주도의 추천 여행지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 *
내가 절실하게 깨달은 게 있다면 여행 일정 계획을 세우는 것은 첫번째도 쉣, 두번째도 쉣, 세번째도 쉣이라는 것이다. 2박 3일동안 어디를 갈 건지 대충 경로를 짜는 것만으로도 노답이었다. 이걸 보면 여기도 가야할 거 같고, 저길 보면 저기도 가야할 거 같고. 도저히 답이 나오질 않아 도움을 얻을 겸 여행 후기들을 찾아봤더니 더욱 갈팡질팡 만들어놨다. 귀찮아서 정리하는 걸 미루고 미루다, 벌써 목요일이 다 된 걸 보고 새벽 2시까지 수첩에 수두룩히 적혀있는 여행지를 걸러내다가 결국 아침에 미친듯한 속도로 준비해야만 했다. 그랬더니 이 모양이다.
"이거 내 폰 아니잖아..."
정신없이 준비하느라 내 핸드폰을 들고 온다는 것을 김태형의 핸드폰을 가지고 와버렸다. 그와 내 핸드폰 기종은 똑같아서 착각하기가 쉬웠다. 보통은 핸드폰 케이스를 끼고 다니는 내 것과 그렇지 않은 김태형의 것으로 구분할 수 있었지만, 며칠 전에 케이스가 깨져서 다른 걸 새로 살 생각으로 그냥 버려버렸었다. 미처 새 걸 못 산 사이에 이 사단이 날 줄이야.
절망하고 있는 사이에 문자가 왔다. 집에 있는 내 핸드폰에서였다.
[ 너 내 핸드폰 가져감? - 체리 ]
그러게 왜 거기에다 놓았니, 헷갈리게. 나는 한숨을 쉬며 재빨리 답장을 했다. 내껀줄 알고 잘못 가져왔어. 그러자 잠시 후에 답장이 왔다.
[ 어쩔 수 없지. 쓰고 이따 줘 -체리 ]
대인배적인 말이었다. 짜증도 안 내고 그러려니 하는 말투에 덩달아 나도 마음이 편해져버렸다. 하나 걱정이 되는 게 있다면 민윤기가 전화하는 거 못 받겠다 정도? 그래도 이따가 전화해서 설명하면 이해할 거다.
아까보다 편해진 마음으로 곧 시작될 수업을 기다리고 있던 나는 김태형의 핸드폰에 저장되어 있는 내 번호를 바라보았다. '체리'라고 저장되어 있는 걸 보니 문득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저장하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서로의 핸드폰은 본 적이 없었으니, 지금이 기회인가? 평소에는 별로 궁금하지도 않았는데 막상 내 손에 김태형의 핸드폰이 들어오니 염탐해보고 싶어졌다.
"호오."
연락처를 염탐하던 나는 기분이 좋아졌다. 가족을 제외하고 정 없이 모든 연락처를 성이름 혹은 풀네임으로 저장해두고 있는 사이에서 내 번호만 체리라고 귀엽게 저장되어 있었다. 하긴, 내가 김태형에게 있어서 소중한 사람이긴 할 터다. 그래도 이렇게 눈으로 확인받으니 기분이 좋다. 나는 실실 웃으며 핸드폰 화면을 껐다.
사실 정이 없다는 식으로 이름만으로 저장해둔 김태형을 탓하는 말을 하긴 했지만, 나도 정 없이 가족을 제외한 모든 연락처를 아무 수식어 없이 달랑 이름만으로 저장하고 있긴 했다. 그렇지만 그 중에서 두 개만은 달랐는데, 하나는 내 남자친구인 민윤기이고 다른 하나는 김태형이다.
* *
"급한 전화 아니야? 아까부터 계속 오는데. 받고 와."
"내 폰이 아니라서, 아 진짜 어떡하지."
보다못한 정호석이 언질을 주었지만 나는 어찌할 바 모르는 표정으로 핸드폰을 밑으로 숨긴 채 입술을 깨물었다. 내 폰이 아니라 수신거부를 할 수도 없어서 더 난감했다.
아니 왜 이렇게 전화가 계속 오는 거야? 아까부터 똑같은 번호로만 오고 있었다. 열 번이나 같은 전화로 오는 거면, 잘못 건 거는 아니다 싶었다. 정호석의 말대로 정말 급한 전화일지 몰랐다. 그러면 내가 대신 받고 김태형에게 이러이러한 일이 있다고 전해주는 게 낫겠다 싶어서, 나는 끊기기가 무섭게 또다시 진동하기 시작하는 핸드폰을 잡은 채 뒷문으로 재빨리 빠져나왔다.
문을 닫은 후 통화 연결을 하고 귓가에 가져다댔는데, 뭐라 말하기도 전에 저쪽에서 영어가 우다다다 튀어나온다.
-「 라이언! 왜 지금 받아요. 내가 몇 번이나 전화했는데!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요? 레이한테 물었더니 당신이 어디 있는지 모른다는 말만 계속 하지, 답장도 없어, 전화도 안 받아! 무슨 일이 생겼나 엄청 걱정했는데 왜 이제 받아요! 약혼식에는 왜 안 왔어요, 네? 」
화가 잔뜩 나 보이는 앳된 남자애의 목소리가 숨쉴 틈도 없이 이어졌다. 빠르게 튀어나온 영어에 잠시 정신이 멍해져 의미 파악을 하고 있던 중이었지만 그중에서 한 단어가 툭 하고 크게 한글로 되어 공중에 두둥실 떠올랐다. 약혼식? 멍 때리는 사이, 내 침묵을 안 좋은 의미로 받아들인 건지 날선 목소리가 이어진다.
