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훈/루한] Lost my Valentine A
W: 애슈 (qscvb116@naver.com)
※ 제 작품 맞아여...!^^!;;
두번째 관계후, A는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전처럼 저에게 따뜻하게 맞아줬어요. 다만 가끔씩 입술을 부딪혀오거나, 한번씩 분위기에 쏠려 관계를 하게 되는 일이 생긴것만 빼면 말입니다. 저는 바로 A의 잠적 이유를 물었어요. 휴대폰은 일이 생겨 고장나버려서 바꿨고, 한동안 아버지의 제안으로 여행을 다녀왔다고 하더군요. 그제서야 저는 제가 전화를 걸어봐도 번호가 없다는 대답이 들려온 이유와, A의 교실에 찾아가도 A가 없었던 이유를 알았어요. 비가 내리던 그 날은 사실상 서로의 마음을 확인할 수 있었던 날이였죠. A는 모든것을 털어버리고 예전처럼 장난도 많이 걸어왔고, 하교길에 종종 데려다 주기도 했어요. 하지만 저만 아직 물어보지 못한 질문을 가슴속에 숨기고 있었어요. 양호실에서 A와 관계를 나누고 있었던 아이는 누군지, 처음 A와 관계를 맺었던 날의 소문을 퍼트린것이 정말 A인지. 저는 정말로 묻고싶었어요. 하지만 A의 웃는 얼굴을 보며, 꾹꾹 눌러 담곤 했어요. 이 달콤한 평화가 깨질까봐 덜컥 겁이났기 때문이였어요.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럼에도 저는 불안했어요. 제가 A를 대하는 마음은 진실된 사랑인데, A는 어린 치기에 장난으로 저와 만나고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이였어요. 제가 아까전에 말했었지만 A는 어마어마한 부잣집 아들이였으니까요. 그런 위치에 있다면, 사방에 여자들이 널려있을게 분명했어요. 하지만 저는 A를 믿기로 마음 먹었어요.
이 시점에서 제 3자가 등장해요. 3자의 이름은…… 박찬열이에요.
그 날은 해가 어둑어둑하게 넘어가 어두워지기 직전, 음악실 피아노 의자 위에서 A와 관계를 나누고 있었어요. 그날따라 부드럽게 내 몸을 열어가는 A때문에 저는 한층 더 쾌락에 젖어 신음했어요. A가 찔러올리는 족족 자지러지며 매달리던 저는 음악실 문이 조금 열려있는것을 보고 A에게 말하려했어요. 하지만 A가 거칠게 찔러올려 머리가 하얗게 변해버렸지만요. A가 빠져나가고 얼마 안 있어 저도 사정했어요. 관계의 여운때문에 피아노에 기대 숨을 고르고 있는데 A가 갑자기 웃더군요. 저는 그제서야 음악실의 열린 문틈 사이로 누군가 우리를 보고있었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제 얼굴은 하얗게 질렸고, A의 얼굴은 무덤덤했어요. 그저 제 등을 토닥이며 괜찮다고 속삭였죠. 우리가 뒤쫒을 수도 없이 바로 도망가버린 그 얼굴은 어렵지않게 다시 만날 수 있었어요.
다음날 저는 교실에 앉아서 창밖만 보고 있었어요. 저는 공부에서 손을 놓은지 오래였으니까요. 오늘도 나른나른하게 쏟아지는 잠을 참지못하고 눈을 붙이려는데, 담임이 교실안으로 들어왔어요. 교실은 순식간에 조용해졌구요. 평소에는 담임이 들어오거나 말거나 열심히 떠들던 놈들의 분위기가 이상해짐을 눈치채고 교탁으로 시선을 돌렸어요. 그리고 곧 교탁앞에서 풍선껌을 씹으며 나를 쳐다보고 있는 아이와 시선이 마주쳤어요. 저는 소리를 지를 뻔 했구요. 어제 음악실의 열린 문틈 사이로 얼핏 보였던 얼굴이 웃으며 자기 소개를 하고 있었어요. 학기 말에 전학온 특이한 아이라며 아이들은 비웃었어요. 그 녀석이 바로 박찬열 이였어요.
