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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l 외국어 l 해외거주 l 해외드라마


그 사람이 갑자기 칼을 들고 들어와서는 제게 달려들었어요. 잔뜩 날을 세운 얼굴로 백현이 씹어뱉듯 말하자 찬열이 수첩 위에 대고 있는 펜을 아래로 떨구고는 백현과 눈을 맞추었다. 백현은 잠시 생각을 하더니 재차 입을 열었다. 너 같은 거 죽여버리는 건 일도 아니라고 그랬어요. 그리고 덧붙였다. 그 때 그 사람은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어요. 눈동자가 비어 있었거든요. 하고 입술을 질끈 깨문 백현이 찬열을 가만히 보았다. 찬열은 무의식중에 침을 꿀꺽 뒤로 넘겼다. 백현의 얼굴이 잔뜩 그늘져 있었다. 찬열은 작게 고갯짓을 하며 다음 이야기를 할 것을 종용했다. 백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 나갔다. 그 사람을 피해서 도망을 쳤어요. 손에 찬 수갑 때문에 제대로 저항할 수 없었고…. 찬열이 수갑, 하고 수첩 위에 휘갈기고는 다시 고개를 들었다.  

  

  

  

* * *  

  

상흔  

  

w. Duet  

  

* * *  

  

  

  

그런데 실은 그 수갑 때문에 살 수 있었어요. 칼을 내리치려는 걸 수갑으로 막았었어요. 하고는 붕대를 감지 않은 손목을 손으로 슥슥 문지르는 백현이었다. 아직도 그 생각을 하면 아찔하고 손목이 욱신거려요. 앙상한 손목을 물끄러미 보던 찬열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백현은 말을 이어 나갔다. 저는 도망쳐서 거실로 나갔어요. 그 사람은 진짜로 저를 죽일 듯이 따라 왔어요. 

 

"그 때 얼마나 무서웠는지 몰라요." 

 

하고서는 백현이 소름이 잔뜩 돋아 오돌오돌하게 닭살이 오른 제 팔을 만지작거렸다. 그리고 저는 그 수갑을 찬 손으로 그 사람 얼굴을…. 쳤어요. 찬열이 백현의 말에 주춤했다. 백현은 찬열의 눈치를 슬슬 살폈고 그에 따라 찬열이 더 말해보라며 턱짓했다. 백현이 다시 입을 연다. 그 사람이 제 힘에 못 이겨 튕겨 나가면서 칼을 떨어뜨리고 주춤거렸어요. 저는 그 때 칼을 뺏어 들었었구요. 하고는 잠깐 머뭇거렸다. 전 그 때 그 사람을 죽일 생각은…. 백현의 말꼬리가 점점 작아지며 흐려졌다. 찬열은 반쯤 수그렸던 고개를 들고는 백현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 죽일 생각은 없었겠지. 하지만 죽이고는 싶었겠지.  

  

  

"네가 사람을 죽이려고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는 건 나도 이미 알아."  

"……."  

"그러니까 그 것에 대해서 너무 죄책감을 갖지 마."  

  

  

나 같았어도 백 번이고 천 번이고 죽여 버리고 싶었을 거니까. 하고 다시 고개를 수그린 찬열의 갈색빛 머리통을 보던 백현이 입술을 사려물었다. 송곳니 밑으로 꾹 눌리는 입술이 아렸다. 찬열이 백현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백현은 가만히 찬열을 보다가 이내 다시 입을 열었다. 그 사람이 맨 몸으로 달려들었어요. 저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었죠. 그땐 아무런 기력도 없던 때였으니까요. 그런데 전, 죽기 싫었어요…. 하고 백현이 두 손을 들어 얼굴을 파묻었다. 작게 들썩이는 얇은 몸뚱어리를 보던 찬열이 한숨을 내쉬며 앞머리를 쓸어 올렸다. 그래, 그래서 어떻게 그 사람을 죽이게 되었니. 찬열의 낮은 목소리가 묘한 안정감을 주는 탓에 백현의 울음이 잦아들었다. 백현은 여전히 얼굴을 묻은 채로 말했다. 그 사람이 방심했어요. 제 손목을 잡고 저를 깔보다가, 힘을 뺀 순간에 찔렀어요. 배를, 이렇게요. 하고 백현이 고개를 들었다. 붉게 부어오른 눈두덩이가 똑바로 찬열을 향했다.  

  

  

"이 정도면…. 될까요."  

"…그래."  

  

  

수고 많았다. 오늘은 이 정도면 될 거야. 하고 말한 찬열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백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부드럽고 얇은 머리카락이 찬열의 억센 손가락 사이로 감겨들었다가 빠져나갔다. 찬열은 잔뜩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백현을 잠깐 보았다. 창 밖으로 고개를 돌린 백현의 뒷 모습이 보이자 찬열은 백현에게 들리지 않게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는 나직하게 말했다. 그래도 네 몸은 소중히 해라.  

  

"넌 지금 살아 있잖아."  

