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암호닉... 뭔지를 몰라서... (아무말)
못난 쓰니를 용서하세요... 독자님들 기억은 하고 있습니당ㅠㅠ!
W.칸트
![[방탄소년단] 뱀파이어 -02 | 인스티즈](http://file2.instiz.net/data/cached_img/upload/2016/05/02/23/f4505e306b3a3e78dd28964ddd6b0fd3.gif)
“근데 아마, 너 한 달 정도는 집에 못 들어갈 거야.”
김남준의 말은 청천벽력과도 같았다. 한 달 후면 개학이다. 물론 개학 전까지도 주중에는 야자를 하러 학교를 나가야 했고 말이다. 나는 어디까지나 내년이면 고3이 되는 학생었다. 내가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있으니 김남준이 허허 웃었다. 19세기 사람처럼 어딘지 정중한 웃음소리였다.
"죽는 것보단 낫잖아?"
정호석이 아무렇지 않게 스치듯 말했다. 목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시선을 돌리자 그는 언제 저기까지 갔는지, 태형이가 있다는 철문 앞에 서있었다. 서있던 것도 잠시, 소리조차 없이 그가 사라졌다. 엥? 갑자기 사라진 그의 모습에 눈을 크게 뜨는데 철문이 약간 열렸다가 닫히는 게 보였다. 그 틈새로 으르렁 하는 소리와 철퍽하고 무슨 액체를 밟는 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들은 건 그게 끝이었다. 정호석은 그대로 문 안쪽으로 사라졌고 문이 닫혔다.
예전에 태형이가 우리 집에 놀러왔던 적이 있었다. 예쁘게 웃던 태형이의 얼굴을 떠올렸다가, 태형이의 입술 뒤에서 날카롭게 삐져나온 송곳니를 상상해버린 내가 흠칫 몸을 떨었다. 두근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려 노력하는데 코트 주머니에 넣어 놨던 핸드폰이 진동했다.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바탕화면에 뜬 엄마라는 두 글자에 울컥 눈물이 날 뻔 했다. 김남준을 쳐다보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전화를 받았다.
“…엄마?”
[너 학교에서 어학연수 보내주기로 했다며? 엄마한테 왜 말 안했어?]
“……응?”
[교장이랑 통화 했어. 지민이가 네 짐, 마저 가지고 이따 공항으로 간다더라. 너는 그게 뭐 잘못된 거라고 짐까지 티 안 나게 들고 갔어. 엄마가 설마 그런 거로 혼내겠니?]
핸드폰 너머로 엄마가 빠르게 하는 말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통화내용을 들은 건지 김남준이 손가락 두 개를 펴서 V자를 해 보인다. 입을 뻐끔거리기에 입모양을 읽으니, ‘내가 했어’란다. …범인, 찾았다. 그는 할 말을 찾지 못해 계속 버벅거리는 내가 못마땅한 모양이다. 손짓까지 써가며 또 입모양으로 뭐라 하긴 하는데 이해는 못했다. ‘아무튼 잘 다녀와, 다치지 말고.’ 엄마가 그 말을 마지막으로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자마자 심호흡을 한 번 하고, 김남준에게 따져 물었다.
“이게 무슨 소리에요? 우리 학교 교장이랑 알아요?”
“아니? 그냥 학교 시스템 몇 개 후다닥 건드렸지. 학교에서 볼 땐 너 진짜 연수 가는 사람이야.”
“……출국 기록도 없을 건데 무슨.”
“그것도 다 방법이 있습니다, 아가씨.”
김남준은 자신감이 넘치는 얼굴이었다. 수긍이 가지는 않았지만 그냥 어련히 알아서 하겠지 싶었다. 그는 ‘잠시만.’하고서 자리를 비웠다가 10분 정도 후에 출입문을 열고 들어왔다. 분명 부엌 쪽으로 사라졌었는데 문을 통해 들어온다. 이젠 놀랍지도 않았다. 손에는 웬 커다란 봉지를 하나 들고 있었다. 봉지 안에 든 것은 컵라면과 통조림 같은 음식들이었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걸어온 그가 소파 앞의 빈 탁자에 컵라면을 내려놓았다. 어느새, 물이 담긴 커피포트가 코드까지 꼽힌 채로 그 옆에 놓여있었다. 김남준이 멋쩍은 미소와 함께 자기 뒷머리를 괜히 긁적였다.
“우리는 음식 하는 법을 몰라서.”
“아, 네. 감사합니다.”
“보자…. 지민이는 한 1시간이면 오겠다.”