박찬열은 담임이 정해 준대로 제 옆자리에 앉았어요. 원래 우리 교실은 책걸상이 하나 남는데 제가 친구가 없었기 때문에 제 옆자리만 비어있었거든요. 저는 얼떨떨한 얼굴로 박찬열에게 시선을 고정했어요. 포도향 풍선껌 냄새가 코끝에 진동했어요. 박찬열은 웅성거리는 길을 걸어 내 옆에 멈춰섰어요. 그리고 아이들을 향해 고개를 돌리더니 외쳤어요. 닥쳐, 귀울려. 그러자 아이들이 쥐죽은듯 조용해졌어요. 박찬열의 말에 우리반 대가리들이 인상을 찌푸렸기 때문이였죠. 나는 그때 박찬열에게 동정심을 느꼈어요. 박찬열도 곧 나처럼 왕따가 될것이 뻔해 보였거든요. 조용해진 교실은 박찬열이 의자를 끄는 소리만 울렸어요. 저는 바로 등을 돌려버렸고요. 최대한 박찬열이 나를 모르는척 하길 바라며 말이에요.
박찬열는 그런 날 모르는지 살갑게 말을 걸었어요. 저는 눈을 꽉 감고 박찬열에게 돌아보지 않았구요. 그리고 박찬열이 입을 열때마다 흘러나오는 짙은 포도향때문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어요. 1교시를 누워 자려던 제 계획은 물거품이 되어버렸죠. 제 옆에 A가 아닌 타인이 앉아있으면 전 잠을 자지 못했으니까요. 하여간 오랜만에 수업을 듣고 쉬는시간에 마땅히 할 짓이 없어서 추리소설을 읽고 있었어요. 그런데 또 우리반 대가리들이 심심한지 저를 건드렸죠. 그들은 제가 읽던 책을 빼앗아 아무렇게나 바닥에 던졌어요. 저는 이를 악 물고 참았어요. 저번에 A를 험담하는 놈 하나를 때렸다가 맞아서 얼굴이 피떡이 된 이후에 꽤나 멍이 오래가는 얼굴을 보며 A가 다시는 다치지 말라고 했거든요. 제가 아무런 반응이 없자, 놈들은 심심하다는 듯 제 머리를 한번 건들고 가버렸어요. 옆자리에 박찬열이 사라진걸 봐서 박찬열을 찾으러 가려니, 하고 생각했죠. 바닥에 아무렇게나 널부러진 소설책을 주워들고 책상위에 올려둘 참이였어요. A가 뒷문에 서서 손짓하고 있는것을 보고 저는 쪼르르 달려나갔어요. 언제나처럼 사근사근히 인사를 하던 A는 제 책상 옆에 낯선 가방이 올려진것을 보고 물었어요. 저 가방이 누구거냐고요. 그래서 제가 대답했어요. 어제 우리를 훔쳐보던 그 아이가 전학을 왔다……라고요. 그랬더니 A의 얼굴이 무섭게 변하더군요. 화가 나 보이는 A의 얼굴은 언제나 익숙하지 않았어요. 혹시나 나에게 화를 낼까봐 저는 저도 모르게 몸을 움츠렸구요. 그랬더니 A가 제 몸을 꽉 껴안아왔어요. 난 그저 A가 우리의 관계를 훔쳐보고, 떠벌릴 가능성이 있는 아이라 그렇게 예민반응 하는거라 생각했어요. 사실 그 부분은 저도 소문이 날까봐 두려웠거든요.
