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또 누구야. 한 달 째 누군가가 우리 집 앞에 휴지가 가득 든 봉투를 매일 아침마다 놓고 가는 탓에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헝크러트리며 주변을 살펴본다. 이쯤 되니 혹시 나쁜 마음을 품고 이러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되기도 해, 괜히 집 들어가는 길이 무서워지곤 했다.
"누나!"
한참 동안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들려오는 소리에 옆을 보니 옆집 남자애가 동글동글한 눈을 휘게 웃으며
쫄래쫄래 다가왔다. 연하에다 외모도 훈훈해 가끔 이렇게 말을 걸어올 때면 눈 호강하는 기분이 확 든달까.
집 앞에 놓인 봉투 때문에 찝찝했던 기분이 깨끗이 날아가는 기분이 들어 활짝 웃으며 그를 바라봤다. 어, 오늘은 일찍 집에 들어왔네?
"누나 화장 안 했죠? 웬지 오늘따라 못생겨보이더라."
이게! 민낯인 건 맞지만 남들에게 피해 안 가는 얼굴이라 생각하고 살았는데,
요 어린 연하가 한순간에 그런 내 생각을 무너트려 버린다.넌 공부 안 하냐? 쪼그만 게, 자꾸 어딜 빨빨 돌아다녀.
민낯이랑 화장한 얼굴이랑 비교 당한 게 기분 나빠 괜히 잔소리를 퍼부어줬더니,피식 웃으며 뉘 예~ 뉘 예~ 거리며 얄밉게 대답해온다.
"아, 맞다. 누나 어제 늦게 들어왔죠? 어떤 남자가 누나 데려다 주던데, 술 마셨었어요?"
어제 새벽에 들어왔는데,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문득 내 머리를 스치는 궁금증에
백현을 홱- 노려보며, 네가 그걸 어떻게 아냐고 물어봤더니,이 어린 게 친구들이랑 늦게까지 놀다 집 가는 길에 봤단다. 요즘 애들이 말썽이지, 말썽이야.
"누나, 아무한테나 그렇게 안겨있으면 안 돼요. 어제같이 왔던 남자는 누구였어요? 남자친구? 선배?"
누구냐고 물어오는 백현이에게 장난스럽게 웃으며 조만간 남자친구로 발전할지도 모르는 선배?라며 대답해주자,
백현은 표정을 굳힌 채,날 바라봤다. 왜 이래, 무섭게.. 인상 펴라며 미간을 검지로 꾹꾹 눌러주자 그제야 장난스럽게 바뀌는 표정에
네가 그럼 그렇지라고 어깨를 툭 치곤,봉투를 버리러 쓰레기장으로 향했다.
"그게 뭐길래, 매일 아침마다 버려요?"
호기심이 많은 건지 오지랖이 넓은 건지 이것도 궁금해하고 저것도 궁금해하는 쪼그만 연하에게
매일 집 앞에 놓여져있더라 라며 귀찮은 듯 손을 휙휙 저어 이제 좀 가라는 식으로 이야기해주자, 삐쳤다며 제 입술을 쭉 내밀곤, 툴툴 거린다.
"선물일지도 모르잖아요, 안에 안 보고 그렇게 막 버려도 돼요?"
휴지만 가득 든 이게 선물이냐? 봉투를 쓰레기장에 놔두며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고, 시간이 남아도는 백현은 내 뒤를 강아지 마냥 따라오며,
재잘대기 바빴다.그가 이야기하는 내용은 대부분 내가 관심 있어 하는 물건에 대한 정보라던가, 좋아하는 음식에 대한 이야기인데다
신기하게 나와 비슷한 부분이 많아 말이 잘 통했고, 그와 대화하는 시간이 지겹게 느껴지지 않았다.
"누나, 듣고 있어요? 또 멍하게 있는다. 요즘도 손톱 물어뜯어요? 누나 그거 버릇이잖아."
내가 얘한테 내 버릇도 이야기했었나? 가끔 대화하다 보면 잘 맞아서 이것저것 이야기해서 그런 건지
나에 관해 너무 잘 알고 있는 그가 신기하기만 했다. 이렇게 훈훈한 연하가 관심 가져주는데 나쁘게 생각하지 말아야지.
대답을 바라는 듯 동그란 눈으로 날 멀뚱멀뚱 바라보는 백현을 향해 요즘은 잘 안 물어뜯는다며 대답해주며 까치발을 들어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줬고,
기분 좋다는 듯 미소 짓는 그에게 강아지 같다며 놀려주었다.그렇게 둘이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 새 하늘도 어둑어둑해져가고
날도 쌀쌀해져 오들오들 떨리는 몸을 내 팔로 감싸곤 춥다 들어가라며 백현을 밀어 집으로 가라고 해준 뒤, 나도 집 안으로 들어가 보일러를 틀어 따뜻해진 바닥에 몸을 눕혔다.
그런데 가기 전 백현이 했던 말이 괜히 떠오르는 건 왜일까.