눈살을 찌푸리고 시계를 쳐다보면서 뭔가 생각하던 그가 말했다. 지금은 오후 7시였다. 밖은 어둠이 내려앉았고 나는 인간이니만큼 두 끼를 굶으니 자연스럽게 배가 고팠다. 커피포트의 물이 끓었다. 김남준이 이미 컵라면 뚜껑을 따서 스프까지 뿌려놓았기에 물을 붓기만 하면 됐다. 3분이 지나고 라면을 먹으며 머릿속으로 질문거리를 정리했다. 그가 잠시 자리를 비웠던 10분간 나 혼자 참 여러 가지 의문점들을 생각했었다. 뱀파이어라지만 그들도 인간처럼 다칠 수 있는지, 혹시 피가 나는지, 사람 음식은 아예 먹을 수 없는지, 왜 그렇게 빠르고 청각도 좋은지, 죽지 않는지, 성장과 퇴화는 하지 않는 건지…. 무엇보다 가장 궁금한 건, 지민이가 ‘언제부터’ 뱀파이어였냐는 것이었다.
궁금한 게 많을 것이라는 예측을 이미 한 건지, 김남준은 내가 흔들리는 눈으로 자길 쳐다보니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다 심부전 오겠다. 얼른 물어봐.'
내 심장이 다시 빨리 뛰기가 무섭게 그가 지적했다.
“당신들도… 죽나요?”
“자연적으로 죽지는 않는데, 우리끼린 죽일 수 있어.”
“피는 흐르지 않나요?”
“당연하지. 만들 때 다 뽑잖아.”
“음식은 아예 못 먹어요?”
“먹을 수야 있는데… 뭐랄까, 너희로 치자면 음식물 쓰레기 맛이라서.”
물론 음식물 쓰레기를 먹어본 적은 없어, 어디까지나 추측이야! 그가 황급히 변명처럼 덧붙였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기에 나도 그냥 고개를 끄덕이고 넘어갔다. 박지민이 우리 가족과 지내기 위해, 10년이라는 기간 동안 그들의 기준에서 음식물 쓰레기를 입에 밀어 넣으며 지냈다는 것이 중요했다. 성장기 남자애답지 않게 늘 입이 짧았던 게 그제야 내 눈에 보였다.
"혹시 지민이, 토요일마다?”
“우리랑 만났지. 고집이 얼마나 센지, 여기선 안 된다고 중국까지 다녀왔어.”
머리가 어지러웠다. 축구를 한다고 토요일마다 꼬박꼬박 밖으로 나갔던 지민이었다. 생각해보니 금요일의 지민이는 항상 나를 가까이 하지 않을 정도로 예민했고, 토요일에 나갔다 온 지민이는 평소보다 기분이 좋아보였다. 붉은색에 가깝긴 했어도 언뜻 보면 갈색으로 보였던 지민이의 눈동자가, 토요일이면 유독 새빨간 색으로 빛났던 것도 생각이 났다.
"눈 색깔이 계속 변하나요?"
떨리는 목소리로 내뱉은 질문에 김남준이 잠시 고민했다.
“계속 변한다고 하기 보다는 상태를 나타내주는 것에 가깝지.”
“그게 무슨….”
“배가 고픈 상태를 우린 ‘갈증’이라고 하는데,”
“…….”
“갈증을 해결하고 나면 조금 더 빨갛게 변해. 피 색이 붉어서 그런 걸까?”
자기도 마지막 말까진 확실하지 않다며 어깨를 한 번 더 으쓱거린다.
"보통은 인간들과 어울려 살기 때문에 갈증을 어느 정도 자제하는데, 아예 자제하지 않는 놈들은 완전 새빨간 핏빛이고."
덧붙인 말에 반사적으로 얼굴을 본 적도 없는 민윤기의 눈을 상상했다. 멈칫했다가 다시 질문을 던졌다.
“신체기능은 왜 그렇게 뛰어나고, 몸은 왜 그렇게 단단한 거예요?”
이번의 물음에는 고민조차 없었다. 김남준의 대답을 정리하자면, 피를 다 빼내고 심장에 자신들의 독을 직접 넣을 경우 피가 빠져나간 혈관을 독이 피 대신 순환하게 된다. 독이 심장을 거치게 되면 목에 주입되는 것과는 달리 세포를 녹이고 림프절을 태우는데, 인간의 장기를 구성한 세포 역시 함께 녹는다. 그렇게 녹은 세포들은 변이의 마지막에 땀샘으로 배출된다. 그 배출을 마지막으로, 땀샘 역시 기능을 상실하고 전부 닫힘과 동시에 표피가 딱딱해진다. 뱀파이어를 해부해 본 적이 없어서 정확히는 모르지만 일단 위나 소장, 대장과 같은 소화기관 장기와 심혈관계통 장기, 호흡기관은 확실히 없을 거라고 한다. 갈증을 느끼게 하는 건 아무래도 뇌신경의 작용일 거라고도 했다.