- 「 하. 이제는 말도 안하겠다 이거에요? 」
오해하겠다 싶은 나는 재빨리 말을 꺼냈다. 저기, 뭔가 오해하시고 계신가 본데 저는 태, 아니 라이언이 아니고요, 까지 말하고 있는데 또 멋대로 잘라내고서는
- 「 ...여자 목소리? 」
하고 서늘하게 중얼거리는데 왠지 아까보다 섬짓한 느낌이 들어 나는 맨 팔뚝을 문질렀다. 잠시 침묵이 흐르더니 남자가 묻는다.
-「 이거 라이언 번호 아닌가요? 」
"「 맞는데요, 잠시 제가 받게 되었...」"
-「 라이언 번호는 맞단 말이군요. 그런데 받는 사람은 라이언이 아니라 왠 여자고. 」
...? 어째 말하는 말투가...조금.. 그러니까 그 뭐랄까... 어... 바람피는 애인을 방금 알아차려서 배신감에 치를 떠는 느낌인데. 내 착각인가? 아무튼 왜 연락을 계속 했는지 제대로 물은 후 수업에 들어가려고 했던 나는 그럴 사이도 없이 거친 욕설 한 마디를 뱉고 끊어버리는 남자의 행동에 선수를 빼앗기고 말았다.
-「 씨발 새끼. 」
나는 일방적으로 끊긴 전화를 멍청하게 바라보았다. 방해될 정도로 수십번 전화를 했던 게 무색하게 저 쪽에서 혼자 열내고 북치고 장구치더니 또 열내면서 끊어버린다. 대체 김태형과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처음에 들었던 약혼식이라는 강렬한 단어에 강의실로 돌아온 내 머릿속에서는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달려가는 중이었다.
자, 어디 한번 가정을 세워보자. 남자는 약혼식에 왜 안 왔냐, 라고 말을 했다. 보통 결혼식도 아니고, 약혼식에 하객들을 부르지는 않는다. 그러니까 김태형이 예비 신랑이 아닌 이상 안 가도 뭐라고 할 사람은 없단 소리다. 그런데 남자는 약혼식에 왜 안 왔냐고 물었다. 게다가 뒤에 이어진 내 목소리에 '여자 목소리?'와 '씨발 새끼'의 단어를 조합하자면... 내 과대망상일지는 모르지만 김태형이 누군가와 약혼식을 올린다는 것으로 해석되는데.
"미친 거 아냐?"
속으로 중얼거렸다고 생각했지만 내가 모르는 사이에 입 밖으로 소리를 냈었다 보다. 옆구리를 툭 치면서 주의를 주는 정호석의 팔꿈치에 고개를 돌리니 검지손가락을 입가에 가져다대고 쉬이, 하면서 주의를 주는 모습이 들어왔으니까. 앗차, 이놈의 입. 찰싹 때린 나는 미안하다는 눈빛을 보내고 다시 생각 속으로 파고들었다.
김태형이 약혼식을 -전혀 그런 낌새를 1도 보여주지 않아 진실이라면 굉장히 당황스럽지만- 올리게 되었다고 친다. ..아니, 생각해보니까 진짜 이상해서 가정하는 것도 별로... 또다시 옆길로 빠지려는 것을 깨닫고 다시 정신을 찾았다. 인과관계는 모르지만 아무튼 김태형이 약혼식에 멋대로 나가지 않았다고 친다. 그러면 당연히 신부 측은 열이 받을 것이다. 김태형에게 전화를 겁나 걸겠지. 그런데 내가 지금 받은 목소리는 남자였다. 신부의 오빠인가? 그래서 김태형의 폰으로 전화를 걸었으나 낮은 남자 목소리 대신 왠 여자의 목소리를 듣고 열받아서 씨발 새끼니 뭐니 욕을 했던 거겠지. 아, 근데...
납득이 되려던 찰나 또 한 가지의 가능성이 스쳐지나가는 바람에 나는 표정관리가 안 됐다. 혹시 그 남자가...에이, 아니겠지. 피식 웃어버린 나는 은근히 가능성이 있는 거 같아 심각한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미국에는 동성결혼이 합법인 주가 있었는데.
"에이 설마."
"뭐가?"
"으응, 아무것도 아니야."
물어오는 정호석의 말에 나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는 표정으로 태연하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머릿속으로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어쩐지 점점 싸한 감이 느껴지는 게... 집에 가면 김태형을 붙잡고 진지하게 물어봐야겠다.
* *
실수로 김태형의 핸드폰을 가져왔어도 민윤기와 알콩달콩한 애정전선을 이어가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왜냐? 그의 번호를 외우고 있었으니까! 요즘 세상에 누가 핸드폰 번호를 일일히 외우고 다니냐고 하겠지만,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중요한 번호들은 아직도 일일히 다 외우고 다니는 나 자신에게 박수를 쳐 주고 싶을 지경이었다.
전화를 받은 그에게 실수로 집에서 핸드폰을 잘못 가져와서 오늘만 이 번호로 뜨는 거라고 설명을 한 나는 그와 즐겁게 대화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의 민윤기는 조금 이상했다. 내 말에 평소처럼 응, 그래. 나도. 하면서 받아주고 있었지만, 평소와는 다르게 대답하는 속도가 한 텀 느린 게 그 증거였다. 그리고 비록 목소리만을 듣는 상태지만 그가 생각이 많은 얼굴로 한 쪽 관자놀이를 짚은 채 나와 통화를 하고 있는 모습이 눈앞에 그려졌다.