누나, 선물일지도 모르잖아요.

아, 또 있어! 또! 늦은 밤까지 친구들과 놀다 집에 왔더니 또 앞에 있는 검은 봉투를 발로 툭툭 찬다. 아침마다 있더니
왜 오늘은 밤에 있는 거야.어쩔 수 없이 봉투를 들고 쓰레기장으로 가야 할 내 모습이 눈앞에 보여, 한숨을 내쉬고는
봉투를 들고서 쓰레기장으로 향한다.놔둘 거면 아침에 놔두지. 밤길 무서운데..
조그만 소리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며 빠른 걸음으로 쓰레기장으로 향하던 중 뒤에서 들리는 익숙한 목소리에뒤를 돌아봤고, 뒤에선 검은 후드티를 걸친 채,
날 부르며 쫑쫑 다가오는 연하가 보였다.
"누나, 또 그거 버리려고요?"
원래 얘가 이렇게 저음이었나? 오늘따라 유난히 낮게 들리는 그의 목소리에 머리를 긁적이고는 미리미리 버려야지,
내일 되면 귀찮아져 라고 대답하고는 쓰레기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따라와주겠지? 따라와줄 거라는 내 예상과 다르게
그 자리에 멈춰 서 움직이지 않는 그를 힐끔 보곤 같이 가달라고 손을 내밀자 그제서야 입꼬리를 올리며 다가온다. 안 그래도 무서웠는데 다행이네.
늦은 밤 나란히 둘이서 걷고 있으니 조금 설레는 것 같기도 하고..
"누나 내가 막 이렇게 데려다 주고 그러니까 설레죠? 솔직하게 말해봐요. 얼굴도 훈훈하고 마음도 훈훈하고."
자기 입으로 뻔뻔하게 훈훈하다고 이야기하는 백현이의 팔을 꼬집어주며, 하나도 안 설렜다고 말해주니 삐친 강아지 모드로 바뀌어 크앙크앙 거린다.하여간 어린 티를 내요, 어린 티를.
쓰레기장에 도착하자마자 기분 나쁜 게 손에 들려있던 봉투를 집어던지다십히 버렸고, 이런 내 모습에 백현은 살짝 인상을 찡그린다.
"누나 나 할 말 있는데, 오늘은 집에 좀 늦게 들어가면 안 돼요?"
할 말이 있다는데 어찌하리오. 시간이 남아도는 내가 들어줘야지 하는 마음에 고개를 끄덕이자, 백
현은 자연스럽게 내 손을 잡아온다. 왜 이런데, 고백이라도 할 것처럼.
그러나 예상과 다르게 그가 꺼낸 주제는 내가 금방 던져버린 봉투에 관한 이야기였고, 얘가 왜 이런 이야기를하지 싶은 궁금증에 그를 바라봤다.
"누나, 사실 저 그 검은 봉투 누가 놔두는 건지 알고 있어요."
범인을 알면서도 모른 척 한 건가? 아는 사람이라 그런 거냐며 인상을 찌푸리고 따지 듯 물으니
그저 생글생글 웃으며, 내가 가르쳐주면 뭘 해줄 거냐며 물어온다.눈치가 없는 건지, 아니면 모르는데 아는 척한 건지 구별이 가지 않아, 지끈거리는 머리를 손으로 짚고선
백현을 노려보았다.
"누나 그렇게 인상 찌푸리면 주름 생겨요."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자꾸만 놀리며 장난치는 백현의 모습에 정색하며 진짜 누군지 알고 있으면 얼른 말해달라고 재촉하였고,
백현은 그런 내 모습이 여전히 귀엽다는 듯 머리를 쓰다듬으며 웃기 바쁘다.
"그 범인, 누나가 아는 사람이에요."
내가 아는 사람? 내 주변에 그런 짓을 할 사람이 있었던가?
한참 고민하고 있는 내 뒤로 다가온 백형이 뒤에서 날 끌어안았고, 뒤에서 안아오는 백현에 의해 내 고민 또한 잠시 날아갔다.
"범인은 강아지 삼에다가 애교도 많고 한 사람만 바라보는 해바라기에요."
강아지 상? 애교? 해바라기? 하나하나 들릴 때마다 스치는 불안한 생각에 설마 아니겠지라며 내 스스로를 달래고는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봤다.말 돌리지 말라고, 누구냐고 물어보는 나에게 맞춰보라며, 이미 다 알고 있으면서 왜 모른 척하냐는 대답이 들려왔고
정답을 맞히기도 전에내 코와 입을 막아오는 손수건에 의해 두 눈이 감겼다.
"범인은 변백현이에요, 누나."
***
2편은 내일 !
2편은 불마크에 수위가 좀.. 핳핳
낮이 맞아요! 잘 생각해보면 백현이는 항상 여자의 머리 위에서 생각하고 있었던 거예요 하흐핳ㅎ흐핳
내 똥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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