아무튼 그렇게 장기들이 다 녹으면 아직 내부에 남아 있는 독들이 장기의 자리를 차지하고 단단하게 굳어서 몸이 무너지지 않게끔 형태를 유지해준다. 근육은 독의 영향을 받아 녹기는 하지만, 배출되지는 않고 다시 굳어지면서 재구성을 한다. 더 빠르게 수축하고 이완할 수 있게 변한다. 뇌 역시 잠재된 모든 기능이 살아난다. 근육이 변하고 뇌도 거의 100% 활성화가 되니 당연히 시력과 청각 등 신체기능이 좋아진다. 뼈에도 독이 스며들어 웬만한 강철보다 단단하게 변한다. 인간의 말랑한 지방은 다 타버렸기 때문에 변이한 근육이 뼈 위를 대신 채우게 된다.
자신들의 몸에 상처를 입힐 수 있는 것은 서로의 이나 손톱, 혹은 강철 절단기 정도의 절삭력이 있는 기구들이라고 했다. 그 모든 경이로운 변화를 내가 이해하기는 힘들었지만 알아들은 척 고개를 주억거렸다.
“성장이나 퇴화는 하지 않아요?”
“지민이를 봐. 계속 자라지 않았어?”
“하지만… 아까 죽지 않는다고….”
“음, 뱀파이어가 된다고 바로 성장이 멈추는 건 아냐.”
이어진 그의 말 또한 이해하기 힘든 것이었다. 변이를 마치더라도 20대 초반의 몸까지는 인간처럼 서서히 성장을 하게 되는데, 가장 최적의 상태까지 성장하고 나면 그 몸대로 영생을 산단다. ‘그래, 이해하긴 힘들겠지.’ 내 애매한 표정을 본 김남준이 어색하게 웃고 몸을 조금 움직였다. 어느새 그의 손엔 코드를 뽑은 커피포트와 컵라면 잔해들이 들려 있었다. Q&A 시간을 마무리 지으려는 움직임에 다급히 김남준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하나 더 남았어요.”
“짐작은 가지만…, 말해봐.”
“지민이는 언제 어떻게 당신들처럼 된 거죠?”
그런 걸 본인이 아닌 사람이 말해주는 건 실례잖아, 김남준은 단호하게 말하고 19세기 신사처럼 정중하게 자기 옷자락을 잡은 내 손을 떼어냈다. 거의 동시에 철문이 끼익 하는 소리를 내면서 열리더니 정호석이 나왔다. 그가 철문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는 새하얀 색이었던 반팔에 빨간 얼룩이 여기저기 져있다. 정호석은 답지 않게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있었다.
“쟤 진짜 또라이야.”
“안에 계속 시끄럽던데 뭔 일이냐.”
“보통 갈증 때문에 덤벼들잖아? 근데 쟨 아니야.”
정호석이 자기 머리카락에 붙은 피딱지를 탁탁 털어내며 하는 말에 김남준이 모든 동작을 멈췄다. 전혀 위화감이 없게 숨을 쉬는 일련의 동작까지 흉내 내고 있었던 그인데, 순식간에 돌 마냥 딱딱하게 굳었다. ‘무슨 소리야.’ 잔뜩 가라앉은 목소리로 김남준이 물었다. 정호석은 자기 반팔티를 훌렁 벗어서 철문 옆에 있는 검은 비닐 안에 던져 넣었다. 바지도 뭐가 묻었나 몇 차례 살펴본 뒤에야 그는 다시 입을 열었다.
“자기가 강해진 걸 즐겨. 갈증을 억누를 수도 있고.”
“근데?”
“……으깨서 죽이는 걸 좋아하네.”
뭐를? 사람을? 가만히 정호석의 말을 듣던 나도 굳을 수밖에 없는 엄청난 말이었다. 김남준은 꽤 심각한 얼굴로 팔짱을 꼈다. 들고 있던 커피포트와 컵라면은 이미 보이지 않았다. ‘뭐, 그건 취향이니까. 억누를 수 있다는 게 중요하지.’ 한층 가벼워진 목소리로 김남준이 말했다. 그게 그렇게 가볍게 생각해도 되는 취향인가…. 허탈해진 내가 쳐다보든 말든, 그 둘은 내가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로 작고 빠르게 무언가 또 말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눈을 한 번 깜빡였을 때 몸이 붕 뜬다 싶더니, 두 번 깜빡였을 때에는 웬 침대에 앉아 있었다. ……??? 당황해서 일어나려는 걸 누군가가 부드럽게 어깨를 눌러 막았다. 눈앞에 온통 살색이 들어찼다. 아까 반팔을 벗어 던졌던 정호석이었다.
"내가 데려온 거야."
남을 다른 곳으로 옮길 땐 적어도 언질 정도는 해주지 않을래요…? 차마 말로는 대들지 못하고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그를 올려다봤다. 그러자 그가 손을 들어 내 눈 위를 덮고 그대로 뒤로 밀었다. 저항할 수 없을 만큼 강한 힘에 의해 침대에 눕혀졌다.
“으앗!”