A는 걱정에 빠진 제 얼굴을 잠시 보더니 턱을 들어올려 볼에 가벼운 키스를 해왔어요. 저는 깜짝 놀랐구요. 아무리 요즈음 이런 스킨쉽이 잦은 우리지만, 공개된 장소에서 하는건 위험하다고 생각한 제가 A에게 한마디 하려고 했어요. 그랬는데 A는 뜬금없이 이렇게 말했어요. 어렸을때부터 친구였는데 자주 내 것을 탐내곤 했었어, 하고요. 저는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몰라 멀뚱거렸어요. 그랬더니 A가 낮게 웃으며 대답했어요. 전학 온 그 아이라는게, 박찬열 이지? 저는 당황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고요. 저는 그제서야 A가 하는말이 박찬열의 이야기라는걸 알았어요. 성격이 미친말이야. 열등감이 심해서 항상 날 이기려들어. A는 어느새 웃고있지 않았어요. 저는 분위기 파악조차 하지 못했죠. 그 당시 저는 매우 둔했으니까요. 저는 A에게 이렇게 말했어요. 어렸을때부터 친구면 무척 오래된 친구인데, 모르는 척 해주지 않을까? 그랬더니 A은 어림도 없다 는 듯이 고개를 저었어요.
그리고 저를 옥상으로 데려갔죠. 우리는 그 곳에서 또 한번 관계를 나누었어요. A가 허리를 흔드는대로 정신없이 흔들리다가 문득 A에게 사랑한단 말이 듣고싶어져서 거친 숨을 몰아쉬며 말했죠. 사랑한다고 한번만 말해줘. 그러자 A가 잠시 움찔했어요. 제가 보채듯 그 말을 중얼거리자 A는 묵묵히 입을 다물고 있다가 욕을 읊조리며 제 안에서 사정했어요. 허벅지 아래로 무언가 흘러내리는 기분은 전혀 좋은것이 아니였어요. 그래도 그런건 아무래도 좋았어요. 다만 문제는 A의 태도였죠. A는 내가 아무말도 하지 않았는데, 변명하듯 말했어요. 네가 싫은게 아니야. 저는 되물었어요. ……너와 나는 뭐야? 그러자 A는 무언가 난감한 표정을 짓더니 미안하단 한마디를 던져두고 옥상을 나가버렸어요. 남겨진 저는 허탈한 표정으로 주저앉았구요.
A의 저 태도는 제 심장을 찔렀어요. 처음 A와 관계를 맺고, 맞게된 아침에 백지수표를 보고 느꼈던 감정과 흡사했었죠. 저는 혼란스러워 했어요. 형사님이라도 그렇겠죠? 서로 마음을 주며 지속하는 관계인줄 알았던 나와 A는 결국은 육욕을 위한, 흐지부지한 관계였다는데. 어느 누가 혼란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너무 많이 울어서 닳을대로 닳은 눈물샘은 더이상 터지지 않았어요. 눈물조차 없이 메마른 눈으로 A가 사라졌던 방향만 쳐다봤죠. 그랬는데, 갑자기 닫혔던 옥상 문이 열렸어요. 그래서 저는 A가 다시 돌아온줄 알았어요. 그런데 열린 옥상문 사이로 보이는 얼굴은 박찬열 이였어요. 저는 조금 많이 실망했어요.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옷을 추스르려 했어요. 박찬열은 옥상에 들어오려다가 제 모습을보고 멈춰버렸고요. 제 모습은 처참했을테니까요. 옷을 추스르는데만 급급해서 박찬열의 표정을 보지 못했는데, 어느새 박찬열은 가까이 다가와있었어요. 눈에는 연민과 동정이 가득서린 박찬열의 시선을 덤덤하게 받아쳤죠. 박찬열은 자기 교복 마이를 벗어 제 어깨위에 걸쳐줬어요. 저는 치우라고 뿌리쳤지만, 기어코 교복마이를 걸치게 한 뒤 나를 부축했어요. 저는 그때 박찬열의 고집을 깨달았어요. 결국 박찬열의 부축을 받아 교실에 도착한 저는 교실 분위기가 달라진걸 눈치챘어요. 몸도 마음도 지쳐서 바로 책상위로 쓰러지듯 엎드리긴 했지만, 모든 반 아이들의 시선이 모두 저와 박찬열을 향했다는것은 어렴풋이 느껴졌어요.