"오늘 무슨 일 있어요?"
- .....왜?
"평소와는 좀 다른 거 같아서요."
걱정이 되는 터라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러자 핸드폰 건너편에서 침묵이 흘렀다. 내 추측이 맞은 모양이었다. 무슨 일이 있었다. 말해봐요. 무슨 일 있었어요? 나는 사거리 쪽으로 나온 나는 신호가 바뀌기만을 기다렸다. 하지만 민윤기는 쉽사리 말해주지 않았다. 나도 재촉하지 않고 그가 말해주기를 기다리고 있다가, 신호가 바뀌자 발을 내딛었는데 성질 급한 운전자가 클락션을 울리며 달려가는 바람에 깜짝 놀라 제자리에 멈춰 섰다.
"아 저 사람 진짜... 미안해요, 뭐라고요? 못 들었어요."
- 태형이 말이야. 김태형.
"태형이요? 태형이 뭐요?"
- 정말 그냥 친구인거 맞지.
갑자기 뜬금없이 나온 민윤기의 목소리는 조금 가라앉아 있었다. 횡단보도 위의 사람들 사이를 지나면서 나는 핸드폰을 고쳐잡았다. 민윤기가 왜 갑자기 이 생각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가 원하는 대답을 내놓을 자신이 있었다.
"제일 친한 친구 맞아요."
- ........
"저번에도 말했잖아요, 아무리 오랜 기간 동안 알고 지내도 태형이는 그냥 친구일 뿐이고, 오빠는 제가 사랑하는 사람이라고요."
사랑한다. 나는 눈을 깜박였다. 최근에 누군가에게서 이 단어를 들은 기분이었다. 부모님도 아니고, 민윤기도 아닌 다른 사람. 하지만 누구에게서 들었는지, 이 느낌이 확실한지조차 알 수가 없었다. 사랑..한다. 단어를 찬찬히 되뇌일 때마다 가슴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내 발걸음이 점점 느려지고 있는 동안, 너머로는 민윤기의 대답이 들려왔다.
- ....그래. 믿을게. 사랑해.
"저도요."
끊긴 핸드폰을 보면서 문득 생각했다. 왜 이렇게 가슴이 답답하지. 내 일상은 전처럼 순탄하게 흘러가고만 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무언가가 틀어지고 있는 이 기분은 뭘까. 침체된 기분으로 발을 옮기니 어느새 집 앞까지 다 와 있었다.
* *
집에 들어오면 당연히 하루종일 빈둥대고 있던 김태형이 날 맞이할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그러한 내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그의 모습은 집안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어디 나갔나? 그 순간 제일 먼저 든 생각은 김태형이 나가면서 내 핸드폰도 들고 나간 건 아니겠지?였다. 에이 설마, 아무리 그래도 지 핸드폰이 아닌데 어디 나갔다고 하더라도 내 걸 가져갔을리가...
있었다.
하루종일 내 핸드폰과 이산가족 상봉을 할 시간을 기다리며 있었는데 어디로 들고 튄 거? 어이가 없는 나는 당장 김태형이 들고 나간 내 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도 신호음이 몇 번 가지 않아 그가 연락을 받아들었다.
"야 너 어디야?"
- 나 밖.
"밖인건 나도 알아. 왜 내 핸드폰 들고 갔어? 빨리 안 들어와?"
- 왔어? 곧 갈게. 그런데 그거 알아? 핸드폰 실수로 내거 들고간 건 너야. 큰소리를 낼 타이밍이 아닐 텐데...
"..........."
- 장난이야. 갈게.
그리고 전화가 끊겼지만 나는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맞는 말이라 반박할 수 없었던 게 더 짜증났다. 아이씨! 애꿎은 쿠션을 집어던지며 성질을 낼 수밖에.
'곧'갈게 라고 했던 김태형은 몹시 웃기게도 그로부터 세 시간 이상이 지난 여덟시 반이 되어서야 집으로 들어왔다. 기다리고 기다려도 오지 않는 김태형에 독촉전화 하기를 몇 번, 그것도 지쳐서 체념하고 내 할 일을 하고 있었다. 이미 샤워도 진작에 마친 상태였고 편한 옷차림으로 앉아있는 나. 일요일에 민윤기를 만나 여행 계획을 말해보기로 한 것을 다시 살펴보려 노트북을 보고 있는데 드디어 도어락이 열리는 소리가 나며 그분이 돌아오셨다.
"정말 빨리 왔구나."
"미안, 길이 막혀서 좀 늦었어."
변명은 듣지 않고 나는 손을 척 내밀었다. 내 폰을 달라는 제스처였다. 그러자 김태형이 두말 않고 내 핸드폰을 건네주었다. 따지고보면 하루도 못 된 기간 동안 작별인사를 고했던 거지만, 다시 만난 내새끼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내 핸드폰은?"
"거실 탁자 위에 놔뒀어!"
질문에 가볍게 대답한 나는 방으로 들어와 침대 위로 벌렁 드러누웠다. 그동안 카톡이 온 게 있나 해서 들어가보았더니 생각대로 몇 개가 와 있었다. 답장을 해준 나는 이제서야 내 폰을 돌려받았다고 민윤기와 연락을 하려고 대화창을 찾았는데... 없었다.
"응?"