“눈, 눈, 눈. 그 눈 방금 굉장히 맘에 안 들었어.”
“알았으니까 놔줘요! 아파요!”
“싫은데? 이대로 두개골을 부숴서 정상적인 두뇌인지 확인 좀 해봐야겠는데?”
그가 엄포를 놓았다. 웃으면서 하는 말이라 망정이지, 정색하고 말 했으면 울어버릴 뻔 했다. 그만큼 정말 그라면 할 수 있을법한 짓이다. 정호석은 장난스레 내 머리를 두어 번 흔들고 나서야 나를 놔주었다. ‘여긴 한동안 네 방이야. 화장실은 저 쪽.’ 간략하게 설명해준 그는 미련 없이 방을 나간 뒤 방문을 닫았다.
혼자 남게 되자 한숨 돌릴 수 있었다. 침대에 편하게 누운 다음 이불을 끌어당겨 목까지 덮었다. 방문을 등지고 돌아누워 머릿속으로 현재까지의 상황을 정리했다. 난생 처음 만난 이 사람들에게 들은 말들을 정말 믿어야 하는가가 첫 과제였다. 사실 몇 번 부정하려고도 했었다. 그렇지만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이 너무 신빙성이 있어서, 그래서 슬퍼졌다. 박지민이라는 작은 아이가 여지껏 혼자 끌어안고 있었던 일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안녕?”
눈물이 날 것만 같던 그때 낯선 목소리가 귀 바로 옆에서 갑작스레 들려왔다. 한기가 도는 숨결이 목소리를 내면서 내 귓속으로 바람을 불어넣었다. 보통 인간이라면 따뜻한 바람이어야 정상인데, 등골이 오싹해질 정도로 찬 바람이었다. 게다가 닫혔던 문이 열리는 소리도 나지 않았었다. ‘악!’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고 침대 앞쪽으로 황급히 한 바퀴 굴러갔다. 등 뒤에서 그 누군가가 장난스러운 웃음을 흘렸다. 상체를 벌떡 일으켜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엔 처음 보는 사람이 침대에 걸터앉아 얼굴을 들이민 채 웃고 있었다.
"그렇게 놀랄 것까진.”
“누, 누구세요?”
“전정국."
5년도 되지 않았다던 그 뱀파이어다. 자신을 전정국이라고 짧게 소개한 그는 지민이나 김남준, 정호석보다 훨씬 새빨간 눈을 하고 있었다. 위험한 놈이면 정호석이 그냥 통과시켰을 리가 없는데…. 상황을 파악하느라 열심히 눈을 굴리는데, 그가 침대에 걸터앉은 자세에서 엎드린 자세로 바꾼 뒤 점점 다가왔다. 의미 모를 웃음은 여전히 유지하고서 말이다. 눈을 마주치니 전에 우리 집 부엌에서 경험한 바와 같이 몸이 딱 굳었다. 그가 계속 다가오지만 물러나지도 못하고 침대를 짚은 팔만 잘게 떨었다. 몸을 지탱하던 떨리는 팔이 마침내 힘이 풀리고, 전정국은 누워버린 내 위를 점령했다.
눈을 마주친 상태에서 내 위에 올라탄 그가 자신의 송곳니를 드러냈다. 입가에 머물던 웃음은 사라진지 오래다. 금방이라도 나를 물어버릴 듯 사나운 기세로 그가 내 목덜미를 향해 천천히 고개를 숙인다. 그러다가 으르렁, 동물처럼 경계음을 내며 갑자기 고개를 홱 방문 쪽으로 돌렸다. 그리고 그때, 열리지 않을 것만 같던 방문이 벌컥 열렸다.
“안 비키면 그대로 목 딴다, 전정국 이 개새꺄.”
“…지민아!”
방문을 열고 들어온 건 조금 지쳐 보이는 지민이였다.
빠르게 지민이를 스캔한 결과 아침에 입고 있었던 후드티가 조금 찢어진 걸 빼곤 멀쩡했다. 전정국의 시선에서 벗어난 덕분에 움직임이 자유로워진 내가 빠져나가려고 버둥댔지만, 전정국은 내 위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박지민은 자기 이름을 반갑게 부르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가만히 전정국만 보고 서있다. 방 안의 분위기가 순간 날카로워졌다. 전정국과 지민이가 한동안 서로를 노려본다. 그 와중에도 한 치의 미동조차 없다. 두 사람이 인간이 아니라는 게 조금 더 실감이 났다. 그들은 폐에 공기가 들어가고 빠지면서 가슴이 들썩하는 움직임 자체가 없었다. 겁을 집어먹은 내가 반항하는 것을 멈추자 전정국이 나를 슥 내려다보았다.
