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사랑
w.prisma
02
이상하리만치 울렁이는 가슴을 겨우 부여잡으며 눈길을 돌려 애써 보컬에게 집중하려 했지만 자연스레 눈길은 그 녀석에게 돌아갔다. 공연이 시작되었고 관객들의 환호성으로 인해 귀가 떨어져 나가는 기분이였다. 시끄러운 환호성에 미간을 찌푸리다 이내 보컬의 목소리에 집중했다. 더불어 그 웃던 표정과는 상반적인 진중한 표정으로 베이스를 연주하고 있었다. 웃을 때와는 정말 사뭇 다르네, 노래 한 곡을 다 끝낼 때까지 나는 우현이의 목소리조차 듣지 못했다. 이 공간 안에, 이 공연장 안에 너와 나 단 둘만이 있는 것처럼, 나는 입을 꾹 다문 채 그의 연주에 귀를 기울였다. 베이스라는게 기타처럼 특색있는 소리가 나진 않았지만, 베이스를 연주하고 있는 네 모습과 더불어 그 시끄러운 음악 속에서 베이스의 소리를 찾았다. 그리고 포커스를 맞췄다. 그러나 그것도 얼마 가지 않았다. 나를 이곳으로 억지로 끌고 온 장본인이기도 한, 남우현으로 인해.
“… 야, 이성열!”
“‥ 어, 어?? 어..”
“왜 사람이 불렀는데 말을 안해, 아주 푹 빠졌구만?”
“뭐 그냥, 시끄러워서 네 목소리가 들려야지.”
대충 둘러대고는 언제 집에 갈 거냐고 묻자 한 곡만 더 듣고 가자고 말했다. 남우현의 말로는 베이스를 담당하고 있는 그 녀석이 부르는 노래라 흔하게 볼 수 없는 기회라고 했다. 베이시스트가 노래도 하나? 남우현은 도대체 이런 건 어디서 안 건지는 몰라도 정말 우현의 말대로 마이크를 그 녀석 앞에 설치하고 있었다. 보컬은 잠시 무대에서 내려가고, 그러면 설마 저 녀석 단독 보컬인 건가? 잘해봐야 서브 보컬일 줄 알았는데.. 아, 아, 마이크 상태를 살피더니 이내 베이스를 내려놓고 어쿠스틱 기타를 손에 들더니 의자에 앉으며 노래를 시작했다. 노래 제목은 씨엔블루의
엇
또 눈 마주쳤다
어느샌가 그 노래에 매료되어 있을 즈음이였을까,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그 눈동자와 내 눈이 맞닿았다. 또 이런다. 하, 가슴을 부여잡으며 벅차 오르는 이상한 감정을 애써 다잡았다. 아까 처음 눈이 마주쳤을 때와 녀석이 웃었을 때, 그리고 지금. 그 세 상황의 공통을 찾아보자면 한 가지의 답이 나온다. 지금도 잠잠해지지 않는 걸 보면 확고한 해답을 내릴 수 있다. 나는 저 녀석에게 반, 반..
“반했어.”
“… 뭐?”
우현의 물음에도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살짝 입술에 호선을 그었다. 김명수, 도서실에 매일같이 찾아오는 그 녀석에게 말이야, 남다른 사랑 경험도 없는 나 이성열이, 반했어. 같은 동성에게 말이야, 우현아. 그리고 자연스레 웃음이 비집어 나왔다. 노래 한 곡이 끝나고 함성소리가 공연장을 가득할 때, 남우현 또한 옆에서 소리를 지를 때 나는 아무 말 없이 그저 웃기만 했다. 크게, 아하하하! 웃음소리가 함성소리에 묻힌 건 참으로 다행이였다. 그 웃음소리가 네게 들렸다면, 또한 이 모습을 네가 봤다면 아마, 제 감정에 대한 자각을 눈치챘을 수도 있었기에.
* * *
그 공연장에서 있었던 일ㅡ이라고 하기에도 새삼스럽지만ㅡ 이후로 나는 그 녀석에 대한 태도가 달라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였다. 녀석은 여느 때와 다를 것 없이 책을 반납하러 다시 왔고, 나는 표정관리가 되지 않아 어찌해야 할지 모르고 우왕좌왕 하다가 겨우 감정을 억누르며 책을 받고, 다시 읽을 책을 가지러 가는 네 뒷모습만 멍하니 바라봤다. 다른 사람의 시점으로 보면 3학년 이성열이 저 2학년 김명수를 좋아하고 있다고 느낄 수 있을 만큼 나는 티나게 관심을 표했다. 중요한 건 그 녀석 앞에선 전과 다를 것 없이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자연스레 그의 이름을 쓰고, 바코드를 찍고. 책을 건네며 말했다.
“..어제 노래 잘 하더라,”
“아, 어제 있었어요? 못봤는데.”