잘못 봤나 해서 눈을 씻고 다시 찾아보았지만 민윤기와 대화를 나누던 카톡방이 없었다. 시방 이게 뭔 일이여? 매일매일 카톡하니까 사실 굳이 스크롤을 내리지 않아도 한큐에 눈에 들어왔어야 했다. 그런데 없다. 진짜 없다. 그동안 간지럽게 주고받은 대화들이 싹 날아갔다는 거다. 나는 침대 스프링에서 튕겨져나올듯이 벌떡 일어나 김태형이 있는 방으로 달려가 그의 눈앞에 내 폰을 들이밀며 소리쳤다.
"너 내 대화창 어쨌어?!"
"응?"
"내 남자친구랑 하던 대화창 말이야!! 없어졌잖아!!"
그러자 반팔로 옷을 갈아입으려던 김태형이 아..하는 소리를 내고서는 미안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미안, 내 실수로 날아가버렸어... 진짜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때릴래?
김태형은 그렇게 말을 하고서는 정말 때리라는 듯 눈을 질끈 감고서는 가만히 서 있었다. 솔직히 김태형을 흠씬 두들겨 패주고 싶었지만, 저 표정을 보아하니 정말 실수로 날려먹은 거 같았다. 하긴, 얜 카톡을 쓰지도 않으니 구경하다가 잘못 눌러서 채팅창 나가기를 눌렀던 거겠지. 미리 말 안했던 건, 내가 지금처럼 나올까봐 그런 거고.
"...됐어, 안 때려. 어휴.."
"진짜 미안해."
"됐거든요."
나는 아무런 소득 없이 내 방으로 돌아와 침대에 걸터앉았다. 나쁜 새끼, 날려도 하필 민윤기걸 날릴 게 뭐람. 오갈 게 없는 슬픔을 침대 위에 뒹굴면서 발버둥치는 것으로 해소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동안 민윤기가 했던 달달한 말들 캡쳐 좀 해 놓을걸. 한동안 시무룩해 있었지만, 이미 없어져 버린 걸 다시 어찌할 수도 없었기에 그냥 잊기로 했다. 실수인데 뭐. 물론 김태형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으면 이렇게 쉽게 용서 안했을 거다.
새로 채팅방을 파서 그에게 나의 현재 상태를 알린 후 다시 노트북을 하고 있는데, 김태형이 조신하게 내 방으로 들어온다. 침대 옆에 우두커니 서서 내 눈치를 보는 그를 보는 건 좀 웃겼다. 아까보다 기분이 나아진 상태였지만, 그걸 알지 못하는 김태형은 숨소리도 내지 않은 채 내 눈치를 보다가 입을 열었다.
"...화났지?"
"몰라."
"어, 풀렸어?"
시발?
목소리만을 듣고 화가 풀린 걸 알아차린 건지 쫑쫑 다가와 내 얼굴을 본다. 이래서 오래된 친구가 안 좋은 거다. 미묘한 목소리 톤까지도 잡아내는 걸 보니. 어차피 이미 들킨 이상 나도 더이상 부루퉁하게 대하는 건 별 의미가 없을 거 같아서, 그저 김태형을 한 번 노려봐주고서는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완전히 내 용서를 읽은 김태형의 얼굴이 밝아졌다. 단순한 놈.
혀를 찬 후 다시 노트북에 집중하려고 하는데, 아까 오후에 있었던 전화가 생각났다. 짧은 통화였지만 반비례로 큰 후폭풍을 몰고 온 낯선 남자와의 대화. 나는 조심스럽게 그를 바라보았다. 내가 뭘 물어볼 건지 전혀 모르는 김태형은 노트북 화면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까 강의실에서 한참동안 생각하다가 내린 결론은, 김태형은 성적 소수자의 취향을 가지고 있을지도 몰라, 였다. 조심스러운 사항이기에 이걸 대체 어떻게 말을 꺼내야 괜찮을까 한참동안 적당한 말을 생각하던 내 입에서 나온 말은 그동안 고민한 시간이 무색하게,
"근데, 너... 남자 좋아해?"
였다. 그러자 김태형의 얼굴이 괴상하게 일그러진다. 그건 무슨 소린데? 그의 반응을 보니 소수의 성적 취향은 아닌 거 같았지만, 그래도 혹시나 아웃팅이 될까봐 두려워하는 것도 같아 나는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괜찮아, 나 이해해줄 수 있어. 서로 사랑해서 그런다는 건데 제3자가 끼어드는 것..."
"아니, 진짜 나 무슨 소린지 몰라서 그래. 갑자기 왜 그런 뜬금없는 말이 나오는 건데?"
"사실 아까 학교에서 전화를 대신 받았었는데, 상대 남자가 너더러 왜 약혼식 안 왔냐구 크게 화냈구.."
"약혼식? 뭔 소리야?"
"너 결혼해? 나한테 미리 좀.."
"김여주, 무슨 소리인지 좀 알려줘야 내가 알아듣던가 말던가 하지."
터져나온 문장들은 한 번 내뱉자 줄줄이 쏟아져나와 나도 그동안 참고 있던 내 말을 주르르르르륵 하고 있는데, 김태형이 딱 잘라 끼어들었다. 대체 그 근거없는 개소리를 한게 누구야? 나는 아까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찬찬히 설명했다. 같은 번호로 계속 전화가 오잖아. 수신거절하기도 그렇고, 계속 전화가 오면 급한 전화가 아닌가 해서 받은 다음에 너한테 알려줄려 그랬지, 그런데 받자마자 한 남자가 너보구 어디갔냐고, 연락도 왜 안되고 약혼식은 왜 안 오냐고 깽판을 부렸단 말야.