그런 그를 올려다보고서 ‘저, 자세 좀.’하고 그의 가슴을 약간 밀자, 그는 ‘놀리는 거 재밌는데.’하고 툴툴대면서도 순순히 내 위에서 비켰다. 사실 비켰다고 하기도 애매했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그는 내 위에서 사라졌다. 나를 짓누르던 무게가 갑자기 사라진 탓에 놀라서 두리번거리니, 전정국은 어느 틈에 지민이의 목에 자기 팔을 걸고 친한 척을 하고 있었다. 그는 지민이보다 머리 하나는 더 컸다.
“치워.”
“왜 또 삐졌어요, 형?”
“닥쳐.”
지민이는 눈살을 찌푸리고 전정국의 팔을 꺾어 자기 목 뒤에서 떼어냈다. 우두둑 하는 소리와 함께 전정국의 팔이 이상한 방향으로 틀어졌다. 헉, 그 광경을 지켜봤던 나는 당연히 속이 메스꺼워지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정작 전정국 본인은 아무렇지 않게 자기 팔을 원래의 방향으로 다시 비틀어 맞췄다. 우둑거리는 소리가 한동안 계속됐다. 암만 사이가 좋지 않더라도 저렇게 막 대해도 되는 건가…? 내 의문 섞인 시선을 알아챈 전정국이 피식 웃었다.
“내가 널 찾아내서 그래.”
“네?”
“뒷산에 있었던 게 난데. 모르겠어?”
그것뿐이면 말을 안 하지, 하고 지민이가 곧장 전정국의 말을 이었다.
“저 새끼가 민윤기한테 누나 위치를 꼰질렀어.”
“새끼라뇨. 말 좀 예쁘게 하면 어디 덧나요?”
“닥쳐. 그리고 임마, 나한테 누나인데 감히 네가 맞먹어?”
“하. 애초에 인간일 때 나이로 치면 형도 형이 아니잖아요. 난 중2때, 형은 7살ㄸ…,”
지민이가 황급히 전정국의 입을 틀어막았다. 목소리를 키우며 열변을 토하던 그가 자신의 말이 막히자 인상을 쓰고서 그 손을 떨쳤다. 나는 침대에서 상체만 일으킨 채 그 둘을 번갈아 쳐다봤다. 둘은 또 서로를 노려보고 있었다. 두 사람의 입술이 약간씩 움직이는 것 같았는데, 짧은 대치 끝에 먼저 시선을 돌린 건 전정국이었다. ‘젠장.’ 왜인지 작게 욕을 내뱉고 방을 나가버린다. 지민이는 그제야 나를 보았다. 머뭇머뭇, 지민이의 손이 어떻게 해야 할 줄 몰라 허공을 방황했다. 곧 자기 몸 앞으로 가지런히 손을 모아 쥔 지민이가 조심스럽게 내 쪽으로 걸어 들어왔다.
“…누나.”
“응….”
“내가 다 설명해줄게.”
놀랐지? 다정한 목소리로 지민이가 물었다. 맘 같아선 괜찮다고 고개를 젓고 싶었지만 그게 맘대로 되지가 않았다. 두 번이나 전정국의 시선을 받았던지라 아직도 팔은 후들거리고 있었다. 지민이는 이미 내 팔을 보고서 물었던 듯, 대답 유무에 상관하지 않고 내 옆에 걸터앉았다. ‘민윤기는, 머리가 좋아.’ 노래하듯 운율감 있게 지민이가 운을 틔웠다. 살짝 눈을 내리 깔고 말을 하는 건 처음 보는 낯선 모습이었다. 자연스럽게 지민이의 눈 색을 살폈다. 갈색 종이에 빨간 잉크가 번진 것처럼 말갛게 희석된 적갈색이다. 옅은 붉은색인 눈을 확인하자 괜스레 손에 땀이 찼다. …지민이는 갈증을 느끼고 있는 상태였다. 오늘은 토요일이었고, 원래대로라면 김남준의 말대로 중국으로 건너갔든 어찌했든 ‘사냥’을 했을 터였다. 그러나 채 갈증을 해소하기도 전에 지민이는 집으로 와버렸다. 전정국이 나를 발견한 것을 알아챘기 때문에.
“이들을 만나기 전마다, 나는 내 몸에 뭍은 누나의 체취를 전부 지웠어.”
“…….”
“내가 생각해도 누나 냄새는… 음….”
“알아. 맛있는 냄새.”
“……미안. 아무튼 그랬기 때문에 지웠던 건데, 민윤기가 그 끝자락을 캐치했어."
그렇게 말하는 지민이의 미간은 조금 좁혀졌다. 생각만으로도 불쾌한지 침대를 짚은 손은 꽉 주먹을 쥐고 있었다. 지민이는 중간에 몇 번 말을 멈추며 띄엄띄엄 말을 이어갔다. 민윤기가 남아 있는 내 냄새를 맡았고 당연히 냄새가 묻어 온 지민이를 추궁했다. 지민이는 자기가 그 냄새를 맡고서 어떻게 참았겠냐고 반문했다. 이미 자기가 먹었다 대답한 뒤 태연하게 행동했지만, 민윤기는 어수룩한 놈이 아니었다. 단지 스쳐지나가거나 먹은 것으로는 냄새가 배지 않는다는 걸 잘 아는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가 여러 방면으로 지민이를 관찰하고 행적을 좇았기에, 최대한 집에서의 행동을 줄이고 밖으로 나돌았다. 나는 그 대목에서 입술을 깨물어 눈물이 나는 걸 간신히 참았다.