눈을 감자마자 몰려드는 잠때문에 저는 그날 3시간 장장을 깨지않고 푹 잘수 있었어요.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제가 그렇게 푹 잘수 있었던 이유는 아이들이 3시간동안 아무소리도 내지 않았기 때문이였다더군요. 제가 옥상에서 A와 관계를 나누는 동안, 박찬열은 우리반 대가리들과 주먹다짐을 하고 있었대요. 그리고 가볍게 대가리들을 바닥에 눕히고 바닥에 기라고 했다는군요.
나는 그 말을 듣고 한참을 어이없어 했어요. 이거 완전 또라이잖아.
고개숙인 남자는 거기까지만 하고 말을 멈췄다. 그러자 세훈이 남자를 재촉했다. 하지만 남자는 입을 열지 않았다.
…내일 다시 말할게요.
“……….”
지금은 이야기 하고 싶지 않아요.
그렇게 중얼거리는 남자의 목소리 끝에는 물기가 배어있었다. 세훈은 방을 가득 메운 담배 연기속에서 남자가 미세하게 몸을 떨고있었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저 아무 말 없이 스탠드를 끄고 문을 열어주자 비틀비틀 걸어나가는 남자의 뒷모습을 보던 세훈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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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말했다시피, 저희 학교에는 저와 A가 이상한 관계라는 소문이 깔려있었어요. 하지만 그 소문은 박찬열이 나타남으로서 더 이상하게 꼬여버렸어요. 박찬열은 반 대가리들을 평정한 진짜 강자였어요. 그런 박찬열은 틈만 나면 제 곁에와서 실실거리며 달라붙었구요. 이상한 소문이 날 수밖에 없었어요. 제가 A한테 버림을 받았고, 그런 저를 박찬열이 거두었다는 바보같은 소문이요. 저는 그 소문을 처음 듣고 정말 어이가 없어서 웃었어요. 더 웃긴건 이 소문이 A귀에 들어가지 않을리가 없다는 거죠. 물론 찬열이도 이 소문을 들었을텐데, 아무런 티도 내지 않았어요. 저는 찬열이가 그럴수록 더 찬열이를 밀어냈구요.
사실 전 찬열이가 자꾸만 나에게 왜 이러는지 이해할 수 없었어요. 처음엔 A의 소꿉친구라 나에게 관심을 보이는가 보다…… 싶었는데, 갈수록 그게 아니란 생각이 강하게 들었어요. 무언가 설명할 수는 없는데, 그런 종류의 관심이 아니라는것 만은 확신할 수 있었어요. 그리고 A는…… 아무런 연락도 없었어요. 그 날, 그렇게 옥상에서 나가버리고는 그 뒤로 코빼기도 비치지 않았죠. 저는 A가 사라져 뻥뚫린 자리를 조금이나마 찬열이로 채우려 했어요. 찬열이는 밀어내도 자꾸만 제곁으로 돌아왔고, 저는 그 것에 안도감을 느꼈어요. 내 스스로 어느샌가 A가 나를 버렸다…… 라고 생각하고 있었나 봐요. 알다시피 전 병적으로 외로움을 타는 인간이였어요. 제가 살기 위해서 찬열이를 이용한것은 어쩔 수가 없었어요. A도 떠나버린 이 시점에서 남겨진것이 아무것도 없다면, 저는 다시 그때처럼 자살을 시도 했을 테니까요.
저는 그렇게 찬열이와 친해져갔어요. 하루하루 남다르게 우리는 급속도로 우정을 쌓았어요. 찬열이는 A가 예전에 저에게 했던것처럼 장난도 많이 치고, 종종 집에 데려다 주기도 했어요. 그럴때마다 A가 생각나서 전 묘한 표정을 지었구요. 사실 찬열이는 온전히 나에게 우정을 바라고 있던것이 아니였어요. 가끔씩이지만, 은근슬쩍 스킨쉽을 시도했고 흑심 담긴 말을 던지기도 했어요. 그런걸 눈치 못챌 정도로 저는 바보는 아니였으니까요.