  

잔뜩 안쓰러움이 묻어나는 목소리와 함께 백현의 어깨 위로 찬열의 따뜻한 손이 닿았다. 그 손은 백현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백현은 울컥 무언가가 타고 오르는 느낌에 고개를 푹 수그렸다. 찬열은 그런 백현을 보다가 쉬라며 말을 던지고는 협조 감사하다, 말하고는 병실을 나섰다. 조심스레 닫히는 문 사이로 찬열의 세심함이 느껴져 백현은 더욱 고개를 푹 수그렸다.  

  

  

  

* * *  

  

  

  

"누구 왔다 갔니?"  

  

  

잔뜩 지친 표정의 어머니가 병실로 들어서더니 낯선 기류에 당황하며 말씀하셨다. 면회 금지였을 텐데…. 하고 중얼거리며 스툴에 걸터앉는 어머니는 백현의 손을 꼭 잡고 말을 꺼냈다. 아가, 오늘은 좀 괜찮니? 어떠니. 진심 어린 걱정이 가득한 목소리가 백현의 고막을 파고들었다. 백현은 형사님 왔다 가셨어요, 짧게 답하고는 손을 슬그머니 빼 내었다. 백현의 어머니는 그렇구나, 하고 한숨을 푹 쉬며 닫힌 병실 문을 볼 뿐이었다. 무겁게 내려앉은 공기에 숨이 막힌 벡현이 자리에 누웠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1인실용 냉장고를 열고 제 손에 들린 봉투를 열어 안에 든 것을 냉장고 안에 차곡차곡 집어 넣었다. 백현아, 뭐라도 좀 먹을래? 애써 밝게 물으며 백현의 눈치를 살폈지만 그는 그저 좀 쉬고 싶다며 회피할 뿐이었다. 엄마도 좀 쉬어, 하며 그가 이불을 덮고 돌아 누웠다.  

  

  

  

* * *  

  

  

  

"여보세요."  

  

  

어, 찬열아. 전화 너머의 사람이 반갑게 찬열을 맞으며 물었다. 어쩐 일로 전화를 다 하고, 하는 남자의 말에 찬열이 깊게 한숨을 내쉬며 뒷머리를 벅벅 긁었다. 뭐 부터 얘기를 해야 할까, 하자 남자는 가만히 대답하지 않고 찬열의 말을 기다리는 듯 침묵을 유지하고 있었다. 찬열은 재차 후우, 하고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왜, 요 전에 내가 맡은 사건 있잖아."  

- "그래, 그게 왜?"  

  

그거, 좀 맡아 달라고. 무겁게 말을 꺼내는 찬열의 말투에 전화 너머의 남자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가 입을 열었다. 무슨 일 있는 거야? 하자 찬열의 표정이 짙게 가라앉았다. 그냥 정당방위로 끝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부검 결과랑 증언 들어 보니까 그게 안 될 것 같더라고.  

  

"가해자 유족이 지금 항소를 하려고 해."  

- "……."  

  

찬열은 며칠 전에 있던 긴급 소집을 떠올렸다. 항소를 한단다. 제 상관이 툭 뱉으며 질린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찬열의 눈이 커졌다. 그러다가 차갑게 식으며 내려앉았다. 이게 무슨 말이냐며 따져도 대답은 똑같았다. 한다지 뭐냐, 낄낄 웃으며 말하는 제 상관의 상판을 주먹으로 쳐 버리고 싶었다. 당신 자식이 똑같은 일을 당해 봐라, 그렇게 웃을 수 있는지…. 그 때의 일을 떠올리자 찬열이 다시 분노에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리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 아이를 살인범으로 만들 셈이야. 그런데….  

  

"부검 결과를 보니까 그게 지금 가능할 것 같아."  

- "…그래? 그럼 너는 지금 나한테 좀 많이 불리한 판을 주는 거네."  

"…네 커리어에 미안하긴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고…. 찬열이 머뭇거렸다. 나는 별 능력이 없어서 그 아이를 도와주진 못 해. 그런데 난 그 아이를 좀 많이 도와주고 싶거든. 지금 그 사건에 관계된 일이 너무 커졌다는 건 너도 알 거 아냐, 뉴스 봐서. 그런데 내가 정작 할 수 있는 일은 지금 병실에 있는 애 뒤나 봐 주는 거란 말야. 너라면…. 찬열의 구구절절한 말을 듣고 있던 남자가 끼어들었다. 알았어, 어차피 그게 내 일이니까. 남자의 말투가 묘하게 자신감에 차 있었다.  

  

- "사건 자료, 공개 허용된 것만 나한테로 좀 보내 줘. 또 저번처럼 죄다 보내서 징계 먹지 말고."  

"…그래, 고맙다."  

- "잠깐, 급한 일이 있어서…."  

  

  

경수야. 찬열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전화가 툭 끊어졌다. 찬열은 끊어진 전화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홀드를 걸고 다시 주머니에 넣어두었다. 서로 들어서는 계단을 밟아 올라가던 찬열이 못내 미더운 듯 주머니 안에 넣어 둔 핸드폰을 다시 만지작거렸다.  