그리고 평소와 같이 오늘, 즉 토요일 아침에 김남준·정호석·전정국과 만나는 장소로 나갔는데 전정국과 정호석이 없었다. 싸한 예감이 지민이를 훑고 지나갔다. 김남준은 지민이를 보자마자 다시 등을 떠밀었다. ‘가.’ 단 한 마디였지만 지민이는 곧바로 다시 집 쪽으로 달렸다. 웬만해서는 무리가 가지 않는 뱀파이어의 근육이 찢어질 것처럼 아파와도 속도를 낮추지 않았다. 설명은 김남준이 뒤에서 함께 달리며 해주었다고 한다. ‘태형이를 변이시켰어. 호석이가 감시로 남았고, 정국이는 윤기한테 간 것 같아.’라고.
“분명 늦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누나는 아직 살아 있었지.”
이젠 아예 고개를 숙인 내 불쌍한 동생의 목소리가 조금 떨렸다.
"문 너머로 들리는… 익숙한 누나 심장 소리에… 내가 얼마나 안심했는지, 누나는 몰라."
나는 할 말을 찾지 못해 그저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지민이가 느리게 고개를 들었다. 지민이의 목소리엔 분명 물기가 있지만 그의 눈엔 눈물이 없었다. 그러나 표정은 마치 우는 사람인 양 잔뜩 일그러져 있다. 뱀파이어들은 울지도 못하는 건가 싶었다. 지민이의 등을 토닥여주려다 아차하고 다시 손을 거두었다. 지민이는 그런 내 모습에, 흘러내린 자기 앞머리를 한 번 쓸어 넘겼다.
"만져도 돼. 전엔 누나가 혹시 눈치챌까봐 그랬던 거야."
말하면서 자기가 먼저 손을 뻗어 내 팔을 잡는다. 온기 없이 차가운 그 손이 닿자 피부에 소름이 돋았다. 상체를 지탱하던 팔을 약하게 잡아당긴 탓에 나는 다시 침대에 눕게 되었다. 지민이가 엉망으로 흐트러져 있는 이불을 당겨 가슴까지 덮어준다. 그리고 잠시 멈췄던 이야기를 다시 시작했다.
"나는, 7살일 때 정호석에게 물렸어."
그 후 흘러나오는 얘기들은 이전의 이야기들과 비할 수 없이 충격적이었다. 지민이의 부모님이 사고로 돌아가셨다는 건 거짓말이었다. 그분들은……지민이에 의해 돌아가셨다. 가슴께에 덮인 이불이 갑자기 무겁게 나를 짓누르는 느낌이다. 숨이 탁 막혔다. 지민이는… 정신을 잃었던 자신이 실력을 한 치도 숨기지 않고 달려들었기 때문에, 아마 무슨 상황인지도 모르고 필름이 끊기듯 돌아가셨을 거라고 덧붙였다.
“그래, 그때 난 7살이었어. 목이 너무 뜨거워서 그대로 타 죽을 거라고 생각하던 찰나였지.”
지민이의 말투는 이제 완전히 과거를 회상하는 투로 바뀌었다. 지민이는 쓸 데 없이 탁월한 기억력 때문에 10년 전의 그 장면을 잊지도 못하고 있었다.
"지금처럼 생각이 조금만 더 성숙했더라면, 나는 나를 억누를 수 있었을 텐데."
"……."
"잠에 들면 꿈에서 [그날]이 되살아나. 피가 튀기고…,"
…비명은 없었어, 중얼거린 지민이가 눈을 감았다.