저는 그런 찬열이의 마음을 알고도 모른척 했어요. 찬열이는 내가 정말로 자신의 마음을 모를까봐 안절부절 못해 했구요. 그런데 어느 날 일은 터져버렸어요. 그 날은 찬열이가 학교에 나오지 않았던 날이였어요. 급하게 친가쪽 친척이 돌아가셔서 지방에 내려갔다고 했었어요. 찬열이가 없어서 심심하게 학교가 마치기를 기다리던 저를, 점심시간에 누군가가 불렀어요. 얼핏 본 명찰로는 선배였어요. 감히 귀찮아서 나가기 싫다고 할 수도 없고, 귀찮아하며 어기적 거리며 교실 뒷문으로 나갔는데 그 선배는 다짜고짜 제 손목을 이끌고 계단을 내려갔어요. 당황한 저는 무슨 일이냐며 물었지만, 아무 대답도 해주지 않았어요. 저는 여차하면 주머니에 커터칼을 꺼내 도망 갈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선배는 그런 저를 3학년 교실 안으로 내팽겨 쳤어요.
……그날은 정말 끔찍했어요. 정말로요. 점심시간인데 그 교실에는 4명의 선배밖에 남아 있지 않았어요. 순간 등 뒤로 오한이 끼쳤죠. 작정을 한거였어요. 그들은 제 위로 올라와 제 몸에 손을 댔어요. 싫다고 발악하자, 손찌검도 마다하지 않았구요. 전 그날 처음으로 폭력같은 관계를 알았어요. 끝났다 싶으면 다시 들어와 미친듯이 흔들어 댔어요. 저는 몇번이고 소리질렀어요. 숨막히는 압박감에 울면서 그만하라고 외쳤지만, 그들은 제 목소리를 듣고 목소리가 예쁘다며 킬킬거렸어요. 한참을 짐승처럼 저를 탐하던 남자들은 조금 시간이 흐른 뒤에야 저를 놓아주었어요. 그때 전 제정신이 아니였구요. 몸을 벌벌 떨며 살려달라고 빌었어요. 선배 중 하나가 얘 조금 이상한것 같다고 했을 때에도 전 정신을 차리지 못했어요.
저는 다리로 일어날 수가 없어서 교실 바닥을 기었어요. 선배들이 가자, 하고 황급히 자리를 떴을때 비로소 제정신이 들었죠. 후들거리는 손으로 옷을 추스른 저는 초점이 없는 멍한 눈을 하고 제 반으로 돌아갔어요. …… 그리고 책상에 앉아서 힘조차 들어가지 않는 손으로 커트칼을 꺼내, 손목을 그었었어요. 그것도 여러번이요. 손에 힘이 없어서 칼 심이 손목에 잘 들어가지 않자, 전 칼로 손목을 후볐어요. 정말 미친 짓이였죠. 그때 전 정말로 죽고 싶었어요.