"그렇게 끊어지고 나서 나는,"
"...잠깐. 혹시 이름이 제이야?"
내 말을 잘라먹고 끼어든 김태형이 물었다. 나는 잠시 생각했다. 제이...? 그렇게 들었던 것 같기도 하고. 잠시 기억을 떠올리던 내가 살짝 고개를 끄덕이자 김태형은 길게 탄식했다. 머리가 아픈 듯, 검지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던 그는 깊은 한숨을 쉬며 침대에 풀썩 쓰러지듯이 앉았다. 순식간에 시들어가는 김태형을 보고 놀란 나는 엎드려있던 몸을 일으켜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왜 그래? 뭔 일 있어?
"미치겠네..."
"뭔데 그래? 응?"
"너가 받은 전화, 전에 말했던 내 스토커."
스토커, 라는 말에 김태형이 갑작스럽게 내 앞에 나타났던 첫날의 발언이 다시금 떠올랐다. 무지막지한 스토커 피신하러.
레알이었단 말인가?
"번호는 또 어떻게 안 거야..."
김태형은 한 손으로 제 핸드폰의 연락 목록을 살펴보더니, 열 몇통이 넘는 집착스러운 번호가 정말로 왔었단 걸 발견하고서는 또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단순한 애라 금방 잊을 줄 알았는데. 중얼거리곤 입술을 무는 그의 옆모습을 보던 나는 잘 몰라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데?"
"말하자면 길어. 겉만 보면 멀쩡한데, 걔는 진짜 이상해."
"...그래?"
나는 말꼬리를 슬쩍 올린 채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아까 전화를 받은 것을 상기해보았을 때 그 사람이 이상한 건 확실하다. 하지만 충분히 '이상한 사람'의 범주에서 선두주자를 달리는 김태형이 그 말을 쉬이 내뱉기는 좀 웃긴데. 내 시선을 눈치챈 김태형이 눈썹을 들어올리며 묻는다.
"그 눈빛 뭔데."
찔린 나는 황급히 말을 이었다.
"네가 그 애 한테 어떻게 했길래 그래?"
"아무것도 안 했어. 악수한게 끝이라고."
처음 만나서 인사로 악수 한 번 나눈 것밖에 없어. 김태형은 정말 억울한 표정이었다. 나도 걔가 왜 나 따라다니는지 모르겠다고. 처음에는 그냥 뭐 친하게 지내고 싶거니, 쯤으로 생각했는데 이어진 사건들이 대단했지.
그 뒤로 김태형이 간간히 내뱉는 스토커와의 무용담들은 대박적이었다. 나는 입을 떡 벌렸다. 와, 걔 대단하다. 어떻게 생겼는지 얼굴 좀 보고 싶은걸.
"생긴 건 멀쩡해."
"잘생겼어?"
"그렇긴 하지."
"헐? 뭐해, 당장 연락 안 하고?"
김태형이 인정할 정도면 상대는 정말 잘생긴 게 분명했다. 그가 외모에 따라 사람을 차별적으로 대한다는 소리는 전혀 아니지만, 눈은 더럽게 높아 미남 미녀의 기준이 정말 머리 꼭대기에 있었다. 그런데 김태형이 다른 사람에게, 심지어 자신을 괴롭히는 스토커더라도 잘생겼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그건 왠만한 연예인들 뺨을 쌍싸다구로 갈길 정도로 잘생겼다는 소리다!
미남이라면 마다하지 않는 나는 김태형의 스토커 얼굴이 너무나도 궁금했다. 그래서 그가 들고 있는 손에서 핸드폰을 뺏어 당장 그 번호로 연락을 걸어, 김태형은 지금 여기에 있다고 행방을 말해야 할 것 같았다. 그러면 그 집념의 스토커는 바다를 헤엄쳐서라도 김태형을 보기 위해 당장 올 것이다. 내가 그의 핸드폰을 뺏으려고 하자, 김태형은 뺏기지 않으려고 이리저리 옮겨잡으며 소리쳤다.
"너 지금 그런 애 얼굴이 궁금해서 나를 지옥으로 밀어넣으려고 하는 거야?"
"뭐 어때, 어차피 스토킹 당하는 건 내가 아니라 너잖아? 아, 좀 줘봐! 잘생긴 애 좀 보자!"
나는 신이 나서 계속해서 핸드폰을 낚아채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노렸다. 아, 저것 좀 빨리 내 손에 잡아야 하는데. 유치하게 핸드폰 뺏기 싸움을 하다 보니 이불이 반쯤 침대 밑으로 밀려내려가고 있었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요리조리 피하는 김태형이 얄미워서 나는 김태형의 허리를 붙잡은 채 밀었다. 예상치 못한 내 공격에 놀란 김태형이 재빨리 몸을 틀었으나, 그의 손에서 드디어 핸드폰을 뺏은 나는 조금 세게 머리를 침대에 박은 것도 괜찮다고 생각하며 승리의 함성을 올렸다.
"뺏었다!"
그러느라, 지금 우리의 자세가 어떤지 나는 전혀 자각하지 못했다. 두 뼘 정도 되는 거리 사이에서 쓰러지려는 몸을 지탱하기 위해 반사적으로 내 머리 옆으로 손을 짚고 있는 김태형. 약한 몸싸움을 벌이느라 새어나오는 가쁜 숨소리.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김태형과의 시선이 마주치자, 방금전까지만 해도 내 입가에 배어있던 미소가 사라졌다.
왜, 왜 또 그런 눈빛으로 날 봐.