‘민윤기는 갈증에 시달릴 때. 근처에 피가 흐르는 대상이 소중한 가족처럼 극단적인 선택지밖에 없다면, 어떻게 행동할지 궁금해 했어. 그래서 정호석이 자리를 비운 틈을 타 나를 우리 부모님이 계시는 주택에 데려다놨지. 이틀 간 사라졌던 외동아들이 웬 잘생긴 사내의 손에 이끌려 나타나자 부모님은 기뻐서 나를 안고 우셨어…. 찢어 죽여도 시원찮을 민윤기한테 고맙다고 하신 게 아직도 기억나. 그나마 1시간 전에 피를 마신 상태여서 다행이었지. 민윤기가 내 등을 떠밀었어. 나는 결국 부모님의 손에 이끌려 집 안으로 들어갔고. 30분이 지나고 1시간이 지나자 서서히 목이 타기 시작했어. 혈향이 코끝을 찌르고 힘차게 뛰는 심장 소리가 청각을 자극하고 있었지. 누른다고 눌렀는데 점점 부모님의 얼굴이 흐려졌고… 변이할 때 느꼈던 고통처럼 온몸이 타들어가는 것 같았다. 그리고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땐 갈증이 좀 가셔있었어. 이미 아버지는 쪼그라든 채 바닥에 던져진 후였고 시야에 들어온 건 어머니의 목이었지. 나는 어머니를 뒤에서 끌어안고 그 가녀린 몸에 매달려 있었다. 급하게 이를 빼냈는데… 바닥에 스러지는 어머니는 온몸의 핏줄이 다 도드라져서는, 쿵쿵 힘차게 뛰던 심장소리도 작아지더니 금방 멈춰버렸어. 그제야 제대로 깨달은 거지. 아, 나는 괴물이다. 자기 부모도 잡아먹는.’
가만가만 읊조리는 말소리는 점차 작아졌다. 지민이는 어느새 눈을 뜨고 내 낯빛을 살피고 있었다. 지민이가 갑자기 손을 뻗었다. 나도 모르게 몸을 움찔했다. 동시에 그의 손이 멈췄다. ‘…무서워하지 마.’ 그때의 나랑은 달라, 지민이는 다짐하듯 내게 말한다. 그리고 다시 다가온 손은 땀에 젖은 내 앞머리를 조심스레 정리해주었다.
"그 죄책감이 너무 컸던 걸까. 보통 2년은 지나야 갈증을 제어할 수 있다는데, 나는 그날 이후로 어느 정도 조절이 가능했어.”
“…….”
“괴물이 돼버린 나를 누나의 부모님이 품을 수 있었던 이유야.”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지민이의 적갈색 눈이 올곧게 나를 바라본다. 무언가를 말하려다 말기를 여러 번, 한참의 망설임 끝에 마침내 그가 말했다.
"민윤기 일이 정리되면, 나는 떠나야 할 거야."
그것은 통보였다. 그것도 한없이 일방적인.
“떠나다니, 왜?”
“그럼? 이 사실을 알고도 이전처럼 일상적인 생활이 가능하리라고 생각해? 정말?”
지민이가 자조적인 웃음을 지었다. 그는 절대로 그럴 리 없다는 듯 단호하게 손사래를 쳤다. 장난스러운 손짓이었지만 담고 있는 의미는 장난이 아니다. 내가 각 잡고 반항하기 위해 몸을 일으키니 곧장 어깨를 눌러 다시 눕힌다. 재차 입술을 깨물었다. 그들의 앞에서 내가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게 싫었다. 내가 암만 의견을 고수하려 해봤자 그 엄청난 힘을 사용해 꺾어버리면 난 무너질 수밖에 없다. 눈을 치켜뜨고 노려봐도 꿈쩍도 않는다. …후, 젠장. 못 이기는 척 져주던 내 동생 박지민은 이미 이곳에 없었다.
"내가 지금 이렇게 누나 옆에 앉아있는 게 용한 거야.”
“…….”
“예전엔 진짜 힘들었지…. 누날 어떻게 처리할 수 있을까 그 방법을 수십 가지는 생각했으니까.”
“…나중에 얘기해. 나가.”
“이런데도 안 떠날 수 있겠어?"
일부러 겁을 주려는 듯 눈을 가늘게 뜨고 말한다. 그 얘기는 나중에 하자고 어물거리고서 지민이를 내쫓았다. 나가라고 재차 말해도 ‘대답 들을 때 까진 안 가’하고 침대에서 일어나지 않기에, 등짝을 한 대 때려주려 손을 들자마자 박지민이 사라졌다. 그는 양 손을 항복 표시로 들어 보이고 문틀에 서있었다. ‘그래, 한 번만 물러서줄게. 사실 나도 떠나긴 싫거든. 누나가 잘 설득해줘.’ 눈을 둥글게 휘어 웃는 녀석을 내가 어찌 미워하겠나. 영악한 박지민은 그렇게 웃음 짓고 방을 나갔다. 침대 옆에는 어느새 큰 백팩 하나가 놓여있다. 엄마가 말했던 나머지 짐인 것 같다. 한숨을 쉬고 침대에서 내려왔다. 가방을 열자 사소한 목욕용품과 속옷 몇 벌, 자주 입는 반팔 2장과 반바지, 후드티까지 들어 있다.
전정국의 시선을 받으며 땀으로 한 번 샤워를 했던 탓에 온 몸이 끈적였다. 하도 정신이 없어서 그 사실을 이제야 인지했다는 게 우스웠다. 목욕용품과 갈아입을 옷들을 챙겨 방 안에 있는 화장실로 향했다. 아까 김남준이 말하길 뱀파이어는 땀샘도 없고 소화계통 장기도 없다고 했다. 그럼 당연히 씻을 필요도 변기를 이용할 필요도 없을 텐데, 화장실은 꽤 큰데다가 욕조까지 있다. 뭐 먼지에서 구르거나 했을 때 씻거나 것도 아니면 인간인 척 하느라고 그랬겠지. 알아서 수긍해버리고 선반을 보았다.