  

  

  

* * *  

  

  

  

"뭐?"  

"의뢰 들어왔어."  

  

  

박찬열이 부탁한 거야. 세미 수트를 입은 남자가 제 앞에 앉은 남자에게 말을 한다. 앉아 있는 남자는 무언가가 아니꼬운지 잔뜩 속이 뒤틀린 표정을 하고 있었다. 무슨 의뢰, 하고 묻는 그의 표정을 살피던 남자가 이미 다 알고 있는 듯 한 그의 모습에 살짝 웃으며 말한다. 형 이미 다 아는 것 같은데, 하자 그가 하아아, 하며 한숨을 내쉰다. 설마 했더니만. 하고 다시 자세를 고쳐 앉은 그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한다. 박찬열이 뭐 그렇지, 하고는 다시 제 앞에 놓인 노트북 화면만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그를 뒤로 하고 제 자리에 앉아 옷 매무새를 다듬은 남자가 말한다. 형은 맨날 박찬열 욕만 하더라고. 하자 노트북을 바라보던 그가 대꾸한다. 당연한 거 아냐? 맨날 일은 자기가 맡아 놓고 맨 마지막은 항상 너한테 부탁하는 식이잖아. 하자 남자는 어깨를 으쓱인다. 뭐…. 어때.  

  

  

"안 받는 게 어때?"  

"뭐?"  

"그 의뢰 안 받는 게 어떻겠냐고."  

  

  

왜, 하고 퉁명스러운 투로 뱉자 남자는 의자를 돌려 제 쪽으로 몸을 향해 앉으며 조곤조곤 말한다. 그 재판이 애한테 유리한 게 될지 안 될지도 모르는 일이고, 애초에 우리 나라에선 정당방위가 제대로 인정 잘 안 되는 건 너도 잘 아는 거잖아. 더군다나 저 애는 혼자 감금되어 있다가 가해자를 죽이고 탈출을 한 거라고 그러던데, 그걸 누가 정당방위로 똑바로 인정을 하겠어? 물론 그 가해자가 제대로 상해를 가한 건 맞지만, 그건 그 안에서나 얘기지…. 하고 말끝을 흐린 남자가 덧붙였다. 우린 쉬운 거나 받아서 쉽게쉽게 가자, 경수야. 우리 경수 사무실 하나 제대로 차리려면 커리어도 좋아야 하잖아. 하며 빙긋 웃는 남자를 보던 경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건 안 돼. 남자가 놀란 듯 편히 뉘었던 몸을 벌떡 일으킨다.  

  

  

"왜?"  

"내가 하겠다고 했으니까."  

  

  

  

* * *  

  

  

  

찬열은 잔뜩 진이 빠진 표정으로 자리에 엎드렸다. 이 놈이 말은 이렇게 하고서 맡아 줄 지가 의문이네. 제가 아는 법무사들에게 모두 연락을 해 보아도 대답은 안 된다, 못 하겠다는 둥 부정적인 대답만 나온 탓에 잔뜩 기가 빠진 찬열이 조금은 안도하는 듯 무겁게 억눌려 있던 신음을 뱉으며 핸드폰을 책상 구석으로 던졌다. 죽을 것 같다…. 하고 다시 컴퓨터 화면에 뜬 사건 경위서를 눈으로 훑던 찬열이 손가락을 꾹꾹 깨물었다. 아까 자료 보내 달라고 했는데…. 일단은 보내 줘야 겠다 생각한 찬열이 자료를 정리하기 위해 몸을 비척비척 일으켰다. 몇 날 며칠 계속 된 야근에 몸을 챙길 여력이 없던 찬열이 다크서클이 죽 내려온 얼굴로 마우스를 움직이고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  

  

  

  

듀엣입니다.  

  

드디어 경수가 거론되기 시작했어요.  

아이구 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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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드디어경수의등장인가요 ㅠㅠㅠㅠㅠㅠ
12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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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2
드디어 경수가 등장...!! 근데 가해자유족.. 양심도없다 진짜 어우 글읽는 내가다화나
12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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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3
오오 드디어 경수가 등장햇네요! 아 백현이 불쌍해요ㅠㅠ제대로 적반하장이네여ㅠㅠㅠ경수가 변호사인가요?이제 경수가 억울한 백현이를 구해주는건가요ㅠㅠ
12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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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4
이건 찬백이야 오백이야 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딱 전화가!!!!!!! 찬열이가 경수야. 라고..! 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 감격이에요ㅠㅜㅠㅠㅠ 왜 이제서야 경수 언급을 하셨어요ㅜ... 아 이게 문제가 아니고 가해자가 왜 반ㅂㄱㅇ을 ㅜㅜ 백현이를 왜 살인죄로..! 정당방위 맞는데ㅜㅜㅜㅜㅜㅜ 누가 맞다고 해 주세요ㅠㅠㅠㅠㅠㅠ
12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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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5
이야 드디어 경수등장!! 백현이 빨리 구해줘ㅜㅜㅜㅜ
12년 전
비회원도 댓글 달 수 있어요 (You can write a com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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