좋지 않은 예감을 느꼈다. 그에게서 벗어나야 한다. 그렇게 생각했지만, 내가 일어나는 것보다 김태형이 나를 누르고 입술을 부딪히는 속도가 조금 더 빨랐다. 맞닿은 살, 허벅지 사이에 닿아있는 그의 무릎. 고개를 비틀어 나의 입 안에 남아있는 더운 숨을 앗아가려는 그의 행동에, 거세게 그의 가슴팍을 밀어낸 후 뺨을 올려붙였다.
짝, 하고 돌아간 김태형의 얼굴을 보면서 난 씹어뱉었다. 목소리는 떨림을 감출 수가 없어 흔들리고 있는 채였다.
"어디 한번 그때처럼 변명해봐."
말 해보라고! 어디 한번 이것도 인사라고 말해봐, 당장!! 날카롭게 소리쳤다. 속에서 치밀어오르는 화를 도저히 숨길 수가 없었다.
"...안 그래."
돌려진 김태형의 입에서 대답이 흘러나왔다. 나는 그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김태형은 맞아서 붉어진 뺨을 매만지던 손을 내리고 고개를 도로 돌렸다. 그리고 나의 원망스러운 시선을 피하지 않은 채 반복했다.
"그런 말 이제 더 이상 안할 거야."
"그거 무슨 뜻이야?"
나는 히스테릭한 목소리로 소리질렀다. 그거 무슨 뜻이냐고 묻잖아, 김태형!! 나는 이를 악물었다. 듣고 싶지 않았다. 김태형이 아니라고 말해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런 내 소원을 비웃기라도 하듯, 다물려져 있던 입술 사이를 비집고 나온 한 마디 단어는 내 목을 옥죄어왔다.
"알잖아."
김태형이 내뱉었다. 조용하지만 무게있는 한 마디. 나를 내려다보는 슬픈 눈동자.
내가 뭘 아는데? 내가 뭘 아냐고 묻잖아, 이 개새끼야. 차마 밖으로 내뱉지는 못하고 속으로 비명을 질러댔다. 눈가가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그는 말이 없었다. 가슴은 치밀어오르는 화로 인해 빠르게 오르락내리락 거렸다. 질식할 듯한 김태형의 눈동자를 받아내고 있던 나는 독하게 쏘아붙였다.
"아니, 난 몰라."
더 이상 김태형과 같이 있을 수 없었다. 나는 그를 세게 밀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방 밖으로 뛰쳐나갔다. 당장 이 곳에서 도망쳐야 했다. 우당탕탕, 신발장에서 신발이 후두둑 떨어졌다. 신발을 구겨신은 채 밖으로 나가려는 나의 손목을 붙들어오는 김태형의 손을 매섭게 뿌리치고는 소리쳤다.
"몰라, 모른다고!! 씨발 몰라!!!"
비명을 지르듯이 외친 후 문을 쾅 닫고 나올 때에는, 눈에서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 *
밖으로 나온 나는 정처없이 달렸다. 그저 달리고만 싶었다. 알게 되어버린 그의 마음이 너무나 힘겨워서, 달리면 조금 나아질까 하는 생각만이 들었다. 숨이 가빠와 제자리에 서서 숨을 고른 후 다시 달렸다. 김태형이 있는 곳에서 조금이라도 더 멀리 달아나고 싶었다. 한참 동안 그렇게 달렸을 때, 민윤기가 보고 싶어졌다. 나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핸드폰에 저장되어있는 민윤기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신호음만 갈 뿐, 전화는 받지 않는다.
"오빠.... 윤기 오ㅃ,"
목이 메여 단어가 제대로 이어지지 못했다. 툭. 땅바닥으로 내 눈물이 추락했다. 그리고 그 주변으로 다른 물방울들이 점차 추락하기 시작했다. 빗방울이었다.
차가운 물방울이 한두 방울씩 떨어지는가 싶더니, 곧이어 세차게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는 마치 비를 피할 줄 모르는 사람처럼 빗속에서 우두커니 서 있었다. 핸드폰을 들고 있던 손이 덜덜 떨렸다.
"오빠, 나 어떡해,"
받지 않는 전화에 대고 울먹거렸다. 그쯤에는 눈물이 폭포수처럼 흘러내리고 있었다. 하늘에서 쏟아져내리는 거센 비, 그리고 그보다 더 슬프게 내리는 내 눈의 비. 어떡해, 오빠. 오빠, 태형이가 나 좋아한대. 친구 말고, 이성적으로 나 좋아한대. 오빠, 어떡해. 나 당당하게 친구 맞다고 말했는데, 어떡해.
"어떡해 진짜..."
- 여보세요?
"오빠아....."
- 목소리가 왜 그래, ...울어?
"흐으....."
- 어디야. 어딘데 지금.
민윤기의 목소리를 들은 나는 대답을 하지 못한 채 더욱 소리내어 흐느꼈다.
늦은 장마의 시작이었다.
급전개 시작합니다 |
전편까지만 해도 나름 괜찮았던 태형이와의 사이가 틀어져버렷...! 이번화는 맨 마지막의 늦은 장마의 시작이었다를 쓰기 위해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네요 (오늘 비와서 짱행복..시원해..)