저는 맨 뒷자리에 앉아있었기 때문에, 공부에 열중한 아이들은 제가 손목을 그은 사실을 몰랐어요. 그러다가 제 앞에 앉아있던 아이가 필기를 하다가 갑자기 고개를 들더니 킁킁, 거리며 냄새를 맡기 시작했어요. 그러더니 고개를 저에게 돌렸고, 그 아이는 저랑 눈이 마주쳤어요. 이미 피는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쏟아져 나오고 있었고, 아이는 혀가 굳은것 같았어요. 놀라서 말도 못하더군요. 그리고 이내 소리를 질렀어요. 선생님! 하고요. 선생님도 처음엔 무슨 소란이야, 하고 표정을 찌푸리다가 제 손목에서 빨간 피가 흘러내리는 것을 보고 급히 제게 호통을 쳤어요. 무슨짓이냐며 말이에요. 교실은 순식간에 난장판이 되었고, 몇몇은 사색이 되어 뛰쳐나가 수업중인 다른반에 소식을 알리기도 했어요. 몇번이고 그어서 너덜너덜해진 손목은 꽤나 쓰리고 아팠어요. 선생님은 가장 먼저 제게 달려와 제 손목을 붙들고 지혈하려 했어요. 저는 바로 선생님을 밀쳐냈구요. 그렇게 한참 저와 선생님이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데, 누군가가 제 이름을 불렀어요. 저는 바로 멈춰버렸죠. 그 목소리는 A의 목소리였으니까요. 꿈에서라도 그리던 A의 목소리를 제가 다른사람과 착각할 리 없었어요. 저는 바로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어요. A는 교실안으로 들어와 제 앞에 섰고, 곁눈질로 마구 난도질 당한 제 손목을 보더니 조소를 띄었어요. 아이들과 선생님은 어느샌가 행동을 멈추고 나와 A를 숨죽인채 지켜보고 있었죠.
그때 A는 저를 안아주지도, 저를 살리려고 하지도, 막으려고 하지도 않았어요. 대신 이렇게 말했어요. 죽어봐. 그렇게 그어서는 안 죽지. 더 깊게 그어야 맥이 끊기지. A는 저를 조롱하면서 웃었어요. 죽어보라고. 이렇게 그으라고. 그러면서 자신의 손목으로 커트칼을 가져다 댔어요. 긋는 시늉을 하듯 말이에요.
…… 저는 그만 울어버렸어요. 아주 소리내어 펑펑 울어버렸죠. 가슴이 찢어지는것 같았어요. 정작 내 손목을 그을때도 덤덤하던 제가요. 그런 저를 보고 A는 표정을 찌푸리더니 아무렇게나 커터칼을 내 던진후 교실 문을 거칠게 닫고 나가버렸어요.
어떻게 A가 저보고 그런말을 할 수가 있나요. 저를 구해주었고, 새 생명을 불어넣어 주었던 A가 저더러 죽으라니요. A는 죽어보라면서 웃었어요. 멍하니 주저앉아 눈물을 흘리는 내 손목을 대 여섯명이 붙들어 지혈하기 시작했었죠. 저는 그때 이미 죽음을 포기했어요. 살고싶다는 의지도, 죽고싶다는 의지도 모두 사라져버렸어요. 결국 저는 몇시간 뒤 손목에 압박붕대를 몇겹씩이나 감고 상담실로 보내졌어요. 상담실에서는 저를 잘 구슬러 제가 자살하려 한 이유를 묻더군요. 근데 그 사람 앞에서 3학년 선배들에게 강간당했다, 하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요. 저는 입을 꾹 다물고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어요. 그래도 상담실 선생님도 이유를 말하기 전까진 보내주지 않았어요. 저는 결국 조금 다른 말을 했죠. 아이들이 저를 따돌려서 그랬다, 고 하자 그제서야 교실로 보내줬어요. 수업중에 교실문을 열고 들어온 저에게 시선이 쏠렸지만, 이제 아무도 저를 관심있게 보지 않았어요.
찬열이는 몰라야 했어요.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하복을 입지 않는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 길이를 좀 길게 해 손목을 가릴 수 있었으니까요. 다음날 찬열이는 보고싶었다며, 학교로 오자마자 제게 얼굴을 디밀었어요. 저는 그런 찬열이를 밀어냈어요. 처음엔 장난인줄 알고 샐샐거리던 찬열이는 내가 계속 밀어내자 어쩔줄 몰라했어요. 내가 왜 그러는지 모르는 모양이였어요. 선생님들은 물론이고 학생들은 단단하게 입단속을 하라는 교장의 지시를 받았기 때문에 아무도 영문을 모르는 찬열이에게 어제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어요.