선반 위에는 수건이 가득했다. 수건 위에 힘겹게 내 옷을 올리고 나서 따뜻한 물을 틀었다.
“어라, 도시락. 씻어? 씻는 김에 이왕이면 목도 깨끗하게 씻어주- 아, 형! 안 그럴게요!”
“진짜 뒤지고 싶지?”
한창 씻고 있을 때 화장실 문 밖에서 장난기 넘치는 전정국의 목소리가 들렸다. 뭐라 놀라기도 전에 그의 말이 끊기고, 지민이의 목소리와 더불어 쿵쾅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이내 조용해졌다. …진짜 못 말린다.
씻고 물기를 닦자 나른함이 밀려왔다. 전에도 수학여행을 가서 좀 무리했다가, 샤워하고 화장실에서 나올 때 그대로 쓰러졌던 적이 있었다. 그때의 느낌과 얼추 비슷한 나른함이 나를 덮쳐들었다. 얼른 옷을 입고 수건으로 젖은 머리를 털며 화장실을 벗어났다. 더운 김이 가득했던 공간을 나오자 한 결 나았다. 침대에는 지민이가 앉아 있었다. 내가 씻고 나올 때까지 앞을 지킨 듯하다. ‘전정국 개새끼는 다른 곳으로 보냈어. 다시 오면 아주 목덜미를 찢어 놓는 게 나을 것 같아.’ 이를 가는 소리가 나한테까지 들렸다.
“한 번 추측을 좀 해보자, 누나.”
지민이가 자기 옆자리를 손으로 팡팡 쳤다. 옆으로 가 앉으니 내 뒤로 옮겨가서, 물이 뚝뚝 떨어지는 머리를 자기가 수건으로 털어준다. 열심히 내 머리를 말리며 ‘추측’에 대한 브리핑을 해주었다. 전정국은 민윤기가 만든 아이라고 했다. 지민이의 말에 따르면, 그는 자기를 만든 민윤기를 어느 정도 따르긴 해도 완벽히 신뢰하고 움직이는 건 아니다. 뭔가 민윤기에게 꼬투리를 잡혔거나 약속을 했기에 내 위치를 그와 공유했을 확률이 크다. 예를 들면 ‘민윤기가 확신하는 사실에 대해 아는 것이 있다면 말해주기’같은 약속 말이다. 민윤기는 이것저것 재고 따지기를 잘하기 때문에, 언젠가 자신이 쓸모가 없어지면 가차 없이 버려질 거란 걸 전정국은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양쪽에서 줄타기를 하는 것이 아닐까, 하고 지민이가 조심스레 추측했다. 민윤기에게 도움을 주긴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자기에게 이득이 되기에 주는 것이리라는 추측이었다. 지금 이 곳에도 전정국이 나타났지만 민윤기가 들이닥치지 않은 게 그 추측에 힘을 실어주었다.
“애가 장난이 심하긴 한데, 나쁜 애는 아니야.”
내 옆에 누운 채로 나타난 김남준이 조용히 전정국의 편을 들었다. 들어온 것도 몰랐던 나야 움찔 놀랐지만 지민이는 태연하게, 그저 그 말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전정국을 옹호하는 말에 곧장 반박할 줄 알았는데 의외의 반응이었다. ‘정국이는 갈증을 억누르고 있어.’ 의아해하는 나를 위해 김남준이 설명했다. ‘혈관 밖으로 빠져나온 피의 냄새가 아닌 이상 웬만하면 자기 의지대로 컨트롤을 해. 뭐, 네 냄새를 그렇게 가까이에서 맡아 놓고 참은 것만 봐도 대단한 거지.’ 그 상황에 방에 있지도 않았던 김남준이건만, 마치 눈앞에서 본 양 낄낄대며 말한다. 지민이는 이번에도 딱히 반박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제 뭘 어떻게 하면 되는데요?”
“네가 할 일은 없지.”
김남준이 어깨를 으쓱하고 말했다. 그 말에 지민이를 돌아보자 그도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내가 알아서 할 거야, 누나.’ 나는 앞으로의 계획도 제대로 듣지 못한 채로 그렇게 1주일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폭풍전야처럼 민윤기는 아무 소식도 없었다. 차라리 그의 행적이 눈에 보이기라도 했으면 이리 불안하진 않았을 텐데. 지민이도 말은 하지 않지만 조금 불안한 듯 흔들리는 모습이었다. 그런 와중에 민윤기의 소식을 들고 온 건, 다름이 아니라 쫓겨났던 전정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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