참고로 말해드리자면 태형이는 게이가 아닙니당... 정말 남자인 스토커가 들러붙었고 진짜루 도망쳐 온거에요 그렇지만 이러한 도피 사실에 다른 이유도 있긴 합니다 그건 나중에 밝혀질거에욤
그리고 윤기는 눈치가 빠릅니다
+) 아 세상에...채팅방 나가기 하면 피씨버전에서도 채팅방이 삭제되는 거네요 껄껄 알려준 분이 없었으면 저 몰랐을뻔ㅜㅜ 내용 살짝 고쳤습니다
+) 이번학기 종 to the 강
겁나신나네요 대박적인것 늦잠ㅠㅠㅠㅠㅜㅠㅜㅜㅠㅠㅜ예아!!!!!!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덧글 달아주시는 분들은 항상 감사히 오열하면서 읽고 있어요 제 원동력이 되어주시는 예쁜 분들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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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닉 추가 신청 받아요 밑에 펼쳐서 꼭 주의사항 확인해주세요!! |
이번화에 한해서 암호닉을 추가로 받을 예정입니다 반드시 [ ] 안에 넣어서 신청해주세요! 그리고 중복닉이 되지 않도록 밑에서 확인해주세요 피씨 버전이시라면 ctrl+F를 통해 쉽게 찾으실 수 있답니다 그리고 이건 제 주제넘은 참견인데.. '[ 000 ] 으로 신청~!' 정말 이렇게만 신청해주시고 가시는 분들은..그 뒤로 단 한번도 안오시는 것 같더군요 그래서 정말 주제넘지만 이렇게만 신청해주시고 가시는 분들은 넣지 않겠습니다..ㅜ.ㅜ |
S2 암호닉 분들 숑숑 S2 |
#그대에게/~계란말이~/오하요곰방와/20/틸다/MLJS/민군주/심슨/옥수수수염차/0070/0207/0221/0309/0328/0419/0515/0526/0528/060909/06130310/ 0724/0902/1001/10041230/1013/1029/11023/1211/1234/2330/414/423/627/66/6번탄소/818/8개월/980703/990419/abcd/BTS방탄소년단/CGV/chouchou/eeggg/J/nameless/Remiel/Rosebud/ 가온/가위바위보/간장밥/감귤/감자/감자감자펀치/감쟈/갓찌민디바/갓태형/강변호사/강여우/개떡/건감깡/검더리/게살버거/겨란/겨울냄새/계란후라이/계피/고구마/ 고등어민윤기/고래야/고미/골드빈/곰지/공대생/공정쟁/관계의회복이에요/굥기굥기/굥기는맑음/굥기요정/구구콘/구기네/구름/국숲/국정전/군밤양갱/군주의정석/규짐/그뉵쿠키/ 그레/금붕/기디/기화/김밥의미학/김석진센빠이/김태태/김태형=/깜비/깡바/꼬깔콘/꼬마이모/꼬이/꽁냥꽁냥/꽃길/꽃님/꽃봄/꾸기꾸기/꾸깃꾸깃/꾸꾸/ 꾸꾸기/꾸꾸야/꾸꾹이/꾸민/꾸엥/꾸쮸뿌쮸/꾹꾹이/꾹냥꾸가냥/꾹블리/꾹빵/꾹아가/꾹젼/꾹콩/꿀떡맛탕/꿀띵/꿈빛/꿍꾸/꿍디/뀨기/뀨뀨/ 뀨루뀨뀨루/뀩/뀰/끙챠/낑깡/낑챠/나라빛/나야나/나연/나의 그대/나의별/나인/나침반/난석진이꺼/날봐태태/남준이보조개에빠지고싶다/남쥰/내마음의전정쿠키/ 내맘에니콩/너랑나/너만볼래/넬오라인/녹차라떼/누가보면/눈부신/눈뷔신태양/뉸뉴냔냐/늘봄/늘품/닉태형/다곰/다다눌/다름/다소니/단미/단호박쓰/달꾸/ 달님/달달한비/달려라방탄/당근/대두/더푸/덤불/덩율곰/데이먼/도비/도손/독자1/돈까스/됼됼/두둠두둠/두둠칫/두뷔두뷔둡/둘리여친/둡부/둥그랗게/둥둥/ 둥이마망/들레/디보이/딘시/딩가/또또/또롱/또이/또치/뚜벅뚜벅/뚱이/뜌/띠뚜/띠리띠리/라블리/라온하제/라이언/라일라/라일락/라임슈가/라즈베리에이드/ 레몬/레몬사탕/레인보우샤벳/로봇시계/로제/론/루이비/룬/리블리/리자몽/마리/마망고/마앙개애/마이크로칩쿠키/마지/마틸다/막꾹수/말랑/맙소사/망개는망개야/ 망개떠억/망개똥/망개베리메리체리/망고/망고꾸기/망무망무/매직레인/매직핸드/맨투맨/맴매때찌/머루/메리딸기/메리뮤/멜랑꼴리/명언/명탐정코코/모찌/모찌모찌해/모찌한지민/모찌햄찌/ 