영문도 모른채로 박찬열은 그렇게 저에게서 멀어져갔어요. 그래도 찬열이는 저를 놓고 싶지 않았나봐요. 한번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박찬열이 서 있었어요. 그래서 못본 척 지나가려 했는데, 찬열이가 제 손목을 잡았어요. 압박 붕대를 감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아프진 않았지만, 찬열이가 눈치 챘을까봐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어요. 곧바로 손목을 붙든 손을 내쳐버렸지만, 찬열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
미안해. 한참동안 입을 꾹 다물고 있던 찬열이가 했던 첫 마디였어요. 손목 그은거, A 때문이잖아. 저는 그 말을 듣고 우려하던 상황이 일어났음을 알았어요. 물론 찬열이는 조금 잘못 알고 있었지만, 중요한건 찬열이가 모든것을 알았단 것이였어요. A와 나의 무언가 비틀린 이상한 관계를요. 사실 박찬열은 나에게 제 3자일 뿐이였는데, 같은 처지라는 그게 참 무섭더라구요. 사랑을 거절당하는 그…… 기분이 얼마나 끔찍한지 알고 있기 때문에라도, 저는 박찬열에게 모진말을 할 수 없었어요. 끼어들지 말라고 할 수도 없었구요. 그저 나지막하게 물었어요. 언제부터 알았냐고. 아마 제 목소리는 떨렸을거에요.
……처음부터. 그 대답을 듣는 순간 저는 속으로 무너져 내렸어요. 모든것을 알고서 다가왔다니.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기묘한 기분이 몰려들었어요. 찬열이는 A때문에 절벽에 아슬아슬하게 몰린 나를 아무것도 모르는 척 잡아준거에요. 나에게 A는 그 무엇보다도 절대적이였으므로 박찬열이 아무리 잘해줘도 내가 A를 선택할 거란걸 있었으면서요. 눈앞이 미안함과 고마움으로 아득하게 흐려졌어요. 그런 제 손을 잡고 찬열이는 울었어요. 너를 사랑하지 않을테니, 너도 A를 포기하면 안돼? 그 말에 저는 입술을 깨물었어요. 눈가가 시큰하게 달아올랐어요. ………미안. 제가 박찬열에게 사과하자 마자, 찬열이는 저에게 입을 맞추었어요. 저는 밀어내지 않았어요. 아니, 밀어내지 못했어요. 가볍게 제 뒷머리를 잡고 키스하는 찬열이의 눈이 너무 외로워 보였어요.
하지만 곧 저는 후회했어요. 키스하고 돌아서는 찬열이의 뒤로 A의 그림자를 봤기 때문이였어요. A는 저와 눈이 마주치자 마자, 골목길로 급하게 몸을 틀었어요. 정말 오랜만에 보는 A였어요. 빌어먹게도 저는 너무 오랫만에 보는 그 얼굴에 다시 반해버렸어요. 정말 빌어먹게도.
…… 씨발.
세훈은 정말 분하다는 듯 낮게 욕을 읊조리며 작은 손으로 주먹을 쥐는 남자의 정수리를 덤덤한 눈으로 응시했다.
저는 찬열이를 밀쳐내고 허겁지겁 A가 사라진 건물 모퉁이로 뛰어갔어요. 뒤에서 박찬열이 뭐라뭐라 소리를 질러 댔지만, 저는 뒤돌아 보지 않았아요. 저 너머에서 A의 뒷모습이 멀어져가고 있었어요. 허겁지겁 저는 무작정 A의 뒤를 밟으며 뛰었어요. 정말 놓치면 안될것 같아서, 생전 잘 뛰지 않는 다리로 후들거리며 뛰어갔어요. 한참을 뛰고 숨이 턱밑까지 차올라서 더이상 뛸 수 없을정도로 지쳤을때, 그제서야 A는 그 자리에서 우뚝 멈춰섰어요. 그리고 고개를 돌렸어요. 정말 보고싶던 얼굴이였어요. 꿈에서라도 나타나기를 바라며 그리던 얼굴이요. 그 기분은 마치 잔뜩 벗은 여배우들이 나왔던 AV를 처음 보며 서툰 손으로 수음했던 그 날의 기분과 닮아있었어요. 그만큼 A는 저에게 절대적으로 간절한 존재였던 거에요. 무슨 일을 해도 A라는 이유로 나를 버리면서 달려올 만큼이나요.
