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을 살펴보면 의미가 부여된 물건들이 심심찮게 보인다. 예를 들어 사랑을 의미하는 붉은 장미같은 것. 그리고 사귀는 -혹은 결혼한- 사이임을 의미하는 반지도 있다. 왼쪽 약지에 끼워넣은 사랑이란 이름의 은빛 수갑이. 오늘은 그 수갑에서 벗어난 날이었다. 왠지 휑하고도 허전한 느낌이 마음에 들지 않아 음식을 잔뜩 시켰다. 피자, 탕수육, 깐풍기, 야끼우동, 치킨, 햄버거, 돈까스... 음식을 배달하신 아저씨의 시선에 민망해 빈방에 대고 어서 나오라고 소리까지 질러대며 음식을 시켰다. 이미 식탁은 더 놓을 자리가 없어 대충 바닥에 다 내려놨다. 갑자기 바닥에서 먹지 말라던 잔소리가 귓가를 맴돌았다. 짜증같은 게 확 치솟아 허겁지겁 입에 무엇이던 집어넣었다. 그냥 씹었다. 내가 뭘 씹으려 하는지도 잘 모르겠다. 치킨인지, 외로움인지. 아니, 이것은 설움이다. 이제 더 이상은 술을 마셔도 잔소리할 사람이 없다는 것, 쇼핑하러 갈 때마다 툴툴거리면서도 옆에 있어줄 사람이 없다는 것. 무서운 영화를 함께 볼 사람이 없다는 것. 그리고, 이제 이 수갑을 나눠 끼던 사람이 없다는 것. 가방 안주머니에서 반지를 꺼냈다. 반지의 무게가 너무 버거워 몇 번이고 떨어뜨릴 뻔한 걸 겨우 식탁에 올려 놓았다. 손가락이 아닌 식탁에 가만히 앉아 눈을 맞춰오는 반지의 모습이 너무나도 이질적이었다. 하얀 식탁보 위에 있는 반지는, 금방이라도 깨지거나 녹아버릴 듯한 살얼음같았다. 아, 아니다. 그것은 반지가 아닌 나의 모습이었다. 네가 없는 나는 항상 불안하고 위태롭다. 그걸 어리석은 난 이제서야 깨달았다. 차라리 처음부터 따듯함을 몰랐다면 좋았을 것을. 한 번이라도 너의 그 따듯함에 취한 적이 있다면 두번 다신 전으로 돌아갈 수 없음을 알면서도 애써 무시했었다. 눈을 감고, 귀를 막았다. 그리고 눈을 뜨고 귀에서 손을 떼니, 너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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