뭐지, 어제 눈 마주친 거 기억 못하나? 아니면 나인 줄 몰랐던 걸까.. 그럼 그렇게 웃은 건, 살짝 표정을 굳히며 생각에 빠질 즈음 너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고맙다는 단언과 함께 책을 들고 도서실을 나갔다. 솔직히 어제 나를 보고 웃었던 건 내 표정이 웃겨서기도 했겠다만 항상 도서실에서 마주하기에 내 얼굴을 기억해서기도 한 줄만 알았는데 그건 지극한 나의 착각에 지나지 않았던 모양이다. 갑자기 온 몸에 힘이 빠지는 기분이였다. 하긴, 그 녀석은 다른 여학생에게도 내게 웃어줬던 것처럼 똑같이 웃어줄 수 있다. 괜히 기분이 안좋아졌다. 사소한 것에도 기분이 좌우되는 걸 보니, 내가 네게 빠져도 단단히 빠졌나보다. 내가 그 녀석에게 반했다 한들, 내가 좋아한다고 고백을 하지 않는 이상 그는 모른다. 마음이라는 것이 겉으로 드러나는 게 아니잖아, 바보같이 뭘 기대한 걸까, 이성열.
“이 책은 맨날 빌리네..”
대출 목록을 보면 이 책은 항상 끼어 있다. 대출 기간을 연장해서까지 읽고, 또 읽는 책. 투르게네프의 <짝사랑>이라는 유명한 책인데 한 남자가 한 여자를 평생동안 짝사랑하는 진부한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 이 이야기를, 책이 떨어져 나가도록 읽고 또 읽는 이유는 무얼까 생각했다. 정말 김명수는 그만큼 익명의 여학생(혹은 남학생)을 짝사랑한다는 건가? 괜시리 그 상대가 나였으면 좋겠다는 기대를 거는 건 역시나 인간은 무한정 욕심의 동물이라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니라 하는 듯 와닿았다. 실로 따지면 나도 그 김명수를 짝사랑하고 있는 거나 다름 없는데. 짝사랑이라는 공통점이 있고, 상대가 다르다는 것이 차이점. 곧 5교시가 시작될 시간이였기 때문에 도서실 문을 잠구고 교무실로 가 국어 선생님께 도서실 키를 주고 나오는 길, 복도 저 끝에 익숙한 낯이 가까워짐을 느꼈다. 생각의 주를 이루는 김명수. 2학년 그 김명수.
“… 어, 저기!..요!”
어색하게 지나치려던 나를 머뭇거리며 불렀다. 하긴, 이름도 모르니 어떻게 불러야 할지 막막했었나, 아무도 없는 복도에 단 둘만 있어서 그런지 정적을 깨는 그의 목소리에 티나지 않게 화들짝 놀라다 이내 고개를 돌리며 무슨 영문이냐는 듯 아무 말 없이 멀뚱히 그를 쳐다봤다. 무슨 말을 꺼내기 난감한 듯 버릇처럼 검지로 볼을 긁적이며 눈을 이래저래 돌리다 한참동안 말이 없더니 듣기 좋은 그 목소리가 다시 내 귀를 감겨왔다. 어, 그러니까요.. 별다른 건 아니고..
“할말이 있는 건 아니고, 그냥 지나치기 뭐해서.. 수업 준비하러 가요?”
“아, 네.. 아니.. 응.”
어색함 때문인 건지 실수로 그런 건지 저도 모르게 존댓말이 튀어나오다 이내 말을 고치며 대답했다. 남우현이 버릇처럼 말하던 바보 이성열은 정말 맞는 논리인 걸까, 왜 이런 상황엔 능청스럽지 못한 거지? 자연스럽지도 못하구.. 그래서 내가 바보같단 소리 들은게 한두번이 아닌 모양이다. 내 행동이 웃겼던 건지 한참을 해사하게 웃으며 나를 쳐다보더니, 웃음 섞인 목소리로ㅡ언제 비뚤어져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ㅡ비뚤어진 넥타이를 바로 잡아주며 말했다.
“수업, 잘 들으세요. … 이성열 선배.”
“…”
그 말에 어색해서 땅에 곤두박질쳐있었던 내 시선이 자연히 녀석의 얼굴로 올라갔다. 그리고 더불어 눈이 마주쳤다. 녀석과 마주한 이례 눈이 마주치지 않은 때가 없었던 것 같다. 바보같이 그럴 때마다 가슴 속 심장박동은 미칠 듯 뛰어댔고, 이 소리가 적막이 흐르는 복도에 들릴까봐 애써 입술을 깨물었다. 한참을 그렇게 말없이 멍한 얼굴로 눈을 마주치다 이내 시작 종이 울렸고, 가볼게요라는 말과 함께 그 녀석은 뒷모습을 보이며 계단을 타고 올라갔다. 나는 교실로 안 들어가냐는 국어 선생님의 말이 있을 때까지 그 자리에서 한참을 넋을 있고 서 있었다. 저 녀석 웃음이 이토록 따스했나? 마음 전체를 아우르며 벅차 오를 만큼의 설렘을 안겨 줄 만큼..
그런데 내 이름, 어떻게 알았지? 오늘 명찰, 안 가져 왔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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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만에 찾아온다고 했었는데 이렇게 늦어버려서 죄송합니다..♥
미약한 글솜씨지만 예쁘게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오타나 띄어쓰기가 있으면 말씀해 주시구요
...수열행쇼S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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