A는 저와 눈이 마주치자 입술을 일그러뜨렸어요. 질근 씹히는 A의 빨간 입술이 안타까워 저도 모르게 아아…하며 신음했어요. 미친년. A는 그렇게 저에게 욕했어요. 그 말에 제 마음보다 몸이 더 먼저 반응했어요. 당장이라도 달려가 안기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A의 표정은 무척이나 차가웠어요. A는 저에게 말했어요. 네가 죽으려 들어? 조금, 화가 난 듯한 목소리였어요. 저는 정신없이 고개를 저었어요. 다신 안그럴거야… 제 목소리는 덜덜 떨리고 있었어요. 하지만 A는 제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듯 했어요. 제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온 A는 소리를 지르며 제 머리채를 쥐었어요. 네가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고. 쥐어잡힌 머리가 아팠지만, 뭐라 내색하지 못하고 미안하다는 말만 중얼거렸어요. 내가, 내 곁에서, 떠날거면, 가지 말라고, 했잖아, 씨발년아. 뚝뚝 끊어 말하는 말에는 악센트가 잔뜩 들어가 있었어요.
다시는 안그럴게, 미안해. 내가 미쳤나봐. 나 버리지마, 나 두고 가지마. 나는 고장난 인형처럼 그 말만 되풀이하며 벌벌 떨었어요. A가 나를 떠나버릴거란 생각에 눈에 보이는게 없었어요. 하지만, 왜 죽으려고 했어? 왜? 하고 다그치듯 묻는 말에는 차마 대답 할 수가 없었어요. 이미 더러워졌지만, 나는 이렇게라도 숨기지 않으면 안될 것 같았어요. 입술을 꾹 다문 나를 죽일듯한 눈으로 보던 A는 나를 벽에 밀쳤어요. 뒷통수를 벽에 찧어 아파하는 나에게 A는 귓가에 조용하게 속삭였어요. 루한아. …… 그 목소리에 눈물이 날 것 같았어요. 왜그랬어…… 왜 나를 또 떠나려 했어……. 그 말에 결국 참았던 울음이 터져나왔어요. A는 내 눈물을 보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어요. 더 이상 추궁하지도 않았어요. 그저 제 입술을 찾아들었어요. 제 A의 입술이 제 입술과 맞닿고, 어렴풋이 입술에 남아있던 박찬열의 온기가 옅어지더니 이내 A에 가려 사라졌어요. 다행히 A는 찬열이에 대한 말은 묻지 않았어요. 다행히도. 눈물 맛 나는 키스였어요. 딱 그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이기적인 생각이였지만요.
“그러니까…… 결국은 당신과 A는 서로 사랑했고, 그 찬열이라는 아이는 너희에게 훼방꾼이였다는 거지.”
아니요.
남자는 고개를 저었다.
나는 A를 사랑했지만,
……
A는 저를 사랑하지 않았어요.
애슈의렛미톡어바웃!!^^!! |
아잇 몰라몰라; 걍 내일까지 완결 내드릴게여!^^! 차피 완결이 났지만... 이걸 올리면서 처음 본 사람보다 벌써 본 분들이 많네요... 독자분들과 만나서 애슈는 뿌듯함! ㅠㅠㅠㅠㅠ타팬인데 읽어주신 고마운분도 있고! 하여간 다들 감사드려요!
A는 누굴까요? ㅋ ㅋㅋㅋㅋ.... 제가 연재하는 동안에도 아무도 A를 맞추지 못하시더라구요. 지금은 완결이 되어 이미 읽은사람은 아실지도 몰라요. A가 누군지 알더라도 쉿! ㅎㅎ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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