몽구스/몽또몽또/몽쉘/몽유/몽자몽/몽총이덜/무네큥/무리/무민/무지개소녀/무지티/물결잉/물망개/뮈뮈/뮹딩/미끄럼틀/미니꾸기/미니미니/미랑아/미름달/ 미미/미스터/미역/미자탈출/민군주/민들레설탕/민설탕수육/민윤기 코딱지/민윤기/민윤기군주님/민윤기다리털/민윤기예쁨보스/민윤기천재짱짱맨뿡뿡/민트/민트초코칩/밀짚모자/밀키/밍/밍도/밍뿌/ 밍아/바라기/바비/박력꾹/박여사/박지민/박침침/반딥/밤공기/밤비/밤열한시/밤이죠아/밥한끼해요/방소/배고프다/백허그/베네/베리메리/베리베리/벨베뿌야/ 별콩벌콩/보라도리/보마/보호/복숭아츄/본시걸/부농이/부들부들/불고기/붕붕카/붕어/뷔까번쩍/뷔던/뷔랑이/뷔밀병기/뷔뷔뷕/뷔여워/뷔키/뷩꾹/브이백/ 블락소년단/비글/비글워터/비눗방울/비데/비림/비븨뷔/비비빅/빙봉/빅토리아 시크릿/빙그레/빠밤/빡찌/빨강/빵떡아 좋아해/빵빠레/빵빵/빽쮸/뽀로로/뽀야뽀야/뾰로롱/ 뿌Yo/뿌뽀뿌/뿡뚱/뿡뿡99/뿡뿡이/쀼/쁄/삐리/삐삐까/삥꾸/사과/사랑꾼/사랑둥이/사랑별/사랑사랑사랑/사랑아태태해/사막여우/산들코랄/살구잼/삼월/상큼민트/ 새벽/새벽밤/새벽별/새우/샤군/서영/설레임과자/섬혜/섭징어/성인정국/세레니티/세일러문/세젤예세젤귀/소금/소녀/소심/소진/소청/솔랑이/솔트말고슈가/솔트액/ 솜지/송아리/수마이/순대곱창/순별/순수/순심아버지/순이/숩숩이/숲늘/슈가슛/슈비슈비/슈웩/슈팅버블/슙디/슙슙이/슙큥/스케일은 전국/스티치/시나몬/ 시에/식염수/싸라해/싸운날/썩은촉수/ㅇㅅㅇ/아니두/아띠아띠/아망떼/아몬드/아침에비타민/안돼/알/알바하는 망개/암소/애기동자/애플릭/애플파인/액희/야꾸/ 야호야호/양념치킨먹닭/양슙/어른꾹꾹/에그/에이블/에이치/엑스/엔젤/엔젤안녕/여름달/여름방학/여지/연꽃/연두/연이/연화/열꽃/열오/열원소/ 예찬/예화/오레오/오빠/오타/오호라/온도니/옮/와싯/와장창/왕부채/요괴/요랑이/요정이야사람이야/우니꾸기/우동/우리사랑방탄/우린/우와탄/우유퐁당/ 운전/웁윱/워더/월드콘/윈다/윈터/유뇽뇽/유니/유뜨/유루/유월/유자/유자차/유자청/유쟌/윤기와 산체/윤기의 봄/윤기이진/윤꾹/ 윤맹/윤이나/율예/융기태태쀼/융융/융기융/융융힝/은갈칰/음오아예/응캬응캬/인생꾹팅/일게수니/임세명/임슈가/입틀막/ㅈㅁ/자라/자몽/자몽더쿠/ 자몽맛망개/자몽석류/자몽선키스트/자몽슙/자몽이즈뭔들/자몽주스/자몽쥬스/작가님사랑해요/작은별/재영이/전.정국/전아장/전정국오빠/정감/정개/정국아블라썸/정국이마누라/정근/정글벙글/정꾸요미/ 정콩국/제티/조붱/조삼효/조은나래/존경/종구몽구/종구부인/주름/주지스님/줍줍/지금당장콜라가먹고싶다/지니/지듀/지민새끼손가락/지민채율/지안/지우개/지호/진진/ 짐나왜숨니/짐니뿌뿌융/짐빈/짐짐/징징이/짜근/짜몽이/짝짝/짹짹이/쩡구기윤기/찐망개/찜침/참치미/창가의토토/채영/챙으니/챠이잉/챠챠/처음처럼/ 천상여자/천재민윤기/천하태태평/청보리청/청퍼더/체리/체리맛사탕/체리메리미/체셔리어/첼리/쳌쳌/초딩입맛/초록비/초코마카롱/초코붕/초코생크림/총총총/쵸코두부/춍춍/추억/ 충전기/츄러스츄/칅칅칅/치즈/치즈빙수베리빙수/치카 초코/칙촉/칠태/침쨔/침침럽/침침모찌/침침하다/침탵/카라멜마끼아또/카페라떼도둑/칸쵸/커몬요/커잠정쿠키/코코/코코몽/콜라/ 콧구멍/콩콩/쿄쿄S/쿠맘/쿠요/쿠우쿠우/쿠키/쿠키앤크림/큄/크슷/태굴/태꿍태꿍/태둥이/태랑이/태백/태태(김태형)/태태/태태뀨/태태마망/ 태태사랑태태/태태한 침침이/태형아/탱탱/탵태/텐텐/토깽이/토끼/토마스/토마토는맛있어/퉁퉁이/팅팅탱탱/파란/파티/팔이/팥빵/팬케이크/퍼퐁/펄맛/포마토/ 포키/퐁퐁/푸들푸들/풀네임이즈정국오빠/퓨어/플랑크톤회장/피리부는아이/피카피카/핑몬핑몬핑몬업/하누월/하늘하늘해/하람/하리보/하이얀/하트반지/핫초코/항암제/햄버거/햄찌/햄키/ 행기/허니자몽/허블/헐마이니/헤헤태형/현/현이/형아/호두마루/호비/호비요정/호비호비/호빈이/호빗/호석이몰래/호시기호식이해/호어니/홍삼/홍시/ 홍홍/화개장터/환타/황금올리브유/황막꾸기/황토색/후르츠눈꽃빙수/흥흥/흩어지게해/흰색/히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